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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인생 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9,942
추천수 :
823
글자수 :
168,559

작성
22.05.24 23:59
조회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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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3쪽

욕심을 좀 내보려고요.

DUMMY

15. 욕심을 좀 내보려고요.


아버지가 잡은 사진은 세 사람이 찍힌 사진.

물론 미령산이 배경이 아니었다.


“어떻게? 어떻게?”


아버지의 손이 차마 사진을 잡지 못하고 쓰다듬었다.

잡으면 사진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모양이었다.


심하게 떨리는 손.

하지만 쓰다듬는 그 잠깐도 사진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자꾸 손길이 빨라지고 있었다.


쓰다듬고도 싶고 보고도 싶은 사람이 사진 속에 있는 것이다.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수길이 또래의 소년.

난 이 소년을 이미 몇 번 본 적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를 찍을 때 이미 몇 번 찍힌 적이 있으니···.

아마 부모님의 친아들일 것이다.


다 키우고 잃었다는 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중학생 이상의 사진이 찍히지 않는 것을 보아 그때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우야.”


날 부르는 것일까?

아니면 사진 속의 아들을 부르는 것일까?


“아버지께서 주신 사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미령산의 귀신이 붙었거나. 그런데 사진기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텐데 아버지는 사진들을 살펴볼 뿐이었다.


두 분만 찍힌 사진도 사실 평범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어루만지는 사진이 워낙 특별해서 그렇지.


“여긴 서울에서 우리가 살던 집이다. 무리해서 이사 간 아파트였어. 집값을 갚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은 이미 대학생이더구나.”


중학생 때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구나.


“더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였지.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어리석게도. 부모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는 없는 법인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세한 것은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던 두 분이었다.


“한국대 법학과에 떡하니 합격하더니 4학년 땐 사시도 합격했어. 내가 하던 일도 잘되고 현우 엄마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더구나. 그러다 20년 전 오늘···.”


아버지가 더는 말을 잊지 못했다.


조금 긴 침묵이 흐르고.


“······.”

“너처럼 검사를 꿈꿨어. 그 녀석도. 그런데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던 연수원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최종 합격자 발표를 접한 지 겨우 20일 남짓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내가 검사를 꿈꾼다고 할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지으셨던 걸까?

착잡하지만 기특한.


딱 그런 표정이었는데···.


능력을 공개하는 자리.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난 두 가지 장치를 준비했다.


하나는 당첨된 복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진.


복권은 확실한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은 변수가 많은 것이라 은근히 걱정했다.


다행히 부모님을 찍은 네 장의 사진 중 두 장에 원하는 것이 찍혔다.

그래서 그걸 보여드렸는데 아버지는 나의 능력보다 사진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오늘은 다른 어떤 것보다 아들 현우를 추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아들 현우와 함께.


* *


“놀랍구나. 믿기지 않아.”


말씀은 저렇게 하셨지만 아버지는 이미 나의 능력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보셨잖아요. 그리고 보고 계시잖아요.”

“봤지. 하루종일 너와 함께 다녔는데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지. 이 사진들도 함께 찾았고.”


아버지의 단골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았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어! 현우야. 너 이런 사진을 늘 사진관에 맡겼던 거냐?”


번득 생각이 나셨는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아버지.


“어릴 때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오늘 처음 맡겼어요. 요즘은 필름 사진기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맡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바로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럴게요.”


“당첨금 찾으러 가야겠네. 월요일에 다녀오도록 하자.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이 없으니.”

“10%는 아버지 거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첨금은 오롯이 네 것이다. 그리고 보육원을 위해 쓸 생각도 하지 마.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다섯 개의 1등과 다섯 개의 2등.


총 86억이 넘는 당첨금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하신다.


나를 위해 사용할 내 돈.


난 조금 생각이 다른데 말이다.


“저만 위해 산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저는 정말 마법사. 그것도 승리한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고아라는 낙인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었어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하아!”


세세한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아버지가 더 잘 알고 있다.


