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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GPD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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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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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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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화.

DUMMY

“충성. 처음 뵙겠습니다, 과장님.”

서울청 경비2과장 유재학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마주했다.

“충성. 누구십니까?”

“저는 정동서 형사과 형사1팀의 변재민 경위입니다.”

“아, 정동서.”

정동경찰서라는 말에 유재학은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를 단박에 알아챘다.

“도 형사 때문이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몇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이쪽으로.”

유재학은 변재민을 소파로 안내했다. 물이 든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던 변재민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도 형사도 피해자인데, 왜 도 형사가 구금중인 것입니까?”

변재민의 질문에 유재학의 미간이 깊어졌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유재학의 고민이 길어지자 변재민이 말을 이었다.

“조서를 조금 훑어보았습니다. 도 형사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 이후라고 과장님께서 확인해주셨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이후 인질 구출 상황 역시 과장님과 서울청 경특 대원 여러 명이 진술하고 있구요. 이 정도면 1계급 특진을 해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구금이라니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변재민이 흥분해 톤이 한층 올라갔다. 하지만 유재학은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그 건에 대해서는... 제가 할 말이 없군요.”

“... 네?”

“나 역시 도 형사한테 도움을 받은 입장이라... 그가 얼마나 영웅적인 일을 해냈는지 너무도 잘 알아요. 그래서 목소리를 좀 내봤지만... 그게 통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현장 책임자셨던 분의 목소리도 말입니까?”

“그래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누구보다 현장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현장책임자 아닙니까?”

후우. 변재민의 추궁에 유재학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더 이상은 기밀이라 말씀드릴수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 군경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 밖에는...”

“네?”

“국제사회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상은 정말 기밀이라 어려워요. 사실 나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그런...”

변재민이 머리를 감쌌다. 유재학은 그런 그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백방으로 힘을 써보고 있는 중입니다.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조사가 목적이니 조사만 끝나면 바로 풀려날거고. 그러니 조금만 참고 같이 기다려봅시다.”

“... 네, 알겠습니다.”

변재민은 축 처진 어깨로 일어섰다. 그런 그에게 유재학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나도 부탁이 하나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그... 경찰이 보호조치를 내린 시신 말입니다.”

“... 제수씨 말씀이십니까.”

“네. 부디... 잘 좀 지켜주세요. 도 형사가 여기서 나가면 찾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찾아 헤맸는데 마지막 가는 길은 봐야 할 것 같아서...”

유재학의 말에 변재민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요. 하늘 아래에 의지할 데가 서로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말 그대로 죽고 못 살던 부부였지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설령 제가 옷을 벗더라도 주혁이가 제수씨를 보기 전까진 아무 일도 없게 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정동서 모두가 나설 테니 걱정 마십시오.”

변재민의 말에서 유재학은 깊고 끈끈한 정을 느꼈다. 어느새 그의 입가에도 변재민의 그것과 비슷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도주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억세고 강한 손.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작전들에서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 임무를 수행해왔던 손.

그리고 그녀를 구하지 못한 손.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손을 잘라내버리고 싶었다.

왜 구하지 못했나. 눈앞에 나풀거리던 그녀의 가녀린 몸을 더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했나.

도주혁은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잘라내는 대신 얼굴을 덮었다. 잘못은 손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알기에.

끼이익, 탁. 뻑뻑한 경첩의 철문이 열리고 누군가 다가왔다.

“식사시간입니다만... 또 아무것도 안 드셨네요.”

정복을 입은 아직 앳된 얼굴의 순경이 식판을 내려놓았다. 차게 식은 다른 식판을 집어든 순경은 문득 발을 멈췄다.

“정동서 형사과분들이 밖에 와계세요.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 좀 전해달라고 하셨고요.”

“...”

“뭐라도 좀 드세요. 얼굴이... 아닙니다. 에효, 이게 다 뭔지.”

고개를 내두르며 순경이 밖으로 나갔다. 철컥, 철컥! 복도 이쪽 저쪽에서 시커먼 총구가 그를 겨눴다가 사라졌다.

건물을 벗어나자 이곳을 포위한 차량들과 완전무장한 경특대원들, 옥상을 차지한 저격수들이 빼곡히 눈에 들어찼다. 마치 경찰서에 테러라도 터진 듯한 모습이었다.

순경은 계속 걸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그가 식당에 들어서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반겼다.

“어, 김 순경. 어땠어, 주혁이는?”

“여전해요. 처음 자세 그대로 그냥 앉아만 있네요.”

“아, 새끼 왜 그러고 있어? 뭔 죄 졌어? 답답해 미치겠네, 진짜.”

“그 지옥에서 사람을 몇 명을 구했는데. 특진을 시키진 못할망정 감옥에 가둬? 이 미친놈들!”

“그러지 말고 우리 다 같이 가서 누워버립시다! 지들이 어쩔 거야? 우리도 다 쏠 거야? 쏠라면 쏘라 그래, 씨발!”

흥분해 방방 뛰는 정동서 형사과 인원들을 형사과장 변재민이 다독였다.

“흥분들 죽여. 우리가 깽판치면 주혁이까지 싸잡아서 개새끼 된다. 조사만 끝나면 나온다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

변재민의 말에 형사들이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식당 문 밖에서 안쪽의 소리를 듣던 남자였다.

