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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인생 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9,937
추천수 :
823
글자수 :
168,559

작성
22.06.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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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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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2쪽

의식처럼

DUMMY

29. 의식처럼


“현우야. 여기 이상한 것이 있어. 여기 적힌 거 맞냐? 아무래도 이상하다.”

“······.”


“현우야.”

“너 집중 안 하면 쫓아낸다.”


“외형 마당돌기. 아니 마을돌기!”

“와하하! 돌아라. 돌아라.”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외쳤다.


“현우야. 노려보지 마. 무서워. 광선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알았다. 입 다물게.”


지금 우리는 백석 마을에 낸 작은 사무실에서 공부 중이다.

빈집을 개조한 사무실은 아늑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현우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조금 전까지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내던 이준이가 이번에는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나가자.”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왜 갑자기 진지해?”

“내가 두 가지 소문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건 공짜로는 제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때 선물이 부족했던 거냐?”

“그건 아니지만···.”


이준이가 입을 다물었다.

지난번에 미국에서만 판매되는 컵을 사다줬기 때문이었다.


“소문이라니? 또 쓸데없는 거지?”

“아니야. 정말 며칠 전에 조교 형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


“조교 형?”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래. 내가 안부 인사도 할 겸 전화했거든. 그런데 우리 과에 ‘현’이라는 애칭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묻더라.”


“뭐?”

“너도 이상하지? 너무 뜬금없는 말이어서 무슨 소리냐고 물었거든.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이준이는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다.

여기저기 참견하기도 좋아하고 성격도 좋아서 아는 사람도 많고 그 누구보다 소문도 빨리 듣는 편이다.


뭐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조교보다 이준이를 먼저 찾을 정도로 정보에 밝다.


“그래서?”

“그랬더니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더라.”


“그냥 물러설 네가 아닌데?”

“그렇지! 현우 네가 날 알아주는구나. 내가 유도 질문을 통해 정보를 알아 왔다. 무시할 수 없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 그게······.”


이준이의 말에 의하면 학과 사무실로 전화가 왔단다.

처음에는 ‘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있냐고 물었고 다음은 ‘김현’을 찾았단다.


두 사람 모두 없다고 하자 혹시 현이라는 애칭을 쓰는 학생이 있냐고 묻더니 카메라와 사진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조교 형은 그런 사람 없다고 했다는데 내 생각에는 너를 찾는 것 같더라. 너도 그렇지? 너 어디서 사고치고 다닌 거 아니지?”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

“아니라는 거 알지. 하지만 세상 좁다. 조심해.


”다른 건?”

“다른 하나는 출처는 말해줄 수 없다.”


이준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대부분 이준이의 아버지에게 들은 것이다.


“뭔데 그래?”

“천사 보육원을 캐는 사람이 있다더라. 한동안 잠잠하더니···.”


“그래?”

“응. 영감··· 아니 아버지 말씀이 굵직한 데서 움직이는 것 같다고 걱정하시더라.”


“굵직한 곳? 어디?”

“대기업이라고 하면 믿을래? 후원하려고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다고 하시더라. 지금 있는 보육원 부지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던데.”


“어딘데? 혹시 성만 그룹?”

“오! 어떻게 알았냐? 성만 건설이 수련원 건설 정도에 움직이지는 않겠지?”


이준이는 보육원 부지에 조성한다는 수련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없었어. 요즘 우리 아버지 남자 갱년기가 온 것 같다. 아주 죽겠다. 자꾸 울어. 돌아가신 할머니 보고 싶다고.”


이준이가 한숨을 푹 쉬며 하는 말이었다.


“네 아버지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했지?”

“그랬지. 지금 친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새로 결혼하신 분이고. 우리 아빠도 불쌍한 분이지. 국민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대. 아무튼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데 자꾸 저러시네. 우리 엄마가 그래서 의뢰했어.”


“뭘 의뢰해?”

“아버지 사진 가지고 할머니 얼굴을 유추해서 그려줄 수 있냐고 맡긴 거지.”


“그런 것을 해주는 사람도 있어?”

“있다더라. 의외로 인기가 있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나 그리운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우리 아버지 소원이잖아. 꿈에서라도 할머니 보는 거.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진 많이 찍으라고 하시잖아.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너희 집도 매년 가족사진 찍잖아.”

“여기에서 배우신 거야. 여긴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1년에 한 번.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모아두니 좋더라.”


우리 보육원은 매달 첫 주 사진을 찍는다.

단체 사진도 찍고 독사진도 찍고.


매달 성장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아! 외할아버지가 결단을 내리셨다. 축하한다.”

“결단을 내리셨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감사하네.”


“가지고 갈 재산 아니고 자식들이 시골에 들어와서 살 것 같지도 않다고 결정하신 거지. 저렴하게 넘길 것 같더라.”


보육원을 백석 마을로 이전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이다.

미령산 밑에 있는 것보다 마을에 있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백석 마을로 옮긴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이준이의 외할아버지였다.


이전 규모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획하는 대로 보육원이 들어서면 백석마을은 거의 보육원에 포함된다.


그 말은 대대로 터전으로 삼아온 땅을 우리에게 넘겨야 한다는 말이 된다.


땅의 일부를 넘기는 것과 전부를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백석 마을에 가장 많은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준이 외할아버지.

이준이 외가의 찬성이 아니면 우리의 계획은 시작부터 차질을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결정을 내리신 것 같았다.


“설날 모두 모이니까 그때 말씀하실 거래. 외삼촌과 이모들도 알아야 하니까.”

“그분들은 반대하지 않겠지?”