고열로 인해 드러난 몸.

범인이 우리 보육원에 있다고 생각한 의사는 바로 신고했고 아버지는 몇 차례 경찰서를 오가는 수고를 해야 했다.


오해로 밝혀지자 귀찮은 것이 싫은지 어물쩍 넘어가려 했던 경찰.

하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폭력의 대가를 치르게 했던 분도 아버지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다.


수길이만 해도 그렇다.

수길이는 이곳에 오기 전 2년이 넘도록 길에서 살았다.


그런데 수길이 몫으로 나오는 각종 지원금은 단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전 보육원이 멋대로 다 써버린 것이다.


수길이 몫으로 나오는 용돈까지 모조리.


수길이는 제 이름의 통장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황.

이런 걸 그냥 넘어갈 아버지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수길이 몫의 돈을 찾았다.

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통장에 들어가 수길이 품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은 수길이 만의 일이 아니었다.

나도 수길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내 몫을 찾았다.


천사 보육원에 오기 전 다른 보육원을 거친 아이들은 거의 비슷했다.

하나같이 갖은 핑계로 아이들의 것을 약탈한 사람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당한지도 모른 채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있었다.


“깨부수고 싶었어요. 아버지. 고아라는 이유로 씌운 각종 프레임을요. 그러면서도 들이대는 각종 불합리도요.”


“깨뜨려야지.”


아버지는 온몸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셨다.

그리고 열심히 가르치셨다.


사재가 거덜이 나도록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신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이런 꿈을 꾸면서도 20년 후쯤이라고 생각했어요. 검사로 자리 잡은 후. 나를 충분히 돌본 후에야 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그래야지. 넌 네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야. 자기 인생을 잘 가꿔야 남도 잘 도울 수 있는 법이다.”


“과거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

“특별하다고 모두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우선이야.”


아버지께서 늘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씀.


정에 고픈 우리가 밖에 나가 아무에게나 정을 주고 호구가 될까 염려스러워 입이 닳도록 하신 말씀.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도 찍을 수 있게 됐어요. 선물 같은 이 능력을 저만 위해 사용할 수는 없어요.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해요.”


“······.”


아버지의 눈이 네 장의 사진 중 하나에 닿았다.

두 분의 미래가 찍힌 사진.


그곳엔 우리 천사 보육원의 미래가 담겨있었다.


“답은 정해져 있구나. 네가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지?”


아버지가 가리킨 사진에는 내가 꿈꾸는 보육원이 담겨있었다.


한국대 못지않은 건물들과 잔디밭, 화단, 연못 그리고 아이들.

언 듯 대학교처럼 보이지만 디자인이 몽글몽글하고 따스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나게 큰 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골프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넓은 잔디밭이 특히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우리 보육원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천사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순간이 현실이 된단 말이지? 단순히 소망이 찍힌 것이 아니라.”

“맞아요. 이 사진이 현실이 됐던 것처럼요.”


이번에 내가 책상에 올린 사진은 로또 당첨금 번호와 금액이 찍힌 사진.


이건 미래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이곳저곳을 다니다 찍게 된 사진이다.


“늘 이런 사진이 찍히는 것은 아닐 것 아니냐?”

“맞아요. 늘 찍히지는 않아요. 하지만 높은 확률로 찍히죠. 그리고 이런 사진도 찍혀요.”


이번에 책상에 올린 것은 주식 시황표.


깜짝 놀라는 아버지.


“이건?”


시황표에 나타난 날짜를 먼저 확인하는 아버지.

펀드매니저였던 분답게 금세 시황표를 파악하고는 질문을 던졌다.


“투자했겠구나?”

“이런 걸 가지고 투자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실망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런 것이 있다면 투자해야지. 이게 처음이냐?”

“아니요. 이미 가진 돈을 세 배로 불렸어요. 확실하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금세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예요. 혼자 처리하는 것은 점점 버거워질 거고요.”


확인도 하지 않고 움직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2, 3주간 능력 확인은 충분히 했다.

