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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연재소설

마왕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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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5.10 15:38
최근연재일 :
2023.07.19 16:35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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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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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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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자격과 책임4

DUMMY

아르카디아 제국으로 용사 소환을 당하기 전, 한국교대 1학년 때.

과외선생님 아르바이트로 엄마 친구의 친구 딸 중학생 여자애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처음 만나던 날. 자꾸 선생님들이 개인 사유로 과외를 그만둬서 못 살겠다고, 선생님이 바뀌면 아이가 혼란스러워한다며, 올 한해는 나만 믿고 맡기겠다던 학생의 어머니는 내게 반드시 약속을 지키라고 말했다.


‘중간에 그만두시기 없기에요! 아시겠죠?’


약속을 받아 내고서야 과외 아르바이트를 맡기겠다길래, 나도 올 한해는 이 아이에게 올인하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쳐 보는 거라 정말 열정적으로 가르쳤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따라오는 듯하던 아이가 점점 뒤처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숙제를 안 해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부담돼서 못 하겠다며 과외를 그만두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희 딸아이가 숙제가 너무 많아 부담돼서 더는 과외 못하겠다고 하네요. 이번 달 치 수업료 입금해 드렸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수업 안 해 주셔도 됩니다.>


과외를 시작하기 전에는 중간에 선생님이 바뀌면 애들이 혼란스럽네, 선생님들이 책임감이 없네, 자기는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제일 싫니 어쩌니 저쩌네 하더니만 정작 학생 쪽에서 그만뒀다.

화나는 건 미리 말을 안 하고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문자로 ‘띡’ 연락했다는 거다.

딱 일주일 전에 다른 학생을 가르쳐 보지 않겠냐고, 과외 아르바이트가 하나 더 들어왔었는데···

덕분에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전까지 생활비가 쪼들려서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

당시 가르치던 중학생의 엄마처럼 내가 선생님들의 밥줄을 끊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그란츠 공작에게 요구해 원하는 대로 받고, 적성에 안 맞다고 더 이상 안 하겠다고 선생님들의 피해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단순한 이야기다.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거고, 지키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다.


약속이 깨질 때면 그전까지 쏟아부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약속 시각에 늦으면 먼저 온 사람은 그만큼의 시간을 버리게 만들고.

함께 하는 일이 잘 안 될거 같다고 그만두게 되면, 되게 하려고 한 모든 이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정말 웃긴 건. 대다수의 경우 먼저 그만두는 약속을 어긴 사람으로 인해서 약속으로 얻을 기대 이익과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데 반해, 피해는 약속을 어긴 사람일수록 적게 받는다는 거다.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약속을 먼저 어길수록 손해가 적다니.

그래서 누군가는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아주 만약에. 나로 인해 라필리 선생님의 딸 치료가 중단돼서 죽었다고 하면, 내가 그 슬픔과 원망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로 인해 내가 느낄 죄책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선뜻 답할 수 없는 질문에 흔들리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도 ‘더 이상 용사는 못 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나 스스로도 갈팡질팡하는데 올젠 선생님이 말한다.


“예서야. 네 입장은 십분 이해하고 있고, 정말 존중하고 싶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아. 내 이야기도 해보자면...”


*

#팔로아 백작 가문.


“백작님! 저는 반드시 이 책임을 물어야겠습니다. 어쩌실 겁니까?!”


“어허... 거참! 흥분 좀 가라앉히고 대화를 하세. 대화를.”


올젠 팔로아가 집 한켠에 위치한 훈련장에서 마법을 연습하고 있는데, 집 전체를 울리는 요란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뒤이어 조용히 대화하자며 타이르는 남성의 목소리.

뒷 목소리의 주인공은 알고 있다.

팔로아 백작. 올젠의 아버지 목소리다.


처음 듣는 목소리의 중년남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경위는 몰라도, 원인은 예상 된다.

올젠은 모른 척하며 마법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을 내며 한 남성이 다가온다.

어릴 적부터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올젠에게 공부를 개인 교습 해주던 행정관이다.


“올젠 도련님.”


“... 이번에는 형이 무슨 사고를 친거야?”


“마을 대장장이의 딸에게 손을 댄 모양입니다. 다 큰 처녀를 손댔으니 책임지라고. 결혼을 약속하지 않으면 동네방네 소문내겠다고 처들어왔다고 합니다.”


