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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GPD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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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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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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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20화.

DUMMY

도주혁은 짧은 순간 깊은 갈등을 느꼈다.

‘너만 아니었다면...’

눈앞의 이 놈만 아니었다면 심지연은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산채로 팔다리를 뽑고 몸통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후우우.”

하지만 그는 미하일을 찢어발기는 대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 치지직! 아이언타-, 치지직! 들려? 치지직!

마침 조금씩 잡음이 걷히며 실프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독했던 재밍을 어느 정도 회피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들린다, 실프. 아직 연결 상태가 좋지 못하군.”

- 이 정도가 어디야. 나니까 이 정도- 치지직! 젠장!

“그래. 알았으니까 상황보고부터 해. 교전 종료다.”

- 벌써?

얼빠진 듯한 목소리로 되물으면서도 실프는 착실히 제 할 일을 했다.

- 드론 다섯 기 모두 시스템 올 그린. 적함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음. 반경 500m 이내 위험요소 없음.

“영상 확인바람. 교전 종료. 사살 5명, 생포 1명.”

- 오케이. 영상 확인 중.

헤드캠이 찍은 영상을 확인하는 듯 실프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

- 확인 완료. 회수품은?

“지금 확인중.”

도주혁은 반쯤 눈이 풀린 미하일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컨테이너와 콘크리트의 잔해에 처박힌 미하일의 얼굴에서 핏물이 튀겼다.

도주혁은 그 상태로 미하일의 머리를 무릎으로 누르고 그가 등에 맸던 가방을 집어들었다.

보기엔 평범한 백팩 같았던 가방은 상당히 묵직했다. 지퍼를 열어보니 안쪽에 열두자리 비밀번호가 달린 금속 상자가 보였다.

“영상 확인바람. 이거 느낌이 좋지 않은데.”

- 확인중. 음, 그러네. 아주 좋지 않아. 파손대책이 포함된 콤비네이션 금고같은데 비밀번호가 열두자리라... 그냥 그대로 회수해야겠는데.

“음. 일단 비밀번호를 구해보지.”

도주혁은 가방을 휙 어깨에 걸고 몸을 일으켰다.

철컥, 대물저격총의 거대한 탄창을 교환한 그가 장전손잡이를 당겨 약실에 탄환을 채웠다.

“비밀번호.”

도주혁의 입에서 나직한 러시아어가 흘러나왔다.

미하일은 대답하지 않았고 도주혁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쾅! 퍼억! 대물저격총이 불을 뿜었고 미하일의 왼발이 폭발에 뭉개졌다.

“끄으으읍!”

잔뜩 짓눌린 비명이 미하일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뻐억! 도주혁이 미하일의 옆구리를 걷어차 돌려눕혔다.

치이익. 뜨겁게 달아오른 대물저격총의 총구가 미하일의 오른쪽 무릎을 내리눌렀다.

“비밀번호.”

도주혁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무성의했다. 마치 언제까지고 이 짓을 계속할 수 있다는 듯.

끼릭. 도주혁의 손가락이 또다시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미하일의 입이 열렸다.

“모, 모른다! 정말이야! 그, 그냥 넣고 닫으면 바로 잠기는 물건이라고 했다! 여는 건 본국에서 여, 연다고 했어!”

다급한 러시아어가 그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그렇다는데.”

- 가능성은 있어. 근데 우리가 알 바는 아니잖아? 몇 번 더 물어보자고.

킥킥, 실프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조언이었다.

일단 탄창에 남은 다섯발을 다 쓰고 나서 생각하자, 고 도주혁은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비밀번호를 구하지 못하면 그냥 금고채로 회수하면 그만이다. 기술팀이 알아서 잘 열어줄테니.

도주혁의 손가락이 다시 방아쇠에 걸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총을 놓아버렸다.

쉬익, 뻐걱! 칠흑처럼 검은 비수가 날아와 도주혁이 들고 있던 총의 총열을 갈랐다.

‘손가락을 노렸다!’

방아쇠를 썩둑 자르고 총열마저 찢어버린 비수를 보며 도주혁은 그렇게 판단했다.

강화 인간의 초인적인 동체시력 덕에 조금이나마 회피 기동을 했기에 손가락을 보호할 수 있었다.

