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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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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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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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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4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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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06. 퍼레이드parade

DUMMY

*


백룡각궁에 내재되어 있는 MP를 일깨워서 쏘는 순간부터 ‘백룡시’를 쓰고 있는 셈이었다. 백룡각궁이라는 아이템, 아티팩트에 내재되어 있는 액티브 스킬이었으니.


상아빛의, 새하얀 몸체에서 정련된 화살이 날았다. 희뿌연, 아주 얇은 MP의 껍데기를 지닌 채 미사일missile이 날았다. 화살이었지만, 사실 그리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자체적인 추진력 역시 갖고 있었다. 길게 꼬리를 남기면서 날아가는 유성처럼 화살이 난다.


화살은 허공에 떠오른 순간부터 계속해서 가속을 반복하고,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다면 꿰뚫고 더욱 나아간다. 사거리를 재지는 않았지만, 아마 적어도 km 단위 너머까지 나아갈 수 있으리라. 그렇게 날려 보냈을 때, 정확도나 위력 면에서 최선이 아니기에 초장거리를 고집하지 않을 뿐이었다.


최태현은 한 방의 미사일을 쏘아보낸 뒤에 곧바로, 전통에서 화살을 두 발 집어들어 꺼낸다. 손아귀에 얽히듯 걸리는 화살을 잡아채어 시위에 걸고, 능숙하게 조준을 한다. 이지러지는 궤적이 최태현의 시야에 나타났다. 붉은 색의 점선.


그 점선 끝에 다시금 거대 거북의 형상이 잡힌다. 아직 날아가고 있는 이전의 화살 또한 있었고.


궁술-자철시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자철이라는 소재의 특성은, MP를 부여해서 더욱 키울 수 있는 종류이다. 자력磁力은, 일시적으로 어마무시한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두 발의 화살을 활대의 한계까지, 시위의 끝점까지 당겨서 힘을 부여한 다음에,

곧바로 놓는다.


두 발의 화살이 날았다. 궤적은 각각이었다. 처음의 수십 여 미터 정도는. 쏘아내 날아가는 ‘앞으로의’ 힘이 지나치게 강한 탓이다. 그러나 최태현이 미리 넣어두었던 MP가 발휘되며 자철시의 자력이 급격하게 강해진다. 두 발의 화살은, 제각기 길을 가다가 허공에서 서로에게 이끌렸다. 마치 곡선을 그리듯, 유려하게 엇갈리면서 날아간다.


앞에 쏘아낸 화살보다 뒤에 쏘아낸 것이 더 빨랐다. 위력과 속도는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MP를 곁들인 궁술에 있어서는 말이다. 이쯤 되면 궁술이었고, 기력술이지만. 어느 정도는 초상 스킬과도 비슷해진다. 화살과 활대의 위력과 효과보다는. 거기에 투입하는 MP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쏘아 보내는 투사체의 궤적과 속도까지도 궁사는 정밀하게 정할 수 있었다. 그것이 착탄지에 닿은 이후에 터져나갈 폭발의 범위까지도.


곧바로 쏘아낸 두 발의 화살은 위력보단 속도에 치중한 것이었고,


곧 후발주자인 두 발은 앞의 화살을 쫓아갔다.


자력이 웅웅거리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고,


그건 이미 날아가고 있던 한 발의 화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새끼줄을 꼬듯이, 허공에 매듭을 짓듯이 계속해서 엇갈리고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 졌다가를 반복하는 두 발의 화살이다.


춤을 추는 것 같던 두 발이 곧 먼저 쏘아진 화살을 붙잡았고, 그건 자력의 영향도 있었다. 서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세 발은 한 덩어리가 되었고, 각자 날아가고 있던 힘이 뭉쳐져 더욱 강력하게 허공을 꿰뚫었다.


퉁, 퉁, 퉁, 퉁.


현악기를 퉁기는 소리는 아니었다. 최태현이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내는 소리였지.


백룡시가 계속해서 날았다. 백룡각궁에 내재되어 있는 MP는 무한정은 아니었으나, 긴 전투간 계속해서 백룡시를 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결국은 최태현의 MP가 백룡각궁 내부에 있는 MP를 일깨우고, 혼합되어 날아가는 것이었으니까.


