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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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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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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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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69. 번개와 폭풍, 형성중

DUMMY

그녀는 펄럭거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거대한 괴조 두 마리의 위에 올라선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안정적인 비행이었다. 앞으로 편 짧은 팔로 거대한 MP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괴랄한 양이었다. 릿샤의 MP는 그간의 수련과 훈련, 사냥 따위로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본디 그녀도 어느 정도 근접 전투가 가능한 부류의 플레이어였다. 초상술사임과 동시에 기력술사로서의 역량도 가지고는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스스로 약간 강화 스킬, 버프 스킬을 쓰고 싸우는 것이다.

호아킨이나 제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예 못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기력술사로서의 성장은 거진 포기를 하고서, 초상술사로서의 역량을 성장시키는 데 모든 시간과 집중을 쏟아넣은 것 같았다.


호아킨이 물리 스탯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킨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었다.


데슈칸 산맥의 바람이 조금 달라진다,


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제냐의 입장에서 말이다. 다른 이들도 느낄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근처에서 MP를 다루고 있는 제냐의 경우, 가장 직접적으로 변화를 체감한다.

기력술사는 정병들을 다루는 일이었다. 자신의 지휘권 아래에 있는, 이미 익숙한 병사들을 다루는 일. 그러나 MP는 보다 많은 병사들을 다루는 일이었다. 때로는, 대기 중에 있는 SP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MP라는 건 규모로써 가지는 힘이 있었다. 거대한 단위의 힘을 다룰수록, 더욱 큰 범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드래곤과 같은 생물체가 다루는 MP는 그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현상을 발생시킨다. 기세만으로 만만한 적대자들을 모조리 기절시키거나 죽이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농담같은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대기 중에 퍼져 있는, 자연계의 SP들은 초상술사가 다루는 대규모 단위의 MP에 밀려서 자리를 비키거나, 혹은 반발하거나 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리액션들이 다시 초상술에 영향을 미친다. 대개는 좋은 영향력이 된다. 그들의 반발력은 다시 말하면 초상술사가 다루는 MP의 응집력으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외부의 모든 방향에서 한쪽으로 밀어주는 힘이었으니까.

혹은 MP의 작용과 움직임, 기세가 너무 강력해서 그에 순응하고 자리를 비켜줄 수도 있었다. 그 때는 또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작용을 의도했을 때 도움이 된다.


어쨌든 초상술사는 MP를 다루는 자들이었고, 그들은 기력술사와는 다르게 ‘순응’이라는 것을 배운다. 대기중에 퍼져 있는 SP의 흐름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초상술사로서의 길을 걸어간다는 건 곧 탐구의 길과도 같았다. 자연계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점차 깊이 깨달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자연계를 만들었다는 콘란드 대륙의 창조주의 의지를 알게 되는 것과도 비슷했다. 단순히 세계관 상의 설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련의 시나리오속 세상은, 실제 세상이 아니라 가상으로 꾸며진 가상 현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현실에 대한 비유라는 점을 깨달아보면 어느 정도 현실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점이 있었다.


예술가들, 과학자들은 세상에 대해서 심오하게 탐구를 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나 사물이라고 하더라도 ‘특별’하게 보는 관점으로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러다보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놀라움이 생경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탁, 하고 그것의 특별함이 놀랍도록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땐,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의 의지나 솜씨가 예사롭지 않구나, 마음 속 깊이 와닿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 놀라움에 대한 경탄. 결국 그런 것들이 예술적 표현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 또한, 세계의 이치에 대해서 탐구하다 보면 늘 놀라게 되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첨단의 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서는 유신론자들이 참 많았다. 이럴 수가 없는 방식으로 지어져 있는 세상의 정교함을 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초상술사들은 자신이 다루는 MP뿐만이 아니라, 주변 SP의 흐름에도 민감해진다. 기력술사가 어떤 점에선, 오롯이 자신의 내면과 그 주위로 감각을 집중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었다. 물론 기력술사 역시 외부로 힘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감지력과 현실 인식이 필요하기는 하다.