도주혁은 총열이 완파된 대물저격총을 버리고 엄폐물 뒤로 몸을 숨겼다.

파각, 펑. 멀리서 작게 폭음이 들렸다. 지상이 아닌 한참 위쪽이었다.

도주혁이 고개를 돌리는 사이 상공에서 연달아 폭음이 터졌다.

그의 초인적인 시력이 수백미터 바깥의 폭발을 포착했다.

허공을 길게 가르는 흐릿한 그림자와 폭발의 화염으로 모습을 드러낸 검은색 동체. 파괴되고 있는 것은 실프가 부리는 드론, 버드아이였다.

- 파손보고! 젠장, 버드아이가 완파됐어!

“확인했어. 상대는?”

다급히 자세를 낮추며 도주혁이 물었다.

- 확인 불가! 착탄각으로 봐서는 지상에서 공격한 것 같은데 관측이 되지 않아! 저격인가?

“아니, 격발음도, 총구화염도 관측되지 않았어. 저격은 아니야.”

- 그럼 어떻게?

도주혁은 자신의 총을 박살낸 새카만 비수를 떠올렸다.

손바닥만 한 길이에 가오리처럼 좌우로 펼쳐진 납작한 칼날, 그리고 얇고 길게 뻗은 손잡이.

흔한 물건은 아니다. 그리고 던지기 편한 물건도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물건을 던져 25mm 유탄을 쏴대는 대물저격총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나이프.”

- 뭐?

“나이프일거야. 날 공격했던 것과 같은.”

- 지금 버드아이가 쓰로잉 나이프에 파괴되었다고 하는 거야? 400미터 상공에서 비행중인 드론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면.”

잔뜩 자세를 낮춘 도주혁은 가슴으로 바닥을 긁듯이 조금씩 이동했다.

- 강화인간은 더 이상 없고... 설마 AS를 말하는 거야? 그건 좀 무리한 예측이야. AS의 기동은 무척이나 부산스럽다고. 버드아이가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

실프의 말은 정확했다. 아머 슈트라는 병기 자체가 은밀 기동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아머 슈트의 기동은 필연적으로 요란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실프, 워버드는?”

- 이미 C 포인트에서 이륙했어. ETA 3분. 아쉽게도 교전 허가는 아직 받지 못했고.

“기대도 안 했어.”

도주혁은 컨테이너의 잔해들 사이로 앞을 살폈다.

“젠장. T-2가 사라졌다.”

- 뭐?

미하일의 거체가 사라졌다. 바닥에 길고 거칠게 붉은 선을 그려놓은 채.

“질질 끌린 흔적이 보인다. 행적이 난폭한 게 구출된 것 같지는 않아. 아무래도 제3세력이 개입한 것 같다.”

- 적은 확인했어?

“아니. 여전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도주혁은 오른손으로 권총을 뽑으며 동시에 왼손으로 나이프를 빼들었다.

삼진연구소 사건을 거치며 도주혁은 강화 인간의 근력과 쓰로잉 나이프의 질량이 만나면 근거리에서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이번 개인 무장에 나이프를 최대한 많이 챙겨왔다.

나이프를 역수로 잡은 왼손으로 권총을 받치며 그는 앞을 살폈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귀를 기울여도 움직이는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다. 아니, 아예 소리가 없어.’

문득 도주혁은 이질감을 느꼈다. 단순히 조용한 것이 아닌, 소리 자체가 삭제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소리의 공백을 따라 그의 눈동자가 돌아간 순간.

그는 보았다. 약 40미터 가량 전방의 허공이 순간적으로 일렁이는 것을.

쐐애액! 공간을 찢으며 새카만 비수가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머리는 피했지만 어깨에 박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뻐억! 비수는 도주혁의 강철 같은 근육을 찢고 뼈를 부수며 틀어박혔다. 몸을 꿰뚫는 강력한 힘에 밀려 도주혁은 차에 치인 듯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크윽!”

- 아이언타이드! 괜찮아? 무슨 일이야!

도주혁은 격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몸을 굴렸다.

탕! 탕! 500 매그넘이 불을 뿜었다. 일렁거리던 허공 근처를 겨누고 대충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팅! 갑자기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걸 본 도주혁의 눈이 번득였다.

