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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GPD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1
최근연재일 :
2023.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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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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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17화.

DUMMY

휘익, 타닥. 좁은 건물들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움직였다. 바람을 타고 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림자는 철저히 건물들 위로만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그림자는 대한민국 영토를 촘촘히 메운 CCTV들을 거의 완벽히 피해낼 수 있었다.

새벽 한시에서 정확히 5분이 모자란 시각.

어둠속을 걷던 그림자가 마침내 발을 멈췄다.

어느새 한적해진 거리 끝, 낡은 시장 골목의 한 허름한 식당 문앞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 파르르 떨리는 낡은 형광등 불빛이 그림자의 얼굴을 밝혔다. 도주혁이었다.

겨우 4개의 테이블만이 자리한 좁은 실내. 그중 3개의 테이블은 비어있었고 나머지 테이블에는 한 남자가 등을 돌린 채 국밥을 먹고 있었다.

도주혁은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올 걸 알았는지 그의 자리에도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남자가 말없이 국밥을 가리켰다.

도주혁은 수저를 들어 국밥을 떴다. 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움직이려면 먹어야했다.

“...”

분명 처음은 그런 생각이었는데, 먹다 보니 수저를 놓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식사를 한지가 너무 오래됐다. 적어도 24시간은 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국밥은 너무나 맛있었다. 순식간에 한 뚝배기를 해치우자 희끗한 머리의 할머니가 한 그릇을 더 내밀었다.

맞은편의 남자가 입을 연 것은 도주혁이 세 그릇째의 국밥을 깨끗이 비운 뒤였다.

“잘 먹네. 입맛이 없다고 들은 것 같은데.”

“... 할 일이 많아서.”

살짝 민망해진 도주혁이 티슈로 입을 닦았다. 그런 그를 보며 맞은편의 남자가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생각보다 훨씬 보기 좋아서 다행인데.”

남자의 푸근한 미소에 도주혁은 가슴 한켠의 응어리가 스르륵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들른 고향집 같은 느낌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천애고아인 그에게 가장 혈육에 가까운 존재였다. 함께 넘은 사선의 수가 두자릿수를 훌쩍 넘어선지 오래였고 서로가 구해준 목숨의 개수가 한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언제 어디서든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미안하다, 주혁아.”

남자, 권기탁 대령이 푹 고개를 숙였다. 침통하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서 죄책감이 묻어나왔다.

도주혁은 말없이 물잔을 들어 홀짝였다.

“통신대 인원 몇이 매수된 것 같아. 보고 라인이 훼손되는 바람에 출동이 늦어졌다. 더 빨리 갈 수 있었는데... 정말 미안하다.”

“...”

“그리고... 제수씨가 연구의 중책을 맡았다고 들었을 때 너한테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니가 전역한 뒤에 부사령관이 교체되면서 부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거든. 관리 체계가 아예 바뀌면서 관할도 넘어가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안전 문제라도 더 신경써야지 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면목 없다.”

“...”

“이것도 다 핑계일 뿐이지만... 사령관님께서도 미안해하고 계신다. 이 말 꼭 좀 전해달라고 하시더라.”

‘사령관님께서...’

옛 상관을 떠올린 도주혁이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했다. 전역한지 수년이 흘렀지만 전설적인 1세대 AS 파일럿을 향한 존경심은 조금도 바래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래. 이해해줘서 고맙다. 음. 원래대로면 브리핑이 먼저겠지만... 더 중요한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자. 묻고 싶은게 있잖아. 안 그래?”

권기탁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도주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순간이 왔다. 여기까지 달려온 한시간동안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왔던 순간이.

그의 강철같은 손아귀 안에서 스테인리스 컵이 슬그머니 뭉개지기 시작했다.

“지연이는...”

문득 그는 자기 목소리가 녹슨 경첩같다고 느꼈다. 기분 나쁘게 긁어대는 녹슨 쇳조각같은 목소리.

“지연이는... 살아있습니까?”

도주혁의 힘겨운 질문에 권기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 어떻게? 분명 죽었다고 했는데...”

도주혁은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어느새 수미터 이내로 다가온 아스팔트 바닥.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내리꽂히는 몸뚱이.

그 극한의 순간에서 도주혁은 심지연의 몸에 버클을 채웠다. 함께 떨어진 파일럿 시트의 부서진 잔해에서 빼낸 보조낙하산이었다.