세상을 이해하는, 혹은 기술을 발현하는 스타일의 차이일 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변 SP의 흐름이라는 건, 자연계에 존재하는 SP의 움직임이었고, 그건 자연계의 여러 원소나 물질들의 흐름과 분리될 수 없었다.

주변의 바람이 달라졌음, 을 누구보다 이 순간 선명하게 깨닫는 건 그 자연계에 같이 손을 대고 있는 제냐라는 초상술사였다. 동시에 같은 위치에서 초상술을 발현하고 있기에 그녀의 초상 스킬이 심상치 않다는 걸 명징하게 깨닫는다.


태양의 숨결, 폭풍의 한 자락.


전설 급의 스킬인 ‘블리자드’의 위용을 어설프게나마 발현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릿샤는 그것을 결국 갈고 닦았다. 당시에 여러모로 궁리를 해서, 여러 종류의 아티팩트들을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만들어내었던 위력이자 위업이었다. 성벽을 날려버리고, 거대한 고성을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이라니.

이미 마스터 마기아에 준하는 위력을 초상술로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안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100레벨을 거진 앞에 두고 있는 그녀였다. 고수로까지의 발걸음. 얼마 남지 않았다. 의지력을 비롯해 스킬 운용 능력, 게임에 대한 이해력, 초상술사로서 가져야 하는 여러가지 센스들은 고수급에 이미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았다면 그 이전 중수 시절에 그런 스킬들을 써먹지도 못했으리라.


릿샤는 여러가지 장신구들을 차고 있었다. 작힘 성에서 보였던 모습과 비슷했다. 양 귀. 양 팔목. 발목. 목. 옷과 방어구에 가려져서 다 보이지 않는 악세사리 등이었다. 그녀는 사냥이 시작되려 하자 인벤토리에서 왕관처럼 생긴 무언가를 꺼내서 머리에 쓰기도 했다. 백은으로 만들어진듯한 빛깔의 물건이다. 거기에 다 짐작하기 어려운 여러 종의 보석류가 박혀 있다. 복잡한 양각 장식이 되어 있었고, 사자니 늑대니, 그리고 용이니 하는 화려하고 사나운 동물들의 형상이 자세히 보면 그려져 있다.


‘화이트 스노우 서클렛’.


제냐와 최태현이 어둠숲의 백마를 잡고 나서 획득한 아이템이었다. 초상술사들의 스킬에 위력 보정을 더해주고, 특히 빙결 계열의 원소술사에게 더욱 힘을 실어준다. 제냐와 최태현이 쓸 곳은 없었기에 릿샤에게 건네준 것을 그녀가 쓰고 있었다. 아름다운 꼴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 결이 고운 단발이 그녀의 날개뼈 부근까지 늘어뜨려져 있었다. 곱게 빗어 내려보낸 직모이다. 지금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MP로 생긴 바람이나, 또 산맥의 바람때문에 흐트러져 흩날리고 있었다.

그 모양 또한 아름답기도 한데, 그 윗단에 가만히 눌러 쓴 왕관의 빛깔이 기가 막힌 대비를 이루었다. 쨍쨍하게 비추고 있는 태양빛이 ‘화이트 스노우’라는 이름다운 빛깔에 어우러져 더욱 밝은 빛을 내게끔 했다.


지금 사용하는 중첩 스킬에는 ‘화이트 스노우 서클렛’의 내장 스킬이 쓰이기도 한다. 백마라는 네임드를 잡고 나온 유니크 아이템이었고, 내부에 들어 있는 MP또한 상당량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데미 블리자드’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어마무시한 놈이었다.


지금 그녀가 완성시키려고 하는 스킬의 이상적인 위력이 ‘블리자드’였다. 이전 작힘 성을 때려박은 스킬 역시 온전한 블리자드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으니까. 그보다 더 견고한 스킬 구조를 짜내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데미 블리자드는 그런 복합기를 구성하기 위한 아주 좋은 스킬이었다.


그녀는 소리를 내어 시동어를 읊조리지 않았다. 초상술사들은 대부분 가능한 일이었지만, 고도의 의지력이 필요했다. 사람의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게임 내의 캐릭터들은 유저의 정신과 링크된 가상 아바타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신체의 매커니즘적으로.

