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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인생 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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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9
추천수 :
823
글자수 :
168,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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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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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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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치기 어린 일탈?

DUMMY

13. 치기 어린 일탈?


“좀 드세요. 아버지.”

“먹어야지. 수길이 너도 먹어.”


“저 정말 아니에요.”


수길이가 샌드위치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하는 말이었다.


지금 우리는 경찰서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 와 있다.

내가 막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마침 아버지와 수길이가 경찰서에서 나왔고 이야기도 하고 간단히 점심도 때울 겸 공원으로 온 것이다.


“먹어. 먹고 이야기해. 너도 지쳤을 테니.”


아버지 말씀에도 수길이는 음식에 손은 대지 않았다.


“CCTV는 보셨어요?”


수길이를 옆에 두고 묻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사진을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흐릿해.”

“얼굴이 찍힌 것도 아니잖아요. 정말 저 아니라고요.”


아버지 말씀에 아니라고만 하는 수길이.


“얼굴이 찍히지 않았어요?”

“찍혔다고 해도 못 알아보겠더라. 비용 절감을 한다고 아주 후진 CCTV를 달아놨더라고. 그냥 구색을 갖춘 것에 불과해.”


“그럼 경찰이 수길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뭔데요?”

“옷! 수길이가 줄곧 입고 다니던 점퍼를 입고 있었어.”


수길이가 우리 보육원에 온 것은 지난해 겨울.

등에 큼지막한 날개가 그려진 독특한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수길이는 겨우내 그 점퍼만을 고집했다.


날이 추워지자 다시 그 점퍼를 꺼내 걸치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점퍼만으로 수길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수길이는 빼앗겼대. 하지만 강 형사가 그걸 믿겠어? 우리라도 믿기 쉽지 않은데···.”


수길이는 덩치에 비해 깡이 보통이 아니다.

어디 가서 절대로 맞고 다닐 것 같지 않은 수길인데 아끼는 점퍼를 빼앗겼다고 하니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이다.


점퍼를 빼앗긴 사실도 이제야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빼앗는 걸 본 사람은? 아니 그것보다 금은방 CCTV 말고 그 주변 CCTV를 확인하면 간단하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말해뒀어. 그런데 적극적으로 나서줄지 모르겠다. 나도 놀라서 잊고 있었는데 수길이가 만14세가 되지 않았더라.”


강 형사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마 똥 씹은 표정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수사를 해줄지 미지수였다.


“다행이긴 한데···. 금은방 정도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보호 처분은 각오해야 할 거라고 하더라. 강 형사는 완전히 수길이라고 못 박았더라고. 분명 흐릿하지만 밖에 두세 명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말도 하지 않아.”


“저 정말 아니에요. 전 하면 혼자 해요. 떼로 몰려다니면서 꼴통 짓 하는 거 이제 질색이라고요!”


수길이는 우리 보육원에 오기 전 2년 남짓 길거리를 전전했다고 한다.

보육원에서의 부당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것인데 그러다 가출팸 애들에게 몇 번 배신을 당했단다.


하지도 않은 일로 경찰서를 몇 번 오간 것이다.

물론 어릴 때라 훈방조치로 끝났지만 그 일을 계기로 가출팸 생활을 청산하고 제 발로 돌아온 케이스.


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수길이가 가출했던 보육원과 인근의 보육원에서 보육을 거절해서 우리 보육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네 억울함을 풀려면 어디서 어떻게 옷을 빼앗겠는지 말을 해야 해. 네가 아니라고만 하면 답이 없어. 덩치랑 머리 스타일까지 비슷하니 아이고. 네가 아직 미성년자라······.”


답답한지 아버지의 말씀이 길어졌다.

어지간해서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분인데 많이 속이 상하신 것 같았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라.”


조금 전까지 호주머니에 카메라를 넣어둔 채 사진을 촬영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인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벤치 뒤로 사철나무가 아니었으면 아버지와 수길이가 이상하게 봤을 것이다.


“정말 저는 아니에요.”

“그럼 옷은 누구에게 뺏긴 건데? 왜 그걸 말하지 않았어? 당장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말하면요? 말하면 뭐가 달라져요?”

“수길아. 알아야 대처를 할 거 아니냐.”


