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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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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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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6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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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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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97. "…시작인가?"

DUMMY

“끝인가.”

“끝이지.”

“꿈같구만.”


후우우우.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어느 방에 모여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소담스러운 감각으로 채워진 목재 인테리어의 방이었다.


임시로 대여할 수 있는 건물의 한 개 층이다. 제냐는 거점으로 삼기에 좋은 것 같아서, 대여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빌렸다.

산슈카의 수도 사르삿이다. 그 외곽지에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값이 만만찮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뛰고 있는 고위 용병들이기도 했다.

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그들이 최근 벌어들인 돈의 규모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상회의 총수입과 비교해야 할 테였다.

사냥에 필요한 아이템 따위들을 구비하느라 늘 많이 축나기는 하다만. 그런 분량을 제외해도 상당한 양의 재화라는 건 확실하다.


데슈칸 산맥의 검은 용을 잡아내고, 일행은 사르삿에 다시 모였다.


“나름 재미는 있었는데.”


원래는 넷이었으나, 지금은 다섯이 되었다. 라이엔까지 합해서 말이다.


릿샤가 입을 열어 뱉었다. 그녀는 구도상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집무용 테이블의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고풍스러운 가죽으로 마감 처리가 된 의자다. 넓은 한 칸짜리 방에서 가장 착의감이 좋은 자리임은 분명했다.


“흠,”


호아킨은 누워 있었다. 그 거구 그대로 말이다. 방 안에는 카펫이 크게 있어서, 대부분의 바닥을 가리고 있다. 카펫을 청소하는 것또한 일이다. 일이므로, 자주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더럽히지 말자는 쪽으로 가고 있었고.

호아킨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색깔의 카펫 위에 누워 있다. 나무판을 짜서 만든 천장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방의 양 옆 사이드로는 책장 따위가 있었고, 별로 실속 없는 책들이 여럿 꽂혀 있었다. 이 건물 주인장의 취향일 지도 몰랐다.


방의 가운데에는 응접용의 낮은 테이블과 소파들이 있었고, 그 외 여기저기에 집기와 가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 둔 상태였으므로, 깔끔한 안정감은 있었다.

호아킨같은 거구는 제냐의 뒤쪽으로 해서 누워 있었다. 제냐는 릿샤를 옆으로 바라보며, 소파에 앉아 있었고. 방에 들어와 직진하면 응접 테이블과 소파가 있다. 제냐는 그 상태에서 봤을 때 왼편 소파에 앉아 있다. 맞은 편에는 라이엔이 있었고. 최태현은 호아킨과 반대 방향의 빈 공간에, 스툴 몇 개를 모아서 발을 뻗고 누워 있다.


1인용의 등받이 없는 의자 몇 개를 모아 즉석으로 소파를 만들었다. 불편해보였고, 조금만 몸을 굴리면 떨어질 테였다. 미동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누워있다. 눈을 감고 있기도 했고.


그들의 아지트라고 해도 좋았다. 테이블에는 간단한 다과들이 있었다. 릿샤는 초콜렛 과자를 씹어먹는 중이었다. 식재는 보통 사르삿이다 보니, 시내에 나가서 이것저것을 사 먹는다. 여기만큼 무언가를 사기에 좋은 도시도 달리 없으리라.

여러 대도시들이 있었지만, 사르삿은 개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상인은 고객에 맞추어 물건을 만들어 낸다. 거기에 각 분야의 정수라고 할만한 인재들은 모두 사르삿에서 터를 잡고 연구 따위를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인파가 계속 늘고, 상업과 각종 공업이 부흥하는 것도 그럴만한 일이었다.


“맛있네.”

“릿샤, 내게도 좀 던저주련?”

“그런 역겨운 말투는 어디서 배운 거야.”


릿샤는 네모난 과자를 씹어 먹었다. 까득거리며 씹히고, 내부의 비스킷과 견과류가 씹힌다. 조금 길쭉한 박스 모양이었다. 크기는 손가락 한 두 마디 정도 될까.


