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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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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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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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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26화


“생각보다는 빨리 왔구나. 애썼다. 그런데 고작 그것으로 네 놈들이 한 달을 버티겠느냐?”

“각하, 돈 되는대로 다 사온 것이옵니다.”

“뭐, 네 놈들이 아껴서 먹으면 되겠지. 그럼 네 놈들은 빵을 네 사람 몫으로 나눠서 보자기에 싸라. 각자 등에 매고 움직여야 하니 알아서 튼튼하게 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뭔 영주인가 하는 친구는 이리 와 봐.”

“네, 각하.”


크랜필드의 영주 피어스가 빠릿빠릿한 동작으로 뛰어왔다.


“고통 없이 보내줄게. 잘 가.”

“네?”


하지운의 손날이 놈의 목 좌측면에 박혔다.

피어스의 목뼈가 부러지면서 왼뺨이 어깨와 밀착했다.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놈의 시체를 대충 들어서 바위 뒤로 던져 버렸다.


‘이놈도 부활하든지 말든지. 발견이 되든지 말든지. 내가 그런 거 무서워하면서 살아야 돼?’


피어스 놈의 능력 ‘간절한 표정 연기’가 상태창에 떴다.

상태창의 문장을 잠시만 보고 있었는데도 짜증이 치밀어 바로 삭제를 떠올렸다.


‘이래서 능력 강탈을 고르는 게 겁났던 거야. 인간을 상대로 써서 재미 볼 능력이 아닌 거지. 이 동네에 괴물조차 없었으면...’


“졸개들을 이끌고 내 가문에 살인, 강간, 약탈을 하러 오던 놈을 살려줄 정도로 내가 호인은 아니다. 너희 네 놈은 단지 졸개의 신분이라서 살려 두는 것이다. 앞으로 나를 섬기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야.”


졸개 네 놈은 빵을 옮겨 담다 말고 뛰어와 하지운의 발 앞에 몸을 던졌다.

이마를 땅에 찍으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온 세상을 감동에 젖게 만들 것 같았다.


“로저 드레이시! 천세! 천세! 천천세!”

“로저 공에 대한 저희의 마음은 일편단심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따위가 아닌, 폭풍 속에서도 단단히 자리를 지키는 바위와 같은 마음이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희의 곧은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옵니다!”


‘이야, 대사 톤부터 표정 연기까지 직이는구만. 아니, 잠깐... 내가 저 비슷한 대사를 얼마 전에 어디서 들었는데... 아!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아니! 그 양반은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연기 장인인데... 이 놈들이 더 뛰어난 듯한... 이 놈들 죽이고 능력을 뺏어 버릴까... 원래 세상으로 복귀하면 배우를 하는 거야!’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말이 떠오른 하지운이었다.

졸개 놈들의 애절한 연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서 정리하고 말에 올라라.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나는 동작이 빠른 놈을 사랑한다.”

“네! 각하!”


하지운은 능숙하게 말에 오르며 새로 얻은 부하들을 다그쳤다.

몸무게가 200kg이 훌쩍 넘는 하지운을 싣고도 말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콘체스터종이라고 했던가. 로저 놈의 가문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해 냈다고 보는 게 맞겠지. 망아지에게 괴물 피를 먹여서 키운... 그 집구석이 한 일이 참 많네.’


콘체스터종 말은 변경 지역뿐만 아니라 괴물 피를 먹은 이가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만나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한기차 같은 존재이다.


‘뭐, 같은 콘체스터종이라 해도 다 같은 것은 아니구나. 타 보니까 알겠네. 로저 놈이 타던 말이 와이라, 아제라 같은 거라면 이놈은 쌍팔년도 스텔라정도... 그래도 시골 귀족이 타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군.’


결국 부활한 지 열여섯 시간 만에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했다.

여러 일을 겪고도 250km에 달하는 거리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주파했으니, 하지운으로서는 나름 대단한 데뷔전을 치룬 것이다.


‘저게 대습지구나. 아마존이 저렇게 생겼으려나...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있어야 뭘 알지.’


“말에서 내려라. 걔네들 몸에 올려 둔 거 다 치워 줘라.”


‘집으로 돌아가든 어디 가서 야생마가 되든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말들을 보내 버리시면 저희는 어떻게...”

“뭘 어떻게 해. 나 따라서 저기로 들어가야지.”

“저, 저기로 말입니까? 저 곳에는 죽지도 않는 괴물들이 잔뜩 살고 있사옵니다! 공께서도 아시지 않사옵니까?”

