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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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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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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354

작성
23.06.1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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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정착 (8)

DUMMY

24화


로저의 가문에서 시작한 사업인데 변경 지역에서는 괴물들을 잡아서 거래하는 사업이 성행하고 있었다.

소머리 괴물은 무리지만, 개머리나 돼지머리정도는 쇠사슬에 묶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목부터 양팔과 양다리까지 모두 묶어 놓아야 하지만.


그래서 쇠사슬 달린 쇠말뚝은 변경 지역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인기 상품이었다.


“열 개면 충분하네. 이거면 되겠는가?”


처음에는 쇠말뚝이 무슨 정성이 많이 들어간 물건도 아닌데 몇 푼이나 되겠나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제철 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대도 아닌 듯한데 귀한 쇳덩이를 통으로 집어넣은 물건이 싸구려일 리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금화 열 닢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순간 대장장이 노인이 웃음을 참으려 죽을힘을 다해 애쓰는 것이 보였다.

신분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는 평민의 처절함이 느껴졌다.


“나리, 지나치게 많습니다. 금화는...”


‘편의점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를 낸 상황 같은 건가?’


“되었네. 남는 것은 창으로 가져가겠네. 튼튼한 것으로 금액 맞춰서 가져와 보게. 아, 전투용 망치도 두 자루 챙겨 주게.”


망치라는 부분에서 노인의 어깨가 움찔했다.

하지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또 실수를 한 것 같았다.


‘로저 이 새끼! 완전 연예인이네! 모르는 사람이 없냐... 아오... 내 실수다! 실수!’


“이보게, 내가 자네를 죽여야 하나? 그것보다 자네는 귀족도 아닌데 소집령을 받았을 리도 없고... 우리 가문 몰래 주변 놈들 꼬시려면 조심해서 했을 텐데... 왜 자네가 알고 있는 것 같지? 자네 뭔가?”


하지운의 살벌한 분위기에도 대장장이 노인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각하, 이웃 영주분께서 얼마 전에 찾아오셔서 제게 검을 손보게 하셨습니다. 그때 그 분이 함께 오신 귀족분과 나누시는 말씀을 제가 살짝 엿들었습니다. 용기가 없어 각하의 가문에 미리 알리지 못 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영감 솜씨가 좋은가 봐. 굳이 찾아오고. 그런데 영감이 뭔데 우리 가문에 경고를 해? 목숨까지 걸고? 우리 가문을 위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아닙니다. 딱히 없사옵니다.”

“그럼 그건 됐어. 그런데 내가 영감을 죽여야 하냐고 묻잖아.”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각하를 밀고해 봐야 각하께서 쓰신 돈의 반의반이나 받으면 다행일 겁니다. 제가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각하를 상대로 만용을 부리겠습니까? 들어오시면서 경비병이라는 놈들 못 보셨습니까? 그 놈들 말도 제대로 못 탈 겁니다. 어느 세월에 전사들을 불러오겠습니까?”

“이상하단 말이야.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이상하게 총명하단 말이야.”

“제발 어디 가셔서 저희 가게에서 사셨다는 말씀만 말아 주십시오. 제가 더 걱정됩니다.”

“자네도 걱정 말게. 이 마을을 떠나면 난 한동안 사람 볼일 없을 걸세.”


노인은 킬리산맥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다 무기들을 끌고 나왔다.

귀족 행세를 위해 앉아 있으려던 하지운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자네는 무기 앞으로 가서 손으로 가리키기만 하게. 내가 들겠네.”

“각하! 제가 어찌...”

“이 노인네야! 나 급해! 자네가 보기에는 내가 안 급해 보이는가?”

“솔직히... 굉장히 급한 상황으로 보이옵니다. 그럼 천한 놈이 실례를 범하겠나이다.”

“어서 범하게.”


무기들을 탁자 위에 다 쌓아 두고 하지운은 금화를 하나 더 꺼냈다.


“이거 받게. 오늘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뜻으로 주는 걸세. 그리고 잠깐 거처로 들어가서 식사나 하고 나오게. 그사이에 난 사라져 있을 것이니.”

“감사합니다, 각하. 그리고... 보중하십시오.”

“자네도 오래 살게.”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거처로 들어가자 하지운은 쇠말뚝과 무기들을 수납장으로 쓸어 넣었다.


대장간을 나간 하지운은 마을길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외벽이 보이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외벽을 한 번 딛고는 그대로 뛰어넘어 버렸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그는 멈추지 않고 킬리산맥까지 질주했다.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나온 대장장이 노인은 탁자에 앉아 방금 겪은 일을 떠올렸다.

신기해서 웃음이 나왔다.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이라더니 소문이 와전된 건가? 아니면 어디서 고생이라도 해서 사람이 변한 건가? 변한 거면 지나치게 많이 변한 건데...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기사님을 보는 줄 알았네.’


킬리산맥에 도달하고 나서야 하지운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곳에서 부활하고 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평온함이었다.


