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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GPD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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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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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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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9화.

DUMMY

도주혁은 눈을 떴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감각은 물에 빠지기라도 한 듯 먹먹했고 머리는 무거웠다.

눈을 깜빡였다. 흐리고 어둑했던 시야가 차차 걷히며 회백색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 어디지?’

자신이 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누워있는지를 고민하던 순간.

막힌 둑이 터지듯 기억이 해일처럼 풀려나왔다.

파밧! 고양이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도주혁이 몸을 일으켰다.

그 동작이 너무나 민첩하고 즉각적이라 도주혁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움직여진다.’

분명 자신이 움직이려고 했건만 정말로 움직여질 줄이야.

이상했다. 그의 기억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신의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을 테니까.

그의 손이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찢기고 핏물에 젖은 티셔츠 위로 탄탄한 근육질의 잘 단련된 신체가 만져졌다.

그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힘이 넘쳤다. 막 폭발할 것 같은 탄력적인 힘이 온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도주혁은 말없이 손을 뻗어 스테인리스 재질의 작업대 다리를 쥐었다.

콰직! 그리 큰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스테인리스 기둥이 찰흙처럼 구겨졌다.

도주혁은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찍혀 빨대처럼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기둥을 보며 말을 잃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문기상. 주변에 떨어져있는 주사기들. 그리고 뭔가 숨겨져 있었던 것 같은 가압탱크의 뚜껑까지.

정보를 취합한 도주혁은 빠르게 결론에 도달했다.

‘마스터 샘플인가.’

분명 그거라면 말이 된다. 죽음 직전의 상태에 있던 자신을 회복시킨 것도, 철제 기둥을 찰흙처럼 구겨버리는 악력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도주혁이 문기상을 내려다보았다.

화를 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했다. 자신의 동의도 없이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바꿔놓았으니.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생각을 바꿨다.

나중에야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일단은 몸이 회복됐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 그에게는 아내 심지연을 되찾는 것, 그것 하나만이 세상 모든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에 이 힘은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 무기가 하나 늘어난 것. 그것뿐이다. 다른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도주혁은 말없이 쪼그려 앉아 문기상의 바짓단을 찢었다. 갑자기 폭증한 힘에 잠시 통제가 흔들렸지만, 애초에 3세대 AS를 탄 채로 사과도 깎던 그였다. 이 정도 파워 컨트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짓단을 길게 쭉쭉 찢은 도주혁은 문기상의 왼쪽 사타구니 아랫부분을 꽉 묶었다.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만이라도 막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허벅지의 총상과 짓이겨진 정강이 때문에 다리는 잃게 되겠지만.

‘가압탱크들. 11층 샘플룸인가.’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밖에서 잠긴 듯 열리지 않았다.

잠시 고민한 그는 왼손으로 손잡이 끝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내리쳤다.

뻐걱. 손쉽게 철제 손잡이가 부러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AS를 운용하듯 힘을 쓸 수 있는데도 맨몸처럼 감각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도주혁은 부러진 손잡이 구멍 안쪽의 잠금장치를 손가락으로 밀어 부러트리고 문을 열었다.

바깥은 기다란 복도였다. 전체적으로 흰 톤으로 장식된 복도에는 여기저기 검은 옷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번진 핏물이 말라가는 걸로 보아 사망한지 좀 지난 것 같았다.

도주혁의 청각에 무언가가 걸렸다. 원래도 민감한 청력의 소유자였지만 마스터 샘플 주입 이후 청각도 더 증폭된 느낌이었다.

도주혁은 여러 사람이 중얼거리는 나직한 소리들을 쫓았다. 7호 연구실. 그렇게 적힌 잠긴 문 너머로 적어도 열 명은 넘는 인원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똑똑. 노크를 하자 일제히 소리가 멈췄다.

“문을 열겠습니다. 모두 조용히 해주십시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연구실 안에 삼삼오오 모여 서서 덜덜 떨고 있는 연구원들이 보였다.

빠르게 인원을 파악한 도주혁이 말했다.