“어, 알아. 그래서 우리 가문이 개간하기도 더러운 이 땅을 그대로 둔거야. 곳곳이 늪 천지인 데다가 잘 죽지도 않는 것들이 득시글거려서. 들어간 비용에 비해 나올 것들이 마뜩찮아서.”

“아! 그, 그건...”

“우리 가문이 아주 잘못했어! 그저 비용! 비용! 이런 것만 따질 줄 알았던 거야! 주변 이웃들의 고충 같은 건 생각도 안 한 거지! 배려심이 부족했어! 그러니 자네들 같은 용사들이 검을 들고 결연히 떨쳐 일어났지!”

“죽여주시옵소서! 이 놈들이 천지 분간을 못 하고 대죄를 지었습니다!”

“아우! 정말?”

“아, 아닙니다! 살려 주시옵소서!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시옵소서!”

“경들은 들으라. 내 너희를 죽이려면 일찌감치 이 손가락 하나로 하나하나 눌러서 죽였을 것이다. 도망칠 용기도 없는 너희들 따위를 죽이는데 무슨 번거로움이 있었겠느냐.”

“지당하시옵니다!”

“허나! 가문 밖에서 처음으로 거둔 수하들이 네 놈들이다. 내 넉넉히 자비를 베풀 것이야. 경들은 안심하라.”

“천세! 천세! 천천세!”


졸개들을 시켜서 뗏목을 만들게 했다.

이러려고 살려둔 거였다.

하지운은 이들을 요긴하게 써먹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곳은 공기가 맑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들이 아주 살벌하게 컸다.

제국이 땅 밑으로 꺼지면서 대륙 중간에 거대한 바다가 생겨서 그런지 따뜻하면서 습기도 많은,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뭐 산림업에 종사하다 온 것도 아니고. 어쨌든 동네가 전체적으로 참 보기 좋네! 괴물들만 없으면 관광업만으로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을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졸개들이 그럴듯한 뗏목을 만들어 냈다.

피지컬이 허접해 보이기는 해도 괴물... 비슷한 놈의 피를 먹은 놈들이라 그런지 힘들은 곧잘 썼다.


‘내가 이놈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구나! 이 놈들! 드레이시 가문의 여종들과 자강두천을 벌일 수 있는 강자들이야! 앞으로 더욱 종놈들처럼 중하게 써야겠다! 아, 호칭도 정해 둬야지! 키순으로 일이삼사가 좋겠네. 이름 외우기도 귀찮으니까.’


뗏목을 훑어보다 거듭 감탄하는 하지운이었다.

통나무에 덩굴들만 감은 것이 아니었다.

늪지에 빠져 죽을까 봐 두려워 최선을 다해 만든 것이 보였다.

말안장에 붙어 있던 가죽 끈, 유사시를 대비해 지니고 다니던 밧줄, 심지어 제 놈들이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의 밑단까지 잘라서 두 번 세 번 감아 놓은 것이 보였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야! 돕고 살아야지! 이 놈들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졸개 일이삼사가 열심히 노를 젓는 동안 하지운은 뗏목 한가운데 서서 한가로이 경치를 감상했다.

물의 흐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라 그런지, 처음 젓는 놈들치고는 아주 잘하고 있다.

뗏목이 시원시원하게 움직여서 하지운의 마음도 한층 가벼워졌다.


‘아, 상쾌하구나! 이 맛에 해외여행들을 그렇게 많이들 가는 거였구나. 대한민국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들! 아름답구나!’


거대한 나무들이 물속에 잠겨있는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경을 보면서 하지운은 밤새도록 달리면서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 버렸다.


‘스마트폰도 가져올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풍경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


갑자기 상태창으로부터 신호가 오는 듯했다.

하지운은 설마 하는 생각에 상태창을 열어봤다.

상태창 오른쪽 구석에서 플레이리스트가 깜빡이고 있었다.

맹세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승아야... 너 센스 쩌는구나... 근데 여기 나 혼자 온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빵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나만 특별 대우하는 것은 아니지? 이러면 윗분이 불편해하시는 거 아냐?’


갑자기 플레이어가 재생되면서 ‘나는 문제없어’가 흘러나왔다. 분명히 신나는 멜로디인데 괴상하게 서글프게 들렸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이 노래가 있었나... 이게 도대체 언제 적 노래야.’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인데.

하여튼 좋았다.


‘혹시 이게 썸이라는 건가? 서른세 살이나 먹고 고작 이런 일에 가슴이 뛰다니 쪽팔리는군...’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계속 히죽거리는 하지운이었다.

그리고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일이삼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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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착 (6) 23.06.18 213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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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정착 (4) 23.06.18 232 4 9쪽
20 정착 (3) 23.06.18 241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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