전투 상황과 같은 실전에서 머릿속으로 정교하고 선명한, 복잡한 상상을 해낸다는 건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때문에 시동어가 필요해진다. 입으로 뱉어서 연상 기억을 끄집어낸다면 상상력을 쓰는 데도 도움을 준다.


릿샤는 한동안 지금 다루려는 복합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애를 썼고, 이것만 생각했다. 근 며칠 정도 동안의 기억이 전부 이 스킬을 완성시키려는 집중이었기 때문에 딱히 시동어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에 필요한 여러 부속 스킬들을 쓰는데도 말이다.

초상술사로서 점차 노련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데미 블리자드는 한기를 불러 일으킨다.


설국에서나 불법한 시린 공기와 눈보라가 그녀의 앞에 생겨난다. 바람이 몰아친다. 산맥의 바람이 몰아치며 그녀의 바로 앞에 쌓여간다. 눈보라는 그 위를 덮는다.


풍술과, 빙술. 그리고 뇌술을 섞는 것이다. 자연 기후에 속하는 원소들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기상적인 재해를 재현하기에 좋은 원소들이다. 녹빛의 바람이 먼저는 모여들었다. 그것은 점차 짙어졌고, 회색빛의 폭풍처럼 보였다. 잡다한 물질들이 그 속에 섞여 들어가는 것처럼 색깔이 점차 탁해진다. 그 위에 흰 빛의 눈보라가 내려앉고 감싼다. 흰 빛의 옷을 입는다.


그녀가 허공에 팔을 들고 있었고, 풍술 계통을 사용해 먼저 스킬의 핵을 구성했다. 데미 블리자드는 그 위의 옷처럼 덮여진다. 제냐가 바람이 심상찮다, 라고 느낀 건 깨나 정확한 묘사였다. 실제로 그녀가 다루는 것은 공기였으니까. 이 정도의 소음에도 굴 속의 검은 용은 반응하지 않았다.

저것은 대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가장 민감했다. 대기 중에 어떤 기상 변화가 일어나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애초에 흙을 파먹고, 또 다른 성질의 토양으로 뱉어내는 데 최적화된 생물이었고, 그것이 검은 용의 본질이고 본성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사람들의 도시나 마을이 그 행로에 있었기 때문에 재앙이 될 뿐이다. 다만, 몬스터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건드렸을 때의 난폭함은 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경천동지, 라는 사자성어가 어울리는 난리법석을 피울 테였다.


그 검은 용의 지랄이 시작되기 전에, 가장 먼저 최초의 일격을 세게 먹여주고 레이드를 진행해야 했다. 최초의 일격은 상대의 위치를 찾아낸 사냥꾼들이 갖는 최대의 이점이었다. 거기서 일반적인 전투, 겨루기와 사냥의 차이가 난다고 해도 좋았다.

정확한 허점을 찾아 때릴 수 있다면, 한번에도 끝날 수 있는 게 사냥이었고. 사실 이 자리에 모인 다섯 명의 사냥꾼들은 그러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이전에 검은 용을 토벌했던 적이 있는 호아킨과 릿샤가 가장 잘 아는 점이기도 했지만은. 검은 용은 신체의 절반 즈음을 날려버려도 다시 새것처럼 재생할 수 있는 놈이었다. 방어력과 HP가 경이롭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까다로움이 있었다. 물론 재생을 하는데는 본인의 원기라고 불릴만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것은 수치적으로 당장 점칠 수 있는 HP보다도 코어한 힘이었고, 그것이 다 닳았을 때 검은 용이 죽는다고 해도 좋았다. 재생을 반복할수록 검은 용의 HP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 신체에 먹이는 충격, 타격들이 전부 유효하기는 하다는 것이다.

다만 페이즈가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는 몬스터였고, 더럽게 HP량이 많게 느껴질 뿐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았다.