아티팩트 내부에 있는 MP는 씨간장 같은 역할이고, 최태현의 MP가 농도를 묽게 만들고 양을 맞추는 물 따위의 역할이었다.


최태현이 먼저 진이 다 빠지지 않는 이상 공격은 계속 가능하다.


현악기를 퉁기듯 날려보낸 화살들이, 먼저 날아가는 화살의 궤적을 따라 붙는다. 서로 이끌리듯 끌어 당기는 자력이 하나의 거대한 궤적을 형성했다.


자기장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물처럼. 화살 하나의 궤적보다는 훨씬 뭉툭하고 큰, 거대한 동선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존재했다. 자력을 보는 눈이 있다면 선명하게 볼 수 있었으리라.


그 궤적을 따라서,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들마냥, 연이어 쏘아진 화살들이 달렸다. 날았다. 이미 공터가 되어버렸고, 어둠이 일순 물러나 햇빛이 밝게 내리쬐는 어둠숲의 허공이다. 여러 발의 미사일이 어둠숲의 대기 중을 가른다.


첫 세 발이 거대 거북이의 배때기 중간에 닿았을 때, 계속해서 최태현은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고.


여러 발은 모두 한 궤적을 따라서, 점점 속력이 붙으면서 더욱 큰 뭉치가 되었다.


거대 거북의 입장에서는,


초탄,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네 개의 강력한 화살 뭉치를 맞게 되는 셈이었다. 최태현이 그 순식간에 쏘아낸 화살은 이십 여 발 정도였고.


콰앙-!


화살이 무언가에 맞았을 때 나는 소리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굉음이 어둠숲을 뒤흔들었다.


MP는 폭력적으로 굴었고, 거대 거북의 살을 꿰뚫으면서 그 내부로 폭발력을 투사한다.


화살들은 긴 궤적을, 곡선을 그리며 날아와 닿았다. 거대 거북에게 닿은 순간부터는 집요하게 직선형의 움직임을 고집했고. 그 내부, 심층으로 파고들면서 화살촉이 살을 찢어발긴다.


단순히 작은 화살 하나가 아니었고, 실려 있는 MP들이 터져나오고 있었으므로. 화살의 크기나 화살촉의 면적보다 훨씬 넓은 범위가 찢겨나가고 있다. 압축되어 있던 MP는 거대한 크기로 부풀었고. 사람이 들기 어려울 정도의 대검이 날아와 박힌 것처럼. 거대 거북의 외피와, 내부의 살들이 찢긴다.


어느 정도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싶은 시점에서는 한기가 살들을 얼렸고. 마지막 순간에는 잔여 MP들이 마구잡이로 폭발을 일으키면서 내부를 뒤흔들었다.


쿵, 쿠우우웅-!


긴 폭음이 들렸다.


연달아 폭발이 일어나면서, 여러 개의 폭발음이 하나의 것처럼 겹쳐 들리는 탓이었다.


제냐는, 언제나 그렇듯.


최태현의 아래에서 초상술을 준비하고 있다.


*


한 손에 하나씩. 뇌정을 모았고, 다른 하나는 불꽃을 토한다.


손바닥에서 불꽃을 토해내는 생물체 따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이 순간 제냐는 그런 존재이다.


게임 속이라 가능한 일이다만.


오른손은 뇌전을 뿌린다. 제냐의 앞, 상공 2, 3여 미터 지점 정도에 구형의 뇌정이 점차 커져간다. 번개는 본디 뭉칠 수 없는 한 순간의 현상이지만, MP로 이루어진 그건 미술 작품처럼 하나의 형태를 옹골차게 만들었다.


왼손은 화염을 계속해서 토해내는데. 마치 소방차의 호스처럼 흘러나가는 화량이 어마무시했다.

염열은 뇌정의 구체 왼쪽에 자리를 잡고 제 몸집을 점차 부풀려나간다.


