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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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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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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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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6화


솔직히 낚시질을 꼴랑 하루 하고, 결실을 볼 거란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이기적인 성격 파탄자 하지운이라 해도, 그 정도로 날로 먹는 걸 바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냥감들이 부탁도 안 했는데, 정말 제 발로 찾아들 왔다.


보람찬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일이삼사와 늦은 저녁을 가졌다.

하루 종일 늪 속에서 생사의 혈투를 한 일이삼사는 식사를 마친 후 금세 눈꺼풀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직 자정이 되려면 시간이 한참 남은 것 같은데, 넷 다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던 하지운은 일이삼사에게 이른 취침을 명하려 하였다.


‘어! 뭐야? 언제 이만큼 모여들었어? 어, 계속 몰려드네! 대박! 이 새끼들 개콘데! 근데 피 냄새 맡고 온 거야? 똥 냄새 맡고 온 거야? 물어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그거 위주로 뿌리지.’


둘 다 맡았다.

그리고 둘 다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늪 속에서 이들의 후각은 절대적이었다.

늪에 맞게 진화해 온 최고의 결과물들이 이들이다.

하지운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떠올린 것이다.


“한 번 경험해 봤으니, 이번에도 잘 살아남을 것이라 믿는다. 나무 위로 올라가 달라붙어 있어라.”


꾸벅꾸벅 졸던 일이삼사가 멍한 눈으로 하지운을 쳐다보다가, 다들 정신이 확 들었는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미 찜해 둔 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늪에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 둔 끈들도 충분히 있었고, 빵 자루는 이미 나무 위에 높이 묶어 둔 상태였다.


하루 내내 낚시질을 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괴물들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나무 위로 몸만 피하면 될 정도로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일이삼사는 미리 준비해 둔 끈으로 나무에 몸을 묶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처박았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저 악마 같은 하지운이 괴물들에게 죽지 말고, 얼른 다 쓸어버려 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물론 모든 괴물들과 악마가 다 같이 사이좋게 뒈져 버리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테지만...’


물론 일이삼사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무려 어제의 두 배가 넘는 오천여 마리의 도마뱀머리가 세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인근에 서식하던 도마뱀머리 괴물 중 수컷 성체 전부가 몰려왔다.

동족들의 비극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의 범위, 그 안에서 서식하던 놈은 빠짐없이 다 온 것이다.


그 많은 수의 괴물들이 고작 하지운 한 명에게 떼죽음을 당했다.

심지어 팔도 한쪽 없는 놈에게.


고작 한 번의 싸움이었지만, 하지운은 괴물들을 상대하는 요령을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포위당한 상태로 싸우지 않기 위해, 미리 가파른 언덕 밑에 터를 닦아 두었다.

그리고 그 둘레에 적당한 크기의 바위들을 깔아 두었다.

어제 써먹은 시체의 참호가 굉장히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괴물들이야 웬 처음 보는 새끼가 혼자 폼 잡고 있으니, 당연히 그쪽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머릿수가 있는데 설마 자신들이 지겠냐고 생각했다.

아무리 곰의 기운을 풍기는 놈이라 해도 고작 한 놈인데, 자신들이 다 죽을 거라는 생각이나 들었겠는가.


몰려온 놈들 중 삼 할 정도가 죽자, 도마뱀머리들의 기세가 팍 꺾여 버렸다.

그러자 독사 같은 하지운이 지친 척, 힘에 부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심지어 다리가 풀린 듯 비틀거리며 오른손에 쥔 망치를 땅에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거기에 몸을 지탱하면서 숨을 몰아쉬는 퍼포먼스까지 보여 줬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괴물들이 다시 덤벼들자, 신이 난 하지운이 또다시 쇠사슬을 꺼내 들고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러다 다시 괴물들이 주춤거리자, 이번에는 땅에 무릎까지 박고 입술까지 깨물어 피를 흘리는 시늉까지 하였다.


하지운은 순진한 괴물들에게 희망 고문을 거듭하면서, 야금야금 그들의 머릿수를 줄여 나갔다.

