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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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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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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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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61화

DUMMY

“여전히 안 움직이냐?”


계급이 병조인 기장이 관측수에게 물어본다. 관측수는 후방좌석에 앉아 관측카메라에 코를 박은 채였다.


“움직임 없습니다.”


관측수인 오장이 대답했다. 이 가와사키 88식 정찰기는 한강 남안 시흥과 부천 일대에서 정찰비행을 하며 지상에 배치된 헌병대 관측소가 무선전신으로 추적해야 할 차량을 통보하면 그 차량에 따라붙으며 실시간으로 위치를 추적해 보고하는 임무를 하달받았다. 헌병대가 추적중인 무장한 불령선인들이 차량을 타고 탈출해 경성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럴 일이야 있을까 하고 시원한 봄날 아침바람을 맞으며 느긋히 비행중이었는데, 정말로 전신이 들어왔다.


기장은 시흥군 북면 도로를 통해 서쪽으로 트럭이 질주하고 있다는 경보를 받고 빠르게 기수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면을 가로지르는 도로 바로 위에 도달하자, 안양천을 넘어가는 그 트럭을 관측수가 포착했다. 관측수는 도로 상황이 엉망이라고 보고했다. 보아하니 적과 교전한 결과로 트럭 한대가 굴러 불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장은 적이 중화기를 보유했다고 판단, 괜히 고도를 내리지 말고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계속 추적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계속 도망치던 이 트럭이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측수는 부천군 소사면 고척리에 접어들더니 잠깐 멈추고 후진했다가 앞으로 나아가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더니 벽돌건물 앞에 정차했다가, 다시 이동해 마을 서쪽 외곽까지 가서 정차했다고 보고했다.


“뭐 하자는 거지, 저놈들?”


기장은 이해가 안가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곳곳에서 추적을 받는 상황인데 왜 여기까지 와서 정차한단 말인가?


“차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습니까?’


오장의 말에 “글쎄. 모르지.”라고 답한 기장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이 고도에서는 관측카메라로 트럭이 확인되어도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내려서 뭘 하는지 확인하려면 고도를 내려야 했으나, 중화기를 보유한 게 확실한 적을 상대로 하강하는 건 위험할 수 있었다.


기장은 이 고도에서 계속 관측하기로 결정하고 “아무튼 보고는 해 둬.”라고 한다. 관측수 겸 통신수를 겸하는 오장은 모스부호를 탁탁 두드려 현재 적 트럭이 부천군 소사면 고척리에 들어와 있으며 움직임이 없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지금, 마을 외곽에 멈춘 트럭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기장은 관측카메라가 트럭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비행속도를 유지하고자 마을 상공을 계속 빙빙 돌고만 있어야 했다.


“이러다가 연료 떨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관측수가 계속 한 자리에만 있는 트럭을 보느라 지루한지 푸념하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러게 말이다. 아직 충분하긴 한데, 저놈들 진짜 그때까지 저기서 대기만 하는 거 아니냐?”


기장이 연료계를 보고 투덜거린다. 그때였다.


“3시 방향에서부터 차량들이 진입합니다. 우리 헌병대 차량 같습니다.”


“근데도 저놈들은 여전히 안움직이고?”


“그렇습니다.”


“거 참 기가 막히는군. 대체 놈들이 뭔 생각이지?”


바로 뒤에서 추격대가 몰려오는데 꼼짝않고 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선회 중에 추가로 보고가 들어온다.


“어라? 9시 방향에서 새로운 차량들이 진입합니다.”


“뭐? 헌병대인가?”


“모르겠습니다. 트럭은 아니고 다 승용차입니다.”


“몇 대나?”


“한대······. 두대······ 세대······. 계속해서 모입니다. 이제 여섯 대 쯤 됩니다.”


“어디 소속이지? 저기도 헌병인가?”


“여기서는 확인이 안 됩니다.”


“젠장. 뭔지 모르겠네. 일단 계속 관측하자고.”


두 항공대원이 이렇게 주고받는 동안, 지상에서는 지극히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부천경찰서 통신실에 고척리주재소에서 긴급히 전문 하나가 도착하자, 경찰서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헌병이 주재소를 공격하고 주재소 경찰들이 헌병과 교전중이라는, 실로 말도 안되는 전보였다. 통신실에서는 웬 허무맹랑한 보고를 하느냐고 어이없어하며 상황보고를 하라고 돌려보냈지만, 긴급지원을 요청한다며 중간에 끊긴 전문이 날아오자 분위기가 지극히 심각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냐며 전신을 보내도, 거의 1분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도 누구도 답신하지 않고 누구도 받지 않았다.


