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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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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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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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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95. 호아킨은 웃었다.

DUMMY

두 사람 모두 금맥을 찾은 광부처럼, 검은 용의 몸뚱이를 파고들어갔다. 삽보다도 단단한 검날과, 거기에 실은 기력술의 위력을 써서 말이다.


흙보다 아득하게 강한 강도를 가진 땅이 파헤쳐졌다.


밭을 개간하는 일보다 더 까다로웠다.


아래 위로 계속해서 몸을 불려나가는 검은 용이었다.


HP는 얼마나 남았을까.


“이, 씹.”


호아킨은 늑대의 주둥이로 욕지기를 뱉었다. 더럽게 죽지도 않는 놈이다. 그렇게 느낀다. 양 손의 발톱으로 계속해서 헤집고, 그 내부를 뜯어냈다. 호아킨 역시 늑대원숭이의 꼴이 되면서 거력을 얻었다.

변신술사는 자신이 따라하는 육체의 성질을 닮기 위해서 많은 스킬을 익혀둔다. 인간형의 호아킨이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괴력과 기력술을 섞어서 땅을 파헤친다.


영 속도가 더디고 화가 나자, 호아킨은 입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돋아난 육식 동물의 이빨로 그 살을 물어 뜯었다. 영, 칙칙한 질감과 맛이 입 안에서 느껴졌다. 한가득 들어오는 축축한 식감에 질척거리고, 마치 흙을 씹은 듯한 맛. 진흙을 있는 힘껏 베어 물면 비슷할 테였다.


그 살도 외피도 지독하게 단단한 것이었으나 일단 부수고 입 안에 넣어 씹다보면 그런 맛이 났다.


‘맛’은 이 게임을 즐겁게도 만들고 괴롭게도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콰득


하고 늑대의 주둥이가 강하게 짓물었다.


검은 피, 그러나 호아킨의 눈에는 반짝거리는 입자들로 보이는 무언가였다.


입에 넣었을 때는, 그것이 짐승의 피가 아닌 ‘식재료’로 인식이 되는지 식감이나 맛은 그대로 선명히 느껴진다.


몇 미터 정도를 손발을 움직여가며 파헤친 호아킨은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느꼈다.


그대로 오른쪽 눈을 꾸욱 감고, 그대로 그 눈꺼풀 위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검은 용의 몸뚱이 속으로 파고들어가던 그에게 인벤토리 창이 떴다.


눈 앞을 채운 불투명한, 초록빛의 창.


그는 넣어두었던 거대한 배틀엑스를 다시 꺼내들었다. 사자의 형태로 아가리에 물고 있던 것이다. 갈색 매, 브라운에게 들려 갔을 때 즈음 인벤토리에 넣어두었었다.


다시금 꺼냈고, 발톱 대신에 도낏날에 검력을 싣기 시작했다.


그의 몸 내부에서 기력이 감돌았다. 강력하고, 또 유형화된 기운이었다. 몸에서 솟구치는 적색의 불길. 불길은 아니었고, 마치 연기처럼 넘실거린다. 아주 약간의 미온 정도는 있었다. 호아킨 팍스의 MP이다.


호아킨은 변신술사로서, 초상술사의 한 갈래를 파고드는 중이다.


거기에 다종의 패시브, 액티브 스킬들로 육체를 강화하고 파괴력을 더한다. 거기에 기력술사로서의 스킬들을 익히는 중이니, 확실한 멀티 클래스 유저였다.


“크르륵.”


호아킨의 성대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온다. 늑대의 아가리에서 들릴 법한 소리이다.


도끼를 쥐고, 높이 든다. 검은 용의 몸 속, 그 갈라진 틈새에서 말이다.


수 미터를 파고 들어갔으나 도낏날은 훨씬 높게 솟았다. 허공에 닿는다. 그리고, 다시 내려친다.


콰작!


아찔한 소리가 나면서 생물체의 살이 갈라졌다.


검기에 거진 가까운 검력은 검은 용의 속내를 손쉽게 갈라낸다.


크오오오오오.


벌레는 울면서, 다시금 꿈틀대며 움직인다.


릿샤의 공격이 유효했던 모양인지, 호아킨과 제냐를 몸 속에 넣어두고 급발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진동이 느껴지며, 밟고 선 몸뚱이가 흔들렸다. 호아킨은 다시금 번쩍, 도끼를 들었다.


콰득!


얼마 지나잖아 다시금 내려친다. 거대한 몸뚱이는 일부러 만든 공사 현장의 몬스터 트럭같은 두께였다. 건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금빛 무늬가 새겨진, 아름다운 배틀 엑스에 짙고 주황빛인 검기가 스며들며, 불길처럼 타오른다.


늑대의 대가리를 가진 괴물은, 씨익 웃어대면서 다시금 도끼질을 시작했다. 콰득!


검은 용의 마기가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호아킨의 시선에서는 어지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입자들의 한복판이었으나. 그 내부에서 검붉은 MP가 약동하며, 지금 파헤치는 공간을 덮기 위해 애쓰는 게 보인다. 그 살의 단면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이다.


