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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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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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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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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8. 교역의 조건.

DUMMY

48. 교역의 조건.


여름이 건조한 지중해 기후엔 올리브 나무가 잘 자랐다.

올리브에서 짠 기름은 오래전부터 인류에 의해 이용되었다.

올리브유는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름이었다.

올리브유는 특히 교회에 중요했다.

교회에서 성유라고 하면 보통 올리브유를 말했다.

성유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크리스마 성유 (축성 성유, oleum sanctum, Chrisma), 예비신자 성유 (oleum catechumens), 병자 성유 (oleum infirmorum)였다.

종말(apocalypsis, 아포칼립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사람이 교회와 수도원을 찾았다.

어린 갓난아이와 늙은 병자,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은 말세가 도래하기 전에 성유를 몸에 바르려 했다.

교회마다 축성(祝聖)한 성유가 부족할 정도였다.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밤낮없이 구원을 기도했다.

교회와 수도원은 늦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등불로 사용되는 기름도 올리브유였다.

그런 등불은 교회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시의 밤은 쉽게 불이 꺼지지 않는다.

늦은 밤에도 사람들이 모여 세상사를 논의했다.

마르세유 도시의 올리브유 소비가 갑자기 늘어났다.

어느새 재고가 바닥을 보였다.

그러자 상인들이 움직였다.

이미 빵 대란을 한번 겪었다.

생필품은 공급이 부족하면 사재기가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올리브유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상인 길드 간부가 시몽을 찾아왔다.

창고에 올리브유가 큰 단지로 100개가 넘었다.

그걸 팔면 큰돈이 되었다.

길드 가입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올리브유를 팔았다.

서로가 이익이었다.


***


상인 길드 간부가 시몽에게 물었다.


“다른 물건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물레방아 마을에서 가져온 상품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무두질한 가죽과 양털로 만든 실을 가져왔다.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저에게 파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의 말대로 가죽과 실의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마르세유는 수만 명이 사는 대도시였다.

그런 대도시가 오래 멈춰있을 수가 없었다.

마르세유엔 많은 공방이 있었다.

그런 공방이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죽과 실은 많은 물건을 만드는 재료였다.

일을 재개하면서 재료 가격이 상승하고 있었다.

가죽과 실도 상당한 물량이었다.

팔면 돈이 되었다.

다만···.


“이번엔 조금 더 기다려 보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여겼다.


“가격이 더 오를 것입니다. 모든 공방이 문을 연 게 아닙니다.”


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한동안 더 오를 것이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들 생각은 비슷했다. 그도 상인이었다.

시세를 볼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 사려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래갈 수도 있습니다.”


황제와 교황의 갈등이 오래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경기가 후퇴(景氣後退, recession)할 것이다.

대규모 전염병과 자연재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소비감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불황이 발생했다.

생각보다 장기불황은 흔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바다 민족의 침입이 있었다.

그때는 공급망 붕괴로 발생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소비감소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경기후퇴는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그건 상품 가치의 하락이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엔 쉽게 팔 생각이 없었다.

상인 길드 간부의 설득이 이어졌다.


“이미 빵과 올리브유로 많은 이득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만하면 충분히 벌지 않았느냐는 말이었다.

공이 높으니.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말이었다.


“많이 벌었으니. 오히려 부담이 없지 않겠습니까?”


시몽은 도박사 기질이 있었다.

충분한 성과를 얻었다고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성과를 얻었으니. 더 큰 성과를 노렸다.


“가죽과 실은 쉽게 상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가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유였다.

빵과 올리브유와 달리.

가죽과 실은 쉽게 상하지 않았다.


“가죽과 실은 팔 곳도 많습니다.”


가죽과 실이 있어야 하는 곳은 많았다.

밀라노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는 수공업이 발달했다.

제노바로 가져가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는 매입 단가가 낮습니다.”


가죽과 실은 수력을 이용해 저렴하게 생산했다.

생산 단가가 매우 낮았다.

웬만한 가격으로 팔아도 손해 보지 않았다.

매입 단가가 낮으면 오래 기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잘 사면 잘 팔 수 있는 것이다.


