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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인생 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9,940
추천수 :
823
글자수 :
168,559

작성
22.06.07 00:01
조회
162
추천
14
글자
12쪽

기분 좋은 시작

DUMMY

28. 기분 좋은 시작


탁! 부우웅!


차가 레스토랑 주차장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달렸을 때 더는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확인했다.


“······.”

“찍혔네요.”


“찍혔어? 무슨 사진이?”


떨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레스토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호텔에 돌아가서 차근히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부우웅!


* *


어떻게 호텔에 돌아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레스토랑 입구에서 찍은 거지?”

“맞아요. 아버지가 왜 죽였냐고 물었을 때 찍힌 거예요.”


“산장에서 찍힌 거네.”

“산장요?”


“그때는 펜션은 없었어. 있어도 극히 드물었고. 대학생들은 콘도나 유스호스텔을 많이 이용했지. 산에서는 산장을 이용했고. 이 시절의 산장은 대피소 개념만이 아니었어. 개인이······.”


나에게 산장은 생소했다.

그런데 형이나 아버지 시대에는 익숙한 곳이라고 했다.


가족 모임도 하고 자고 갈 수도 있고.

대형 산장은 대학생 모꼬지 장소로도 이용됐단다.


아무튼 과거가 찍힌 첫 사진은 실내였다.

놀란 표정의 네 사람이 찍힌 사진.


성만 전자 미주 지사장인 윤상근의 눈에 담긴 네 명이 찍힌 것 같았다.


무언가에 많이 놀란 것 같은 네 사람은 마치 질문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윤상근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은 사진이었다.


“뭔가 있었던 것 같지?”

“그런 것 같아요. 방안에 불이 켜진 것을 보면 밤이나 새벽일까요?”


“여기는 현광등만으로는 시간을 유추할 수 없다. 벽과 천장이 모두 나무로 마감되어 있었어.”


아버지가 직접 이 산장을 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산장을 가보신 거죠?”

“가봤지. 흔적 같은 것은 없었어. 깨끗이 치워져 있었어. 산장 주인이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난 손님은 드물다고 했었지.”


“뭔가 소리를 들은 것도 없고요?”

“없다고 했어. 떠난 것을 본 것은 아니지만 올 때부터 새벽에 나간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대. 자기 집에 묵었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고 하더라.”


“근처의 산을 간 것이 아니었어요?”

“아니었어. 분명 전날 숙박할 때는 바로 뒷산을 오를 것처럼 이야기했대. 하지만 사고가 난 곳은 전혀 다른 곳이었지. 경찰들이 산장을 조사한 것도 아니고.”


사고사라고 결론 냈으니 산장은 조사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사진은?”

“이거예요. 이게 왜 찍혔을까요?”


물이 찍힌 사진.

하지만 사고가 난 계곡이 찍힌 사진이 아니었다.


졸졸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찍힌 사진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본 아버지의 반응이 의외의 것이었다.


“허어···.”


“왜 그러세요?”

“여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 보게되는 물줄기야.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


“이게 의미 있어요?”

“이 위쪽이 바로 계곡이거든. 이건 작은 지류고. 이 연놈들의 주장대로 실족사했다면 이쪽 길을 걸었을 리 없어. 그놈들도 계곡 위로 오는 길을 걸었다고 했고.”


“주차장에서 올라갔다는 것이 되네요?”

“그렇지. 이때까지는 살아있었는데.”


“죽은 것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아니야. 부검 결과 익사라고 했어. 그것마저 거짓일 수 있지만···. 왠지 폭력을 덮기 위해 죽인 것 같아. 술병이 많이 남아 있었대. 그런데도 일찍 떠나서 의외라고 했거든.”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죠?”

“죽이기 위해 다섯이서 공모하지는 않았을 거다. 가진 것이 많은 연놈들이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야. 술을 먹다 뭔가가 터졌겠지. 시기나 질투가 폭발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말씀이 그럴 듯했다.


“이 사진을 보세요. 이거 의미심장하지 않으세요?”


과거가 찍힌 사진 중 하나.


“상근이 놈 집인 것 같네.”

