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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인생 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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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6
추천수 :
823
글자수 :
168,559

작성
22.06.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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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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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결정적인 사진

DUMMY

23. 결정적인 사진


“하암. 노곤하니 왜 이리 잠이 오냐?”

“네가 조금 전에 장작 더 넣어서 그렇잖아. 환기 좀 할게.”


“안돼! 브로. 내 친구 현우야. 차앙문을 닫아다오···.”


“끽끽끽끽!”

“꺄르르르!”


이준이의 넉살에 아이들이 웃음이 터뜨렸다.


“선생님. 외형 마당 한 바퀴!”


아이들이 거의 한 목소리로 외쳤다.


“들었지? 다녀와라.”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지금 밖에 너무 추워. 이런 날 마당 돌기는 너무 가혹한 벌이다.”


“조금 전 열네 살 하은이도 자청해서 다녀오는 거 못 봤냐? 어서 갔다 와.”

“매정한 놈. 한 해의 마지막 날 친구를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벌판으로 내쫓다···.”


“벌금까지 낼래?”

“간다! 가!”


드르르륵!


말과 달리 행동은 제법 빠른 이준이.

금세 문을 열고 사라졌다.


아이들의 공부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아이들이 잠시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너무도 예쁘게 보였다.


* *


“와! 맛있다. 어머니 너무 맛있어요.”


이준이가 밝은 기운을 전파하고 있었다.


“많이 먹어. 예준이도 더 줄까?”

“예. 저도 더 주세요.”


이준이 옆에 앉은 예준이가 냉큼 대답했다.


“예준이 넌 공부해야 하니까 너무 많이 먹지 마. 배부르면 잠 와.”

“그건 내가 형에게 할 소리야. 형 오전에만 마당 돌기 두 번 당첨됐잖아. 난 한 번도 걸리지 않았어. 모범생! 그러니 더 먹어도 돼.”


“둘 다 더 먹어. 잘 먹어야 공부도 잘되는 거야.”


어머니께서 둘의 식판에 소복하게 잡채를 담아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저도요.”


다시 둘의 폭풍 젓가락질이 시작되었다.

누가 보면 며칠 굶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겨울방학을 한 다음 날 바로 미령으로 내려온 예준이.

그날부터 예준이의 과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보육원 아이들의 과외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서로 자신 있는 과목을 가르쳐주고 배우는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부터 이준이와 예준이는 거의 우리 보육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준이와 예준이가 보육원에서 방학을 보내는 것은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내가 천사 보육원에 오기 전부터 이미 둘은 방학이면 우리 보육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외할아버지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어머니. 근데 예린이, 예아는 올해는 안 오는 모양이네요?”


이준이의 물음에 눈을 빛내는 예준이.


“올 방학은 외국으로 나간다고 하더라.”

“그래요? 현우에게 부탁하면 외국인에게 배운 것 못지않게 배울 수 있을 텐데.”


“노출이 다르잖니. 좋은 코스가 있어서 1, 2월은 거기서 있을 거래. 적응을 잘하면 내년 1학기를 거기서 보낼 수도 있다고 하더라.”


어머니의 대답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예준이.


“다음 방학에는 온대요?”

“예아가 궁금해서 그렇지?”


정곡을 찌르는 어머니.

예준이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전화해봐. 3일에 출발한다고 하더라. 예린이와 예아도 너희 궁금할 거다.”

“······.”


예준이는 얼굴만 붉힐 뿐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이준이가 혀를 끌끌 찼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전화해봐. 외국의 멋진 남자들이 채가면 어쩌려고 그래?”


이준이가 은근히 예준이의 속을 긁었다.


“형!”

“아이고 무서워라. 알았다. 알았어. 조금만 더 하면 아주 그냥 잡아먹겠네. 현우야. 내가 이러고 산다. 친구도 무서워. 동생도 무서워.”


“외형! 그럼 나도 무서워?”


아홉 살 다솜이의 물음이었다.


“어! 다솜이도 무서워. 너무 귀여워서 제일 무서워.”


이준이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꺄르르! 외형. 겁쟁이.”

“웅웅! 난 겁쟁이야. 그러니까 다솜이가 지켜줘야 해.”


“알겠어. 내가 외형 지켜줄게. 그런데 다음 방학에는 내가 지켜줄 수 없어.”

“왜? 나는 우리 다솜이가 지켜주는 게 좋은데.”


“나 서울에서 살게 될 거야.”

“서울? 우리 다솜이 서울 가고 싶어?”


“아니! 나 서울로 입양 갈지도 몰라.”


의외의 말이었는지 이준이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려고 애쓰는 것이 표정에 드러났다.


“입양?”

“어! 나 벌써 세 번이나 다녀왔어. 집도 좋고 어··· 아줌마도 좋아. 강아지도 있어.”


다솜이가 강아지를 생각하는지 표정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렇구나. 강아지 이름은 뭔데?”