허공에 있는 작은 불의 구. 그건 눈으로 보기에 기체의 근처에 있다거나, 플라즈마 현상이라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도리어 용암처럼 묵직하고 질퍽한 무언가이다. 액체보다도 고체에 가까운,

돌이나 철을 끓여 녹인, 펄펄 끓어대는 화정이다.


화염의 정수는 점점 제 덩치를 불린다.


뇌전이 조금 더 빠르게 커졌다. 곧, 번개로 이루어진 구체가 옆으로 옮아간다. 제 자리라며 자기 주장을 하던 놈이 더욱 크기를 키우다가, 화염의 기운을 감싸안았다. 곧 더 묵직한 화염의 구체가 구심점을 담당했고, 외피가 뇌전의 기운이 되었다. 이런 과자를, 김서원은 본 적이 있다.


입에 넣으면 겉면의 초콜렛이 녹아버리고 안에 든 아몬드가 나오는 류의 과자이다. 달고 또 칼로리도 높으니까. 배고픈 시절에 종종 먹던 것이었다. 상상력이라는 건 여기저기로 전이되고, 평소에 보던 것들이 다 얽혀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제냐는 그렇게 생각했다.


초상 스킬의 정해진 형체는 달리 없었다. 스킬의 구성식이 존재하지만, 이미 기본 스킬 두 종 이상을 합쳐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의 형태는 작은 퍼즐 조각이 되는 셈이고, 그것을 움직여서 최종값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제냐 킴은 분명 지금 마스터 마기아의 수준이 맞았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이.


복합기, 중첩기. 여러 스킬들을 합쳐서 쓰는 콤비네이션의 경우에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해진다. 원래 초상술사가 기력술사에 비해서, 공격의 정해진 규격이 없기에 상상력이 중요하기는 했지만. 보다.


마스터 마기아의 수준을 넘어 복합기를 쓰는 때부터 한 차례 더욱 형식이 무너지기에. 어떤 형태의 공격이 가장 위력적일까를 상상해내는 힘은, 게임 내에서 실제적으로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


릿샤는 그런 의미에서 초상술사에 잘 어울리는 인간이었다. 제냐 역시, 그녀를 뒤따를 정도는 되었고.


초콜릿 아몬드 과자처럼.

묵직한 염열의 공과 그 겉을 감싸는 뇌정의 기운은 곧, 제냐의 앞에서 더욱 커져갔다. 커져갈수록 앞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전자에게 닿지 않도록.


어느새 거대해진 구체의 구심점은 제냐로부터 십 여 미터 정도는 떨어진 자리가 되었다. 방대한 에너지의 집약.


터져나간다면 일대를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이다. 제냐는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고, 만 단위의 MP이다.

마스터 마기아가 되면서 얻는 여러가지 스킬들이 있었다. 칭호에 붙어 있는 패시브 스킬이나 효과도 있었고. 그 전에 비해서, 의지력이 한 단계 크게 상승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숫자로 다 정의되지 않는 그런 변곡점들이 각 구간마다 있기에. 이 게임 내에서 레벨이라는 게 정확한 지표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정확한 의미를 가지는 건, '무엇을 했느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겪어낸 실제적인 경험치가 게임 캐릭터를 정의하는 지표였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잡아 없앤 보스 몬스터들만 하더라도 산처럼 쌓일 정도였고.


쾅-!


하는,


멀리서의 폭음이 길게 이어졌다.


최태현이 위에서 쏘아낸 자철시의 연발 공격이 계속해서 폭발을 일으켰고, 폭음 위에 폭음이 계속해서 겹쳤다.


회전력을 거의 잃었던 거대 거북은 무방비하게 배때기에 공격을 허용했고. 실시간으로 HP가 훅, 훅 깎여가고 있었다.


거대한 몸은 그것만으로 많은 생명력을 의미했다. 같은 양의 에너지로 공격을 하더라도, 부서지는 몸의 체적률이 달랐으니까. 이 게임은 '치명타'나 '급소'가 세세하게 구현되어 있는 곳이었고. 거대한 몸뚱이, 거대한 내장을 부수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 된다.