충돌 1초전 그는 전력으로 심지연을 던져올리며 보조산의 립코드를 당겼다. 확, 펼쳐지는 보조산의 캐노피를 마지막으로 그는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혔다.

꽈아앙, 하고 울렸던 그 굉음을 기억한다.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마저도 아직 선명하다.

죽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던 그 순간.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짓이겨진 육체가 아니었다.

낙하의 충격에 박살이 난 차량 위로 스르륵 내려앉던 새하얀 낙하산. 그리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심지연의 작은 실루엣.

붉은 피로 물들어가는 그 그 순백의 실루엣에 도주혁은 절규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절망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도주혁은 눈을 떴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이 떠졌다.

흐리멍텅하던 머릿속. 몸을 완전히 덮고 있던 국방색 낙하산. 그리고 낙하산을 치우자 엄습해온 아수라장의 소음.

희생자와 생존자, 군경과 소방관이 뒤섞인 혼돈의 중심에서 도주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를 겨누는 수십 개의 총구앞에서, 그는 천천히 걸었다. 이제는 새빨갛게 변해버린 작고 가냘픈 실루엣을 향해.

덜덜 떨리는 손을 내뻗는 그의 곁에서 전준우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경찰들의 총구를 끌어내렸다.

스르륵 무너지는 그를 끌어안고 전준우는 말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그랬는데.

“나중에 준우 보면 고맙다고 해라. 준우가 바득바득 우겨서 출동할 때 아크 한 대를 가져갔거든.”

“아!”

아크. 특수군사령부의 특작팀에서 운용하는, 부대에 단 세 대뿐인 VIP용 특수구호장비. 과장 조금 보태 숨만 붙어있다면 며칠이고 안전하게 보호해 호송할 수 있는 최첨단 생명유지장치가 바로 아크였다.

“아마 니가 다쳤을까봐 그랬을거야. 준우가 널 엄청 따랐잖아, 옛날부터.”

“아...”

“제수씨는 비밀리에 우리 시설로 모셨다. 사령관님께서 제수씨를 특급보호대상으로 지정하셨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는 중이지만... 사실 상태가 좋지는 않아.”

“...”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방법이 있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도주혁은 물기가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권기탁은 말없이 미소지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도주혁이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그의 눈엔 어느새 예전 그대로의 총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브리핑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그 눈빛에 권기탁이 피식 웃었다.

“벌써 현역 다 됐네. 그래. 이제 일 해야지.”

권기탁이 빈 국밥 그릇 옆으로 태블릿 pc를 올렸다. 화면에는 인천으로 보이는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정보쪽에서 인천으로 접근하는 수상한 배 한척을 발견했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상선인데 아무래도 이 배를 이용해 출국을 시도할 것 같다.”

화면에 여러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CCTV에 잡힌 러시아인들의 모습이었다.

사진은 그 촬영지가 지도 위에 핀으로 표시되었는데 빨간 핀들이 천천히 인천항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배를 이용해 준다면 오히려 쉽지 않습니까. 일망타진할 기회 같은데. 조치는 취하셨습니까?”

도주혁의 질문에 권기탁이 턱을 긁었다.

“그게... 조금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말입니까?”

“국제기구에서 AS레귤레이션 위반으로 우리 군을 제소했어. 때문에 우리측 아머 슈트들은 전부 입고대기 지시를 받았지.”

“생존자들이 현장 상황을 진술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다면 아머 슈트의 투입이 당연하다는 걸 알텐데요?”

“했지. 하지만 말귀가 통하질 않아.”

“아.”

빌어먹을. 정치 문제로군.

“어딥니까?”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선진국이면 전부 나선 상황이야. 아마 목적은 트랜센던스 프로젝트겠지. 누가 갖느냐에 따라 향후 패권의 주체가 바뀌게 될 테니.”

“...”

“그러니 놈들을 절대 놓쳐서는 안돼. 특히 놈들이 갈취한 연구 자료와 샘플들은 무조건 탈환해야한다. 무조건.”

“알고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도주혁의 눈이 불타올랐다.

