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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인생 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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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8,559

작성
22.05.2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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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마름

DUMMY

19. 마름


“아버지. 혹시··· 홍윤주 검사를 아세요? 우리 학교 졸업생인데.”

“너어···.”


홍윤주라는 이름이 내 입에서 나오자 바로 반응을 보이는 아버지.

아버지의 눈이 커지고 손이 벌벌 떨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현우야! 너 알고 있는 거냐? 형이···. 아니지?”


아버지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홍윤주 검사를 찍은 적 있어요. 그때 찍혔어요.”

“찍혔다고? 그래서 알고 있는 거냐?”


내가 말하는 것과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이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단순한 오해라고 말하기에는 아버지의 반응이 심각했다.


“아버지···.”

“찍혔어? 정말로? 정말로 찍혔어?”


어지간해서는 흥분하지 않는 분인데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두 장이 찍혔어요. 그중 한 장은 과거고 한 장은 미래 같았어요.”

“과거? 미래? 그래 뭐가 찍혔더냐? 뭐가···.”


“미래가 조금 이상했어요. 홍윤주 검사가 죄수복을 입고 있었거든요. 더구나 강력범들이나 차는 노란 명찰을 차고 있었죠.”


비틀!


“아버지!”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재빨리 부축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 그···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고?”


홍윤주 검사의 이름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어제오늘 호텔에서 만났던 남자를 대할 때와 아주 비슷한 반응이었다.


“홍윤주 검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기결수(이미 형이 확정된 죄수) 죄수복이었어요. 명찰도 노란색이고요.”


“5대 강력범죄.”


아버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지만 조금 전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맞아요. 위험하다고 판단돼도 노란 명찰을 달기도 한 대요. 그 사진에는 얼굴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홍윤주 검사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맞을 거다. 아니 맞아야지. 하늘이 있다면 그렇게 흘러가야지.”


감정의 격랑을 이길 수 없는지 힘들어하시는 아버지.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다른 것은? 다른 사진은 뭐였어?”


“물이라도 드셔야···.”

“현우야. 다른 사진은 뭐였냐?”


물이라도 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사진이 더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합격자 발표 순간이었어요. 사시 합격자 발표요.”

“허어···! 몇 명이 찍혔더냐?”


마치 그 순간을 아는 것처럼 질문하는 아버지.


“다섯 명이 찍혔어요. 홍윤주 검사와 남자 네 명요.”

“총 여섯 명이 아니고?”


“다섯 명만 찍혔어요. 거기에서 봤던 것 같아요. 형을. 아니 확실해요. 홍윤주 검사 바로 옆에 있었어요.”

“허어!”


“어! 그러고 보니 최정수, 성만 전자의 후계자도 그 사진에 있었어요. 형 바로 옆에. 그리고···.”


“네가 엊그제 찍어준 사진 속의 남자도 있었지? 합격증을 흔들며 형과 함께 달려오던 놈 말이다.”


“아! 홍 검사 사진 속의 표정과 너무 달라서 바로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 사람 같아요.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도 낯익은 사람이었어요.”


“낯익다고? 그럼 그놈은 ‘이동호’겠구나. 이동호라면 낯익을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사진을 찍고 있는 놈은 ‘윤상근’이. 사진을 찍고 있는 놈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한가락씩 하는 집안의 연놈들이었지.”


연놈!


말이 곧 그 사람이라며 언어 습관 형성에 유난히 심혈을 기울이시는 분이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의 입에서 연놈이라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저건 악연에 가깝다는 건데?


“형이 어디가 아프거나 사고로 떠난 것이 아니었어요?”

“하아···. 허어···. 이제는 다 잊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서울을 떠난 후 서울에 발을 들이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도 아들이 떠난 12월이 되면 자석에 이끌리듯 미친놈처럼 서울을 헤매곤 했다.”


“절 만난 것도 12월이었죠.”

“그래. 수길이도, 민교도, 슬기도 다 12월에 인연이 돼서 집에 오게 됐지. 아들이 인연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보낸 또 다른 아들딸이라고 생각했어.”


“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을 또렷하게 기억해요. 그땐 반항기가 가득했는데···.”


“다들 그렇지. 다들 그래. 후우···. 그 사진···. 아니다. 그 사진은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형은 어떻게 떠나게 된 거예요?”