부천경찰서만이 당혹해 한 건 아니었다. 부천군 소사면 파출소와 여러 주재소에 전화를 통한 지원요청을 받고 난리가 났다.


“이놈들이 단체로 아편이라도 태웠나?”


“뽕 맞은거 아냐?”


헌병이 주재소를 공격하니 지원요청한다는 다급한 전화보고에 천장절 기념이랍시고 약이라도 했냐고 따져물으려던 순사들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총성에 기겁했다. 헌병이 갑자기 튀어나와 주재소를 공격한다는 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총성이 울린 건 확실했다.


소사파출소와 각 주재소에서는 즉시 긴급상보를 경찰서에 올리고 다른 파출소 및 주재소에도 상황을 전파하며 긴급히 상황을 확인하려 순사들을 보냈다. 소사파출소와 5개 주재소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순사들이 차량에 탑승하고 고척리로 향했다. 상황파악이 안되어 초조해하던 부천서에서도 파출소의 긴급 보고를 받고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속히 보안과 소속 무장경찰들을 급파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서 건물 전체에 애앵 하고 비상벨이 울리고, 보안과 순사들이 황급히 총기함에서 아리사카 소총을 챙겨 트럭에 줄지어 올랐다.


그리하여 얼마 후, 고척리 마을 서쪽 어귀에서 이곳저곳에서 급파된 각 파출소 소속 순사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안면이 있는 순사들이 창 너머로 눈인사만 하고 시급히 저만치에 보이는 마을로 진입하려던 그 순간, 그들이 달리는 도로 바로 전면에서 군용 모터사이클과 트럭들이 나타났다.


“니미! 그게 진짜였단 말인가!”


마을에서 군 병력이 튀어나오는 것을 목도한 주재소장 중 한 명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헌병이 이곳으로 진입한다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왜 헌병이 이쪽에서 오고 있단 말인가? 정말 그 말도 안되는 전화대로 헌병이 주재소를 습격한 게 사실이란 말인가?


한편 바로 맞은편에서 달리던 헌병들은 “뭐야, 저건?”이라며 짜증을 냈다. 최소 3개의 기관총을 장비한 채 막대한 화력을 보여준 불령선인 트럭을 기관총 유효사거리에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하며 추격을 지속하라는 새로운 지시를 받은 이들은 트럭 바퀴자국을 따라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논두렁 사이로 뚫린 비포장도로에 웬 차량들이 정차하더니만 흑색 제복 입은 순사들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제일 앞서가던 모터사이클 분대장인 대위가 길을 막은 순사들에게 성을 낸다.


“뭐야, 당신들! 왜 길 막고 지랄이야! 당장 차 못빼?”


그러나 순사들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다. 이들이 어깨에 비끄러맨 총을 양손으로 잡는다. 당장 사격자세를 취하진 않았지만, 명령만 떨어지면 그럴 기세였다.


“당신네들! 거기 주재소에 뭔짓 했소?”


이들 중 가장 경력이 높은 오류리 주재소장이 앞장서 나섰다. 모터사이클 분견대장이야 이게 뭔 소린지 몰라서 짜증만 난다.


“당신네 주재소? 그게 우리가 알 바요? 뭔 헛소리요?”


“우리 주재소에서 그쪽과 교전이 일어났다고 보고가 왔소! 총성도 들렸고!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뭐? 교전? 총성? 이건 뭔 헛소리야!”


모터사이클 분견대장은 저 경찰이 웬 믿도끝도없는 헛소리를 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뭔 말을 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는데, 비키기나 하쇼! 우린 지금 중대임무를 수행하고 있단 말이오!”


이때 갑자기 선두에서 달리던 제6헌병대 소속 모터사이클들이 멈춰서자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제7헌병대 트럭에서 차량화 추격대의 지휘관인 분대장이 내려 앞으로 온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그의 물음에 모터사이클 분대장이 고개를 흔든다.


“나도 모르오. 저 짭새들이 길 막고 안보내주고 이상한 소리나 한단 말이오!”


모터사이클 분대장보다 더 침착한 성격의 이 대위는 우선 대화를 시도한다.


“이보시오들. 우리는 지금 무장한 불령선인들을 추적하고 있소. 중화기까지 장비한 아주 위험한 놈들이오. 이렇게 추격하다가 접촉이 끊기면 우리가 지극히 곤란해지오.”


