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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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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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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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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40화


옆에서 들썩들썩거리는 것이 느껴져 돌아보니, 도마뱀들이 제 놈들 족장이 걱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족장 놈의 권위가 대단했는지, 명령 없이 함부로 나서는 놈은 없었다.

제 놈들도 우두머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눈치였다.


‘가까이서 찬찬히 보니까 알겠네. 여기 수컷 놈들도... 죄다 늙다리들이었어. 그럼 젊은 수컷들은 이미 내 손에 다 뒈진 거였네. 어쩐지... 시작부터 무기력하게 썰려 나간다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족장 놈이 바닥을 기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데, 동시에 박살 나 있던 턱주가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 일어서서 다시 자세를 잡는데, 그새 주둥이가 말끔해져 있었다.


‘으휴, 면상은 될 수 있으면 피해야겠다. 한 대 맞고 기절하고... 그걸 또 깰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하고... 이러다 밤새겠다.’


깡다구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일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시 일어선 족장 놈에게서 위축된 기색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족장 놈이 또다시 무릎을 살짝 굽혔다 펴면서 달려들었다.

추진력을 얻어서 튀어나오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상대와의 체급 차이가 너무 심했다.


손톱을 빠짝 세운 채 달려드는 놈의 코에 하지운의 오른손 잽이 가볍게 들어갔다.

아주 가볍게 쳤는데도, 족장 놈의 앞 주둥이 뼈가 으스러지면서 짙은 초록빛 액체가 터져 나왔다.

놈의 달려드는 속도를 살짝 늦춰 놓고, 잽싸게 놈의 우측으로 뛰어든 하지운이 자신의 오른발을 들어 놈의 오른편 장딴지를 사정없이 찍어 버렸다.


놈의 오른쪽 무릎 부위가 완전히 박살이 나고, 장딴지 밑으로는 발목만 달린 오른발이 저만치 늪 앞까지 굴러가 있었다.

놈이 바닥을 기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하지운은 늪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놈의 떨어져 나간 발목을 집어 들었다.

떨어져 나간 부위에서는 딱히 재생의 움직임이 없었다.

대충 살펴보고는 족장 놈에게 던져 줬다.


하지운은 재생할 때에 떨어져 나간 부위를 절단면에 가져다 대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나머지 파괴된 부위만 새로 돋아나고, 멀쩡한 부위는 도로 붙여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재생할 때 가져다 쓰는 체력량이 워낙 많다 보니, 조금이라도 체력 소모량을 절약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실망스럽게도 족장 놈은 하지운이 던져 준 오른발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금세 다리를 재생시킨 놈은 더욱 자세를 낮추고 튀어나올 준비를 갖췄다.


‘다음엔 아예 강제로 대고 있어 볼까. 저거 재활용이 안 되면, 죽으나 사나 이것들 다 죽이고 레벨 꽉 채워야 한다는 건데...’


골똘히 생각에 빠진 하지운에게 포기를 모르는 족장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얼굴을 노리고 날아드는 오른손은 가볍게 상체만 움직여서 피하고, 우측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족장 놈의 왼손을 낚아채듯 움켜잡았다.

손에 살짝 힘을 주자 족장 놈 왼손의 뼈와 살이 달라붙은 채 뭉그러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족장 놈의 왼 손목을 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저항할 틈도 없이 끌려오는 족장 놈의 복부에 하지운의 오른발이 꽂혔다.


힘을 빼고 가볍게 찬 밀어 차기였음에도, 족장 놈은 달려들던 속도의 몇 배의 속도로 날아갔다.

하지운의 손에 왼팔 삼각근 아래 부분만 남기고, 일족의 전사 여러 명을 볼링 핀처럼 쓰러뜨린 채 한참을 굴러갔다.

또다시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 짓을 몇 번을 반복했는지.

세고 있던 하지운도 스무 번째 이후로 세는 걸 포기했다.

족장 놈의 신체 복구 속도도 갈수록 느려졌다.

그래도 놈의 표정에서 굴복할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족장 놈도 바보가 아닌데 하지운이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곰 기운을 풍겨 대는 괴수 놈은 지금 자신을 부위별로 박살 내 놓고, 그 망가진 부분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자신을 괴롭히며 웃고 즐기는 것도 아니고, 인간들의 복수를 하러 왔다며 분노의 칼질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을 부숴 놓고, 표정 변화도 없이 다친 부위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다였다.