그러나 최태현, 제냐, 라이엔의 힘은 충분한 파괴력이었다.


제냐의 것보다는 덜하지만 백룡시 역시 상당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스탯으로 인해 강화 보정을 받은 신체가 아니었다면 떨림도 상당한 충격이 되었으리라. 멀리서 전해지는 파괴적인 폭음과 진동들이 만드는 떨림 말이다.


파즈즈즈즈,


하고 공기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허공에 붙잡힌 번개는 계속해서 대기를 태우고, 팽창시킨다. 사실 에너지로 쓰이고, 착탄지에 파괴력을 투사해야 할 MP인데. 제냐의 컨트롤이 미숙하다는 뜻이었다.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제냐에게 물어본다면 ‘초코몬드’ 과자의 이름을 댈 수도 있는 스킬이다. 그 스킬에 내재되어 있는 모든 ‘에너지’는 착탄지의 충격을 위해서 쓰여야 할 테였다.

지금 형성 과정에서 주변의 대기를 불태우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말이다.


제냐는 스킬체體의 밀도를 점점 더 높여가면서 점진적으로 부하를 건다. 압력이 늘어나고, 스킬에 들어 있는 MP들이 요동치면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최초에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던 수준에서, 슬슬 지금의 의지력으로 다룰 수 있는 정도 이상을 향해간다.


그 즈음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스킬을 쏘아보내기에 말이다.


지름이 십 여 미터이다.


거대한 저택과도 같은 형상을 갖는 거북이와도 비교해도, 그럴싸한 크기였다.


푸른빛으로 작열하듯 방전하는 외피는 계속해서 밝아졌고, 이제는 백색광에 가까운 빛깔을 내고 있었다.


라이엔은 제냐로부터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다. 초상술사, 본격적인 워메이지가 스킬을 쓸 때 그 근처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군이어도, 멀리 떨어지는 게 신상에 이롭다.

온전한 마기아Magia(초상술사의 다른 이름, 콘란드에서 간혹 부르는 이름)라고 한다면 자신의 MP를 아군에게 흘리지 않겠지만. 언제나 극한의 상황이 되는 전장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 지 모르는 법이었다.


폭탄 근처에는, 괜히 가지 않는 게 수명을 늘리는 길이다.


라이엔은 썬더스를 탄 채로, 옆으로 걷다가, 그 MP가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가자 아예 한 번 날아올랐다.

푸드덕거리며 몇 번 홰를 치자, 라이엔을 태운 거대한 갈색매는 십 수 미터 정도를 단숨에 점프한다.

최태현처럼, 거대한 침엽수의 중턱 즈음에 걸터 앉는다. 갈색매가 말이다. 그것은 사뿐하게 움직였고, 보이는 것처럼 무겁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라이엔은 뛰어난 테이머였고, 여러 종의 스킬들을 동시에 운용한다. 개중에는, 언제나 썬더스에게 다량의 MP를 부여하면서, 마치 호버링을 하는 드론처럼 움직이게끔 할 수 있다.


썬더스에게 ‘부유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셈이다. ‘호버링Hovering'이라는 액티브 스킬이었고, 비행하는 탈 것을 펫으로 부리는 테이머들이 얻게 되는 고급 스킬이었다. 거기에 나아가서 ‘무중력無重力’이라는 유니크 스킬 또한 얻은 상태다. 라이엔은. 이미 썬더스에게 걸어두었고, 버프 스킬로서.


고수급 이상, 랭커 근처에 있는 엘리트 테이머들은 가끔 자신의 펫을, 마치 UFO가 움직이듯 부리곤 했다. 라이엔으로서도 어느 랭커의 플레이 영상에서밖에 본 적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녀 자신도 그렇게 썬더스를 다룰 수 있게끔 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유려하게 허공에서 움직여대는, 관성을 무시한 UFO적 움직임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뻑뻑한 느낌이 있어도, 절대 ‘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치 자유로이 날게 할 수 있었다.


