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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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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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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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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70화

DUMMY

주리는 너무 놀라 입에서 “어머나!”소리가 나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갑작스런 일격을 날리다니, 하마터면 규일이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부터 되었다. 그러나 옆에 서서 웃는 정우는 그닥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천 지부장의 손속이 거칠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규일은 아버지의 일장을 뒤로 몸을 한바퀴 빙글 돌며 피해내고는 바로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다음 일격이 날아들기 전에 오히려 그 작은 몸을 휙휙 돌리며 역공을 가하는 게 아닌가. 바닥을 통통 튀어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빠르게 여러 초식들을 날린다. 아버지의 체구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아들이나, 몸집이 작으면 작은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거침이 없다.


그러나 천 지부장은 오직 팔만 움직여 아들의 공격을 모두 받아낸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휙휙 소리와 함께 규일이 전개하는 초식들이 빠르게 봉쇄당한다. 아버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른손을 쫙 펼치나 싶더니 아들의 어깨를 확 붙잡는다.


“린 사범께 잘 배웠구나.”


아버지에게 제압당한 규일은 바로 자세를 거두고 “소자, 송구스럽습니다!”라며 절도있게 예를 갖춘다.


천 지부장은 칭찬 후 강평을 한다.


“허나 너의 허초 속에 실초가 너무 많았다. 허 속에 실을 감추어야 하는데 아직 마음이 급한지 실초를 많이 드러내었다. 이를 명심하고 자만하지······..”


그런데 강평은 도중에 끊긴다. 이때 짝 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에라이 화상아!”


주리는 눈 앞에 전개된 광경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한껏 노력해야 했다. 에이코가 남편의 등을 손바닥으로 철썩 때린 것이다.


“내가 못살아! 4년만에 아들 만나자마자 때리려 드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다치려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그러나 천 지부장은 아내에게 등짝을 맞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변화 하나 없다.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대련이 아니겠소? 보아하니 규일이의 무공은 내가 만족할 정도로 증진되었구려.”


그 칭찬에 규일은 놀라운 표정변화를 보였다. 순간 규일의 표정에 해맑은 웃음이 감돌았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아버지에게 칭찬받았다는 기쁨의 웃음이었다. 그러나 바로 표정을 굳게 하고 “소자, 감읍하고 또 감읍하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나이다!”라며 허리를 깊이 숙인다. 그 말에 어머니는 푸념이다.


“저런 건 애들 아빠 안배웠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크면 제 아버지보다 더하게 되겠어!”


제자들은 그 말에 “에이. 벌써 다 큰게 좋은걸요 뭘.”, “나중에 더 크면 볼만 하겠어요.”라고 한마디씩 하며 웃음짓는다. 그저 어리고 또 어린 동생으로 보았던 규일이 장래가 기대되는 실력을 벌써부터 보인다는 게 진실로 대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와중에 경자가 뾰로통한 얼굴이 되어 동생에게 질 수 없다는 듯 “아빠! 나도오! 나도 시험해 줘요!”라고 보채고 든다. 이에 에이코가 “넌 또 왜이런다니?”라며 딸아이의 뺨을 살짝 꼬집으니 다들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곳은 호텔 뒷문에 연결된 통로로, 가족간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좋지 아니한 곳이었다. 량궈가 다가와 조용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대인께서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하니 다들 발걸음을 옮긴다. 경자는 아버지에게 당장 무공을 시험받지 못해서인지 다소 부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주리는 이 작은 여자아이의 부푼 볼이 하도 귀여워서 에이코처럼 살짝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갔을 때, 량궈는 장 대인의 집무실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그 전에 씼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세면 후 장카이셴 대인의 집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대인이 자리를 박차고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서 중국요리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확 풍겨온다. “대형!”, “대인!” 하고 포권을 취하는사람들 앞에서, 장 대인 특유의 호탕하기 그지 없는 “와하하하하!”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현제! 조카들! 고생 많았네, 고생 많았어! 와서 좀 들게! 이제까지 입에 음식 한번 못 댔을 거 아닌가? 차오 형제와 량 형제도! 같이 갔던 형제들에게도 따로 두둑히 챙겨주게!”


그 말대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요기하고 트럭에 탑승한 이후 점심때가 지나도록 식사할 기회가 없었다. 긴장감 속에 망각하고 있던 공복감이 요리 냄새를 맡자마자 확 끼쳐온다. 정우는 장 대인의 이 성의가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주리도 마찬가지라 바로 나서 “대인의 은혜가 바다와 같습니다!”라며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한다.