사진을 계속 찍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봤다면 한겨울에 사철나무를 찍는 미친놈이라고 하기 딱 좋은 상황.


무음으로 처리해뒀기 때문에 다른 때와 달리 아무리 많은 사진을 찍어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검사래요. 걔 아버지가 부장 검산가 부부장 검산가 뭐 그런 거래요. 씨팔. 경찰도 무서운데 검사라니. 걔가 신고해도 소용없다고 했단 말이에요.”


“뭐? 그래서 말을 못 했다고?”


맥이 풀린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


“그런 말 절반 이상의 뻥이야. 뻥이 아니라고 해도 이 아버지가···.”

“정말이에요. 여기 검찰청으로 출근하는 것도 봤다고요. 그놈이 제 아버지 차에서 내리는 것을 일부러 보여줬다고요! 씨팔!”


“수길아.”

“그놈 아버지 차가 들어가니까 검찰청 앞의 경찰들이 허리가 90도 굽어졌어요. 그······.”


수길이가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했다.


“그놈이 금은방에 들어간 놈이야? 네 옷 입고?”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직접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문 앞에 있었을 거예요.”


가게 안도 흐릿하게 찍혔으니 가게 앞에 서성인 두세 명은 특정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여기까지면 충분한 것 같아서 화장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진을 넘기며 확인했다.


생각대로 기억이 찍힌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수길이가 설명한 장면이 다행히 찍혀있기는 했다.

옷을 빼앗기는 순간이.


그런데 그 이전에 찍힌 사진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본 순간 왜 수길이가 옷을 빼앗긴 것을 말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으드득!


“하아···. 후우우우···. 후우···.”


끓어오르는 분노를 날숨으로 가라앉혔다.

이건 보육원에 온 첫날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방법이다.


단순하지만 생각보다 효과도 좋았다.


“옷을 빼앗은 놈들은 어디 사는지 알아? 사는 곳이 아니라도 자주 노는 곳이라든지.”


화장실을 다녀온 후 수길이에게 물은 첫 말이었다.


“보육원 앞 아파트에 살아요. 자기 집 한 채면 우리 보육원 통째로 살 수 있대요.”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하는 수길이.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다 거기 살아?”

“한두 명은 전원주택 산다고 했는데 어딘지는 저도 몰라요.”


“어디서 주로 노는데?”

“그건 왜요? 그놈들 위험한 놈들이에요. 늘 칼도 가지고 다니고 또 여자···. 아, 아니에요.”


수길이의 손이 잘게 떨렸다.

늘 깡으로 무장한 녀석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여린 마음을 깡으로 감싸고 다녔던 것이다.


“그놈들 남자들도 건들지?”

“······.”


수길이의 눈동자가 폭풍우를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이 순간에도 내 손 하나는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고개만 살짝 내민 카메라가 열심히 제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현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요즘 질 나쁜 놈들 중에 이상한 것에 빠진 놈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동성애자도 아니면서 동성을 건드는 쓰레기 새끼들. 기세를 꺾기 가장 좋다나 뭐라나.”


“······.”


수길이의 눈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잡고 싶었던 자존심이었을까?


영원히 감춰지기를··· 아무도 모르기를 바랐던 걸까?


“수길아. 그래서 말을 못 한 거야? 그런 거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


이를 앙다무는 수길이.

이 상황을 피해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그 새끼들이 떼로 덤볐어요. 억지로 옷을 벗기고··· 사진을 찍었어요. 말을 하면 다 유포해버리겠다고···.”


“하아! 그놈들이 누구냐! 같은 학교 다니는 놈들이야. 내 이놈들을 당장!”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 이성적인 사람이 아버지다.

그런데 그 아버지께서 흥분하고 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알리면 나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보육원 여자애들까지 건들겠다고.”


으드득!


“보육원도 망하게 하겠다고. 자신 부모들이 뼈 빠지게 일한 돈으로 먹고산다고 전 노예래요. 씨팔! 그런 말은 골백번도 더 들어서 괜찮은데 그 새끼들이 여자애들 전화번호를 줄줄이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수길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서러운 눈물이 아니라 분통한 눈물이었다.


내 사진에 찍혔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제발 다른 사진들도 찍혀라.

제발!


“우리 애들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고?”