가지 하나에 적당히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썬더스의 전신에는 라이엔의 MP가 부여되어 흐르고 있었고, 그것이 썬더스의 무게를 가볍게 경감시킨다. 가지는 그저 날아가지 않도록, 적당히 멈춰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 지지대에 불과하다.


라이엔은 높은 자리에서, 제냐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파추!


라고, 라이엔은 그 소리를 글자로 생각했다. 그녀는 엉뚱한 면이 있었고. 다양한 소리가 들릴 때 그걸 의성어로 적으면 어떻게 될까를, 가끔 고민하곤 한다. 라이엔은 저 소리를 그렇게 적으리라.


제냐가 만들어낸 ‘초코몬드’, 아니···. ‘뇌화구球’는 주변으로 번갯줄기를 뻗치며 그렇게 울었다.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면, 괜히 얻어 맞을 뻔했다.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겠으나. 괜히 뒤통수를 한 대 퍽, 맞을 필요는 없잖은가.


라이엔은 관찰자의 입장이다. 일단은. 저 두 사람의 화력火力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그 사이에 낄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소강 상태라고 판단이 되면 그 때 움직이는 게 나을 것이다.


그녀는 썬더스의 목 근처의 깃을 어루만지는 걸 좋아한다. 부드러운 느낌을 손으로 감각하면서, 거대 거북이 어떻게 죽어나는지를 구경했다.


아래에 있는 제냐는, 공들여 만들어내던 뇌화구를 드디어 풀어냈다. 여기저기로 튀어나가려고 애를 쓰던 그 공이, 제냐의 의지에 따라 앞으로 날아간다. 붙들려서 으르렁거리던 짐승처럼 보였었다.

짐승의 목줄이 놓이자, 그것은 사냥감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허공을 달렸고,


그 사이에 있는 대기가 쩌렁쩌렁하게, 불타 터지면서 울었다.


라이엔은 귀를 슬며시 막았다.


자연스럽게 썬더스에게도 MP를 돌려서, 귀를 보호해주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라이엔도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수준을 높였기에. 타고 있는 썬더스를 마치 제 몸처럼 다루는 것이 가능했다. MP를 다루는 의지력이 그만큼 그녀도 늘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지간한 대포를 쏜 것보다도 더 요란스럽게, 뇌화구가 먼 거리를 날았다. 거대 거북의 덩치를 생각하면 그리 멀어 보이지도 않는 거리였지만.


다리가 있는 무언가가 달리는 것보다는 빠르게. 그러나 벼락이라고 생각하면 지독하게 느리게. 총알 정도의 속력으로 뇌화구가 날아가, 거대 거북의 뒤집힌 뱃가죽에 작렬했다.


-!


여태까지 울려대던, 최태현의 화살이 만든 폭음이 집어 삼켜졌다.


더 작은 폭발과 폭음을 잡아 먹은 제냐의 폭탄이, 요란한 색채를 내보이며 거북이의 배 위에서 분수처럼 터졌다.


그야말로, 광장에 흔히 만들어져 물을 뿜는 분수처럼 보인다. 요란스럽게 위로 솟구친 화염과 뇌전의 기운들.

그건 플라즈마니, 광선이니 하는 것과는 다른 형질을 가졌다. MP로 빚어낸, 특수한 무엇이었기에. 보통의 화염이나 뇌전과는 달랐고. 마치 액체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지듯이. 중력에 영향을 받는 아주 녹진하고 질퍽한 것처럼 굴었고.


그 밀도는 곧 에너지와 폭발력이 되었다.


거대 거북의 흰 눈이 다시금 돌아왔다. 지독한 고통에 촛점이 돌아왔다가, 자신의 뱃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에너지의 흐름에 다시금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은 건 아주 한 순간의 일이었고, 그대로 거대한 괴물 거북이는 목숨마저 잃었다. 게임 속의 일이었으므로, 데이터 하나가 지워진 것에 불과했다.


거북이의 속내에는 보통 이런저런 내장류나 혈액이 있었겠지만. 이 게임은 혐오스러운 장면을 추구하지는 않기에. 플레이어들의 눈에는, 그저 뇌화구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빛의 입자들이 터져나오는 모습으로 보일 따름이다.