“윤상근의 아내를 찍었을 때 찍힌 거예요. 편하게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진이 찍힌 장소는 침실.

윤상근이 누운 채 괴로워하는 것이 찍혀있었다.


“이건 뭐냐?”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르겠어요. 왜 이런 것이 찍혔는지도 모르겠고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이 한 장 찍혔다.

장소는 건물 옥상.


꽤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뉴욕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진.

사진에는 인물은 전혀 찍히지 않았다.


단지 건물과 옥상이 찍혔을 뿐.


“자살하는 것은 절대로 두고볼 수 없는데···. 죗값을 받아야 하는데.”


“자살할 것 같으세요?”

“옥상이 보이는 이유가 그것 말고 또 있을까?”


“반대일 수도 있잖아요. 자살당할 수도 있는 거고 누군가를 처리할 수도 있는 거고.”

“자살당한다고?”


생각지도 못한 말인지 아버지의 고개가 홱 들렸다.


“다른 누구보다 상근이는 믿었다. 형동이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지만 은근히 경쟁심이 강했어. 공부할 때는 서로 자극제가 된다고 좋아했지만 사고 후에는 후회를 많이 했어. 하지만 상근이는······.”


집안을 일으킨다고 독기를 품고 공부했지만 마음이 여렸단다.

거짓말도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성격 때문에 상근이를 빼돌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겁이 많은 성격이라는 말씀이시죠?”


“변하지 않았다면 오늘밤 잠을 자지 못할 거다.”

“우리가 왔다 간 것을 다른 네 명에게 알릴까요?”


“바보가 아니라면 알리지 않겠지. 하지만 또 모르기는 하지. 겁을 잔뜩 줘놨다면 의외의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뭔가 나올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우시죠?”

“이 정도만으로도 만족해. 이동 경로를 파악했으니 진일보 한 거지.”


아버지가 네 장의 사진을 넘겨보며 하시는 말씀이었다.


“이 사진들은 제 폴더에 넘겨둘게요. 아버지도 언제든 보실 수 있어요.”

“알고 있다. 이제 그만 자자. 내일 일찍 움직이려면 자야지.”


* *


“헤이! 브로! 미국물이 좋은가 봐. 얼굴이 훤해졌어.”


이준이가 손을 내밀며 하는 말이었다.


“들어가자.”


여전히 손을 내밀며 움직이지 않는 이준이.

선물을 달라는 말이었다.


“선물은 가방에 있다. 저기 수길이가 들고 가는 가방에.”

“그래? 열어봐도 되지?”


“그럼. 가장 큰 것이 네 거야.”

“정말? 고맙다. 친구야. 네가 맡길 일을 완벽하게 수행했으니까 나 받을 자격 있는 거다.”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보육원 안으로 달리는 이준이.

원생들보다 더 어린 것 같은 이준이의 모습에 긴장감이 풀렸다.


“오빠. 이건 내가 들어줄게.”

“우리 소희 색연필도 사왔지롱.”


“정말?”

“정말이지! 몇 가지 색깔일까요?”


“64색!”

“더 많은데.”


“정말? 64색도 많은데!”

“가서 직접 확인해봐. 엄청 부드럽더라. 깜짝 놀랄 거야.”


“와아! 오빠. 정말 고마워.”


그림에 소질이 있는 소희는 미술용품을 사주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산 아래 살아서 그런지 소희는 식물을 주로 그리는데 초등학생이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밀화를 잘 그린다.


그래서 정밀화에 적합한 색연필을 사 왔다.


소희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오빠. 나도 선물 줄 거야?”


다솜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홉 살 다솜이는 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예비 입양 부모 집에 갔었는데 지금은 돌아와 있었다.


“당연히 다솜이도 선물 줘야지. 자! 여기.”


호주머니에서 맨해튼이 담긴 유리구슬을 꺼내 주었다.


“여기가 미국이야?”

“어.”


“서울 하고 비슷하다.”

“비슷해. 사람도 많고.”


“나 이사 가면 미국도 간대. 놀러. 만화영화에 나오는 신데렐라 성에 데리고 간다고 했어.”

“디즈니랜드? 아니 월든가?”