“예쁜 애들만 알고 있었어요. 열 살 소희 전화번호도 있었어요. 개새끼들이!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또르르!


수길이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 나쁜 짓 안 해요. 그놈들이 털어오라고 했지만 안 했다고요!”


“금은방을 털어오라고 한 적이 있다고?”

“2주 정도 전에 그런 말을 한 적 있어요. 거기 가본 적이 있대요. 부모들이랑. 허술하고 CCTV도 없는 것 같다고 했어요.”


“거부했고?”

“예. 그랬더니 일주일 전에 옷을 빼앗아갔어요.”


“그때 맞은 거고?”


아버지의 말에 흠칫하는 수길이.

어떻게 알았냐는 반응이었다.


“네가 엉덩방아만 찧어서 그리 절뚝거리겠어? 애들 하루 이틀 키우냐?”


원장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하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적어도 아이들에 관해서는.


“소문내면 각오하라고 했어요. 어제도 이상한 소리를 했고요.”


수길이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중학생 애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악질적인 일들이었다.


“무슨 소리를 했는데?”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해주겠대요. 그런데 그 말을 할 때 그놈들 눈이 너무 무서웠어요.”


수길이는 길에서 2년을 넘게 구른 아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험한 것도 많이 보고 위험한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고 했다.

죽을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만큼 단단한 아이다.


그런 수길이를 저렇게 겁을 먹게 한 것은 무엇일까?


가슴이 무겁다 못해 답답했다.


“그런 말은···.”

“저! 바보 아니에요. 허접쓰레기 새끼들의 개구라에 벌벌거리는 놈 아니라고요. 그놈들은 미친놈들이에요. 그중 한 놈 엄마는 경찰이에요. 그놈은 경찰서에 불려갔다가도 금방 나와요.”


“하아아!”


아버지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현우야. 집에 전화 좀 해봐라. 애들 다들 들어왔는지 확인 좀 해봐. 집에 없는 애들 있으면 소재 파악하라고 해. 특히 여자애들.”


아버지께서 심각한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이었다.

중학생들의 치기 어린 일탈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아버지께서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길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워낙 엄청난 것들이지만 당장의 위험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어서!”

“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보육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서란이 누나.

우리 보육원 출신으로 지금은 보육원의 영양사로 근무하는 누나다.


누나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확인했다.


혹시 기억이 찍힌 사진이 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간절히 기억이 찍히기를 바랐기 때문일까?


두 장의 사진이 더 찍혀있었다.

그런데 그 장소가 참으로 공교로웠다.


한 장이 우리 보육원 뒷쪽이었던 것이다.

미령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자 약수터가 멀지 않은 곳!


‘여기까지 와서 놀았어?’


내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사진 한 장은 도심.


그런데 이 장소 또한 내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이곳 말고 요놈들 아지트가 있을 것 같은데···?


“연락 주기로 했어요.”

“잘했다.”


대충 내게 대답하신 아버지가 수길이의 손을 잡았다.


“원장님.”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는 수길이.


“아버지다. 네가 우리 집에 온 순간부터 넌 내 아들이야. 무섭고 두려우면 가장 먼저 날 찾았어야지. ‘지켜주세요.’하고 왔어야지. 이놈아.”


“죄송해요. 너무 무서웠어요. 저 때문에 다 틀어질까 봐 무서웠다고요. 너무 좋은 곳이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와야지. 약속해라. 앞으로는 무섭고 두려운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우리를 찾겠다고.”


“그럴게요. 원···.”


수길이는 차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1년 넘도록 고집스럽게 원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나름의 보호막이었다.


“수길아. 네가 말한 것은 다 녹음했다. 괜찮지?”


아버지께서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하신 말씀이었다.

수길이의 눈동자가 잠깐 격랑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괜찮아요. 그놈들 아지트는······.”


수길이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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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얼마나 믿으세요? +2 22.05.23 296 28 13쪽
» 치기 어린 일탈? 22.05.22 302 3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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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운명 22.05.19 331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7 27 13쪽
8 증거 나왔어. 22.05.17 377 25 14쪽
7 무임승차 +2 22.05.16 388 29 14쪽
6 성장하는 능력 22.05.15 408 32 14쪽
5 여전사 22.05.14 459 30 14쪽
4 이상한 사진 22.05.13 522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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