‘이래서 사람이 죄 짓고는 못 산다고 하는구나. 고작 열몇 시간 정도를 도망 다녔는데... 스트레스 작살이네! 얼른 이 동네에 자리 잡아서, 내가 그 놈들을 잡으러 다녀야지. 도망 다니는 것은 도저히 할 짓이 아니야.’


딱히 추적자도 없는 듯한데 열심히 도망쳤다.

다시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엄청 다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데, 또 뭔가 엄청 쪽팔리기도 했다.

하지운 자신이 팔도 하나 없이 반역자로 몰린 이런 상황에, 도망 좀 쳤다고 수치심을 느낄 상남자는 아니었다.


‘성격이 점점 로저 놈을 닮아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네. 아까 리처드인지 뭔지 하는 새끼를 참교육했을 때도 너무 담담해서 당황스러웠는데.’


원래 영화 보면 주인공이 살인을 하고는 골목으로 뛰어가서 울고불고 토하고 난리를 치던데, 하지운은 입안이 상큼할 만큼 배 속에서 올라오는 게 없었다.


‘씨발! 신물 정도는 올라왔어야지! 인간미가 전혀 없잖아! 안 그래도 껍데기도 전혀 인간미가 없는 마당에...’


그러다 하지운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므흣한 기분이 들었다.


‘팔만 원상 복구하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면, 압구정에서 헬스 트레이너를 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겠는데. 이 몸이면 미국 도지사 리즈 시절에 비교해도 훨씬 낫지. 거기다 이정도 면상이면... 크흡.’


한창 흐뭇한 생각에 발걸음이 경쾌하던 하지운의 귀에 짜증스럽게도 잡음이 섞여 들어왔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내려다보니 산 아래 공터에 다섯 놈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옆에 말을 세워 두고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니,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번에 드레이시 놈들을 몰살시키고 나면 누가 콘체스터를 갖게 되는 겁니까?”

“뭐, 폐하와 측근들이 나눠 가지시겠지. 그 큰 영지를 한 놈에게 몰아주시겠는가?”

“하긴 엄청 크긴 합니다. 한 집구석이 다 해 먹는 게 말이 안 되긴 했습니다. 제 놈들이 뭐라고...”

“크큭, 어차피 너한테 떨어질 땅도 아닌데 누가 먹든 네가 왜 궁금해?”

“뭐 이 자식아! 그냥 궁금하다는 거지... 넌 안 궁금해?”

“그만! 누가 콘체스터를 차지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누가 차지하든 반드시 설득해서 대습지 개간 사업을 추진하도록 만들어야 해! 우리 벨라스터주의 모든 영주들의 꿈이 아닌가!”

“맞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먼 서쪽 숲 근처의 장원을 받아서 뭐 하겠습니까? 관리도 힘들 텐데. 공을 세워서 대습지 개간 사업을 약조 받는 것이 훨씬 낫겠지요.”

“애초에 드레이시 놈들이 대습지를 개간해 줬으면 오죽 좋았겠습니까. 그 놈들 재력과 무력이라면 하고도 남았을 일을... 그저 허구한 날 숲만 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놈들이 왜 해 줘! 대습지를 그대로 둬서 우리 주와 어네스퍼드주를 촌구석으로 남겨두는 게 그 놈들한테는 이득일 텐데. 우리를 제 놈들 종인 줄 아는 놈들이잖아!”

“그래, 더러운 놈들! 이번에 싹 다 죽여 버려야 해! 제 놈들이 자초한 거야! 이웃들도 좀 돕고 살아야지. 이기적인 놈들!”

“무슨 소리! 사내놈들만 싹 죽이고 계집들은 살려 둬야지. 그 집구석 계집들이 그렇게 미모가... 크큭.”

“아서라, 네 차례나 오겠냐? 이렇게 늦게 가는 마당에.”

“그런데 왜 펀트니는 나서지를 않는 거야?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어야지! 도대체 왜 가만있는 거야? 이렇게 우리 주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가면 우리말을 들어나 주겠어?”

“그러게 말이야. 어네스퍼드의 세비니는 움직인 모양이던데.”

“세비니는 심지어 그 집안 사위라고! 그런 놈도 나서는데 우리 백작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백작이고 나발이고 그렇게 겁이 많으니 우리 주가 이 모양 이 꼴이지.”

“자네 입조심해. 아무리 무능해도 우리 윗사람이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듣긴 누가 들어? 이런 벽지에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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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복구 (10) 23.07.01 17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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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복구 (4) 23.06.18 199 3 9쪽
29 복구 (3) 23.06.18 192 4 9쪽
28 복구 (2) 23.06.18 201 3 9쪽
27 복구 (1) 23.06.18 214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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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정착 (7) 23.06.18 211 3 9쪽
23 정착 (6) 23.06.18 213 3 9쪽
22 정착 (5) 23.06.18 222 4 9쪽
21 정착 (4) 23.06.18 232 4 9쪽
20 정착 (3) 23.06.18 241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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