“뭐 불령선인?”


오류리 주재소장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나 바로 그 눈에 의심하는 눈빛이 들어간다.


“우린 그런 정보 받은 적도 없소! 당신들 정말 그런 놈들 추격하는 거 맞소?”


“아, 진짜라니깐! 이렇게 길 막고 있다가 놈들 놓치면 당신네들이 책임질 거요?”


모터사이클 분대장이 언성을 높인다. 그러나 무슨 무장한 불령선인들이 관할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주재소장은 강경하게 나선다.


“불령선인이고 나발이고, 우린 저기 주재소에서 긴급지원요청을 받고 왔소! 당신네들이 고척리 주재소를 습격했다는 거요!”


“뭐요?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군인들은 황당하기 그지 없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본다. 경찰들도 이들 표정을 보고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보쇼. 이 마을은 요보 애새끼들 돌아다니는 거 빼고는 조용하기 그지 없소. 당신네들 주재소에 뭔 일 생겼는지는 우리가 어찌 아오?.”


그런데 그 말에, 이 자리에 온 온수리 주재소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낸다.


“뭐, 요보? 너 이새끼 방금 요보랬냐?”


온수리 주재소장은 조선인이었던 것이다. 이에 모터사이클 분대장이 “발끈하는 거 보니 마늘냄새나는 요보인가보지?”라고 이죽거리자 “뭐 이새끼야! 죽을래?”라고 조선말 욕설이 날아온다. 차량화 분대장은 괜히 싸워봤자 좋을 게 없다고 여겨 “괜히 자극하지 마시오!”라고 호통을 친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불령선인들을 추격해야 하오! 우리가 다 간 다음에 주재소 상황을 확인해도 되잖소!”


그러나 주재소장은 완강했다.


“당신네들 말을 어찌 믿소? 그쪽은 지난번 개성에서 우리 개성서 애들 상대로 총쏜 친구들이오! 거기 주재소와 뭔 충돌이 일어나 총질을 했는지 안했는지 대단히 의심스러운데, 그쪽 먼저 지나가고 확인하란 말이오? 그렇겐 못하오!”


모터사이클 분대장이 그 말에 “이 짭새 새끼가 돌았나!”라고 욕설을 퍼부은 순간, “이런 니미!”라고 바로 다른 욕설을 퍼붓는다. 저만치에서 트럭 여러 대가 먼지를 흩날리며 달려오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몇 분후, 고척리에서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경찰 트럭 3대가 주재소 차량들 뒤에 정차했다. 소총으로 무장한 순사들이 우르르 하차해 도열한다. 이들 앞으로 경부 계급장을 단 제복경찰이 걸어오면서 주재소장들과 주재소 소속 순사들의 경레를 받는다.


“거기 헌병대 분들! 본관은 부천서 보안과장이오! 저기 구척리 주재소에서 당신네들과 교전하니 긴급지원을 요청한다는 전보가 들어왔소! 아무래도 잘못된 보고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확인해야겠소!”


승용차 6대도 모자라 트럭 3대까지 합류하고 무장경찰 수십명이 우르르 내리니 헌병 지휘관들로서는 실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 그런 거 없다니까! 당신네들 지금 우리 임무수행 방해하고 있는거 알아, 몰라?”


“그럼 주재소가 무사한지 확인하면 될 거 아니요! 정 그쪽이 결백하다면 본관과 같이 가서 확인하면 끝날 문제잖소!”


“당신네들이나 누구 한명 저기 밭으로 보내서 마을 들어가게 하면 될거 아뇨! 길 비킨 다음에! 왜 길을 틀어막고 자빠졌는데! 우린 불령선인들 추격하고 있단 말이오!”


“우린 관할구역에서 그런 놈들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소! 아무튼 우리 쪽에서 빙 둘러 들어가더라도 확인을 한 다음에 길을 열던가 할 것이니 그렇게······.”


그 순간이었다.


탕!


갑작스럽게 귀청을 찢는 폭음이 울려퍼졌다. 서로의 신경전으로 고조된 긴장을 한 방에 터트리는 소리였다.


바로 다음 순간, 보안과장이 목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의 목에서 시뻘건 선혈이 펌프질하듯 뚫린 구멍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단 1초도 지나지 않아, 보안과장이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군바리 새끼들이 쐈다!”


경찰 중 누가 그렇게 외친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 외침이 쓰러지는 보안과장을 보며 충격에 굳었던 순사들의 즉시 행동을 촉구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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