호아킨은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릿샤에게 손을 내밀었고, 릿샤는 핀잔을 주면서도 하나를 던져 주었다. 투척 계통의 스킬은 그녀도 자주 쓰는 것이었다. 마치 묘기처럼 벌린 손 안에 과자가 들어갔다.


릿샤는 손의 감각을 마지막까지 느꼈다. AI 시스템이 어디까지 그녀의 움직임을 보정하는가 알고 싶다, 는 단순한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이었다. 아주 미세한 조정이다. 그녀가 투척에 대해서 이미 능숙한 상태였으니 그러리라. 거기다 근육에 새겨진 동작 기억이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세에 대한 감을 잡는다면 실제 세계에서도 운동을 할 때 유용하리라.

어디까지나 할 수 있을만한, 일반적인 근력을 잡아놓고 연습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진지하게 운동 따위를 연습할 때 이 시나리오 온라인을 이용하는 부류들 중에서는, 일부러 스텟을 과도하게 키우지 않고 현실과 비슷한 조건에서 운동 연습만 반복하는 이들도 있었다. 과도하게 어려운 일만 하지 않는다면 스텟의 성장은 결국 한계점이 온다.


무식하게, 괴물처럼, 초인처럼 거대한 바윗덩이를 들거나 그것을 지고 버틴다거나.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한다거나. 하지 않으면 결국 스텟은 정체되게 마련이었다.


그마저도 저중량 초고속 고반복의 트레이닝이 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초콜릿 과자를 턱, 받아서 먹은 호아킨은 입가로 자연스레 가져갔다.


입 안에서 조금 굴리고 까득, 깨물어 먹었다. 맛이 좋았다. 사르삿은 확실히 살기 좋은 동네였다. 그대가 플레이어이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전투직 플레이어이거나, 기반이 탄탄한 부류의 유저일 경우에는 말이다.


온갖 물산과 자원이 모여드는 곳이고, 인력이 수급되는 곳이다보니 생산성이 뛰어나고 품질도 좋았다.

먹을 것들을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전부 말이다.


이런 허름해 보이는 인테리어이지만, 여기에도 초상력학식式 등Light이 천장에 달려 있었다. MP를 넣어주지 않으면 안되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문제 없다. 애초에 MP를 아예 쓰지 않는 양반들이 극히 드문 정도이다.


굳이 따진다고 하면 저런 등조차 아티팩트의 일종이 될 테다. 플레이어들이 대화를 할 때 ‘아티팩트’라고 부르는 건 고등한 제작 기술이 들어간 고위 아이템들을 뜻한 거였지만.


“언제 오려나.”

“그러게.”


최태현이 늘어져서 말했다. 릿샤 역시 창가를 바라보면서 답했다. 그녀가 앉은 집무용 의자는 회전식이었다. 발은 고정되어 있지만 의자는 돌아간다.

빙글, 돌려대면서 무료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사르삿의 시내가 보인다. 외곽 지대와 중심 지구 근처의 어딘가이다.


제냐 킴이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 음식점 주인, 그 양반도 계속해서 부지런히 밥을 팔고 있었다. 아이젠이라는 이름의 배나온 백인 사내. 지금도 제냐 일행은 그가 운영하는 ‘아이젠 하우스’에서 자주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먹기 간편하고, 잘 포장을 해서 판다. 그 때 그 때 가위바위보에서 진 인간이나, 혹은 돌아가면서 가게까지 갔다 오는 편이었다.


고사리나 사슴, 딱정벌레를 재료로 한다는 이상한 밥집이었으나 릿샤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객관적으로 뛰어난 요리사가 경영하는 식당이었다.


제냐 일행,


제냐 킴과 최태현, 릿샤 애드윈과 호아킨 팍스, 라이젠 핑은 무료하게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라이젠 핑도 사냥을 지나쳐 온전한 일행이 되었다. 원래 그녀는 위험을 회피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편이었으나. 제냐 일행과 함께 다니면서 그들과 플레이를 같이하는 게 더 즐겁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퀘스트 이벤트였다.