절대 자료와 샘플을 빼앗길 수 없다. 당연히 조국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죽음의 문턱에 걸쳐있는 심지연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트랜센던스 프로젝트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좋아. 놈들의 배가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세 시간 뒤. 비정규전 상황이라 병력 지원은 없겠지만 장비 일체와 실프를 붙여주지. 실프와는 오랜만에 합을 맞춰 보겠군.”

“실프라면 믿을만하죠.”

“필요한 게 있으면 미리 얘기해. 현장에 준비해 둘 테니까.”

권기탁의 말에 도주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머 슈트도 지원 병력도 없다. 개인장비를 제외하면 이용할 수 있는 건 오퍼레이터인 실프 하나뿐. 그렇다면 실프의 도움을 100퍼센트 활용할 장비가 필요하겠지.

“버드아이(Birdeye)가 필요합니다.”

“버드아이? 정찰용 장비를? 의왼데?”

“지금 조건으로는 버드아이가 최선의 장비입니다. 믿어보십시오.”

이후 도주혁은 필요한 개인 장비들을 요청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차량은 바깥에 있는 걸 써. 아, 그리고 말이야.”

“네.”

“돌아오면 좋은 소식 있을 거야. 쥐새끼 꼬리를 잡았거든. 나름 보안에 신경 쓴 모양인데 헛짓거리지. 우리 팀 애들 앞에서는.”

권기탁의 말에 도주혁은 ‘팀’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최정예, 특수군사령부 내에서도 0.1%의 최정예들만이 모인 팀. 심지어 그 존재조차 대통령과 사령관 딱 둘만이 알 뿐인 조직이 바로 그와 권기탁이 속한 ‘팀’이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돌아와서는 소주 한잔 하자. 오랜만에.”

“네.”

꾸벅. 도주혁은 고개를 숙여보이고 가게를 나섰다.


***


남항부두 인근 한 낡은 아파트 단지.

5층짜리 낡은 아파트의 옥상에 서서 도주혁은 공장단지를 내려다보았다.

“실프.”

- 듣고 있어.

도주혁의 나지막한 부름에 귓가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선박은 어디쯤이지.”

- 인천 서쪽 무의도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 지점이야. ETA 30분.

“늦진 않았군. 작전 중 특이사항 있나?”

- 아니. 언제나처럼 섬멸전이야.

“좋아. 그럼 잘 부탁해.”

- 나야말로 잘 부탁해. 아머 슈트가 아닌 유닛의 지원은 나도 정말 오랜만이거든. 어느 선까지 리밋을 정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답답하네.

오퍼레이터의 투덜거림에 도주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현역이던 시절 언제나 합을 맞춰왔던 실프였기에 몇 년 만에 뭉친 건데도 어색함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 반가웠다.

“그냥 원래대로 해도 돼.”

- 오우. 맨몸으로 AS 수준의 서포팅을 받으시겠다? 기대되는데? 그럼 진짜 원래대로 한다?

“그래.”

도주혁은 장비를 점검했다. 탄탄한 플레이트캐리어와 매달린 탄창들, 총기류와 폭탄류까지 점검한 그가 머리를 덮은 헬멧의 새카만 바이저를 내렸다.

“실프. 버드아이 기동.”

- 오케이. 버드아이 기동.

바이저 안쪽으로 AR 글라스가 내려와 도주혁의 눈앞에 자리를 잡았다.

동시에 뒤쪽에 펼쳐둔 커다란 가방에서 다섯 기의 드론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소리 없이 가속 상승한 드론은 어느새 새카만 밤하늘에 녹아들어 사라져버렸다.

팟, 하고 한순간 푸른빛이 점멸하더니 이내 실프가 수집한 각종 정보가 시야 한켠에 표시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공중을 맴도는 정찰용 드론 다섯 기의 실시간 영상도 플레이되고 있었다.

안구를 트랙킹하는 장비로 정보와 영상을 재배치한 도주혁은 열화상 영상을 통해 타겟을 확인했다.

- 드론 인 포지션. 올 시스템 그린.

“좋아. 돌입한다.”

- 오케이. 보조할게, 아이언타이드(Iron-Tide).

실프의 말에 도주혁의 가슴이 작게 뛰었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했던 그의 또다른 이름. 이제는 그 이름으로 불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주혁은 심호흡으로 긴장을 다스리며 옥상 난간을 밟았다. 드넓게 펼쳐진 인천의 시커먼 밤바다가 괴물의 아가리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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