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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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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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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5
추천수 :
823
글자수 :
168,559

작성
22.06.0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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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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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찍어줄까?

DUMMY

27. 찍어줄까?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가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지금 성만 전자 미주 총괄 사장 윤상근은 가족 모임을 위해 이 레스토랑을 찾은 참이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슈트와 신발.


윤상근은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당한 걸음과 표정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잠시 후의 모임을 상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손에는 사랑스러운 딸의 생일 선물이 들려 있었다.


우리와의 만남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미소가 진해지는 윤상근 지사장.


이 일정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꽤 많은 공을 들였다.

그리고 더 어렵게 이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미슐랭 가이드 5스타 레스토랑인 이곳은 최소 6개월 이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식사 할 수 없다.


겨우 이틀 전에 일정을 알아낸 우리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예약을 넘겨받아 레스토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도서관과 극장, 야외무대, 테라스 가든 등 복합 문화 공간을 품고 있는 이 레스토랑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더 유명한 곳이고.


어쨌든 아버지는 담담히 그러나 의지가 담긴 발걸음으로 레스토랑에 들어선 윤상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마주한 순간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윤상근! 왜 죽였어!”


뚝 던지듯 건넨 말!


이건 배테랑 형사의 특강에서 배운 스킬 중 하나다.

그걸 아버지가 아프지만 멋지게 해낸 것이고···.


찰칵!


“예?”


뉴욕의 중심 맨해튼.

그중에서도 미슐랭 가이드 5스타 레스토랑에서 한국어가 들려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처음 그는 한국어를 잘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런 것까지도 예측했던 우리.


“윤상근이! 왜 죽였냐고!”


높지 않은 목소리.

하지만 단호함이 목소리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마치 살인을 확정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말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말을 그제야 인지한 것 같은 윤상근.

그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찰칵! 찰칵! 차차찰칵!


“······.”

“왜 죽였냐고? 뒤통수를 내리쳐서 의식을 잃은 내 아들을 얼음장 같은 물에 담갔지? 그렇게 위장하면 죽음이 가려질 줄 알았냐?”


윤상근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좌우를 살피는 윤상근.


찰칵!


아버지의 말을 누가 들을까 그것이 더 무서운 모양이었다.


벌벌 떨리는 손!

그의 손에 들린 선물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찰칵!


“딸의 생일이라지? 열세 살! 이름은 루나! 저기 있겠군.”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레스토랑의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의 가족이 예약한 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더 심하게 떨리는 손.

당장 도움을 청하고 싶은지 눈이 자꾸 사방을 훑었다.


레스토랑을 가드를 찾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되어 보니 어떠냐? 내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돼? 네 딸이 네 아들이 똑같은 꼴을 당했다면 넌 잊을 수 있어? 왜 죽였냐? 왜!”


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레스토랑 가드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가서려는 가드.


“이벤트입니다.”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예약된 식탁 쪽을 가리켰다.

생일인 어린 고객을 위해 부착해둔 풍선이 살짝 흔들리며 설명을 보조했다.


윤상근의 손에 들린 선물도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고···.


적당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물러나는 가드.

그의 얼굴에는 대충 알겠다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유난히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손님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드와 달리 윤상근은 침착할 수 없었다.


“난··· 난 아니에···.”


자신도 모르게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무는 윤상근.

그런 그가 입을 가리더니 조금 전보다 더 벌벌 떨었다.


찰칵!


“내 아들을 죽인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는 모양이구나. 이놈! 네놈이 죽인 것이 아니면? 누구냐? 내 아들의 뒤통수를 내리친 놈이 누구야?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계곡에 담근 것이 누구냔 말이다!”


“난··· 난 아니에요. 아니 그런 일은 없었어요. 전 당신이 누군지도 몰라요.”

“몰라? 날 몰라?”


“모릅니다. 몰라요!”

“그래? 좋다. 가자. 정말 날 모르는지···.”


아버지가 그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풍선이 살짝 보이는 식탁이 있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자 벌벌 떨며 아버지의 팔을 잡는 윤상근.


그 와중에 딸의 선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와장창!


뭐가 들어있던 것일까?

분홍 상자가 제법 예뻤는데 망가지고 말았다.


내용물이 깨지는 소리는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왜 이러십니까? 경찰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불러라. 난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때 소리를 따라 이동한 시선 중에는 윤상근의 딸도 있었다.


“아빠!”


멀찍이서 아빠를 발견하고는 달려오는 여자아이.

소희만큼이나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오다 망가진 선물을 발견했다.


“아빠. 내 선물 깨진 거야?”

“어···. 어.”


윤상근은 얼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면서도 딸 아이를 아버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에게 아버지를 보이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아빠.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누구야? 저 오빠는?”

“어···. 그게···.”


“깜짝 선물이라고 했던 것이 저거야?”


윤상근의 딸이 내 옆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

윤상근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분홍 상자.


하지만 훨씬 크고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윤상근이 상자에 시선이 닿더니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지금 윤상근은 원초적인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오랜 사회생활로 두 다리에 힘을 팍 주고 버티고 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을 것이 뻔했다.


“아빠 부탁으로 함께 왔다.”


상자를 들고 다가가며 말했다.

아이에게 선물을 안겨주자 바라던 선물인지 활짝 웃는 아이.


“아빠! 받아도 돼?”


아이가 저런 표정으로 묻는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


윤상근이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내 손을 떠난 선물은 이미 윤상근의 딸의 품에 안긴 뒤였다.


“고맙습니다. 아빠. 어서 가자.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다들 기다려. 빨리 가자.”