어떻게 미래를 찍어야 하는지도 파악이 끝났고···.


물론 종종 의외의 변수는 있지만.


“검사가 되겠다는 꿈은?”


시황표를 봤을 때는 잠시 놀랐지만 아버지는 이미 얻은 결과에는 의외로 담담했다.

이건 단지 많은 돈을 다뤄봤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보다 날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감정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져서 마음까지 따스해졌다.


“사시는 보려고요. 내년에 준비해서 내후년에 응시할 거예요.”


“학점은 다 채웠고?”

“내년에 두 과목만 더 들으면 다 채워요.”


“이런 능력을 가지고도 굳이 사시를 보려고 하는 이유는 뭔데?”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고아라는 프레임. 제대로 깨려면 돈만으로는 부족해요. 잠시 검사나 판사를 할 수도 있고 그냥 바로 변호사를 하더라도 합격하려고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 운만 좋은 고아라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 잘 생각했다.”


“도와주실 거죠?”

“네가 꿈꾸는 것이 어디까지냐에 따라 다르지.”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고아라는 이유로 서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 시작은 여기 천사 보육원이 될 거고요.”


“넌? 네 개인적인 꿈은 뭔데? 단지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다면 난 이 일을 도울 생각이 없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


“저도 멋지게 살 거예요. 정의 구현을 하면서요. 예전에는 과거가 단편적이었어요. 도움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제 능력이면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 수 있어요. 아버지.”


“그게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우리 같은 서민은···.”

“세상은 많이 달라졌어요. 아버지. 저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사진만으로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이미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기도 했어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는데 아버지의 주름이 깊어졌다.


“현우야···.”

“정의 구현만 하고 살 생각도 없어요. 영향력 있는 투자자도 되어보려고요. 우리나라에서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요.”


“젊은 네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싹을 자르기도 한다. 눈에 거슬리면 없는 죄도 만드는 것이 이 나라야. 있는 죄도 돈과 권력만 있으면 없는 것이 되는 것이 이 나라고.”


경험에서 우러난 말처럼 느껴졌다.

보육원을 운영하며 숱한 사람들을 겪었기 때문일까?


“조금 부피를 키웠을 때 외국으로···.”

“그럴 거면 처음부터 외국에서 시작해야지. 기회도 훨씬 많을 거고. 넌 군대도 문제없고.”


아버지 입에서 의외의 말씀이 나왔다.

난 적당히 몸집을 키우고 나가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밖에서 시작하란다.


“서울에서 배포를 키워온 줄 알았더니 오히려 졸아들었구나. 서울놈들 떵떵거리고 사는 것을 보니 쫄리더냐?”


움찔!


내게 한국대는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중요 기착지였다.

여기만 안착하면 적어도 직접적인 태클은 없을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대학을 다니며 오히려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고 할까?


“꿈이 더 확고해지는 시간이었어요.”


단순한 보육원을 넘어서 세상과 싸워 전사와 마법사를 길러내는 곳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는 시간이었고요.”


아버지가 왜 자본 사관학교를 운영했는지 절절하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검사에 투자자에 사회 사업가까지 하겠다는 거지?”

“욕심을 좀 내보려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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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마음의 거리 +4 22.05.26 279 24 14쪽
16 친구 +4 22.05.25 294 30 14쪽
» 욕심을 좀 내보려고요. 22.05.24 293 28 13쪽
14 얼마나 믿으세요? +2 22.05.23 295 28 13쪽
13 치기 어린 일탈? 22.05.22 301 30 13쪽
12 첫 행보 22.05.21 302 24 14쪽
11 승리한 마법사 22.05.20 327 24 12쪽
10 운명 22.05.19 330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6 27 13쪽
8 증거 나왔어. 22.05.17 376 25 14쪽
7 무임승차 +2 22.05.16 387 29 14쪽
6 성장하는 능력 22.05.15 408 32 14쪽
5 여전사 22.05.14 458 30 14쪽
4 이상한 사진 22.05.13 521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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