릿샤의 앞에 바람의 구가 생겨난다. 그 위에 눈보라의 옷이 덮였다. 탁한 색의 구체에 흰 빛의 입자들이 스며들었고, 그 외부를 장식했다. 그 구의 바로 근처는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 결정이 생겨났다. 얼음 알갱이들이 생겨났다가, 그 구체 내부로 빨려들어가거나 혹은 근처로 떨어지거나 했다.

릿샤는 MP를 제대로 제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현상을 낭비하지 않았다. ‘주위의 온도를 내린다’라는 MP적 현상을 남발하다보면 결국 스킬 자체에 쓰이는 MP가 불필요한 손실을 겪게 된다.


배터리를 아무리 잘 충전을 하고, 잘 만들어도 결국 충전할 때의 양보다는 그것을 사용할 때의 에너지량이 적은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충전을 하면서 LED등 따위의 불이 밝혀지기도 하고, 발열이 일어나면서 일부분은 바깥으로 소모가 되니까.

에너지는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의 양이었고, 그 힘을 쓸데 없는 다른 곳에 쓰게 해서는 좋은 초상술사나 좋은 스킬러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병사들의 체력과 정력은 한계가 있었고, 릿샤가 다루는 대군은 오로지 한 점에 집중하여, 검은 용의 몸체를 뚫어낼 생각만 하면 되었다. 릿샤는 아주 엄정한 지휘관이었으며, MP들이 쓸모없는 손실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모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녀의 찡그린 얼굴 옆으로 땀방울이 맺히고, 곧 주르륵 흐른다.

별 것 하는 일 없어 보이는 자세였지만, 가만히 있는 꼴이지만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도 진을 빼고 있었다. 들고 있는 팔이 가늘게, 떨리기까지 한다. MP를 다루는 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초상술사들도 어려운 난이도의 스킬을 쓸 때는 몸의 힘이 빠진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였다. 정신력이든 육체적인 힘이든. 양쪽의 밸런스가 어느 정도는 맞아야 결국 최선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릿샤가 기력술사로서의 힘을 갈고 닦는 이유도 사실 그런 부분이 있었다.


거대한 MP를 다루기 위해서는, 몸도 튼튼한 편인 것이 의외로 좋았다. 극도로 정교한 MP운용을 해내서, 어마어마한 현상 에너지를 다루면서 그 힘의 편린조차 옆으로 흘리지 않는 마스터 오브 마스터라면 다를 지 모르겠지만. 그 아주 미세한 여력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 결국 초상술사가 하는 일이다.


자신이 날아가거나 죽을 정도의 일을 벌이는 머저리는 없겠지만, 절대라는 게 없다는 면에서 보자면. 잠깐의 실수로 죽을만한 위기가 있을 수 있다. 가급적이면 그런 식의 게임 오버는 맞고 싶지 않으니까. HP도 부지런히 관리를 하고 체력을 키워두는 게 좋다.


릿샤 애드윈의 마법이 만들어진다. 마법이라는 기술은 이 세계에는 없었지만. 명사로서의 단어는 존재했다. 마법과 같은 일이다, 처럼. 마기아라는 위대한 초상술사에게 가는 단어가 결국 거기서 파생된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데미 블리자드는 그녀의 스킬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트리플 캐스터로서 다루는 세 자리의 한 구석을 차지한다. 자신의 MP가 아니더라도 결국 서클렛으로부터 나오는 MP역시 그녀가 다루어야 했기에. 트리플 캐스터는 남들보다 아득하게 높은 의지력과 남다른 센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그것이 대량의 MP를 다루는 쪽으로는 발달하기 어렵다. MP라는 건 모이면 모일수록 부가적인 효과를 내게 마련이었고, 1,000의 MP로 만들어진 스킬 세 개를 동시에 영창하는 것과 3,000의 MP를 가진 스킬 하나를 영창하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라고 봐도 좋았다. 의지력은 갈수록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루어야만 한다.


MP가 늘어난다는 건 그런 뜻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MP총량의 10분지 1이 결국 의지력이 되니까. MP를 평소에 자신에게 내재적으로 묶어둘 수 있다는 것이 애초에 의지력의 반증이기도 하다.

