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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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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2
최근연재일 :
2022.06.08 00:03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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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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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글자수 :
168,559

작성
22.05.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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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승리한 마법사

DUMMY

11. 승리한 마법사


“아버지! 어머니! 헉! 헉! 허억!”

“현우야! 천천히 와! 넘어질라.”

“······.”


은근히 걸음이 빠른 두 분을 따라잡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냈던 것 같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멀리 보이는 두 분을 향해 목청은 높이자 돌아보며 걸음을 멈추는 두 분.


“같···이 가요. 허억! 허억! 왜 이리 빨리 출발하셨어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둘이 다녀와도 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머니의 손이 내 이마를 닦았다.

그 모습이 유난히 애잔하다.


“제가 함께 가야죠.”

“······.”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눈을 바라보신다.

뭔가를 찾아 헤매는 듯한 두 분.


하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터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뜨는 어머니.


뭉클!


심장 언저리에 통증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그래 같이 가자. 애들은 아직 안 일어났지?”

“아직 꿈나라죠. 서란이 누나만 분주한 것 같았어요.”


“서란이가 챙겨주더구나.”


아버지가 손에 들린 것을 살짝 들어 보였다.


정성스럽게 묶인 보자기.

그 안에 든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럴 줄 알고 제가 이걸 들고 왔죠.”


보자기가 곱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천 가방.

산행하면서 보자기를 들고 움직이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건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도 가지고 왔어요.”


잘 접힌 돗자리도 들어 보였다.


“네가 우리보다 낫구나. 고맙다 현우야.”

“에이 뭘요. 아들이니 당연한 일이죠.”


우뚝!

움찔!


다른 때 같으면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며 기특해하실 두 분이 고장 난 로봇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못 본 척 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겉으로 꺼내놓은 카메라가 덜렁거렸다.


두 분의 눈이 카메라에 닿더니 그것에 이끌리는 듯 걸음을 재촉했다.


“후우우우···. 후우···.”


달려와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표정 관리가 어려웠을 것이다.


잠시 우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미령산을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애기봉.

미령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주봉이자 가장 높은 봉우리인 낙타봉보다 찾는 사람이 더 많고 인기 있는 곳이다.


“지금도 저런 것이 있네.”


한참 산을 오르다 바위 밑의 촛불과 정화수를 보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


아버지는 못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셨다.


다른 산에서 저런 것이 있으면 제사나 고사를 지낸 흔적이지만 이곳 미령산은 조금 의미가 다르다.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린 자식이 길을 잃지 말라고 불을 밝혀주고 목이라도 축이고 배라도 곯지 말라고 물과 먹을 것을 놓아두는 것이었다.


정화수 그릇 옆으로의 흔적이 이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미령산이 어떤 산인지는 알지?”


정화수로부터 한참 멀어진 후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처음 굿을 하는 소리를 듣고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랬지. 네 어릴 때까지만 해도 조용할 새가 없었지. 그래서 우리가 자리 잡기도 좋았는데···.”


미령산은 계룡산만큼이나 무속인에게 유명한 산이다.

사실 무속인이 아니라도 미령산은 모르는 사람이 드문 산이다.


미령산(未靈山)!

아직 신령이 되지 못한 영혼이 모이는 산.


구천을 헤매는 영혼이 이 산에 모인다고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산은 특히 어린 영혼에게 넉넉한 품을 허락한단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이 산은 부모보다 먼저 죽은 아이들을 위한 산이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주봉인 낙타봉이 사실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말도 있고 아이를 품에 안은 어미의 모습이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어릴 때만 해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예전에는 무섭다고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더니 풍광이 좋다고 비싼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어.”


아버지의 손가락이 완공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아파트들을 가리켰다.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닌데 지나친 것 같아요.”


어머니의 한숨이 깊었다.


“저 사람들 때문에 더 그러는 거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겠다는 거지. 우린 다 해봐야 몇 표 되지 않지만 저긴 수백 수천 표는 되지 않겠냐.”