그러다 몇백 마리 안 남았다는 판단이 들 때쯤 본색을 드러냈다.

살기를 있는 대로 뿜어내서 놈들의 사고를 마비시킨 다음, 최대한 잔인하게 놈들의 육신을 박살 냈다.

어제 했던 살육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좀 더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세련되게 학살을 하였다.


전날보다 배는 더 되어 보이는 시체 더미를 보면서, 일이삼사는 더 이상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죽어서 지옥에 가도... 이런 꼴은 안 보게 될 거야...’

‘살아서 지옥을 보게 되다니... 신이시여!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이까?’

‘제발... 이게 다 꿈이었으면... 그냥 악몽이었으면...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저 마왕 대신 아름다운 아내와 따뜻한 침상에서 함께였으면...’


참고로 ‘사’ 그는 아직 미혼이다.


일이삼사는 붕괴되어 가는 정신을 부여잡고, 시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야, 다 모을 필요 없어. 팔만 한 스무 개 정도 남기고, 나머지는 싹 버려. 늪에다가 대충.”


명령들이 하나같이 주옥같다.

고작 이틀을 같이 있었는데 들은 말들 중에 기억하고 싶은 말이 거의 없다.

살려는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부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것들뿐이었다.


‘팔도 다 버리지... 이것들은 또 왜? 뭐 하게? 이 미친놈아! 이걸 모아서 뭐 하려고...’


자꾸 소름 끼치는 상상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바닥을 뒹굴면서 마음껏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에, 일이삼사 모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새벽 결국 사달이 났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다.

물론 하지운과 일이삼사 사이의 격차가 쥐와 고양이 정도가 아닌, 햄스터와 시베리아 호랑이 정도이지만 말이다.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나머지 일이삼이 묵언으로 사력을 다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알이 돌아간 ‘사’는 악마를 죽이고 평화롭던 시절로 돌아가는 황홀한 상상을 하며, 고양이 걸음으로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서 홀로 세상 편하게 처자빠져 자고 있는 하지운이 보였다.

몇 걸음 안 남았다.


‘사’는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검을 역수로 쥔 채 한 걸음 한 걸음에 온 정신을 다 쏟았다.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운 앞에 선 ‘사’는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검을 처음 잡은 후로 이처럼 동작 하나하나마다 빠짐없이 정성을 쏟은 적이 없었다.

검과 육신이 하나가 된 듯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 듯한 ‘사’는 망설임 없이 검을 하지운의 심장에 내려찍었다.


‘사’의 거침없는 행보에 언덕 밑에서 올려다보던 일이삼은 적지 않게 놀랐다.

그가 이토록 용맹한 전사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들 모두 마음속으로 감탄을 하며, 온 마음을 다해 응원했다.


검을 내려찍은 ‘사’가 그대로 미동도 없다.

하지운에게서 반응이 없으니,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즉사한 모양이었다.

일이삼의 얼굴에 눈부신 미소가 피어오르던 그 순간.

‘사’의 사타구니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벌어진 그의 가랑이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일이삼은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그래도 젖 먹던 힘을 다해 자신들의 잠자리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이불로 쓰던 망토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입을 틀어막았다.

금세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사’는 곧 죽을 것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이라도 살아야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는 척을 할 생각들이었다.


“뭐 해? 안 자고?”


하지운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검 끝을 잡은 채 헤실헤실 웃으며 물었다.

‘사’가 가랑이를 벌린 상태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러고는 나무늘보라도 된 듯이 느긋한 걸음으로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멀리서 보면 세상 느긋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사’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지린 채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사’의 눈알은 초점 없이 방황을 했고, 얼굴엔 핏기 하나 없었다.

입과 코에선 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입술은 새카맣게 변한 채로 쉬지 않고 떨렸다.


늪을 향하던 ‘사’의 등 뒤에서 흙바닥을 밟는 소리가 뒤따랐다.

천근같이 무거워진 다리를 질질 끌고 겨우 늪 앞까지 왔다.


“제발... 오지 마세요... 제발... 오지 마세요... 제가 그냥 알아서 죽을게요... 제발 따라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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