“반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작부터 팔아서 나눴으면 했었어. 외할아버지가 반대하셔서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런데 돈은 되는 거냐? 우리 외할아버지가 가진 땅 다 사려면 장난 아닐 텐데.”


“집까지 사기로 했어.”

“외갓집까지? 그럼 우리 외할아버지는?”


“우선은 그대로 사시게 할 거야. 거기에 동의하신 거고.”

“정말 터전이 없어지는 거구나. 느낌이 이상하네. 내가 이런데 외할아버지는 더 하시겠지?”


“생각하기 나름이지. 지금 집에서 계속 사시게 될 거니까. 그 집은 그 뒤로도 유지될 거야. 잘 보존해야지. 정말 잘 지어진 한옥이잖아. 너희 가족은 언제 오든 이용할 수 있을 거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응. 그렇게 할 거야.”


“보육원 이상을 꿈꾸는 것 같은데?”

“맞아. 보육원 이상을 꿈꾸는 거야.”


나와 보육원을 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찜찜한 일이지만 백석 마을의 땅을 사는 것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 문제가 없으면 새학기가 시작하기 전 원하는 땅을 거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 *


이 시간이 되면 보육원은 정적에 휩싸인다.

밤 새소리와 바람 소리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하는 말도 뚝뚝 끊어져서 뭐라고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몸이 들린 것 같고 어디론가로 옮겨진 것 같았다.

그러다 잠시 시원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뜨거워지는 몸.

지옥 불에 던져진 것만 같았다.


“뜨··· 거···워···.”

“현우야! 정신이 들어? 현우야. 정신 좀 차려봐. 현우야!”


절박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


그러다 뚝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암흑이 찾아왔다.


암흑 속에 갇혔다.

그런데 뭔가 익숙했다.


언젠가 한 번 겪어봤던 것 같은 느낌.

그러다 불현듯 어릴 적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주변이 인식되었다.


여기 병원이구나!


“현우야! 정신이 들어?”

“현우야!”


“아버지. 어머니.”

“아이고. 정신이 들었네. 선생님! 선생님. 우리 현우 정신 차렸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상체는 벗겨진 상태였다.

겨드랑이에 얼음팩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열이 올랐던 모양이다.


“애들이 가보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아버지 얼굴의 주름이 유난히 깊어보였다.


“아!”

“현우야! 왜 그래?”


“헉! 허억!”

“현우야. 현우야!”


분명 꿈이 아닌데 꿈속의 존재가 보였다.

그것도 아버지 뒤로···.


너울너울 움직이는 세 개의 형체.

곧 아버지의 어깨를 넘어서 날 덮칠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침대 난간을 잡았다.

언제든 난간을 뛰어넘어 달아나기 위해서였다.


“현우야. 왜 그러니?”

“아버지···.”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엄청난 두통과 함께 다시 몸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형체 하나가 아버지 어깨를 타고 넘었다.

그리고는 미끄러지듯 접근하는 검은 형체!


두통과 고열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


“현우야! 현우···.”


아버지의 애절한 목소리.

하지만 그 무엇도 검은 형체를 잡아 세울 수는 없었다.


검은 형체가 내 어깨를 잡았다.


그 순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과 함께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 *


“내 죄인 것 같다. 너무 차가워서 따뜻했으면 했는데···.”


눈물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잃을 수는 없다. 현우야. 진실 같은 거 밝히지 않아도 그만이야. 깨어나기만 해라. 깨어나기만.”


기도 같은 말.


“아···버지.”

“현우야! 선생···.”


“괜찮아요. 저 개운해요.”

“열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


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당황한 것 같은 아버지의 얼굴.


“아버지의 기도가 통했나 봐요. 잠을 자고 싶었는데 잘 수가 없었어요. 하도 돌아오라고 하셔서···.”

“현우야.”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가 날 불러주지 않았으면 정말로 검은 세상에서 돌아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의사 불러오마.”

“괜찮아요. 이대로 조금만 있어요.”


아버지 너머로 검은 형체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세상에서 혼자 있었기 때문인지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싫었다.


내 감정을 느낀 것인지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어디 가지 않는다. 우리 현우 다 큰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구나.”

“그래서 좋으시잖아요?”


“좋지. 홀로 서라고 하지만 너무 잘 서면 때때로 서운할 때가 있어. 그게 부모 맘이야. 간혹 기대줬으면 할 때가 있거든.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우리 맘을 이해하는 날이 올 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예요?”

“3일!”


“3일이나 잤어요?”

“의사도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심리적인 것 같대.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일이 있냐고 묻더라.”


“그랬어요?”

“혹시 네 형 때문이면···.”


“그런 거 아니에요. 저도 왜 갑자기 열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밤이고 새소리가 난다고 느꼈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불분명해요.”


“지금은 다 괜찮고?”

“다 괜찮아요. 너무 개운해요.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때도 그랬지. 의사들이 놀랄 정도였어. 지금도 네 피부에서 광이 난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사경을 헤맸으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우야. 쓰러진 네 옆에 사진기가 있었다. 너 사진을 찍다가 기절한 것 같아. 기억나지 않니?”


“제가 방에서 사진을 찍다가 기절했다고요?”

“그래. 네 방 거울 앞에 사진기가 떨어져 있었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 사진은 찍었을 거다.


과거를 찍기 시작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의식처럼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기절하고 열까지 올랐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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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승리한 마법사 22.05.20 327 24 12쪽
10 운명 22.05.19 330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6 27 13쪽
8 증거 나왔어. 22.05.17 376 25 14쪽
7 무임승차 +2 22.05.16 387 29 14쪽
6 성장하는 능력 22.05.15 407 32 14쪽
5 여전사 22.05.14 458 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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