결국 시나리오 퀘스트를 받은 채였고, 그것도 유니크 급이다. 어디까지 이어질 지 몰랐고, 아직도 현재 진행중인 사건이었다.


퀘스트 로그에서 배후에 있는 권력자의 존재를 드러냈으니, 산슈카 왕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 동안 검은 용을 잡은 이후로 몇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더 토벌했는 지 알 수 없다. 라이엔 핑의 레벨 역시 많이 올랐다. 그녀는 가장 고생을 덜 했으나, 제냐 일행이 토벌한 몬스터들의 질과 양이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말이다.

그리고 이 게임은, ‘보상치’라는 가상의 데이터가 있어서 전투자들에게 그것을 각기 분배한다.


고생스럽게 사냥을 하고 나면, 스텟이 올라가거나 스킬을 얻거나, 칭호를 얻거나 하게 된다. 고급의 아이템을 물론 전리품으로 받을 수도 있다. 아이템은 약간 별개의 문제이기는 했다만.


어쨌든 ‘보상치’의 한도 내에서 스킬과 경험치, 스텟 따위가 올라가는 것이 결정된다.


제냐가 이전에 그러했듯 각종 기행을 벌이며 어렵게 사냥을 하면, 스텟과 스킬 등이 쑥쑥 올라간다. 칭호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만큼 레벨업 경험치는 적어진다.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레벨은 낮으나 실제 전투력은 그보다 훨씬 높은 괴물 플레이어가 탄생하는 식이다.


물론 보상치의 분배에도 하한점이나 상한점이 있었고, 아무리 요란하고 특이한 방식으로 잡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레벨은 오른다. 제냐 일행은, 개중에서도 제냐는 분명 가장 레벨 경험치를 적게 받고 있는 플레이어임엔 틀림이 없었다.


라이엔은 비교적 단순한 행위로 전투에 참여했고, 몬스터 사냥 시 얻는 보상치의 대부분을 레벨업 경험치로 받고 소비하게 되었다. 그녀가 스킬을 익히고 싶다거나, 다양한 내실을 꾸리고 싶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며 다양한 스킬들을 썼어야 했을 테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만으로도, 주력으로 올리고 있는 테이밍 관련된 스킬들이나 주요 스텟들은 꾸준히 오르는 중이었다.

딱히 그녀가 부족한 건 아니었고, 동료들이 비정상적일 뿐이었다.


제냐의 레벨은 어느덧 121이 되었다. 호아킨은 128, 릿샤는 132였다. 최태현이 134였고, 라이엔이 157이다.

레벨 100 이상을 뜻하는 고수高手급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연륜이 쌓여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전투력은, 그 이상이라고 한 명 한 명 모두가 자신했다.


가장 어려운 보스 몬스터를 늘 골라 사냥했고, 쉽지 않은 방식으로 잡았다. 애초에 네 다섯 명 정도의 규모로 거대한 체급의 괴물을 잡아 죽이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체급은 곧 HP와 방어력을 의미했다. 동량의 HP라 할 지라도, 거대하다면 그만큼 육체가 두껍고 단단하며 HP가 잘 줄지도 않는다.

작은 놈의 경우에는 전력을 한 점에 집중해서 치명타를 통한 오버 킬도 노려볼 수 있었다. 거대한 놈의 경우에는, 전체 면적에 입혀야 하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단위가 달라진다. 결국 체급에는 체급, 많은 수와 많은 양의 MP가 필요한 법이었다.


MP를 단시간 뻥튀기하듯 늘릴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었지만, 그에도 한계가 있었으니. 각자 나름의 비기 따위를 단련해서 여러모로 애써왔다.


한적한 방 내부이다.


어지간한 레이드 감들을 전부 다 토벌했고, 레벨도 적잖이 올랐다. 로멜리아 가의 아가씨들과는 아주 가끔, 연락이 닿고 있었다. 그들이 사르삿에 있는 걸 알았는지, 우편을 보내왔다. 사르삿 시에 있는 용병 길드나 모험가 길드를 통해서 왔는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길드원이었으니 연락이 닿는 게 쉬웠다.