“... 이 개새끼를 진짜! 아오! 콱 죽여버려!”


올젠이 제 형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하고, 표적에 화염 마법을 연사한다.

표적들이 펑펑펑 터져나간다.



#팔로아 백작 집무실.


팔로아 백작의 방에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고 있는 팔로아 백작이 입을 연다.


“많은 고민이 했다... 네 형이 워낙 망나니라 우리 가문의 광산을 운영할 사람이 못된다는 걸 이 아비도 안다.”


“네 아버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형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 주는 건 절대 안 됩니다.”


“하지만... 올젠 너는 황실마법군단에 입대를 앞두고 있지 않으냐?”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올젠 팔로아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에게 대든다.


“아버지! 형한테 가문을 물려주는 건 진짜 안 된다니까요!! 형을 후계자로 지명하면 우리 가문은 완전히 망할 거에요!”


“아니다! 네가 있지 않으냐! 네가 황실마법군단에서 승승장구해서 우리 팔로아 가문을 이끌어 주면 된다! 네 형도 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면 광산 운영으로 이득을 낼 수 있을거야.”


“아뇨! 아버지!! 제발요! 형만큼은 아니라고요! 형이 언제 공부를 똑바로 한적이나 있어요? 뇌물까지 줘가며 입학시킨 아카데미서 여자에 미쳐서 퇴학까지 당한 놈이에요!

그런 놈한테 후계자 자리를 주신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사람이 난 자리가 있다는 말이 있지 않냐. 나는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해. 네 형을 공식적인 가문의 후계자임을 공표하고 나면, 책임감이 생길 거다.”


“아버지! 가문의 망나니에게 도대체 뭘 기대하시는 거예요! 안된다고요! 저를 후계자로 만드는 게 싫으시면 차라리 사촌 동생들에게 물려주세요. 형 같은 망나니는 가문 말아먹기 십상이에요!”

“너야 아카데미도 졸업해서, 황실 마법사도 됐지.

이 아비도 네가 얼마나 노력해서 그만한 위치에 올랐는지 안다.

네 형을 봐. 저런 망나니에게 후계자 자리조차 없으면 어디 사람 구실 하면서 살겠냐? 그래서라도 네 형이 팔로아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야 해.

후계자가 되거든, 자신이 가문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날이 올 거다. 그때까지 내가 뒤에서 받쳐주고, 네가 훗날 앞에서 당겨주면 된다. 이 아버지가 부탁하마. 올젠. 네가 양보하자.”


“아버지. 진짜 후회하실 거예요. 형은 아니에요. 제발! 제발 제 말씀 들으세요! 정신 안 차리면 후계자 자리 동생한테 주겠다고 선언하실 때 후계자를 야속하시면 어떻게 해요!”


“... 그만! 그만해라. 나는 총명하던 네 형의 어린 시절을 믿는다. 후계자는 네 형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저는 앞으로 가문의 일에 왈가불가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올젠! 그게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입니다. 가문과의 연을 끊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올젠이 냉정하게 등을 돌려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나간다.

아버지를 설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올젠은 가문과의 연을 끊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총기를 잃었구나.’



#황실마법군단.


시간은 지나, 올젠은 황실마법군단 화염마법단 단장이 된다.

간간히 아버지께 연통이 왔지만, 올젠은 그 이후로 가문에 가지 않았다.


팔로아 백작가의 작위를 형이 물려받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올젠! 너희 망나니 형이 백작 작위를 물려받았더군. 하하하. 계승식은 다녀왔나? 소식 들었어?”


“알고 있으니까. 닥쳐 콜트!”


“하하하. 너무 열 내지 말라고! 어차피 제국은 적자 우선 아닌가~!”


‘결국, 그 망나니가 가주가 되었나. 가문을 다 말아 먹겠구나... 됐다. 어차피 나랑은 연이 없던 작위다. 태어난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지 않았나.’


청소년 때는 노력하면 망나니 형 대신 자신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난날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선언 이후로는 완전히 포기했다.

이제 와서 흔들릴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황실마법군단으로 시집가서 평범하게 잘 살던 여동생이 면회를 온다.


“오빠... 큰 오빠가 사고를 쳤어.”