“자! 자! 우리 어린 조카들도 빨리 들고! 글쎄 우리 조카들이 아버지 어머니 오시기 전까지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하지 뭔가? 부럽구먼! 부러워! 나도 중원에 자식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카들만은 못한 것 같으이!”


그 말에 천 지부장이 다소 놀란 얼굴이 되어 자녀들에게 고개를 돌린다. 경자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이 참, 큰아빠! 그건 왜 말해요!’라고 투덜거리고, 규일은 묵묵히 “사백, 부끄럽습니다!”라고 한다. 천 지부장은 “먹어야 할 때가 되면 그런 건 신경쓰지 말고 챙겨먹도록 하거라.”라고 하며 얼굴에 미안한 낯빛을 보인다. 주리는 천 지부장이 굳어지거나, 찡그리거나, 화난 얼굴이 아닌 여러가지 얼굴을 보여주자 갈수록 재미있어진다.


“자! 자! 어서들 들게! 저녁에는 더 뻑적지근하게 차려줄 터이니 너무 부담스럽게 먹진 말고! 오늘 저녁에 아주 화려하게 열 걸세! 각 채의 채주들이 모두 몰려올 거라고! 꼭 그래야 할 행사니 말일세!”


“대형. 제 송별회는 감사합니다만, 다른 형제들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천 지부장이 자리에 앉으며 한 말이었다. 경성채의 왕 채주는 그렇다 치고라도, 옥룡회의 영채가 있는 평양, 의주, 군산, 목포의 채주들이 다 인천으로 올라와야 한다. 천 지부장이 옥룡회의 일원이 아니면서도 장카이셴 대인에게 의형제로서 대접받는다는 점, 그리고 만보산 사건 이후 조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좋은 상황에서 그들의 송별회에 채주들을 다 부른다는 건 옥룡회 내에 작게나마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 대인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걱정은 말게! 오늘은 자네 송별회를 겸해서 다른 경사가 몇 개나 더 있다네!”


“경사요? 무슨 일입니까?”


“아, 엄청난 경사라네! 원래 있을 경사도 있고, 제수씨에게 새로 들은 경사도 있지! 처음 듣고 아주 놀랐다네! 이건 조선에서도 호외보도될 아주 큰 일이라네! 내 샤오바오 녀석을 거리에 보내 보도가 되는데로 호외를 가져오라 했지!”


“대인.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렇습니까? 신문사에서 호외까지 낼 정도로 큰 일인가요?”


명수가 기다리다 못해 질문한다. 그러나 장 대인은 “벌써부터 알려 하면 재미 없다네! 샤오바오가 돌아올때까지 점심을 들고, 못한 얘기나 실컷 하세나!”라고 하는게 아닌가. 형제들은 장 대인이나 사모님이나 하나같이 이렇게 나오니 참으로 궁금하지만, 아무래도 말해 줄것 같지 않으니 웨이샤오바오가 가져올 호외를 기다린다고 마음을 모은다.


“당신이 수행한다는 공무와 관련이 있나 보군.”


천 지부장이 넌지시 물어보지만, 살짝 딴청을 피우며 “때 되면 알게 되어요.”라는 에이코였다. 에이코는 이 와중에 남편에게 눈을 흘긴다.


“그나저나 당신은, 떨어져 지낸지 몇년인데 어떻게 나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한 마디도 안하우?”


부인이 남편에게 섭섭함을 내비친다. 천 지부장은 늘 그렇듯이 무뚝뚝하게 답한다.


“그간 부인도 나도 계속 바빴소. 괜히 감정을 동하게 할 말이 있으면 서로 신경쓰이게 하여 일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보았소.”


“에휴. 내가 어쩌다가 이런 목석같은 남자에게 반했는지 몰라. 안 그러니, 얘들아?”


제자들은 사모님의 이런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항상 곤란한지 “하하. 그렇죠, 뭐.”라고 대충 넘기려 든다.


그럼에도 에이코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남편을 쳐다본다.


“그래도 감정이 동하니 뭐니 말하는 걸 보니 편지에 표현만 안했지 내 품이 그립긴 했나 보죠? 하기야, 당신 마누라는 4년간 독수공방하느라 아주 밤에 얼어 죽는줄 알으니 당신은 오죽 했겠수?”


그러나 천 지부장의 대답은 참으로 무신경하였다.


“상하이는 밤에 안 춥잖소. 내가 없는 동안 상하이의 기후가 아열대에서 냉대로 바뀌기라도 한 거요?”


“아유, 진짜! 당신 솔직히 말해요!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렇죠?”