별다른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NPC에 불과했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이야깃속 주인공들이 잘 지내길 바라지 않는가. 누구나. 그런 식의 정서가 자신의 삶에도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후릅.”


제냐는 차를 마신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아니 반쯤 흐리게 뜨고 릿샤가 바라다보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행들과 친밀도도 제법 올랐다. 사경을 같이 헤매고, 사선을 넘다 보면 싫어도 친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게 게임 내에서의 경험이라는 게 현실과는 다를 지 모르겠지만. 이 게임은 고맙게도, 불편하게도 지나칠 정도로 현실감 넘치는 게임이라서 실제로 만난다고 해도 제법 친밀감이 느껴질 듯했다.


사람들의 본명도 대강 알았고 말이다.


게임 내에서 잠깐 만났을 때의 그것이 아니라 실제 성격이라고 보여지는 면도 여럿 겪었고.


흐릿한 눈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깊은 상념에 잠기기가 쉬웠다.


졸업까지는 학기가 조금 남았다.


군대는 이후 20대 동안 취직을 해서, 일을 하는 중에 조금씩 복무할 예정이었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서 어떤 일을 할 지가 문제이고 걱정이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경제는 늘 불황이라며 뉴스에서 광고하지만, 지금이 21세기 초반 즈음에 있었던 불황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성장하는 나라들이 있었고, 그래도 호황이라고 불리는 시장들이 여기저기에 있었으니.


일을 하고자 한다면 청년을 데려갈 곳은 많이 있으리라.


문제는 일을 하고자 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일’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즐거운 일을 해야지 않겠는가.

무슨 일이 되었든 말이다.


나이를 이렇게 처먹고도, 아직까지 자기가 뭘 좋아하는 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건 서글픈 일이었다.


부모님과의 사이도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서먹한 구석은 있었고.


고도화된 경제 성장과 지나치게 발전한 도시 속의 생활이라. 인간 관계는 어찌 점점 더 삭막해져만 간다는 것인가···


제냐, 서원은 쓸데없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주절거렸다.


한낮의 경치는 잘 보이지 않았고, 창문의 윗부분으로 하늘을 주로 보고 있었다. 릿샤가 빙글 돌려 앉은 의자가 방해되었다. 후릅.


그세 탄 차는 맛이 좋았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건 제법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실제 바깥에서는 차를 타 먹지는 않는데. 귀찮기도 하고, 쓸데없이 돈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게임 내에서는 부쩍 자주 찾는다. 딱히 돈이 들지 않으니까.


게임 밖에서 쉴 때도 가끔 차를 마셔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음.”


라이엔은 앉아서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는 중이었다. 장비 목록을 점검하고 있나보다. 여러가지 인터페이스를 그 외에도 한참동안 정리하고 있었다. 이 게임은 스텟 포인트 따위가 주어져서 캐릭터의 능력을 곧바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성장치’라는 건 존재했다.


레벨 업을 할 때마다 가상 점수라는 게 주어졌고.


라이엔은 대부분의 성장치를 정신력 계열의 스텟들에 쏟고 있었다. 결국 테이머도 초상술사의 일종이다. 몸은 어느 정도 버텨주어야겠지만. 막대한 MP가 있다면 몸을 힘들게 하지 않고도 대부분의 일을 끝낼 수 있다.


라이엔은 지금도 갈색 매를 주로 부리고 있었다.


그녀의 신박한 계획은 나름대로 유효했다. 썬더스가 무리의 우두머리로 있던 갈색 매들을 하나 씩 전부 테이밍하겠다는 의지 말이다.

엘리트 계열의 테이머들은 군단 계열의 테이머들에 비해서 ‘숫자’에 약하다. 여러 마리의 몬스터들을 부리는 일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적은 숫자라고 한다면 압도적으로 높은 충성심과 소통 능력을 발휘했고 말이다.