“샘플룸에 중상을 입은 문기상 박사가 있습니다. 문 박사를 모시고 이곳을 빠져나가세요. 3층 야외 테라스로 가시면 사다리차가 대기 중일 겁니다. 모두 움직이세요. 당장!”

도주혁의 나직한 말에 연구원들이 움직였다. 문기상을 부축한 채 멀어지는 연구원들을 보며 도주혁은 잠시 미안함을 느꼈다.

물론 지금의 행동은 저들을 위한 것이 맞다. 하지만 순전히 그것만은 아니다.

‘십여 명의 발소리라면 시선을 돌리기엔 충분하지.’

어쩌면 그들을 미끼로 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그에게 오로지 가치 있는 것은 아내 심지연의 안전뿐이었으니까.


***


연구원들이 11층을 나서던 그 시각. 미하일 디미트리엔코는 4층 경리과에서 심지연과 눈을 맞추고 있었고 드미트리 살라모프는 12층에서 연구 기록이 든 가방을 들고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하일에게 성과를 인정받을 생각에 들떠있던 드미트리는 순간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타다다닥. 강화 인간의 청각에 걸려든 것은 다수의 인원이 다급하게 발을 옮기는 소리였다.

‘습격인가?’

다급하게 가방을 둘러멘 드미트리는 소총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진압을 위해 대테러 특수팀이 건물 내로 들어왔다면 이렇게 난리법석인 소리를 낼 리 없지 않은가.

드미트리는 한층 더 청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연구원들이 안도감에 내뱉는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쥐새끼들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11층에 가둬두었던 연구원들이 탈출한 모양이었다.

한순간 무전으로 보고할까 생각했던 드미트리는 그냥 몸을 날렸다. 연구원 몇 명 정도 모가지 꺾는 거야 일도 아니었으니.

12층 계단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드미트리는 날 듯이 계단 위를 달리며 아래로 향했다.

그가 11층 문 앞을 지나는 순간.

꽝! 폭음과 함께 11층의 방화 도어가 폭발에 튕기듯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광! 그 안에 실린 거대한 힘에 드미트리의 거구가 밀려 벽에 처박혔다. 콘크리트가 박살나고 안에든 철근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윽!”

강력한 힘이 묵직하게 그를 밀어붙이는 통에 드미트리가 신음을 뱉었다. 그래서인지 방화도어 아래로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와 소총의 스트랩을 고무줄 끊듯 끊어내고 소총과 무전기를 잡고 사라지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이 소매치기를 당한 것도 모르고 드미트리가 힘을 주어 방화 도어를 패대기쳤다. 그런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온통 시커먼 색깔의 작은 구멍이었다.

타다다다당! 겨우 10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간격 사이로 MP5A5 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총구의 화염에 머리칼이 타들어갈 정도였다.

“끄아악!”

순간적인 기지로 고개를 돌려 안구에 총알이 처박히는 것은 면했지만 비처럼 퍼붓는 9mm 파라블럼 탄의 탄막에 드미트리의 왼쪽 귀와 얼굴이 뜯겨나가고 말았다.

“이 개새끼이!”

허연 두개골을 다 드러낸 채 드미트리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의 거대한 주먹이 맹렬하게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이미 도주혁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빠르고 냉철하게 상대를 살피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도주혁의 방식이었다.

도주혁은 드미트리의 주먹 아래를 파고들며 오른쪽으로 두 걸음을 옮겼다. 왼 얼굴이 거의 뜯겨나가다시피 했으니 드미트리는 도주혁을 볼 수 없었다. 아마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졌겠지.

사각지대에 서서 도주혁은 건물의 구조를 떠올렸다. 그리고 저 끔찍한 상처도 수분 내에 회복할 수 있는 괴물을 깔끔하게 치워버릴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힘은...’

한걸음 더 물러서며 자신의 육체를 점검한 그가 눈을 빛냈다.

‘충분하다.’

그그극. 도주혁의 발치에서 콘크리트가 짓이겨지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드미트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도주혁이 자리를 박찼다.