“하아···.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그렇게 보려고 발버둥을 칠 때는 보이지 않더니 20년이나 지난 이후에. 이제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사이에 몰아치듯 밀려드는구나.”


공교롭게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제가 평지풍파를 몰고 온 것 같아요.”

“평지풍파 아니다. 사실 늘 폭풍우를 안고 살았어. 애써 외면해서 그렇지. 네 형은 ‘살해’당했다. 경찰은 사고사라고 종결했지만 그게 사고사면···. 후우···.”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아버지.


살해!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아버지···.”

“내가 미쳤나 보다. 어린 네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이제 다 잊고 살아야 하는데···.”


아버지답지 않은 모습.

자식의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사 종결됐어요? 아버지?”

“그때만 해도 사시를 합격했다고 하면···. 후우···.”


옛날 생각이 나시는지 말씀을 잘 잇지 못하는 아버지.

기억하는 것조차 괴로우신 모양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듣게 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면 이러했다.


사시 합격.

친구들과의 겨울 여행.

그리고 살해로 의심되는 사망.


“여섯이 여행을 갔다 다섯만 살아 돌아왔어. 내 아들은 그 한겨울에 차디찬 물속에 수장이 됐다. 추락해서 물에 빠졌고 미처 구하지 못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말이 되는 소리를!”


사건의 전말을 이미 이야기해서일까?

방언이 터지듯 아버지께서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사실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건 가슴에 응어리진 한(恨)이었다.


“벌벌 떨리는 다리로 거기에 수십 번 가봤어. 굴러떨어졌다길래 굴러보기도 하고 뛰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물에 그렇게 빠지지 않아! 다들 해보라고 해! 일부러 빠지려고 비리 발광을 해도 안 된다고!”


“경찰도 알았을 텐데요?”

“눈이 있는데 그걸 몰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거기서 추락해서 물에 빠진 사람은 없어! 죽는 것은 고사하고! 애초에 그런 장소가 아니야. 거기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수사···. 그걸 수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에 경찰 말을 믿은 내가 바보천치지. 세상을 너무 몰랐던 거야.”


“처음에는 의심하지 않았던 거예요?”

“의심하지 않았지. 염을 한 장례지도사의 말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장례를 치렀을 거다. 그럼 내 아들이 살해당한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야. 후우.”


합격을 자축하는 의미로 여섯이 떠난 겨울 여행.

2박 3일의 일정으로 떠난 여행이라고 했다.


여행을 함께 떠난 일행은.


먼저 아버지의 친아들인 김현우.


당시 23세. 한국대 법학과 4학년으로 동차 합격(같은 해에 1, 2차를 모두 합격하는 것)이자 늦은 생일 덕에 최연소 합격이라는 영예까지 거머쥐었다.


그뿐만 아니라 차석(2등)으로 합격해서 언론의 주목까지 받았단다.


다음은 홍윤주 검사.

당시 25세. 현우 형의 2년 선배로 함께 사시를 합격해서 누구보다 최고의 한 해라고 말했던 사람.

학원 재벌가의 장녀로 현재는 검사로 승승장구 중이다.


최정수 성만 전자 대표이사.

당시 28세. 한국대 철학과 졸업생(현우 형의 5년 선배)으로 당시 경영이 아니라 사시를 준비하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성만 그룹의 후계자.


김형동 판사.

당시 23세. 현우 형과 중학교 때부터 절친. 현우 형보다 1년 먼저 1차 시험을 합격했지만 연거푸 2차를 떨어져서 다음 해에 다시 1차를 재도전해야 하는 상황이었음.

공안통 차장 검사의 아들.

현우 형 사망 3년 후 사시 합격.


이동호 기자.

당시 29세. 한국대 체대 졸업생으로 현우 형의 6년 선배. 언론 재벌 2세로 마찬가지로 사시 준비생이었음.


윤상근 지사장(성만 전자 미주 총괄사장)

당시 2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생. 지방의 평범한 집안의 아들로 당시 사시 준비생이었음.


“장례지도사의 말을 듣고 말리는데도 직접 확인했다. 그쪽으로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것 투성이었어. 괜히 장례지도사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니야. 그때 사진으로 남겨뒀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그것이 평생의 한이 될지는 그때는 몰랐지.”