라이엔은 이 게임이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우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스텟으로 나와 있지 않고, 유저들의 공략본 상에는 나와 있지 않은 미지의 요소들. 그것들이 무수하게 모여 만들어내는 불확정성의 하모니가 곧 비련의 시나리오였다.

인간이 가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보니 진정한 의미의 불확정성은 없을 수도 있겠다만. 그럼에도 자연계의 ‘그것’을 최대한 따라 만든 것이 이 게임이었다.

게임이 인간계 최고의 작품이 되는 것도 우스운 말이다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의 시제품이 되는 물건이니 아직은 어쩔 수 없었다.


자연계의 ‘불확정성’을 모방하는 이 게임은, 유저들에게 늘 모험을 요구한다.

라이엔은 자기 나름의 모험을 하는 사람이었고 말이다.


테이밍된 펫이 있고, 그것의 결속을 풀었을 때.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 유대나, 몬스터의 어떤 성질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라이엔의 시도와 실험은 그런 종류였다. 그리고,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말이다. 아주 천천한 변화에 불과해서, 다른 이들은 어려울 테다. 라이엔처럼 무리의 우두머리 격인 몬스터를 테이밍하고, 그 몬스터의 카리스마로 다른 것들을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실제로 한 번 테이밍 결속이 풀린 녀석들은 거의 남처럼 행세를 한다. 야생의 몬스터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썬더스가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테이밍을 할 수 있었고, 그걸 긴 시간동안 반복하며 각종 스킬들을 써가고 유대 관계를 만들자, 효과가 있었다.


테이밍된 적 있는 몹은 일반적인 몹에 비해서 강력한 스텟을 가지게 된다, 는 건 이미 연구로 밝혀진 사실이었다.

게임 내의 다양한 현상을 밝히고 싶어하는 하릴 없는 인간들의 연구로써 말이다.


거기에 더해 ‘유대 관계’도 남는가, 를 보고 싶어하는 게 라이엔의 실험이었고, 그렇다, 는 결론이 나온다.


라이엔은 썬더스를 몰면서, 주기적으로 여분의 자리에 다른 갈색 매들을 바꿔 앉혀 가며 부렸다. 그녀가 한 번에 컨트롤할 수 있는 테이밍 몹은 7, 8마리가 한계였고, 컨트롤의 민감성과 정확도를 최대한 높인다면 3, 4마리 정도가 딱 좋은 수준이었다.


그녀의 테이밍 스킬들은 제냐 일행들과 함께하는 한, 대개 극한의 상황에서 사용되므로, 그 이상을 부리기는 어려웠다.

고로 썬더스 한 마리, 남은 두 세 마리는 갈색 매의 어느 무리에서 계속해서 바꿔치기하며 다룬다. 썬더스 외에 가장 많이 불려오며 유대감을 쌓고 스텟적 상승을 일으킨 건 ‘브라운’이었다.


그 외의 녀석들도 평균적인 능력이 강화되었고, 아마 그 일대에서는 적수가 없는 포식자나 군림자로서 행세를 할 테다.


라이엔은 중부 대륙 어딘가에 사병 집단을 모아두고 있는 것이나 비슷했다. 먼 거리로 이동을 해야 할 때는 어쩌나 싶긴 하다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테였다. 갈색 매들은 라이엔의 스킬 지원 아래 음속 수준의 비행을 해낼 수 있는 녀석들이었고.

한 마리 한 마리 또 옮겨가다 보면 라이엔의 거점의 이동에 따라서 무리 전체를 옮길 수도 있을 테였다.


라이엔은 티는 별로 내지 않고, 늘 어벙한 척을 하고 다니지만 상당한 솜씨를 지닌 재원이기도 했다.


최태현이나 호아킨도 나름의 무언가를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멍하니 방 안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것 같지만 말이다.

리프레쉬Refresh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특히 전사에게 더욱 필요하고.


“흐아암.”


릿샤가 창가 자리에서 하품을 했다.