쐐애액! 사람의 몸에서 난다고는 믿을 수 없는 파공음이 도주혁의 뒤를 따랐다. 곧이어 그가 내지른 발이 어마어마한 운동에너지를 싣고 허공을 갈랐다.

드미트리는 다급히 양팔을 교차해 몸을 가렸다. 그리고 동시에 도주혁의 발이 드미트리의 가드에 꽂혔다.

꽈아아앙! 발과 팔이 만난 자리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터졌다.

콰드득! 드미트리의 팔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졌다. 1세대 AS 수준의 운동 능력을 받쳐주는 강화 인간의 강골이 발차기 한방에 박살 나 버린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힘을 모아 밀어내듯 내지른 앞차기에 드미트리의 거구가 허공을 날았다. 그의 등이 마침내 부딪힌 계단실의 벽을 부수고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막 해가 저무는 늦은 오후의 하늘을 보며 드미트리는 황당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포근한 오후 햇살 속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11층 높이의 허공에서.

“씨바아아알!”

드미트리의 목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드미트리가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도주혁은 빠르게 몸을 돌렸다.

지금 이 소란을 미하일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심지연과 함께 있는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미트리와 무전이 끊긴 걸 확인한다면 곧장 인질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인질의 수는 곧바로 생존으로 직결되니까.

그러니 자신은 3층으로 향하는 연구원들의 뒤를 밟을 것이다. 그들을 노리는 미하일의 목덜미를 물어뜯어주기 위해서.

눈을 빛낸 도주혁이 몸을 날렸다. 여전히 그의 발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


미하일은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애처롭게 떨고 있는 심지연이 마음에 들었다. 그 무력하고 절망 가득한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당장이라도 먹어치우고 싶을 만큼.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목표물을 모두 모아 이 자리를 뜬다면. 그래, 그때가 되면 밤새도록 즐겨주리라. 갈가리 찢어질 때까지.

그런 생각에 흡족한 미소를 짓던 찰나.

꾸웅!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는 꽤나 멀었지만 여기 이곳까지 진동이 느껴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미하일은 다급히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드미트리. 드미트리, 대답하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드미트리! 안 들리나! 대답해!”

몇 번이나 무전을 보냈지만 드미트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그의 민감한 청각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숫자는 십여 명 이상. 템포가 제각각인 걸로 보아 훈련된 이들은 아니다. 계단을 내려오고 있어. 연구원? 11층을 탈출한 건가?’

미하일은 빠르게 정답에 다가섰다.

‘누군가 11층에서 연구원들을 풀어줬다. 드미트리는 12층 소장실에서 연구기록을 입수했다고 했지. 드미트리와의 충돌은 필연적이었겠군. 방금의 굉음은 그 소리인가. 그 이후 드미트리의 무선 침묵. 믿기 어렵지만... 드미트리가 당했군.’

물론 드미트리의 무전기가 파손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하일은 낙관보다 비관이 작전 성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드미트리가 당할 정도의 상대라면... 설마 특수군사령부가 나섰나.’

대한민국 특수군사령부가 보유한 3세대 AS 철군(鐵君). 러시아의 프리즈라크나 미국의 패트리어트에 비하면 조금 손색이 있지만 2세대 AS와 비교하자면 월등한 성능을 가진 게 대한민국의 철군이다.

물론 그런 AS를 운용하는 부대가 상대라면 드미트리가 당해낼 방도가 없겠지만 그들은 아직 움직일 수 없었다.

‘조력자가 벌어준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놈들은 움직일 수 없어.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잠시 고민하던 미하일은 빠르게 상념을 털어냈다.

‘일단 인질을 재확보한다. 대치상태를 만든 뒤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야. 상대가 누구건 특수군사령부만 아니라면 상관없다. 10층의 동무들이 밖으로 나오기만 한다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렇게 판단한 미하일 디미트리엔코는 심지연을 앞세운 채 계단실로 향했다.

자신의 빠른 판단력과 명석한 두뇌를 신뢰하는 미하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서 나아가는 이 길이 누군가가 차려놓은 밥상 위였다는 것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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