거대한 군사를 탈영하지 않게끔, 가만히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지휘 체계의 단단함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만들고 있는 건 눈보라와 폭풍이었다. 뇌기가 스며든다. 그녀의 팔 바깥쪽. 팔뚝의 옆에서 번개가 치솟아 올랐다. 새하얀 백뢰였다. 그저 번쩍거리는 빛으로도 보이지만, 아주 짙고 농후한 색감을 띄고 있었다. 우유처럼도 보인다.

그런 색깔의 매끈한 질감을 가진 번갯줄기가 그녀의 팔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건 MP였다. 팔로부터 곧바로 완성되서 나타나는 MP체들.

뇌전 계열의 여러 스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풍술 계열로 스킬의 구심점을 잡고 있었고, 데미 블리자드를 쓰는데 한 자리를 써먹었다. 풍술들의 시전이 끝나면서 의지력에 여력이 되자 곧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거기까지가, 한 40초에서 50여 초 즈음이 지난 시간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는 않았다.

많이 봐줘야 20여 초 정도.


그녀는 1분을 이야기했다. 최태현과 제냐도 그에 맞추어서 공격을 준비한다. 약간의 시간이 릿샤에게 필요하다. 최초의 선제 타격은 그녀가 될 필요는 없었다. 검은 용이 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색적 스킬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았고. 어차피 이들 모두가 산림 지역. 산슈카의 여러 필드에서 고락을 겪었던 베테랑 사냥꾼들이었다. 네임드 몹의 흔적 정도는 쉽게 추리해서 찾아올 수 있었다.

저곳은 검은 용의 둥지였고, 현재 놈은 둥지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검은 용이 활동하는 정해진 시간은 없었지만, 적어도 하루 즈음 활동을 하면 그 다음 날은 쉬고는 했다. 둥지 안에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오늘이 그 휴지기에 속하는 날인 모양이다.

검은 용이 인간의 시계를 따라 움직이지도 않았고, 낮과 밤을 가리는 놈도 아니었기에 휴지기가 언제 풀릴 지는 모른다. 지금 공격을 준비하려는 수 분 만에 놈이 갑자기 솟구쳐 나오리라 생각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하필, 그런 재수없는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크르르르르릉.


하고 무언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릿샤는 집중을 하면서 스킬을 만들고 있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의 작은 얼굴 상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미간에 내 천 자가 생겨난다.

검은 용의 울음 소리였다. 그들은 수백 여 미터 정도는 떨어진 자리에서 먼 절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생물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는 점에서 검은 용이 얼마나 괴물같은 놈인지 알기 쉬워진다.


데슈칸 산맥을 활보하는 괴물. 놈의 앞에서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도망도 제대로 치지 못하고, 그 재해와 같은 몸짓에 휩쓸려서 죽을 뿐이었다. 검은 용은 살아있는 재해로 보는 편이 맞다. 고수 급이 달려들어야 잡을 수 있는, 그만한 레벨대의 보스 몹들은 대부분 그러하다.


그마만큼이나 살아있는 재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세상이었다. 인간이 살아내기 조금 힘든 세상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거칠고, 척박한 삶. 콘란드 대륙은 한참이나 정복되어야 할 야지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거치른 대지 위에 간신히 삶을 뿌리내린 주민들이 역사를 일궈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의 시대는 그래도 역사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문명다운 문명을 일궈낸 이후이다. 이전 시대에도, 산슈카의 제국기나 고국기를 보면 알 수 있듯 찬란한 번영의 역사가 있기는 했다만. 어느 일부 집단에게 귀속되고 집중된 번영이 아니라 전체적인 기술 발전의 양,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양을 따진다면 콘란드의 역사 중에서는 지금이 가장 번성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번성과 발전의 흐름은 앞으로 한 세대, 두 세대 등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가속화될 테였고.

그런 자리에 수 억의 유저들이 발을 디뎠다. 원래대로의 역사라면 몇십 년이 더 걸릴 발전의 속도도, 여러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무언가 일을 벌인다면 훨씬 빨리 일어날 수도 있었다. 혁명, 개혁, 뭐 그런 것들.