시대가 바뀌며 미령산 아래에 있는 우리 보육원에서조차 굿하는 소리는 어느 틈에 듣기 힘든 소리가 되었다.


대신 아파트 건설로 밤낮 쿵쾅거렸다.

이름만 대면 다 안다는 명품 아파트.


성을 연상시키는 웅장하고 멋진 입구를 자랑하는 아파트가 완공되고 입주하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우리 보육원은 백석 마을뿐만 아니라 반대쪽에서도 들어올 수 있다.

그건 백석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길은 공교롭게 새로 지은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그곳에 철책이 생긴 것이다.


아파트 앞을 지나면 금세 올 수 있지만 돌아오려면 한참이 더 걸린다.

차를 이용하면 그나마 낫지만 걸으면 30분 이상이 더 걸리는 것이다.


항의 및 철거를 요구했지만 아파트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철책은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횡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많아진다고 좋아했는데 아이들도 이제는 느끼는 것 같아. 정말 옮겨야 하는지···.”


학교 문제였다.

특히 초등학교.


시(市)라고는 하지만 변두리에 위치한 천사 보육원.

당연히 보육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규모도 작고 학생 수는 더 적었다.


아파트가 들어서자 학생들이 많아져 학교가 활기를 띠겠다고 좋아했는데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부모들의 이기심이 폭발한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보육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며 전학을 거부했다.

그래서 전학시키지 않고 기존의 학교로 통학시키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1, 2년을 통학시키니 지쳤는지 전학시키며 빠르게 학생 수가 늘었다.


본격적인 갈등은 이때부터였다.


같은 반은 물론이고 같은 건물 사용을 거부했다.

급식도 따로 하기를 원했고 아이들과 철저한 분리를 요구했다.


자신들의 아이들과 우리 원생들을 같이 가르치고 먹일 수 없단다.


나중에는 학교 앞에서 데모까지 강행하더니 급기야 보육원 이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이었다.

처음 시에서 수련원 건설과 휴양림 계획을 발표한 것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네요.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저 아파트 한 채가 서울 아파트 버금간다고 하더라.”


“툭하면 아이들을 건들어. 어제도······.”


어머니의 한탄.

어제도 경찰서에 불려갔다는 어머니.


학교에서 축구공이 마침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의 차에 맞았단다.

그런데 굳이 경찰까지 불렀다는 학부모.


함께 공놀이한 다른 아이들은 다 보내고 우리 원생만 물고 넘어졌다고 했다.


“숫제 범죄자 취급을 하는데 어찌나 화가 나는지. 할 수만 있으면···.”


어머니의 말씀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무얼 말하고 싶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꿈!


그건 어쩌면 애기봉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애기봉에 도착하자 돗자리를 펼쳤다.

그리고 서란 누나가 싸준 보자기를 펼쳤다.


거기에는 아주 작은 상과 함께 사과와 배 그리고 귀한 딸기 한 팩이 들어 있었다.


작은 상을 돗자리 위에 펼치고 사과와 배 그리고 딸기를 올렸다.

이것이 준비의 끝이고 새벽에 애기봉에 오른 이유였다.


제사라면 제사이고 추념(追念)이라면 아주 간단한 추념식(죽은 사람을 생각하고 기리는 의식).


탈칵!


아버지께서 식지 말라고 꼭꼭 싸매 가지고 온 캔 커피를 따더니 상 위에 놓았다.

어머니의 호주머니에서도 바나나 우유가 하나 나왔다.


캔 커피와 바나나 우유.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나란히 놓이자 그럴 듯 했다.


휘이이이잉! 휘이이이잉!


어머니의 손이 바나나 우유에서 떨어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불었다.

애기봉의 매서운 바람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떨 때는 정말 ‘엄마···. 엄마···.’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이사하면 안 올 생각이다. 20년이면 이제 저세상 나이로도 성년이니 어미 아비 안 온다고 서러워하지는 않겠지.”


휘이이이이잉! 휘이이이잉!


바람이 때마침 대답하듯 울었다.