“하하. 대단한 배짱이십니다. 상인은 무릇 그러해야 하지요.”


이번엔 올리브유로 만족하고 물러나야 했다.

가죽과 실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파문이 철회되었다.

교황과 황제의 화해가 일어났다.

카노사의 굴욕이었다.

숨을 죽였던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제 활동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

리오프닝(Reopening)이었다.

가죽과 실의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

머무는 여관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갑자기 늘었다.


***


“하하. 이번에도 팔아줘서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가죽과 실을 상인 길드를 통해 팔았다.

그가 괜찮은 건물을 소개해 주었다.

얼마 전 망해 버린 상단의 건물이었다.

돈을 크게 번 사람이 있다면,

손해 본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종말을 예상하고,

상단을 팔아 하느님의 옆자리를 예매했다.

전 재산을 들여 방공호를 지은 셈이었다.

의외로 이런 이들이 많았다.

창고가 달린 건물이 아주 저렴하게 나왔다.

상인 길드가 제공하는 특별 서비스였다.


“오는 게 있음.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잘 지내봅시다.”


그가 상인 길드 가입을 도와주었다.

길드는 아무나 받아주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폐쇄적이었다.

그의 소개와 보증 덕분에 쉽게 들어갔다.


“영주님에게도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뒷배가 베르트랑임을 알고 해준 것이다.

길드는 선장 레오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했다.

권력자와 끈이 닿아 있는 이는 환영이었다.

론강 하류를 장악한 가문이라면 더욱 좋았다.


“그분과 그런 말을 나눌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성과를 보시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말씀드려 주십시오.”


***


상인 길드가 그에게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었다.

권력자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길드에 가입한 상인도 망해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상인 길드는 쉽게 망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새로운 피를 공급받았다.

길드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유였다.

고등 동물은 세포를 교체하면서 오랜 삶을 살았다.

인류라는 종도 마찬가지였다.

세대를 교체하며 종족을 보존했다.

생태계는 종을 교체하며 더 오랜 기간 존재했다.

그러한 경험이 쌓여 본능이 되었다.

길드, 무리를 짓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시몽은 마르세유의 상인 길드에 소속되었다.

베르트랑의 상단이 더 크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래 지속될 방법이었다.

집단의 힘,

그것이 권력이었다.

비슷한 일들이 물레방아 마을에서도 일어났다.

베르트랑의 아래로 에드몽과 피에르, 에릭, 시몽, 같은 이들이 모였다.

그런 그들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사람은 모이면 더 강해진다는 걸,

오래간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조직들이 탄생했다.

그 안에 마르세유의 상인 길드도 들어오고 있었다.

대형 갤리선의 선장이 레오와 함께···.


***


집단을 이루는 건 경쟁의 배제가 가장 큰 목적이지만···.

길드에 소속이 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다른 이를 소개받는 것이었다.


“아를로 가져갈 상품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봄이 되자,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상인 길드에 가입하여 마르세유의 정보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상단 건물을 매입하여 마르세유에 거점을 세웠다.

이제는 물레방아 마을에 팔 상품을 가져가야 할 때였다.


“어떤 걸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잡화가 좋지 않겠습니까?”


잡화,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곳은 도시였다.

도시에서 잡화를 사서,

시골에 파는 것은 어디에서나 보편적이었다.

물레방아 마을 주위에 넓은 배후지가 있었다.

그곳에 필요한 물건은 잡화의 종류만큼 많았다.


“어떤 것들이 필요하십니까?”

“가죽 제품과 의류가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신발과 장갑, 모자, 의류 같은 잡화는 가장 많이 소비되는,

가장 많이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물레방아 마을에서도 생산하지만, 수요를 충족시키기는 부족했다.

물레방아 마을의 배후지는 넓었다.

지역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소규모 행상들이 많이 취급하는 물품이기도 했다.

큰 상단이 대동맥이라면,

소규모 행상은 모세혈관이었다.

마르세유에서 그런 물건을 가져가면,

마을의 행상이 주변 지역으로 퍼트릴 것이다.