제냐는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이 끝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르삿에 머물면서 이벤트가 터지길 기다리는 것이 어언 한 두 달 정도 째다.


그렇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서 무언가 검은 게 나타났다.


‘나타났’다고 인식하기 이전에, 그것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커진다.


제냐는 그제서야 그것을 알아보았다.


뚜렷하게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투사체였다.


‘음.’


제냐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뭐지. 음, 누군가 날려 보낸 건가?


육안으로 구분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것이 이미 상당히 가까워진 다음이었다.


바깥, 사르삿 도시의 거리 위에서 쌔애액, 하는 파공성을 내며 어느 건물 창문으로 돌진하는 게 있었다. 제냐는 그걸 안에서 보고 있었고.


제냐는 그게 날카로운 창의 날이라고 깨달았다.


“도망-!”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뱉었고, 예측 스킬로 그것의 착탄지를 깨달았다. 정확하게, 자신의 목덜미 부근이었다. 제냐는 그대로 찻잔을 내던지듯 앞으로 버리면서, 카펫을 밟고 있던 발을 밀어 제 몸을 휙 날렸다.


순식간의 반응이었고, 찻물이 들어있던 잔은 카펫 위를 나뒹굴었다.

말하자면 릿샤가 앉은 집무용 테이블 쪽의 바닥을 향해서 던진 셈이었고, 라이엔이 있는 맞은편 방향은 아니었다.


“꺅,”


하고 라이엔이 느리게 반응했고, 릿샤는 제냐와 비슷한 시기에 알았는지, 이미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본Bone."


릿샤가 외마디 음성을 내뱉었고, 순식간에 그녀의 앞에 검은 가시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초상스킬로 만들어낸 형상이었고, 보호막 역할을 해주는 것들이다. 챙,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던 허공의 창은 유리문을 깨뜨렸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릿샤의 스킬 보호막을 가볍게 꿰뚫었고,


‘뭐?’


릿샤가 당황하는 사이 제냐가 있던 자리를 향해서 그대로 직진한다.


제냐는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용케 밀어낸 몸이 빠르게 날았고, 그대로 소파 너머 호아킨이 있는 쪽까지 뛰었다.


유리창을 깨뜨리고 들어온 건 길다란 창이었다.


릿샤의 키보다도 훨씬 더 길어보이는 창대를 가진.


릿샤의 왼쪽 상단 허공을 질러서 나아갔고,


제냐가 있던 소파를 꿰뚫고,


조금 더 나아가 뒷쪽 바닥의 카펫을 찍었다.


날아온 기세나, 릿샤의 보호막을 뚫은 위력으로 보자면 그대로 건물 전체를 관통하면서 지표면 아래로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투사체였다.


콰직!


소파의 가죽을 거칠게 찢고, 나무 바닥에 구멍을 내면서, 신기하게도 창은 멈추었다.


아니,


최태현은 좋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엔은 순간 켜고 있던 인벤토리 창이 방해가 되어서,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고 말이다.


호아킨은 누운 방향이 창의 착탄지와는 반대 방향이었기에 보는 게 늦었다.


나무 바닥을 꿰뚫으려던 창은, 마치 허상이나 아지랑이가 사라지듯이, 훅 하고 사라져버렸다.


콰직, 하고 나뭇바닥을 관통화던 와중에 말이다.


나타난 것만큼이나 잽싼 사라짐에, 내부의 인원들은 모두 꿈이라도 꾸었나, 여겼다.


그러나 게임 내에서 꿈을 또 꾸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바깥의 신체는 얕고 약한 수준의 잠을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꿈 속의 꿈이라는 게 없는 건 아니다만. 그런 사례는 없었다. 게임 내에서 환몽을 일부러 보여주는 특수한 부류의 스킬에 걸린 게 아니라면.


우당탕!


제냐는 그대로 날아가, 호아킨이 있던 바닥 근처까지 몸을 처박고 뒹굴었다. 한 번 튕겼기에 호아킨의 몸 위로 지나가 책장에 몸을 박았다.