“예삐! 이따 올 거야. 나 오늘 서울 갔다가 다음 주에 올 거야. 나 없다고 외형 울면 안 된다.”


“보고 싶어도 잘 참고 있을게.”


다솜이가 이준이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솜이의 나이는 아홉 살.

아홉 살에 입양 가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우리 보육원에 우연히 봉사를 온 부부가 다솜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5개월 전.

기본적인 조사는 모두 끝났고 현재는 적응 기간을 거치는 중이라고 한다.


* *


“자 여기를 보세요. 찍습니다.”

“치즈!”

“김치!”


찰칵! 찰칵! 차차찰칵!


미령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다솜이와 예비 양부모를 찍은 것이다.


“오빠. 나 저기서도 찍어줘.”


다솜이가 내 팔을 끌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예비 양엄마의 손도 잡았다.


그러자 표정이 확 밝아지는 다솜이의 예비 양부모.

인상이 참 선하니 좋은 사람들로 보였다.


다솜이가 이끈 곳은 낮에도 해가 들지 않은 그늘진 곳.

그곳에는 다솜이가 만들어둔 작은 눈사람이 있었다.


“이거 드리고 싶었어요.”


다솜이가 눈사람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예비 양엄마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어서 찰칵! 찰칵!


차찰찰칵!


양엄마의 눈이 촉촉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고마워 다솜아.”

“이것도···.”


다솜이가 바위 위를 가리키더니 바위를 쓱쓱 문질렀다.


“손 시려.”


깜짝 놀라 말리려는 양엄마.


“괜찮아요. 여기에 예쁜 단풍을 얼려 놨어요. 예쁘죠?”


다솜이가 쓱쓱 문지른 바위 위에는 정말 곱게 물든 단풍이 있었다.

단풍이 바스러지는 것이 아까워서 얼려둔 모양이었다.


“너무 예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한 거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너무 예뻐서.”


양엄마와 양아빠가 서로 마주 보더니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다솜이를 꼭 끌어안는 두 사람.


“고맙다. 다솜아. 이 예쁜 것을 가지고 가지 못해서 어떡하니?”

“오빠가 찍어주면 돼요. 그러면 언제든 볼 수 있어요. 그치? 오빠.”


수줍어하던 다솜이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한결 밝아졌다.

그리고 그런 다솜이의 변화에 예비 양부모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부탁해도 될까요?”


양아버지가 하는 말.


“당연하죠. 가까이 앉아보실래요?”

“이렇게 하면 되겠죠?”


“딱 좋습니다. 찍을게요.”


바위 위에 물을 뿌리고 얼려둔 단풍잎이 잘 보이도록 포즈를 잡는 세 사람.


단풍잎과 세 사람!


찰칵!


그림 같은 사진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찰칵! 찰칵!


그리고 바라던 사진까지 카메라에 찍혔다.


“다 됐다.”


사진을 찍고 나자 일어나며 다솜이가 활짝 웃었다.


“손 시리겠다.”

“괜찮아요. 하나도 시리지 않아요.”


“어서 가자. 예삐 기다리겠다.”

“아! 예삐 병원에 있다고 했죠?”


* *


“이상한 것은 없지?”

“없네요. 이 사진에 모든 것이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다솜이와 다솜이의 예비 양부모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것은 아버지.

겉으로 드러난 조건은 결격사유가 단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는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 보세요.”


세 사람을 찍은 사진에 떠오른 사진.

그 사진 속에도 세 사람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장소는 한국이 아니었다.


“유학까지 보낸 것 같네.”

“대학 졸업식 같아요. 행복해 보여요.”


“20년쯤 후려나?”

“그 정도 될 것 같은데요?”


내 대답에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멍해졌다.

20년 후까지 찍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신 것 같았다.


“보육원 사진도 10년은 훌쩍 넘을 것 같았어요.”

“에이. 10년 넘었으면 내가 그렇게 정정할 리가 없어. 난 5년쯤 후가 아닐까 싶다.”


“5년 만에 그만한 규모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러냐? 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웃으시며 하는 말씀이었다.

그러면서 다솜이의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반드시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될 거예요.”


“이거 천기누설 같아. 그렇지 않니?”

“그런 면도 없지 않죠. 그래도 이걸 보고 나니 마음이 놓이시죠?”


“놓이지. 이제 다솜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두 살만 넘어도 입양하지 않으려고 해. 다솜이는 정말 특별한 경우지. 주변 시선들 때문에···.”


“다솜이는 공개 입양이잖아요?”

“공개 입양이지. 하지만 이사 간다고 하더라. 초등학교 근처로 간다고 했지만 겸사겸사 아니겠니. 주변 시선이 가장 문제니까.”


“이사까지. 큰 결심이네요.”

“고마운 일이지. 아! 검사 아들은 결국 병원에 갔다고 하더라.”