식당 안쪽이 잠잠해지자 남자는 걸음을 옮겼다. 사전에 얘기가 돼있던 건지 남자는 도주혁이 감금된 유치장까지 아무 제재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여전히 도주혁은 등을 돌린 채 죽은 듯 앉아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국방부 검찰단에서 나왔습니다.”

“...”

남자의 말은 친절했지만 도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떤 말도 그의 귓가를 파고들지 못했을 뿐이었다.

도주혁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꿋꿋이 자신의 일을 했다.

철제 간이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서 남자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도주혁 예비역 소령님께서는 현재 삼진 연구소 테러 사건 관련 수사를 위해 임의 동행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계십니다. 물론 현재까지는 참고인 신분이지만 이는 앞으로 수사 진척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남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법률적인 문구들이라 길고 지루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슬슬 바뀌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의미 없는 말들의 나열로 바뀌는 것이었다.

“사리곰탕면을 냄비에 넣고 떡볶이 소스를 넣어 매콤칼칼한 맛을 내주세요. 여기에 떡, 소시지, 핫바, 어묵 등을 넣고 마지막으로 사리곰탕면 스프를 넣으면... 어.”

아예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 휴대폰을 보며 의미 없는 말을 줄줄 읊던 남자는 어느새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도주혁과 눈을 마주쳤다.

“... 그건 뭡니까.”

얼마나 오래 말을 안했는지 도주혁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레시피라는군. 작업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서.”

그가 유치장 곳곳에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그거 말고.”

도주혁의 눈이 남자의 몸을 슥 훑었다.

“그런 거 이제 안하시잖아요.”

도주혁의 질문에 남자가 피식 웃었다.

“안한지 오래되긴 했지. 그래도 아직 쓸만하잖아?”

도주혁은 창살 밖에 앉은 남자를 살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쓰고 머리까지 단정하게 빗어 넘긴 모습. 누가 봐도 공부 잘하게 생긴 모범생 이미지다. 군 정복에 서류가방이 없다면 잘생긴 기업인 같은 이미지랄까.

하지만 도주혁은 이 남자를 잘 알았다.

그는 절대 그런 이미지의 남자가 아니다. 검사나 기업인 같은 책상물림에 어울리는 남자도 아니다.

그는 도주혁이 아는 인물들 중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콜사인 ‘제퍼’.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그는 냉전시대 말 가장 완벽한 스파이 중 하나로 불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도주혁은 저 말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몇인지는 아무도 셀 수 없을 테니까.

“쓸만하긴 하군요.”

도주혁이 그를 알아본 건 전적으로 그가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입으로 의미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까딱였던 손가락. 의자 다리를 톡톡 두드리며 모스 부호로 피아식별코드를 알려오지 않았다면 도주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칭찬 고맙네. 오래 살다보니 자네 칭찬을 다 받아보고. 영광인데.”

너스레를 떨던 남자의 얼굴이 다시 진중해졌다. 도주혁의 눈에서 빠르게 생기가 빠져나가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그간의 사정은 대충 다 들었네. 아무튼 대단해. 자네 정도의 남자가 다 버리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니. 그것도 밖에 와있는 자네 동료들을 보니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고 말이야.”

“...”

“누군지 너무 궁금했지. 강철의 파도를 잠재워 호수로 바꿔버린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말이야. 절대로 보통 사람은 아닐 거라고 내기를-”

“그만하시죠.”

도주혁의 나직한 말에 남자의 입이 닫혔다. 차갑게 가라앉은 도주혁의 눈을 보고 남자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는 바로 그 얼굴이군.”

도주혁은 아예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말 섞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서운할 만한데도 남자는 그저 웃었다.

“내가 너무 때를 못 맞췄지. 나도 잘 안다네. 그러니 전할 말만 얼른 전하고 가겠네. 나중에 또 좋은 날 있겠지. 그때 보자고.”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읊었다.

“콜사인 아이언타이드. 현시간부로 현역 복귀를 명한다. 익일 01시까지 X포인트로 이동하여 상세한 작전 내용을 수신하라. 이상.”

남자의 말이 끝났지만 도주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입에 쓴웃음이 작게 걸렸다.

“그리고 이건 내 노파심일세. 자네는 보물을 아직 잃지 않았어. 희망마저 놓아버리기엔 아직 이르다네.”

말을 마친 남자는 가볍게 목례를 남긴 후 유치장을 나섰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도주혁은 그 자세 그대로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여전히 등을 돌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 아무도 들르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밤이 깊었다.

그리고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죽은 듯이 어둠만 가득했던 그의 눈 속에 어느새 불길이 타올랐다. 그것은 희망의 불씨였다.

도주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백년 만에 일어서는 것처럼 뼈마디에서 뿌드득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몸은 인간을 초월했다.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자 이미 그는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상태였다.

도주혁은 유치장의 쇠창살을 손에 쥐었다. 금속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가 가만히 힘을 쓰자 두꺼운 철제 창살이 찰흙처럼 스르륵 휘어지기 시작했다.

도주혁은 가공할 만한 힘을 아주아주 부드럽게 다뤘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소리를 내서 주목을 끌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해서 몰려든 경찰과 공권력을 상처내지 않기 위해.

그래서 그는 힘을 아꼈다. 그의 힘을 받아내야 할 자는 따로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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