단지 사상이나 사회 구조,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발전과 혁명 자체도 말이다. 플레이어들은 이 세계에 깊이 매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집중력이 부족하고, 어떤 경지의 오의를 깨닫는데 힘든 면이 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이 세상에 지나치게 빠져들었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한 면도 있다.


그건 여러 종류의 제작 계열 클래스들, 연금술사니 초상공학자니 하는 분류에서는 굉장한 장점이다. 현실에서 이미 쓰고 있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은 그대로 제작자들의 아이디어가 되어서 다양한 기술발전의 토대로 쓰인다.


중부 대륙은 그런 면에서 조금 뒤쳐져 있었다. 이미 북부니 서부니, 여러 지역 대륙들에서는 제작 계열의 유저들이 일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부는 일반적인 전투 계열, 상업 계열, 뭐 그런 류가 유저들 중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중부에 걸출한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의 분위기를 모조리 바꿀만치 탁월한 공학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초상술사들이 다같이 힘을 합치고 머리를 맞대면 조금 달라질까도 싶지만.


중부 대륙은 평안한 편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도 있는 판국에. 이미 아릿시안이라는 대제국 때문에 전쟁을 치렀던 이 지역은 지금 안정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자유 연맹에 속한 여러 나라들은 내치에 힘을 쏟고 있었고. 산슈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대로 조금 더 시간이 흐른다면 모를까, 아직까지 이 근처 지방에는 어떤 변혁점이 없었다. 그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인 그대로의 날들이 흐를 뿐이다.

산슈카의 공학자들, 중부 대륙의 학회와 장인들 역시 노는 것은 아니니까 대륙의 평균에 비해 조금 뒤쳐진다고는 해도 앞으로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기는 했지만.


릿샤나 제냐, 최태현과 호아킨. 이런 유저들이 만나고 있는 장인들은 그런 중부 대륙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가진 제작자들이었다. 단테스 무기점의 단테스 도노반 역시 그러했고. 뛰어난 솜씨를 지닌 NPC들과의 인맥은 게임 플레이를 더욱 풍성하게, 그리고 쉽게 만들어주는 좋은 자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가의말

그러합니다.

으어

형사이야기

완결내야하는데


요즘엔

글쓰기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한 이 주 정도 전에.

그럭저럭 재미도 있고 

쏠쏠하네요.

용돈 벌이 정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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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0. 공습 24.01.06 13 0 22쪽
200 199. 필멸창 24.01.06 9 0 20쪽
199 198. 둘러 앉아서 24.01.05 15 0 14쪽
198 197. "…시작인가?" 24.01.05 14 1 23쪽
197 196. 띄어쓰기 24.01.05 9 1 15쪽
196 195. 호아킨은 웃었다. 24.01.05 7 1 11쪽
195 194. 귀퉁이 24.01.03 12 1 12쪽
194 193. 가즈아 24.01.03 13 1 14쪽
193 192. 독주 24.01.02 14 1 17쪽
192 191. 터뜨리다. 23.12.20 16 1 13쪽
191 190. 턱 밑에서 23.12.19 10 1 16쪽
190 189. 검은 선 23.12.19 10 1 17쪽
189 188. 지난한 과정 23.12.19 11 1 16쪽
188 187. 진검기眞劍氣 23.12.18 17 1 26쪽
187 186. 블러디 아이시bloody icy 23.12.13 16 1 21쪽
186 185. 버로우Burrow 23.12.13 11 1 29쪽
185 184. 준비 23.12.12 14 1 29쪽
184 183. 원거리 딜링Dealing 23.12.07 14 1 15쪽
183 182. 초토화 23.12.07 9 1 15쪽
182 181. 낙하 그 다음 23.12.07 14 1 14쪽
181 180. 낙하의 순간 23.12.03 11 1 19쪽
180 179. 검은 용 레이드Raid(3) 23.12.02 14 1 18쪽
179 178. 검은 용 레이드Raid(2) 23.12.02 13 1 24쪽
178 177. 검은 용 레이드Raid(1) 23.12.02 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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