뒤덮게 놔둘 수는 없었다. 회복하게 둘 수도 없었고. 검은 용의 몸뚱아리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데, 그 살에 파묻힐 수는 없잖은가.

아직 시나리오 온라인은 즐길만하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호아킨은 “크오오오오오!” 비명처럼 기합성을 내지르며 부지런히 도끼를 움직였다.


카득.


살이 갈라지고, 파헤쳐졌다.


“용의 수염.”


늑대의 입 속에서 사람의 말이 튀어나왔다.


호아킨은 스킬을 사용한다.


이런 식의 변신 폼을 갖게 되었을 때 써먹기 위해서 미리 익혀두었던 것이다.


인간의 형태로 있을 때 쓰기 가장 좋은 스킬이기도 했다.


그의 몸 근처에, 수염의 자락같은 것이 생겨난다.


푸르스름한 실가닥들이다.


옅어서, 언뜻 보면 사라질 연기처럼도 보이지만.


실체였다.


푸르스름한 실가닥들이 점차 굵어졌고, 호아킨의 근처의 허공을 맴돌았다.


‘발버둥’ 종류의 스킬과 비슷한 것이었다. 발버둥은 이동기에 가까웠고,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었으나. 용의 수염은 근접전에서 체격이 큰 탱커가 더욱 강렬하게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킬이다.


푸르스름한 수염은 곧, 호아킨의 몸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일순간 나타났다가 말이다. 그리고 기폭제가 되어서, 곧 호아킨의 기력이 발출된다.

본래 가지고 있는 MP의 위력보다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시적으로 강력한 힘을 뿜어낼 수 있게 해주며, 이런 종류의 스킬들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국 시나리오 온라인 내에서의 전투력이 결정된다.

괜히 전투력의 3대 요소라고 불리는 게, 스킬, 아이템, 스탯이 아니다.


‘칭호’는 애매하지만, 스탯 쪽에 분류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킬로 보기도 했으나. 그건 칭호로 인해서 얻는 효과가 다양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칭호로 얻어지는 보정치는 스탯이 되기도 하고, 특수한 행동시에만 스탯을 증가시켜준다거나, 액티브 스킬마냥 신묘한 효과를 내보이는 칭호도 있었다. 그런 류는 스킬로 계산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전투력을 계산할 때 말이다.


애초에 ‘칭호’라는 게 얻기 까다롭고, 운이 없거나 지식이 없다면 거의 얻지 못하는 종류이기에 전투력의 주요 요소에 끼워 넣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호아킨이나 릿샤같은 경우에는 많은 칭호를 보유한 편이었다. 최태현, 제냐까지도. 따지자면 라이엔이 가장 적다. ‘칭호’라는 건 곧 비련의 시나리오 속에서 게임 시스템이 원하는 가치를 얼마나 사용자들이 훌륭하게 추구했는가, 에 대한 대답이었다.


‘노력을 많이 한’ 이에게 주어지는 보상이기도 했다. 비단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칭호라는 건 조금 더 특별한 개념이었고, 희소한 것이었다.


스킬, 스탯, 아이템이 일반적인 학생들도 모두 받게 되는 성적표라고 한다면, 칭호는 특별한 우등생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상의 개념에 가깝다.


하나도 받지 못하는 둔재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서바이벌 게임’에서 정의하는 ‘노력’이란 그 폭이 굉장히 넓기도 했으나, 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하드코어했다.

얼마나 게임 오버를 두려워하지 않고 깊은 전투의 내면까지 보고 돌아왔는가. 그대가 생산직이라면, 그 분야에서 또한 얼마나 도전을 해보았는가.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의 일들을 해낸 이들에게 칭호가 주어진다.


제냐던 최태현이던, 늘 이상한 짓거리들을 하며 시나리오 온라인을 플레이해 온 괴짜들이었다.


호아킨과 릿샤 역시 마찬가지이고.


고작 다섯 사람, 공격자는 넷 밖에 없는 파티가 데슈칸의 검은 용을 잡으러 온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보통 사냥 적정 레벨이라는 게 있었고, 그건 인원수와 조합에 따라서 늘 달라지게 마련이었다.


보통은 완숙한 고수급이나, 랭커 급에 다다른 이들이 할만한 짓거리를 미쳤다고 저지르는 중이다.


다행히도, 릿샤가 먹여대는 여러 종의 초상 스킬들이 검은 용에게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얌전한 것을 보면 말이다.


거기에 또 적시타로 근접 전사들이 나타나서 공격을 해대었으니, HP와 MP가 착실히 깎이고 있었고.


가장 좋은 방법은, 검은 용의 MP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잘게 몸을 분쇄하고, HP를 먼저 닳게 만들어 게임 오버 시키는 것이었다.

상대가 여력을 다 쓰지도 못하게끔 상황을 몰고 가고, 한 번에 죽이는 것.