에이코가 답답해서 더더욱 입술을 삐죽인다. 천 지부장은 그저 차를 입에 가져다 댈 뿐이다. 에이코는 그럼에도 남편의 반응을 얻으려고 멈추지 않고 종알댄다.


“여튼 지난 세월간 나나 당신이나 독수공방만 했으니, 이제 회포를 좀 풀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의 이런 말에도 남편은 짤막하게 답한다.


“이미 지금 그러고 있잖소.”


“아아니, 당신 또 그런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면서 왜 무심한 척이래요?”


“난 모르겠소만.”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요? 당신 마누라는 우리가 구름과 비의 정을 마지막으로 나눈 상하이 떠나기 전날 이후, 몸에 열이 오를 때마다 허벅다리를 꼬집으며 참고 또 참았다우. 그래서 내가 지금 거기에 성한 데가 없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 나이대가 되면 더더욱 그렇게 되는게 사람 몸이잖아요? 그렇게 참고 또 참은 안사람에게, 뭔가 좋은 보답을 해 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겠어요?”


그러며 에이코는 입가에 야릇하기 이를데 없는 웃음을 흘리며 눈빛이 기묘해지는게 아닌가. 장 대인은 그 말에 “하하하! 제수씨는 항상 거침이 없으시오!”라고 유쾌히 웃는다.


주리는 그 광경을 보고 자기가 다 부끄러워 귓볼까지 새빨개진다. 사모님이 무슨 속뜻을 가지고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이미 다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의 말들을 제자들과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다는 건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다.


“사모님······. 너무 과감하신거 아녜요?”


주리가 정우에게 속삭인다. 정우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원래 그런 분이셔서······.”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이때 경자가 똘망똘망한 눈에 물음표를 띄우고 “엄마. 아빠한테 뭐 받고 싶은 거예요?”라고 물어본다. 순진하기 그지 없는 얼굴이었다. 에이코는 딸의 호기심에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띄우고, “이건 나중에 크면 알게 될 일이란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천 지부장은 “흠. 흠.”하고 헛기침을 한다.


“부인이 무슨 말 하고 싶은 건지 알겠소. 그러니 굳이 공개적으로 얘기 안해도 괜찮을 것 같소.”


그의 눈에 일순간이나마 곤란하다는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에이코는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서 지우지 않고 “그럼 식사 끝난 후 보는 건 어때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하늘같은 사부님이 사모님의 이런 말에 “으음······.”하고 불편한 신음을 내뱉는 것을 보고 어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밖에서 난다.


“대인! 샤오바오입니다!”


“오!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그 촐싹대는 얼굴의 웨이샤오바오가 후다닥 들어온다. “안녕, 샤오바오.”하고 형제들이 맞이해준다.


“그래? 사왔나?”


“예! 예! 그렇습니다요! 대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 왔습죠! 지금 인천 바닥에 이 호외가 쫙 깔리고 있습니다요!”


손에는 장 대인이 심부름을 보낸 대로 1장짜리 신문지가 들려 있다. 호외보도가 틀림없었다. 웨이샤오바오는 대인의 집무실에서 방방 뛸 기세로 호들갑을 떤다.


“천 어르신! 어르신! 그리고 형님들! 형님들! 오늘 아주 큰 일이 났습니다! 엄청난 일입니다요! 일대의 대사건이올시다! 아주 천지가 뒤흔들릴 사건이라고요! 이 호외가 인천뿐만 아니라 아주 조선 방방곡곡에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아, 뭔 일인데 그래?”


대체 뭔 일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정신사납게 구니 재호가 한 말이었다. 샤오바오가 손에 든 호외 신문지를 쭉 펼쳐보인다.


“여기 다 나와있습니다요!”


샤오바오가 보여준 건 동아일보의 호외였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첫머리의 표제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걸 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 다 놀람으로 얼굴이 굳어진다.


-백천(白川) 사령관과 중광(重光) 공사에게 수류탄 투척

천장절 축하식을 거행중

상해 신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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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0화 +12 21.02.15 320 9 13쪽
269 269화 +4 21.02.12 320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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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267화 +16 21.02.07 340 11 14쪽
266 266화 +4 21.02.06 307 11 13쪽
265 265화 +8 21.02.03 325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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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260화 +12 21.01.23 358 8 15쪽
259 259화 +6 21.01.21 325 8 12쪽
258 258화 +10 21.01.18 381 9 13쪽
257 257화 +6 21.01.16 374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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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249화 +12 20.12.30 341 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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