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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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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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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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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화

DUMMY

천장절 아침이 밝기 전날, 나카하라 경무국장을 보낸 한인애국단 경성지부 단원들은 소련측 사람들과 함께 러시아요릿집 체호프의 한 방에서 늦은 점심을 들며 가장 중요한 사항을 논의하고 있었다. 탈출계획이었다.


“놈들이 영사관 주변에 쫙 깔렸습니다.”


영사관 종탑에 소련 경비병력과 같이 올라가 헌병의 배치상황을 직접 관측했던 민호의 말이었다.


“주변을 완전히 에워쌌어요. 사방팔방에 철조망에, 차단봉에 난리가 났습니다. 지부장님 말씀대로 놈들 중에 머리 쓸 줄 아는 놈이 있는게 틀림 없습니다.”


“그 말 대로일세.”


키릴롭스키 요원의 말이었다.


“총영사 동지와 당서기 동지도 꽤 당황하고 있네. 헌병에 대체 어떤 놈이 있기에 우리 차량이 자네들을 데리고 왔는지 2시간도 안되어 알았는지 말일세. 제국주의 총독부 외무국이 계속해서 항의전문을 보내고 있네. 자네들을 총영사관에서 보호하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으니 당장 내놓으라고 말일세. 우리 쪽에서야 그런 일 없으니 근거없는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영사관에 대한 위협행위를 그만두라고 받아치고 있지만.”


“영사관 입장이 곤란해 지겠군요.”


정우의 말에 키릴롭스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들이 오랜 기간 동안 여기 머문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자네들은 빠르면 내일 여길 빠져나간다고 하니 이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의 외교적 문제로 번질 일은 없을 걸세. 그리고 총영사 동지는 자네들이 예정보다 오래 머물러도 괜찮다는 견해일세. 놈들이 자네들을 당장 내놓으라 해도, 우리의 일관된 입장은 그런 사람 여기 없다는 것이니. 그리고 그 귀중한 정보를 가져와준 친구들을 우리가 쉽게 버리겠는가? 세계 피압박민족 해방운동에 대한 우리 소비에트 연방의 지원이라는 일관적인 노선에서도 그렇고.”


“그래도 영사관에 더 폐를 끼칠 생각은 없소. 이미 우리의 영사관 부지 입경을 허가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소.”


천 지부장은 그렇게 말하며 소련 총영사관의 결단을 높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영사관이 자신들을 총독부와의 거래물품으로 삼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넌지시 비추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연해주 한인 무장단체들에 대한 소비에트의 해산결정 기억이 생생했다.


“그래도 놈들은 이거 하난 모르죠. 여기하고 영사관에 지하 비밀통로가 있다는 걸 말입니다.”


재호가 낄낄대며 보르시를 한술 떠 입에 집어넣었다. 헌병들은 그들이 영사관 주변에 깔아놓은 1차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난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음을 전혀 알리가 없었다. 총영사관과 체호프 사이에 이런 통로가 있음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영사관을 포위한 병력은 사실상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면서 괜히 총영사관 경비 병력과 쓸데없이 눈싸움이나 하고 있는 격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영사관을 에워싸는데 주력하고 있긴 하지만, 정동 일대에 2차 포위망을 형성하고 계속 검문검색 중입니다. 영사관 주변의 포위망보다야 느슨하기는 하지만, 도로와 골목마다 놈들이 다 검문을 하고 있습니다.”


명수가 그러며 얼굴을 찌푸렸다. 헌병의 2차 포위망이 느슨하다 해도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 그럴 뿐이다. 정동을 빠져나가려면, 더 나아가 경성을 빠져나가려면 이런 검문검색을 여러 차례 통과해야 할 터이다.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천 지부장이 뇌까렸다.


“각자 흩어져서 도보로 가거나, 아니면 다른 차량을 수배하거나 빌려서라도 여길 나와야 한다. 영사관에서 차를 빌려준다면 좋겠지만, 이미 한번 빌린 이상 부담스러워 할 것 같군.”


“그 말이 맞소, 천남건 씨.”


키릴롭스키의 말이었다.