족장 놈으로서는 백 년을 넘게 살면서 이토록 어이없게 공포스러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족장에게 있어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괴수 놈이 지칠 때까지 싸우는 것.

비록 자신은 괴수 놈 손에 죽더라도, 남은 일족의 전사들이 지친 침략자 놈을 찢어 죽일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내고 죽는 것.

그것만이 족장이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참 리더 납셨네. 맞아 죽을 각오를 했다는 거지. 일족을 위해 우두머리가 앞장서서 희생을 감수하다니... 나중에 위인전기라도 한 편 써 줘야겠네... 전공 살려서...’


속으로 이죽거리고는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하지운은 찝찝한 마음에 자잘한 친절이라도 베풀기로 하였다.


족장 놈의 눈에 괴수 놈이 갑자기 뭔지 모를 손짓 발짓을 하는 꼴이 들어왔다.

미친놈이 웬 지랄이지 하고 유심히 보고 있는데 왠지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아리송했다.


뭔가를 하고 있는 하지운으로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처음부터 천천히 동작을 반복해서 보여 줬다.

먼저 검지를 들어 새끼와 암컷들을 가리키고는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손을 사선으로 두 번 내려 그어 엑스 자를 그렸다.

그런 다음 다시 새끼와 암컷들을 가리키고는 늪을 가리켰다.

즉 ‘새끼와 암컷들은 죽이지 않을 테니, 당장 늪으로 보내라’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한 열 번 정도 반복하니, 족장 놈이나 주위를 둘러싼 늙은 수컷들이나 웅성웅성하면서 저들끼리 쇳소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한 편의 신파극을 찍기 시작했다.


수컷들이 암컷들과 새끼들을 늪으로 몰았고, 떠밀린 새끼들은 수컷들의 팔다리에 매달려 눈물을 쏟아 냈다.

암컷들이 억지로 새끼들을 떼어 내고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섬 전체가 놈들의 울음 섞인 비명 소리로 진동을 했다.


‘우와... 이거 할 짓이 아닌데... 마음 약한 놈이었으면 그냥 다 포기하고 소멸 길 걸었겠는데...’


괴물이라는 것들이 생김새부터가 홀딱 벗은 채로 동물 탈 뒤집어 쓴 등치 큰 동네 건달같이 생겼다.

대가리만 빼면 그냥 원시인을 연상시키는 몸뚱어리였다.


‘이 동네에서 대성하려면 보통 모질어서는 안 되겠는데... 인성이 바람직한 놈이면 마음 약해서... 이놈들 몸에 칼이나 제대로 쑤시겠어. 어차피 나같이 정상 아닌 놈들만 남아서 서로 칼부림하게 생겼네.’


한참을 눈물쇼를 벌이는 것을 다 기다려 줬다.

새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것도 다 참아 줬다.


어차피 처음부터 죽일 마음도 없었다.

수컷들 다 죽인 후 대충 겁줘서 쫓아 버리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다 나름 리더의 품격을 보이는 족장 놈을 보고 마음을 바꿔서, 족장과 수컷들이 살아 있는 중에 이들을 보내 준 것이다.


적어도 새끼와 암컷들은 죽이지 않을 테니,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고 마음 편히 죽으라는 하지운의 배려였다.


그리고 대략 한 시간 후 일이삼사는 도마뱀들의 시체를 치우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일이삼사가 천 마리가 넘는 괴물들의 시체를 치우며 치를 떠는 동안, 하지운은 개울가를 찾아 몸을 씻으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왜 자신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인지.

왜 살생을 오히려 부추기는 것 같은지.

말 잘 듣는 살인자 집단을 키워서 어디다가 써먹으시려는 것인지.

로저 놈의 몸을 통해 부활한 이후 매일같이 되새기는 질문들이었다.


아마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잠시만 짬이 나도,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이 질문들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미치도록 궁금한 것만은 하지운으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


그날로부터 십팔 일 후 하지운과 일이삼사는 벨라스터주 할링튼 근방의 황무지에 도착했다.

대습지로 진입하던 날 뗏목을 출발시켰던 바로 그 지점이다.

출발한 날까지 포함해서 이십삼 일 만에 대습지를 한 바퀴 돌아서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이십삼 일 동안 총 네 개 부족 사만 사천여 마리의 도마뱀머리를 도륙했다.

대습지 내의 수컷 성체의 씨를 말려 버린 것이다.

육십 레벨만 넘기려던 당초의 목표치를 월등히 뛰어넘는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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