여자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나의 소매를 당겼다.

배시시 웃는 것이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오빠 사진기 멋있다.”

“찍어줄까?”

“웅!”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는지 애교가 몸에 밴 아이였다.

자연스럽게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자신이 가운데 서고 오른쪽에 자신의 아빠를 그리고 옆쪽엔 나의 아버지를 끌어당겼다.

팔짱을 양쪽으로 끼느라 선물은 아이의 발치에 놓였다.


무릎을 한참 넘는 크기의 상자라 이벤트 중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레스토랑의 가드가 멀찍이서 엄지를 세워주었다.

이곳이 이 레스토랑의 포토존이기도 했던 것이다.


레스토랑의 가드와 직원들은 윤상근이 망가뜨린 선물까지 이벤트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찰칵! 찰칵! 차차찰칵!


* *


“이게 얼마 만입니까? 갑작스럽게 이민을 오게 돼서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왔네요.”


윤상근의 아버지가 몇 번이고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20년 전 1년이 넘도록 아버지 집에서 신세를 졌던 것에 대한 인사였다.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갑자기 연락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이 계속되었다.


“짐을 가지러 온다고 했다가 오지 않아서 몇 년이고 보관했었습니다.”

“그랬습니까? 저는 저 녀석이 다 가지고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너 인사도 없이 온 거냐? 인사도 종종 드린다고 하지 않았어?”


윤상근의 부모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현우 형 이야기를 꺼냈다.


“아드님이 일찍 결혼하셨나 보네요? 우리 애보다 어렸는데. 소년 급제를 해서 결혼도 서두르셨나?”


윤상근은 제 아버지의 이야기에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아버지. 오늘은 루나 생일인데···.”

“그래서 하는 말이지. 언젠가 은혜를 갚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한창 어려울 때라 방을 얻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현우 군 아버님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종종 연락하고 지냅시다.”


“아버지···.”

“왜! 너야 밖으로 나도니 괜찮지만 우리 내외는 심심해 죽겠다. 20년을 살아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은 통하지 않고. 옛날 사람은 다 소식이 끊기고······.”


윤상근의 아버지가 이민 생활의 애환을 토로했다.

아무래도 날 현우 형의 아들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전화번호를 교환할까요?”

“좋지요.”


아버지의 제안에 윤상근의 아버지는 냉큼 핸드폰을 꺼냈다.

이런 순간이 너무 좋은 모양이었다.


“아버지. 바쁜 분이세요. 부담되실 거예요. 왜 이러세요? 아버지 취하셨어요?”


긴장된 분위기였지만 잘 참던 윤상근이 발끈했다.


“아니. 너야말로 오늘 왜 이러냐? 현우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시는데. 나이 들면 옛사람이 좋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죠. 옛사람이 좋고 옛 인연이 좋더군요.”

“하하! 현우 아버지가 저랑 통하시네요. 예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그때는 제가 워낙 바빴습니다.”

“바쁜 덕에 제 아들놈이 눈치 볼 필요 없이 신세를 질 수 있었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연인가 봅니다. 이역만리에서 고향 사람을 다 만나고. 그렇지 않습니까?”


많이 외로운 모양이었다.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것 같았다.


자신의 아들 윤상근의 얼굴이 갈수록 시커멓게 변해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드님은 지금쯤 한자리하시죠?”


윤상근의 아버지가 당연한 듯하는 말이었다.

당시 최연소 합격에 차석 · 동차 합격까지 한 현우 형이다.


워낙 똑똑한 형이었으니 승승장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었습니다.”

“예?”


깜짝 놀라며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는 윤상근의 아버지.

식탁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모양이었다.


“아이고. 어쩌다가···?”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와의 대화를 즐겁게 듣고 있던 윤상근의 어머니 입에서 터져나온 한숨과 같은 말이었다.


윤상근의 아버지는 너무 놀라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레스토랑 입구에서 아버지를 봤을 때의 윤상근과 무척이나 비슷한 표정이었다.


“선생님. 저 좀 보시죠.”


아버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애가 달은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따로 보자고 하는 윤상근.


윤상근의 아내만이 남편이 평상시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윤상근의 아내가 아버지와 날 쳐다보았다.

의심과 의문이 공존하는 눈빛.


자신의 남편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윤상근의 아내가 우리 세 사람을 보는 눈에는 뭔가 모를 불안이 한 자락 드리워 있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생일이니 사진을 찍어드릴게요.”

“와. 오빠 사진 정말 잘 찍던데. 난 좋아.”


루나라는 윤상근의 딸은 당장 좋다고 찬성을 표했다.

하지만 윤상근은 내 카메라가 그리 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목에 걸고 있는 것은 형이 생전에 분신처럼 여기던 카메라.

한 집에 1년 넘게 함께 살았으니 이 카메라를 바로 알아봤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불편한 표정을 짓는 것일 거고···.


“선생님. 저 좀···.”

“식사하시는데 왜 자꾸 그러냐? 선물도 사오시고 사진까지 찍어주는데. 이야기는 루나 생일잔치 끝내고 해라.”


윤상근의 아버지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었다.


손자 손녀가 함께 있는 자리가 아니면 당장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만큼 윤상근은 더 긴장하고 있고···.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사진에 담기고 있었다.

그의 가족 모습도···.


찰칵! 찰칵! 차차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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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운명 22.05.19 331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7 27 13쪽
8 증거 나왔어. 22.05.17 377 25 14쪽
7 무임승차 +2 22.05.16 388 2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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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전사 22.05.14 459 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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