“적극적으로 말씀을···.”


아버지의 성격이라면 그냥 넘어갈 분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봤을 것이다.


“이야기했지. 부검까지 요구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부검 결과가 돌아오더구나. 장례지도사와 내가 보았던 상처와 흔적들은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았어. 죽은 아들을 난도질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현우야.”


“······.”

“다시 부검을 요구하자 이제 시신이 훼손되어 증거로의 효력이 없대. 너무 난도질이 돼서···. 으드득! 그래도 장례를 미루며 버텼어. 언론에 제보도 해보고 별짓을 다 해봤는데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더구나.”


사시 합격생의 실족사 정도로 몇 번 언론에 기사가 실렸지만 이내 사라졌단다.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어. 뻔하지.”


“만나보지 않으셨어요?”

“만나보려고 했지. 사시를 함께 준비한다고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다. 주로 우리 집에서 공부했어. 넓기도 하고 툭 튀어나와서 전망도 기가 막혔거든. 매일같이 오던 연놈들이 발을 뚝 끊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땐 정신이 없었지.”


“짐을 찾으러도 오지 않았어요? 함께 공부했으면 책 같은 것이 많았을 텐데.”

“누구도 오지 않더구나. 아! 사진을 찍어준 윤상근이. 상근이 그놈이 한 번 짐을 찾으러 오겠다고 하더니 소식이 뚝 끊겠지.”


“······.”

“그것도 이해가 안 돼. 상근이 그놈이 집이 지방이어서 당시 우리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거든. 다들 그랬지만 특히 그놈이 ‘아버지. 아버지.’하며 유독 잘 따랐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짐을 찾으러 한 번은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어. 영영.”


“자세한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겠네요?”

“경찰을 통해 실족사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지. 아무리 조사해도 그 이상은 없다는 말만 반복했어. 계속하고 싶었는데 회사로 압박이 들어오더구나.”


“회사로요?”

“펀드 매니저로 잘나가던 시절이었거든. 그런데 아들 사고 이후로 고객들의 이탈이 시작됐어. 큰손들이 먼저였고 심각성을 알아차린 후에는 회사의 눈치가 보일 정도였지. 할 수 있는 모든 압박이 들어오더구나. 금감원부터 시작해서 경찰, 검찰까지 전방위로 압박해 들어오는데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압박이 심했나 보네요?”


어지간해서는 물러설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묻는 말이었다.


“심한 정도가 아니었지. 동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정도였으니까. 내가 속한 부서는 물론이고 회사까지 들쑤시는데 버틸 재간이 없더구나. 나 하나는 괜찮은데 동료들은 무슨 죄야. 하아···!”


“······.”

“멈춰진 장례를 한 달 만에 다시 치렀어. 그런데 그곳에 그놈이 왔다고? 허어!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라도 들려달라고 찾아갔을 때 어떻게 했는데! 무슨 염치로 그 자리에 와! 무슨 낯짝으로!”


“······.”

“함께 여행 갔다가 내 아들이 재수가 없어서 죽었다고 쳐! 그럼 상식적으로 함께 간 연놈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 하나같이 부모들 뒤로 숨어야 해? 내가 그들 비서나 변호사를 만난다는 것이 이해되냔 말이야.”


“······.”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와서 한 번은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함께 여행 갔는데 자기들만 살아 돌아와서 미안하다는 정도는 이야기해야지. 그래야 사람이지! 약속한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 말이 돼?”


“아버지.”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더구나. 문턱이 닳도록 집을 드나들던 녀석들인데. 허어! 별 수를 다 써봐도 안 돼. 펀드 매니저로 잘 나가니 세상이 만만해 보였어. 그놈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지.”


“······.”

“회사에서 만지는 돈. 만나는 사람. 그게 내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 나를 만나지 못해서 안달이고 내게 자신들의 돈을 맡기지 못해서 안달이던 시절이었어. 그래서 단단히 착각한 거지. 난 그들의 마름(지주(地主) 대신 소작지(小作地)를 관리하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는데.”


너무도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짙어지는 하늘을 보고도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가자. 눈이 오려나 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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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승리한 마법사 22.05.20 327 24 12쪽
10 운명 22.05.19 331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7 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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