일격에 죽이는 게 불가하다면 지속적인 데미지를 쌓아서 종래에 큰 데미지를 주는 게 차선책일 것이다.


릿샤나 호아킨, 제냐가 부지런히 두드려대면서 계속해서 검은 용의 MP를 깎고, 그 기세를 죽이고 있었다.


최태현 역시, 제냐와 호아킨이 파고 들어간 자리를 피해서 검은 용의 대가리 위주로 끊임없이 화살을 날린다.


바깥에서 쿵, 쿵 하는 폭음이 희미하게 들리고 있었다.


당장 몸 속에서 까내려가는 두 사람 자신의 공격이 더욱 강했기에, 크게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크아!”


호아킨은 입을 벌려 기합을 토해내면서, 도끼를 들었다.


용의 수염이 파고들어간 뒤에, 그의 몸에서 기력이 솟구친다.


황금빛 무늬를 가진 거대한 배틀 엑스. 어린 아이라면 넉넉하게 요람으로 삼아도 될만한 크기였고, 어지간한 성인 남성이 쫙 팔을 벌리고 누우면 비슷할 듯한, 그런 넓이의 양날이었다.


호아킨의 팔뚝을 타고 보랏빛의 기력이 스며들어갔다. 적색의 기운이 호아킨의 것이었고, 푸른 색의 기폭제가 스킬로 인한 것이었다.


이런 류의 기폭 스킬들은 단 시간에 강한 힘을 내주게 만들지만, ‘기력 회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조금 닳게 한다.


적절한 페이스로 사용을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기력 회로’라는 것이 있어서, 마치 초상술사들이 과한 스킬 사용으로 MP고갈을 겪듯 기력술사들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나치게 빠른 혈류와 과도한 혈압이 있을 때 사람이 쓰러지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태까지는 다른 개인용 버프Buff 스킬들을 쓰지 않았기에 최고 공격력의 70%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00%가 되면 아슬아슬하고, 뻐근할 테였고. 120-130%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회복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번 전투에서는 괜찮아도, 곧바로 전투가 이어진다면 대처 능력이 급감하게 마련이다.


비련의 시나리오 속 대개의 스킬들은 반대급부의 부작용들을 갖고 있었다. 결국 아무런 부침 없이 높은 위력을 발휘하려면, 체급을 올리는 수 뿐이었다.


늑대의 팔뚝에서 그런 연고로 솟아 올라간 자색의 기운은, 곧 배틀 엑스의 날 전체를 감싼다.


선명하게 보이고, 길이가 세 치 즈음은 될 정도로 늘어났다. 자색의 기운은 말이다. 전체적으로, 배틀 엑스의 날은 더 거대화된다.

단순히 커지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것도 잘라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호아킨은 다시금 도끼를 내리친다.


촤악,


섬뜩한 소리는 차라리 즐거운 것이었다.


늑대 인간은 입매에 웃음을 지으며, 검은 용을 반절로 잘라가고 있었다.


*

elizeu-dias-2EGNqazbAMk-unsplash.jpg


작가의말

웃고 삽시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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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224. 부부단장, 히베 24.03.18 14 1 24쪽
224 223. 작게 숨을 내뱉었다. 24.03.17 15 1 23쪽
223 222. 누구의 끝, 그 다음 24.03.15 17 1 16쪽
222 221. 누구의 끝 24.03.14 18 1 10쪽
221 220. 두려움이 이빨을 갉아먹다 24.03.14 15 1 19쪽
220 219. 떨어지듯 달리다 24.03.14 13 1 12쪽
219 218. 제냐는 미리 준비했다. 24.03.13 16 1 13쪽
218 217. 다이스Dice, 릿샤, 흑각 24.03.12 16 1 22쪽
217 216. 밤을 꿰뚫어보는 까마귀는 누구일까 24.03.12 23 1 11쪽
216 215. 살수조 모집 24.03.11 17 1 16쪽
215 214. 사냥감 A 24.03.10 16 1 12쪽
214 213. 이미 따라진 와인, 근처로 달려온 골칫덩이 24.03.10 16 1 16쪽
213 212. 조금 시간이…. 24.03.10 14 1 17쪽
212 211. 한 번 불꽃처럼(악의) 24.03.08 15 1 21쪽
211 210. 미치광이는 그네를 거꾸로 탄다. 24.03.07 15 1 21쪽
210 209. 이동移動 24.03.06 14 1 20쪽
209 208. 지루한 옮김, 라이엔의 상념 24.03.05 17 1 21쪽
208 207. 지루한 옮김 24.03.05 16 1 14쪽
207 206. 퍼레이드parade 24.03.04 15 1 19쪽
206 205. 거북이 사냥 24.03.03 18 1 36쪽
205 204. 따스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24.03.01 13 1 12쪽
204 203. 화살막이 24.03.01 14 1 19쪽
203 202. 방패, Shield 24.01.07 19 1 14쪽
202 201. 짜증 24.01.07 13 1 24쪽
201 200. 공습 24.01.06 15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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