“맞다! 디즈니. 거기 데리고 간다고 하셨어.”

“좋겠네. 우리 다솜이는.”


“예삐도 데리고 갈 거다.”

“강아지까지?”


“응! 강아지가 나 좋아해. 퇴원했어.”

“다 나은 거야?”


“다 나았어. 내가 있어서 빨리 나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거기까지 말한 다솜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나 데려다줄 때 울었어. 엄··· 아줌마랑 아저씨가.”


“엄마 아빠라고 해도 돼.”

“미안하잖아.”


다솜이 말에 가슴이 간질거리며 괜스레 코끝이 매워졌다.


“네가 미안해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더 슬퍼하실걸!”

“진짜?”


“그럼. 세상에는 엄마 아빠가 여러 명인 사람도 있어.”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있어. 나도 날 낳아주신 엄마 아빠도 있지만 여기 아버지 어머니도 있잖아. 너도 여기 어머니 아버지도 계시지만 엄마 아빠가 생길 거고.”


“대운이 오빠가 아빠가 두 명인 것처럼?”

“맞아. 대운이 오빠처럼.”


“대운이 오빠 친아빠는 나빠. 핸드폰 뺏어갔어.”

“뭐?”


“며칠 전에 와서 크리스마스 때 받은 핸드폰 뺏어갔어.그래서 대운이 오빠 막 울었다. 친아빠 가고 난 다음에.”


어린 다솜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빠.”

“걱정돼?”


“응. 막 좋았었는데 조금 겁나. 그런데 헤어질 때 우는 것은 더 싫더라. 같이 살면 헤어질 일은 없겠지?”


“그렇지.”

“근데 여기도 오고 싶을 것 같아.”


“자주 놀러 오면 돼.”

“자주 와도 돼?”


“그럼. 자주 와. 다 같이.”

“자주. 다 같이.”


다솜이가 기억하려는 듯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막상 입양 가고 나면 자주 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쁠 테니.

하지만 언제든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안정감을 선물할 것이다.


* *


“첫 번째 계약은 내일 하기로 했다.”

“설날인데요?”


“연세가 있는 분들 부동산 계약은 명절에 많이 해. 증인으로 자녀들을 세워두는 것이 가장 좋거든.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올 염려도 없고.”


미국에서 돌아오고 2주 정도 지났다.

그동안 한국에 위즈덤 법인의 지부를 설립했다.


사무실은 백석 마을에 차렸다.

사실 사무실이라기 보다는 공부방에 가까웠지만···.


지부를 설립하고 미국에서 불린 돈의 일부를 가지고 와서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천사 보육원 이전을 위한 토지 매입을 추진했다.

그 첫 성과는 설날인 내일 계약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준이 외가 뒷집이라고 했죠?”

“거기가 둘째 결혼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전답을 내놓는데. 연세가 많이 드셔서 요양원으로 들어갈까 생각중이라고 하시더라.”


백석 마을 어르신만을 위한 요양원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보육원 원생들을 유난히 예뻐해주셨던 분들이니 서로 어우러져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백석 마을에 요양원···.”

“당장은 요양원은 필요 없을 것 같더라. 차라리 회관에서 식사하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나이 드신 분들은 끼니 해결이 가장 큰 일이니까.”


아버지도 여러모로 많이 생각해보신 모양이었다.

백석 마을과 협의도 해보고.


“처음에는 식사부터 시작하자.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알겠어요.”


“공부는 잘되어 가니?”

“잘되고 있어요. 애들도 열심이고요.”


“형들은요?”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가 현재의 위치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것이 소문난 모양이었다.

자립해서 나간 형 누나에게서 연락이 많이 온단다.


아버지가 뿌린 씨앗이 자라 든든한 일꾼으로 자란 것이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일을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돕겠다는 손길이 늘어나고 있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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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운명 22.05.19 330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6 27 13쪽
8 증거 나왔어. 22.05.17 376 25 14쪽
7 무임승차 +2 22.05.16 387 29 14쪽
6 성장하는 능력 22.05.15 408 32 14쪽
5 여전사 22.05.14 458 30 14쪽
4 이상한 사진 22.05.13 521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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