“바깥 상황이 좋지 아니하오. 알다시피 우리 영사관 차량은 놈들의 요주의 대상이 되었소. 헌병의 하는 짓을 보아 외교적 문제를 감수하고 우리 차량이라면 마구잡이로 검문할 게 틀림없소. 그런 상황에서 우리 영사관 차를 타고 여길 빠져나가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오. 그쪽이 그러다가 걸리면 우리 입장이 심각하게 곤란해지기도 하오.”


“그렇게 생각하오, 아르카디 표도로비치. 그래도 어떻게든 차량을 구하지 않으면 도보로 나갈 수밖에.”


“그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프랭크 클린턴의 지적이었다.


“아무리 변장에 자신있어도 놈들 검문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데요?”


“걱정 마, 깜씨. 우리 변장은 웬만하면 안 들켜.”


대석이 마음 놓으라는 듯 말한다. 그 말에 벨릭이 “웬만하면 안 들킨다는 건, 들켰다는 사례도 있다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하자 대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 그랬나?”라고 한다. 정우는 자신과 형제들의 변장술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미 얼굴이 이미 공개수배된 천 지부장이나 조만간 공개수배될 자신과 민호, 또는 주리가 들켜버릴 위험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들켜 헌병에게 덜미를 잡히는 일은 상상하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위험부담이 있는 방법입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시간은 있으니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혜월 스님이 신중론을 보이며 그렇게 말한 순간, 가레예프가 끼어든다.


“잠깐. 자네 방법도 좋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네. 내가 도울 수 있다네.”


“뭔가, 미샤?”


시선이 가레예프에게 집중된다.


“영국 제국주의 총영사관의 트럭을 이용하는 걸세.”


“영국? 여기서 영국 영사관이 왜 나오나?”


천 지부장이 얼굴에 의아하다는 낯빛을 띄운다. 가레예프는 친구의 의문을 한 번에 풀어준다.


“들어보게. 영사관의 화물운송용 트럭을 모는 기사는 조선 사람이야. 그리고 조선공산당원이지. 내가 조선공산당 재건위 동지들과 접촉에 성공하며 알게 된 사실일세.”


“허어!”


그 대답이 가진 의미를 모두 대번에 이해했다.


“미샤. 그렇다면 그 트럭 기사가 순순히 우리 말을 따라준다 그건가요?”


명수의 질문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지.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네. 아무튼 영사관에 소속된 트럭이기 때문에 운전기사 마음대로 차량을 몰고 나갈 수는 없는 일일세.”


“그럼 어떻게 그 트럭을 동원한단 말인가요?”


종팔이 물어본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트럭을 어떻게 쓴단 말인가? 가레예프는 바로 답을 해준다.


“그 기사가 보고하기로는, 내일 이른 아침에 차가 마포로 간다고 하네. 현재 영국 총영사가 해산물을 즐기는데, 항상 싱싱한 해산물을 원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마포까지 트럭을 보내서 해산물을 구매해 얼음상자에 싵고 온다는군.”


그 말에 키릴롭스키 요원이 “하여간 부르주아 놈들이란!” 이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바로 내일 6시경에 그 트럭이 마포로 갈 걸세. 산지에서 직송된 해산물을 실으러 말일세. 행선지가 명확하고 또 영사관에서 확인도 되는 사항인 만큼 일본 헌병대도 문제 없다고 여기고 별달리 검문을 하지 않을 걸세.”


“그 말인즉슨, 미샤.”


천 지부장의 눈빛에 만족스러움이 배어난다.


“그 트럭을 몰고 한강 너머로 가도 아무 문제 없다는 거군.”


“바로 그걸세, 친구. 그 기사가 아니라 자네들이 트럭을 잠깐 모는거야. 한강 이남으로 갈때까지. 그 친구에게는 내가 얘기해 놓겠네. 자네들이 한강 남쪽의 특정 위치에 차를 세우고 다른 차량으로 갈아타면, 거기에서 대기중인 운전수가 그 트럭을 타고 예정대로 해산물을 구입한 후 영사관으로 갈 걸세. 그 과정에서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가는 걸세.”