쿠당.


하면서 책장의 유리문에 금이 조금 갔다. 평범한 유리였다. 달리 말하면 제냐가 투신의 충격을 잘 갈무리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뛰어올랐으니까.


최태현은 눈을 둥그렇게 떴고,


제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 일어난 일을 인지하고 이해하지 못해 눈만 꿈뻑였다.


그들을 노린 것도 아니었고, 명확하게 제냐를 노린 듯 했다.


”허억.“


헛숨 들이키는 소리를, 제냐는 혼자서 냈다.


”···뭐야?“


호아킨이 누워 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누가 투창을 했나본데.“


릿샤가 떠듬거리며 자신이 본 그대로를 토대로 설명했다. 라이엔은 인벤토리 창을 끄고, 놀란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최태현은 오스스, 돋는 소름을 순간 털어냈다.


한없이 조용하다고 했더니, 이 놈의 게임은 안정감을 줄 줄을 모른다.


이 게임의 형식에 ‘서바이벌Survival'이란 단어가 왜 들어가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초보자 무렵에 느꼈던 뒷목이 서늘한 느낌을, 오랜만에 가졌기에 최태현은 떠뜸거리며 말한다.


”···시작인가?“


뭘 알고 뱉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제냐는 알기 위해서 황급히 퀘스트 인터페이스 창을 열었다. 자신의 왼쪽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내려 문질렀다.


불투명한 파란색의 창이 떴고, 퀘스트 로그나 지시 사항이 적히는 자리에 문장이 조금 변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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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시작인가?


의미심장한

쓸데없는 대사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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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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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233. 쟈섹의 고민 24.03.22 13 1 16쪽
233 232. 달밤의 요란 24.03.20 18 1 14쪽
232 231. 비극, 누군가의 입장 24.03.20 11 1 12쪽
231 230. …아직도? 24.03.20 13 1 12쪽
230 229. 좋은 밤 24.03.19 13 1 16쪽
229 228. 괴물의 위용에 대하야 24.03.19 15 1 13쪽
228 227. 구조하러 온, 괴물 24.03.19 17 1 16쪽
227 226. 대립 24.03.19 14 1 14쪽
226 225. 술사조 조장 24.03.19 12 1 11쪽
225 224. 부부단장, 히베 24.03.18 15 1 24쪽
224 223. 작게 숨을 내뱉었다. 24.03.17 16 1 23쪽
223 222. 누구의 끝, 그 다음 24.03.15 17 1 16쪽
222 221. 누구의 끝 24.03.14 18 1 10쪽
221 220. 두려움이 이빨을 갉아먹다 24.03.14 16 1 19쪽
220 219. 떨어지듯 달리다 24.03.14 13 1 12쪽
219 218. 제냐는 미리 준비했다. 24.03.13 16 1 13쪽
218 217. 다이스Dice, 릿샤, 흑각 24.03.12 16 1 22쪽
217 216. 밤을 꿰뚫어보는 까마귀는 누구일까 24.03.12 24 1 11쪽
216 215. 살수조 모집 24.03.11 17 1 16쪽
215 214. 사냥감 A 24.03.10 18 1 12쪽
214 213. 이미 따라진 와인, 근처로 달려온 골칫덩이 24.03.10 16 1 16쪽
213 212. 조금 시간이…. 24.03.10 15 1 17쪽
212 211. 한 번 불꽃처럼(악의) 24.03.08 15 1 21쪽
211 210. 미치광이는 그네를 거꾸로 탄다. 24.03.07 16 1 21쪽
210 209. 이동移動 24.03.06 14 1 20쪽
209 208. 지루한 옮김, 라이엔의 상념 24.03.05 19 1 21쪽
208 207. 지루한 옮김 24.03.05 17 1 14쪽
207 206. 퍼레이드parade 24.03.04 16 1 19쪽
206 205. 거북이 사냥 24.03.03 19 1 36쪽
205 204. 따스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24.03.01 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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