“고맙다. 현우야. 함께 와줘서.”


어머니가 내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다 큰 아들을 20년 전 잃었다는 두 분.

정신을 놓듯 2, 3년을 보낸 후 서울을 떠나 이곳에 보육원을 차리고 지금까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계시는 두 분이다.


아들을 잃기 전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로 잘 나가던 펀드 매니저였다는 아버지는 보육원 설립과 동시에 자본 사관학교를 운영했다.


자립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아이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지는 것이 싫으셨단다.


“저 뭘 하고 살지 결정했어요. 그래서 어제 내려온 거예요.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뚝뚝 끊어지는 말.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천사 보육원에 처음 왔던 열두 살 소년이 된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휭! 휭! 휘이이잉!


바람마저 잘게 끊어지며 공기를 가른다.


덜컹!


음식이 놓인 상이 살짝 움직였다.

바닥이 고르지 못한데다 바람이 워낙 세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은 이 애기봉 위까지 오르지 않고 애기봉 아래 바람도 자고 가는 아늑한 곳에 상을 차린다.


아이들이 편하게 먹고 가라고···.

아까 우리가 봤던 것처럼···.


“검사가 되겠다고 한 것이 중학생 때였나? 5년도 넘은 것 같은데?”

“판검사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싫기는! 네가 하고 싶다면 뭐든 반대하지 않지. 그것이 나쁜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말씀은 저렇게 하시지만 부모님은 이상하게 판검사를 싫어하신다.

표면적으로는 좋은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일상적인 상황보다는 다툼 분란의 상황을 많이 접하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것도 내가 마음을 정하고 난 이후로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말이다.

자신들의 의견 때문에 장래 희망을 바꿀까 조심스러워하신 것이다.


“아버지. 저 ‘승리자’가 되어보려고요. 승리한 마법사요.”

“뭐? 마법사? 우리 현우가 뒤늦게 농담이 터지네. 하하하!”

“호하하하! 그러게요. 늘 진지한 것보다 좋은데요. 호하하하!”


농담으로 들으셨는지 두 분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달그락! 달그락!


음식이 놓인 작은 상도 장단을 맞춘다.


“정말이에요. 아버지.”

“하하하! 알았다. 승리자가 되어야지. 우리 현우가 아주 잘하고 있어.”


“호하하하! 이제 여기도 마지막이다 싶어서 우울했는데 우리 현우 때문에 엄마 행복하다.”


어머니가 나를 꼭 끌어안으시며 하시는 말씀이었다.


“정말인데···. 저 이 말씀 드리려고 준비 많이 했단 말이에요.”

“하하하하! 알았다. 그래. 그래.”

“호하하하! 고맙다. 현우야.”


위로하는 말로 들으신 건가?


두 분이 다시 웃음을 터트리셨다.

배까지 잡으며 웃으시는 두 분.


진지한 자리가 될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두 분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늘 이렇게 웃게 해드릴게요. 두 분도 우리 꼬맹이들도.”

“마법으로?”

“호하하하! 여보. 그만 웃겨요. 너무 웃어서 배가 다 아파요. 호하하하!”


아버지께서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는 흉내를 냈다.

그러자 자지러지는 어머니.


애기봉에서 두 분이 이렇게 활짝 웃는 것은 처음 보았다.


늘 울적하시던 두 분인데···.

목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반응이지만 오히려 이런 반응이 훨씬 만족스러웠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는가!

저승 나이로 스물이면 저세상에서도 성인일 거라고.


휘이잉! 휭! 휘이이잉!


마지막 상이 달가운지 바람이 유난스럽게 굴었다.


휘이이잉! 휭! 휘이잉! 휭! 휭!


달그락! 달그락!


“하하하!”

“호하하하!”


바람이 마법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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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마음의 거리 +4 22.05.26 280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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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한 마법사 22.05.20 328 24 12쪽
10 운명 22.05.19 331 30 14쪽
9 승리자다아아아! 22.05.19 367 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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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전사 22.05.14 459 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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