“형이? 또? 하아... 이번에도 여자야? 설마 유부녀?”


“아니... 여자 문제가 아니야. 큰 오빠가 아빠 엄마를 가뒀어.”


“응? 무슨 소리야? 아버지를 왜 가둬? 아버지가 형에게 작위를 물려주시고 은퇴하신 게 아니야?”


“공식적으로는 그런데... 내가 오랜만에 아빠, 엄마를 뵈러 갔는데 큰 오빠가 두 분 다 편찮아서 면회가 안된다며 다음에 오라고 하더라고.

큰 오빠의 행동이 워낙 수상해서 옛날에 우리 가문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수소문해보니, 사랑채에 아빠, 엄마를 가둬 놓고 있데...

후계자가 된 지 한참 됐는데도 작위를 안 주니까, 아빠 엄마가 편찮으시다며 강제로 계승했다는 거 같아. 작은 오빠가 큰 오빠를 말려줘!”


올젠이 앉아 있던 의자가 우지끈 부서진다.


“... 나는 할 말 없다. 아버지가 선택하신 결정이야.”


“작은 오빠!”



#그란츠 공작 집무실


올젠은 여동생이 다녀간 지 며칠이나 됐음에도 가문에서 벌어진 패륜이 신경 쓰여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런 부당한 일을 해결하는 것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백작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도움이.

올젠 팔로아는 그란츠 마지쿠스 공작의 집무실 앞에서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똑똑.

노크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공작님. 청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


“가문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외부의 힘을 빌린 건 창피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그란츠 공작님 외에는 기댈 곳이 없었어.

아버지 어머니를 만날 수 없으니, 이 모든 이야기가 정황 증거만 있는 상태야.

결국, 그란츠 공작님의 도움을 받아서, 예서 너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고, 용사와 함께 마왕을 토벌하는 조건으로 황제께서 팔로아 백작위에 대해서 합당한 후계자에게 작위를 계승하기를 약속받았어.

그게 내가 너의 마법 선생님이 된 이유지.”


올젠 선생님의 집안이 이렇게 개차반일 줄이야...

여기서 내가 그만두면 지금까지 올젠 선생님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건가...


“... 아버지, 어머니는 아직 갇혀 계시나요?”


“어. 내 나름대로 바로 잡아보겠다고 아버지, 어머니를 빼내려고 했는데, 그랬다가는 형이 다친다는 것을 알고는 남아있겠다고 하시더군.

합법적인 후계자가 예정된 작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감싸고 나면 증거 같은 건 없어.

남은 방법은 둘 뿐이지.”


“두 가지요? 하나는 황제 폐하의 권한 일거고... 나머지 하나는?”


“형을 죽여야지.”


“!!!”


형제를 죽인다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여기가 내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예서야. 약간의 말미를 다오. 대책을 세울 수 있을 시간을.”


“용사님. 한동안이라도 용사로서 훈련하는 척이라도 계속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도 대응할 방안을 찾을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내가 너무 성급했다.

이렇게 많은 이해관계와 책임

나이는 진즉에 성인이지만, 이제야 어른이 되어 가는 거 같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과 타협하는 거라고...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건가?’


용사를 그만두겠다는 내 노력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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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2. 자격과 책임2 23.07.14 13 0 12쪽
52 51. 자격과 책임 23.07.13 10 0 10쪽
51 50. 감금생활2 23.07.12 10 0 10쪽
50 49. 감금생활 23.07.11 11 0 11쪽
49 48. 마족 간첩2 23.07.10 12 0 11쪽
48 47. 마족 간첩 23.07.07 13 0 10쪽
47 46. 제국 시장 23.07.06 10 0 11쪽
46 45. 용사의 자격 23.07.05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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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 식당창업준비4 23.07.03 13 0 10쪽
43 42. 식당 창업준비3 23.06.30 11 0 10쪽
42 41. 식당 창업준비2 23.06.29 11 0 10쪽
41 40. 식당 창업준비 23.06.28 10 0 11쪽
40 39. 에스키아 백작가3 23.06.27 9 0 11쪽
39 38. 에스키아 백작가2 23.06.26 12 0 11쪽
38 37. 에스키아 백작가. 23.06.23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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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 용사의 빅픽처3 23.06.21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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