확실히 대단히 안전한 대책이었다. 영국 총영사관 소속 화물운송 트럭이라면 경성을 빠져나가는 건 대단히 쉬운 일이 분명했다. 일본 헌병은 지금 소련 총영사관 부지와 정동 일대에 포위망을 집중했다. 경성 외곽지역과 경기도까지는 그들이 설정한 1차 검문선이 돌파당하지 않는 이상 심한 검문이 없을 터였다.


영국 총영사관 트럭에 타고 경성을 빠져나와 그들이 예전부터 옥룡회에서 빌려쓰던 트럭으로 갈아타고 인천으로 가면 만사가 형통하는 것이다.


“내 방법보다 자네 방법이 확실히 안전하군. 그 제안이 우리에게 실로 큰 도움일세.”


천 지부장의 말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이 담긴다. 가레예프는 바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미 땅 속에 여러 차례 묻혔을 목숨일세.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지 않으면 되겠는가?”


이 의리 있는 러시아인에게 감동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이로서 탈출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천 지부장은 영사관 전신을 빌려 대백루에 암호화된 전문을 보냈다. 영국 총영사관 소속 트럭을 타고 시흥군 북면으로 갈 것이니, 그곳에 트럭 한대를 보내달라고 말이다. 30여분 후에 왕 채주의 답신이 왔다. 그곳에 옥룡회와 거래하고 있는 운송회사의 창고가 있으니, 그 창고 근처에 미리 차를 세워 놓겠다고 말이다. 그 트럭 안에는 일전에 구매계약을 체결했지만 그 크기 때문에 분해해 가져가기 힘들어 일단 두고 갔던 맥심 중기관총과 중기관총 탄약 2,000발, 그리고 총알을 다 채운 기관단총 탄창 35개를 짐칸에 넣어 놓겠다고 했다. 중기관총 탄약 2,000발을 추가 구매하고 싶다면 인천에 도착해서 후불로 결재하라고 써 놓았다. 그들이 인천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아는 대로 그도 인천에 갈 예정이라고 말이다.


여기에 더불어 왕 채주는 영국제 루이스 경기관총이 막 1정 들어온 참인데, 그것도 구매하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들 모두 루이스 경기관총은 다뤄본 적은 없고 단지 탄창식이라 운용이 비교적 쉽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천 지부장은 어차피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을 아껴 봤자 쓸일도 없다는 판단에 경기관총과 탄약도 구매하겠다고 전신을 넣었다.


천 지부장은 장카이셴 대인에게도 전문을 보냈다. 내일 아침에 차량을 통해 인천으로 갈 것이니 인천 외곽이나 부평에서 합류할 인력을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장 대인은 부평군 소사면의 한 지점을 합류지점으로 하자고 답신하며 무사히 오길 바란다고 답신했다. 인천에 오면 뻑적지근한 송별회를 열어주겠다는 추신이 달려 있었다.


이후 단원들은 탈출 준비에 전념했다. 영사관으로 도피할 때 숨기기 쉽게 분해해서 챙겨온 톰슨 기관단총과 마우저 권총이 이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해체한 뒤 부품에 재차 윤활유를 칠했다.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필요한 물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지원해 줄 수 있다는 이트킨 영사에게, 그는 야전삽 7개를 부탁하려 했다. 천 지부장은 트럭을 운전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 야지에서 도보로 이동해야 할 경우도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럴 경우 한밤중에는 개인호를 파고 은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때 주리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 제 삽은요?”


그 말에 천 지부장이 자연히 주리의 부드럽기 이를 데 없는 손을 힐끗 보고 지적한다.


“땅 파본 적 있느냐?”


주리는 그 말에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그래도요.”라고 입술을 조물거렸다. 천 지부장은 그래도 주리의 눈빛이 결연하고, 또 남자들이 개인호 파고 있는데 주리 혼자 우두커니 서 있으면 부담 가지지 말라고 해도 필연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 뻔하였음으로 결국 야전삽을 1개 더 부탁하였다.


이것으로 대강의 탈출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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