“실프! AS다! 그것도 클로킹에 사운드 캔슬러까지 사용하는 은밀 기동용 AS!”

- 뭐, 뭐라고? 클로킹? 관측회피용 광학위장장비 말이야? 그건 아직 실험단계일텐데?

“확실해! 헤드캠 영상을 확인해봐!”

쐐애액! 파바박! 도주혁이 몸을 날리자 나이프 한 무리가 날아와 자리를 초토화시켰다. 이미 걸렸다고 판단했는지 은밀 기동보다 도주혁을 침묵시키는 걸 우선하는 모습이었다.

- 확인 완료! 미확인된 신형 AS의 가능성 매우 높음! 코드 레드 발령!

실프의 외침에 도주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코드 레드. 그것은 아머 슈트의 합법적, 전격적 투입을 뜻했다.

상대 AS에 대한 카운터 포스 이외의 용도로 AS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AS 레귤레이션. 그 합법적 고삐가 드디어 풀린 것이었다.

- 코드 레드 수신 확인! 긴급 투입 프로토콜 기동 완료! ETA 10분!

“확인! 서두르라고 해!”

무섭게 날아드는 나이프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도주혁은 연막탄을 까 던졌다. 푸시시, 연막이 피어오르며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연막이 퍼지기 시작하자 날아들던 나이프가 잠잠해졌다.

도주혁은 엄폐물 뒤로 몸을 숨기며 왼쪽 어깨에 박힌 나이프를 뽑았다.

뿌드득! 거의 자루까지 틀어박힌 나이프가 뽑히며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고통이 엄청났고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어깨가 뜯겨져 나간 것 같은 고통에 왼팔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피에 절은 기형의 나이프를 플레이트 캐리어에 수납했다.

- 워버드 도착까지 1분! 조금만 더 버텨!

실프가 귓가에서 소리를 질렀다. 1분. 버틸 수 있을까.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사실상 관측이 불가능한 유령 같은 존재를 상대로.

‘아니. 유령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분명 총에 맞았으니까.

피격된 총탄이 반짝 불꽃을 튀기던 모습. 그걸 떠올린 도주혁은 문득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놈을 관측할 수 없다면 다른 걸 관측할 수는 있지 않을까. 관측이 불가능하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한 공간에 두 개의 물질이 공존할 수는 없기에.

도주혁은 숨을 죽였다.

상대가 AS라면 분명 다중 채널 감지장비를 갖추고 있을 터. 연막으로 시야가 제한되더라도 다른 여러 가지 채널을 사용해 자신을 포착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놈을 보려 해서는 안 돼.’

그 대신 다른 것을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저것, 연막의 흔들림 같은 것.

쐐애액!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커먼 비수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좀전과는 다르게 도주혁은 그것을 비교적 수월하게 피해낼 수 있었다. 비록 AS에 비하면 한발 모자르더라도 그 역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초인이었다. 어디서 언제 날아오는지 알 수 있다면 총알도 피할 수 있는.

팍, 팍, 팍! 새카만 비수가 강철과 콘크리트가 섞인 잔해를 찰흙처럼 가르며 틀어박힌다. 그것만으로도 저 조그마한 비수에 얼마나 강력한 힘이 담겼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도주혁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정신없이 몸을 피했다.

‘다행히 연막으로 인해 간접 관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격 수단이 없어. AS에게 유효 타격을 주려면 현재의 무장으로는 어림도 없다. 생각해라. 생각해!’

도주혁은 한계까지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몸을 날렸다.

그때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파박! 도주혁은 방향을 바꿔 연막 밖으로 몸을 던졌다.

후욱, 연막을 가르며 보이지 않는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부우웅. 커다란 형체가 놈을 덮치듯 날아왔다.

퍼버벅! 보이지도 않게 휘둘러진 비수들이 공중에 뜬 형체를 꿰뚫었다. 동시에 형체에서 핏물이 퍽 터졌다.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러시아인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바닥을 굴렀고.

핏물을 뒤집어쓴 아머 슈트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면 당겨, 멍청한 러시안들아.”

도주혁이 중얼거렸고.

이내 4km 바깥의 바다에서 우크라이나 국적의 상선이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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