“병원요?”

“뇌전증과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 병명만 대여섯 개래. 정신병원에 넣는다는데···.”


아버지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다른 애들은요?”

“만14세 미만은 훈방 조치됐는데 건물주인 애가 만14세가 넘었다더라. 그곳의 소유주이기도 해서 그 녀석은 처벌받을 것 같아. 원래라면 검사 아들도 처벌받아야 하는데···.”


“그곳에 있는 떡대들이 주동자로 둔갑한 거죠?”

“그렇다고 하더라. 주동자인 중학생들은 전학을 갈 거라고 하고.”


“그나마 다행인 건가요?”

“증거가 넘쳐나서 이 정도지. 증거가 없었다면 더 엉망이었을 거다. 어쨌든 그 녀석들 많이 놀란 것 같다고 하더라.”


“세상 무서운 줄 알았으면 좋겠네요.”

“음악 연습실도 폐쇄하기로 했대. 밴드 연습은 이제 학교에서 하겠지.”


“밴드가 유지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잘 지켜봐야죠.”

“그래야지. 이번 기회에 부모들도 좀 변하면 좋은데.”


“아버지.”

“왜?”


“왜 말씀하지 않으세요?”

“뭘?”


“도와달라고 하실 줄 알았어요.”

“현우야. 넌···.”


아버지가 먼 산을 보셨다.

그 눈에 어린 감정의 깊이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더라.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거려. 날 데려가지. 차라리 날. 원망도 많이 했는데···.”


괜한 이야기로 아버지의 속을 뒤집은 걸까?


“그 사람들은 쉽지 않아. 성만 전자 하나만으로도 힘겨운데 학원 재벌에 언론사 그리고 현직 판사야. 모든 것이 망가지더라. 퇴사하고도 집요하게 괴롭히고. 나야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이니 문제가 덜했지만 네 엄마 친정도 쑥대밭이 됐어.”


“그래서 이곳에 내려오신 거예요?”

“바로 내려오진 않았지. 그래도 3년을 꼬박 발버둥을 쳤어. 더 버티다가는 주변이 다 죽어나갈 것 같아서 내려놨는데···. 그래도 집요하게 괴롭히더구나. 명함이 없어지니까 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더라고.”


자세하게 말씀하지 않지만 많은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포기하신 거예요?”

“포기? 자식 일인데 포기할 수 있겠니? 우리 방식으로 칼을 갈고 있는 거지.”


“그 말씀은?”

“너희들을 잘 길러내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혹시?”

“복수의 도구로 쓸 생각은 없으니 오해는 하지 말고. 그저 저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으로 살고 싶었을 뿐이야. 아이들이 사회에 잘 뿌리를 내리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나는 거고.”


“결정적인 사진이 찍히면요?”

“그럼 가만있으면 안 되지. 뭐라도 해야지. 하지만 그만한 힘이 없으면 오히려 무고로 몰릴지도 몰라. 20년이나 지난 사건이고.”


“그럼 제가···.”

“현우야. 넌 네 인생을 살아야해.”


“이것도 제 인생이에요. 이런 능력을 썩힐 수는 없죠. 그때를 한 번 떠올려 보실래요?”

“장례식장 말이냐?”


“예. 부검 보내기 전에 확인한 시신이 찍히기만 한다면 일이 훨씬 쉬울 거예요.”

“기억은 선명한데 찍힐까?”


아버지의 얼굴에 불안이 피어올랐다.


찍혀도 걱정.

찍히지 않아도 걱정인 상태라고 할까?


“다른 생각은 잠시 접어두시고 그때에만 집중해 보세요. 장례지도사의 말을 듣고 염이 진행되는 곳으로 가셨을 때부터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떠올리는 거야 쉽지.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생각했던 거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비통에 잠겨있던 그때 장례지도사가 조용히 왔었어.”


찰칵! 찰칵! 찰칵! 차찰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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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검사인 아버지 22.05.31 252 24 14쪽
21 재미있게 노는구나! 22.05.31 247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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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천둥벌거숭이 22.05.27 280 29 13쪽
17 마음의 거리 +4 22.05.26 280 24 14쪽
16 친구 +4 22.05.25 294 30 14쪽
15 욕심을 좀 내보려고요. 22.05.24 293 28 13쪽
14 얼마나 믿으세요? +2 22.05.23 296 28 13쪽
13 치기 어린 일탈? 22.05.22 301 30 13쪽
12 첫 행보 22.05.21 303 24 14쪽
11 승리한 마법사 22.05.20 327 24 12쪽
10 운명 22.05.19 331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7 27 13쪽
8 증거 나왔어. 22.05.17 377 25 14쪽
7 무임승차 +2 22.05.16 388 29 14쪽
6 성장하는 능력 22.05.15 408 32 14쪽
5 여전사 22.05.14 459 30 14쪽
4 이상한 사진 22.05.13 522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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