토마 같은 이들이었다.

돌아올 때는 그곳의 생산물을 가져왔다.

혈액이 온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았다.

상인은 그런 활동으로 경제에 활력을 주었다.

맘몬의 자식이라고 부르면서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이유였다.


“철과 소금도 필요합니다.”


철과 소금은 어디에서나 필요한 품목이었다.

수요도 많고 팔기도 좋았다.

마르세유에서는 소금을 생산했다.

바닷물을 끊여서 만드는 소금이지만, 론강을 따라 내려오는 암염보다는 저렴했다.

마을로 가져가면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강철은 밀라노가 유명했다.

알프스산맥에는 광산이 많았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으로 질 좋은 강철을 만들었다.

밀라노가 판금 갑옷으로 유명하게 된 것도,

그곳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강철 덕분이었다.

강철은 물레방아 마을에서 많이 필요한 물품이었다.


“하하. 상품을 고르는 안목이 있으십니다. 회원으로 잘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시몽이 공급한 가죽과 실은 마르세유에서 신발과 장갑, 모자, 의류로 바뀌었다.

도시의 풍부한 장인을 활용한 것이다.

거기에 그동안 팔리지 않은 상품들이 공방에 쌓여 있었다.

그걸 싸게 매입하는 것이다.

일종의 재고 처리였다.

가죽과 실을 비싸게 팔고,

그것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싸게 샀다.

그만큼 이윤이 늘어났다.

마르세유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한 셈이었다.

소금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건 무엇입니까?”

“도시의 고철과 잡철을 모아주십시오.”

“고철과 잡철 말입니까? 그건 어디에 사용하시려고···.”


잡화와 철, 소금은 이해가 되었다.

마르세유에서 많이 사 가는 상품이었다.

론강 유역에 뿌리면 돈이 되었다.

그러나, 고철과 잡철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는 그곳에 수력을 이용한 제련소가 있다는 걸 몰랐다.

수력을 활용해 철을 제련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시대가 조금 더 흘러야 했다.

알프스에서 흘러나온 물은 론강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면 알프스 이남에서 수력을 이용한 제련을 시작된다.

그 덕분에 토리노와 밀라노, 피렌체가 산업 도시로 성장한다.

강철과 판금 갑옷, 공업지대는 수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에 아를과 같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있었다.

십자군이 가져온 기술이 그곳에서 빛을 발한다.

르네상스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제가 가는 곳엔 철이 귀합니다. 고철과 잡철이라도 쓸 곳이 많습니다.”

“아! 그렇군요.”


모든 걸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같은 길드원이라도 해도 돈이 되는 정보는 숨겨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얼마나 필요합니까?”

“대도시엔 쓸모없는 철이 풍부하지 않습니까? 최대한 많이 구해주십시오.”


마르세유에도 대장간과 제련소가 있었다.

그래도 고철과 잡철이 넘쳐났다.

고철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대도시와 공장지대였다.

그만큼 철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고철과 잡철은 저희가 취급하는 상품이 아니라···.”

“충분한 구문(口文)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최대한 구해보겠습니다.”


상인 길드에 속한 만큼 아는 사람도 많았다.

돈이 된다면 어떻게든 고철과 잡철을 모아올 것이다.

마르세유엔 고철과 잡철이 많았다.

그만큼 가격이 저렴했다.

그에게 수수료를 줘도 남는 장사였다.

물레방아 마을에 있는 제련소는 수력으로 돌아갔다.

고철과 잡철을 쉽게 강철로 만들 수 있었다.

마르세유와 물레방아 마을은 교역하기 좋았다.

남는 물건을 팔고,

필요한 상품을 사는 것,

상대적인 우위(優位)를 이용하는 것이 교역이었다.


“아! 염장 생선도 매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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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9. 마음을 되돌리는 일. +2 24.05.01 496 12 12쪽
» 48. 교역의 조건. 24.04.30 475 13 13쪽
47 47. 마르세유 상인 길드. +2 24.04.29 501 13 13쪽
46 46. 겨울의 지중해 항해. +2 24.04.28 516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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