제냐가 쏘아낸 뇌화구의 향연과, 거북이가 몸에서 쏟아내는 빛의 입자는 하나처럼 굴었고, 요란스런 퍼레이드가 끝난 뒤에, 거북이는 그 속이 텅 비어버린 껍데기가 되어 있었다.


“······.”


제냐가 가장 먼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제냐의 요청에 따라 별 생각없이 온 탓이다. 퀘스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것도 제냐였고.


“······아.”


입을 벌리고 눈만 꿈뻑대다가, 멍청하게 소리를 냈다. 김서원은.


아이젠 하우드에게 가져다 줄 고기의 과반수 정도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감시 계열 스킬을 날려보내 현황을 보지 않더라도, 아래에서 보더라도 뻔히 보이는 꼴이었다.


“······.”


제냐는 멋쩍은 얼굴로, 왼쪽 위나, 뒤쪽 위에 있는 동료들을 번갈아 처다보았다.


할 말이 마땅찮았다.


길고 길었던 폭음과 빛, 폭발의 향연이 끝나고 나자.


제냐가 말한다.


초인들이었기에, 요란스런 폭발의 뒤에도 청력이나 시력이 멀쩡했다.


그 강화된 귓전에 제냐의 말소리가 들렸고.


“······그······ 죄송한데 저거 고기 얻는 게 퀘스트 내용이라 아마 한 마리 더 잡아야 할 것 같······.”

“야!”


최태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허허허허허. 제냐는 민망한 듯 웃기만 했고. 라이엔도 눈을 좁쌀만하게 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제냐는 한쪽 볼이 몹시 따가운 기분이다.


*

axel-antas-bergkvist-5-tIThSiuD0-unsplash.jpg


작가의말

감사의 정권 지르기.... 1년 째!


는 아니고.


계속되는 글쓰기 연재... 약 1년 반째...! 정도인듯 합니다. 요것만 쓴 건 아니고 다른 것과 번갈아 쓰다보니 좀 멈춰지긴 하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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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227. 구조하러 온, 괴물 24.03.19 17 1 16쪽
227 226. 대립 24.03.19 1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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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224. 부부단장, 히베 24.03.18 14 1 24쪽
224 223. 작게 숨을 내뱉었다. 24.03.17 15 1 23쪽
223 222. 누구의 끝, 그 다음 24.03.15 17 1 16쪽
222 221. 누구의 끝 24.03.14 18 1 10쪽
221 220. 두려움이 이빨을 갉아먹다 24.03.14 15 1 19쪽
220 219. 떨어지듯 달리다 24.03.14 13 1 12쪽
219 218. 제냐는 미리 준비했다. 24.03.13 16 1 13쪽
218 217. 다이스Dice, 릿샤, 흑각 24.03.12 16 1 22쪽
217 216. 밤을 꿰뚫어보는 까마귀는 누구일까 24.03.12 23 1 11쪽
216 215. 살수조 모집 24.03.11 17 1 16쪽
215 214. 사냥감 A 24.03.10 16 1 12쪽
214 213. 이미 따라진 와인, 근처로 달려온 골칫덩이 24.03.10 16 1 16쪽
213 212. 조금 시간이…. 24.03.10 14 1 17쪽
212 211. 한 번 불꽃처럼(악의) 24.03.08 15 1 21쪽
211 210. 미치광이는 그네를 거꾸로 탄다. 24.03.07 15 1 21쪽
210 209. 이동移動 24.03.06 14 1 20쪽
209 208. 지루한 옮김, 라이엔의 상념 24.03.05 17 1 21쪽
208 207. 지루한 옮김 24.03.05 16 1 14쪽
» 206. 퍼레이드parade 24.03.04 16 1 19쪽
206 205. 거북이 사냥 24.03.03 19 1 36쪽
205 204. 따스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24.03.01 13 1 12쪽
204 203. 화살막이 24.03.01 14 1 19쪽
203 202. 방패, Shield 24.01.07 20 1 14쪽
202 201. 짜증 24.01.07 14 1 24쪽
201 200. 공습 24.01.06 15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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