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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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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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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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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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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정착 (4)

DUMMY

20화


로저 이 상또라이는 얼마 전 벨램튼주의 상위 영주이자 백작인 오즈번 루지먼트의 성에 찾아가 행패를 부린 적이 있다.

외동딸인 아그네스를 갖고 싶다고 당장 내놓으라는 예의가 아예 배제된 청혼을 하였다.


“웨스털랜드의 백작이여. 내 딸은 이미 약혼자가 있소. 내 딸이 마음에 들어 직접 어려운 걸음 하신 것은 감사하오. 하지만 내 딸 아그네스와 약혼자인 마틴은 이미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오. 공께는 미안하오만 이만 돌아가 주시오.”


벨램튼 백작은 신분이나 아버지뻘 되는 나이를 고려했을 때 굉장히 정중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미 로저 놈의 굉장히 싸가지 없는 청혼을 듣고서도 말이다.


“공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도 양보를 하겠소. 내 한 달 후 다시 찾아올 것이오. 그때 나와 그 마틴이라는 놈이 결투를 하게 될 것이오. 그 자리에서 승자가 아그네스 양을 차지하도록 합시다. 한 달이면 결투를 준비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오.”

“이보시오, 로저! 그게 무슨 정신 나간 헛소리요! 이 왕국에 어떤 미친놈이 그대와 결투를 한단 말이오! 내 사위될 놈은 거버스 틸리얼이 아니오!”

“그만! 루지먼트 공, 그대가 이 제안조차 받지 않겠다면, 내 조상이신 위드링튼의 로저 경의 무덤에 걸고 맹세컨대, 이 망치로 당신의 머리를 후려쳐 저 성벽 밖까지 날려 버릴 것이오! 물론 이 성안의 다른 이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운 자신은 로저 이 미친놈의 몸뚱어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이놈의 원한까지 다 물려받은 것이다.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지금 벨램튼주에 들어갔다가 누군가 이놈 면상을 알아보면 좆 된다. 아마 그 지역 영주들 전부가 흉기를 들고 쫓아올 거다. 한 팔이 없는 이 기회에 죽여 버리자고.’


지금 하지운이 서 있는 이곳에서 벨라강을 따라 서쪽으로 더 이동하면 어네스퍼드주와 콘체스터주가 나온다.

그곳은 더 가면 안 될 곳이다.

어네스퍼드주와 콘체스터주에는 드레이시 가문의 장원들이 널려 있다.

두 개 주 전체가 전쟁터일 것이다.

심지어 앨커스터주 내에도 로저가 험프리에게서 직접 받은 장원이 이백 개나 있다.

여기서 한 시간 거리도 안 된다.

그 곳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로저의 몸을 차지했으니 드레이시 가문의 멸문을 막기 위해, 하지운 자신도 무엇인가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살짝 들기도 했다.

팔도 하나 없는 상태에서 가서 무슨 도움이 크게 될까 싶기도 했지만, 완전히 외면하는 것도 뭔가 께름칙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하지운의 몸이 스스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뭔가 비겁자가 된 기분에 짜증이 치밀어 콘체스터 방향으로 살짝 몸만 돌려도 갑자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처음에는 하지운 스스로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생각에 쫄아서 몸이 무거워진 줄 알았다.

반대로 몸을 돌려봤다.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하지운은 뭔가 시험해 보고 싶어져서 다시 뒤돌아 걸어 봤다.

분명히 콘체스터 방향을 보고 있는데 몸은 점점 멀어졌다.

소름끼치는 상상을 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 봤다.

허리 부위가 꽈배기처럼 돌아가 있었다.

분명히 몸을 뒤도 돌렸다 생각했는데 상체만 돌아간 것이다.


‘아니! 이러면 죽었어야 되는 거 아냐? 척추가 버티나?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오른손으로 볼을 힘껏 꼬집어 봤다.

볼이 터지며 피가 쏟아졌다.


‘이런, 씨벌! 아파 죽겠네! 잘생긴 얼굴에 흉졌잖아!’


뭔가 느낌이 싸해져서 자신의 뒤통수를 만져 봤다.

뒤통수 한가운데 부분만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하지운은 자신이 처음 이곳에서 부활했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의 영혼에 섞여 들어오던 로저 드레이시의 영혼의 파편들이 생각났다.


이것들이 하지운 자신의 성격만 조금 바꿔 놓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제들 딴에는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고 느낀 건지 몸의 움직임까지 통제하려 들었다.

이러면 하지운 자신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로저 드레이시가 부활하면서 자신을 흡수해 버린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순간 하지운의 머릿속에 알람이 울린 듯했다.

뭐지 하는 생각에 상태창을 열어보니 Q&A창에서 불이 반짝이고 있었다.


‘Q&A창? 이런 게 있었나? 아까 봤을 때 분명 없었는데...’


Q&A창을 쳐다보고 있자 갑자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로저 놈의 영혼의 파편이 제 머릿속에 남아서 제 몸을 허락도 없이 움직이려고 해요. 어떡하죠?”


순간 하지운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빵 터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아 냈다.

아무래도 승아 그 애가 자신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 내서 상황극을 하고 있는 듯했다.


“드물긴 하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어요. 생전에 굉장히 강했던 자의 몸을 차지하게 될 경우 그 몸에 남아 있던 영혼의 찌꺼기가 새로 들어온 영혼을 잡아먹으려 들죠. 이 경우에 해결 방법은 단 하나에요. 강해지세요. 역으로 본인이 그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흡수해 버리셔야 해요.”


이번에는 승아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가 한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웃으면서 듣던 하지운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결국 자신의 의지력이 약해서 발생한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고작 찌꺼기 따위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버렸다.

그리고 심지어 도움까지 받았다. 창피해서 얼굴이 타 버릴 것 같았다.


‘고마워. 내가 얼른 강해질게. 그리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직접 해결할게. 너에게 자꾸 도움 받으면 강해지기는커녕 너에게 계속 의지하고 싶어질 것 같아.’


콘체스터로 갈 생각은 완전히 접어 버렸다.

하지운 자신이 드레이시 집안과 직접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다고 목숨까지 걸겠는가.

로저 놈의 몸은 고맙게 빌려 쓰겠지만 고마운 것으로 끝이다.


‘어차피 드레이시의 멸문은 못 막는다. 가문의 최고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로저가 팔이 잘린 채 죽었다. 그러고는 아직 이곳에 적응도 못한 나에게 조종받고 있다. 거기다 마법사 놈까지 가세했다. 마법사 놈이 불덩이를 날려 대면 성벽도 소용없다. 아무리 드레이시의 정예가 막강하다 해도 얼마 못 버틸 거다.’


무엇보다 몸의 원주인이 가지 말자고 조르지 않는가.

로저 놈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여실히 느꼈지만, 이 자식은 정말 지밖에 모르는 소시오패스다.

자기 목숨을 위해서라면 가족조차도 버릴 수 있는 놈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버리고 있다.


‘로저 이놈도 가기 싫다는데 내가 왜 가? 솔직히 가기 겁났는데 안 갈 수 있는 명분을 줘서 고맙다. 로저, 이 이기적인 소시오패스야. 원래 소설들 보면 이야기가 거꾸로 전개되어야 하잖아! 너랑 나는 아주 개막장이다! 그래 우리 살길이나 찾으러 가자! 나중에 짬나면 복수는 해주마!’


복수라는 말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펄떡펄떡 뛴다.


‘미친 새끼... 지랄을 한다.’


벨라스터주 최남단에 위치한 스탠브리지.

앨커스터주와 맞닿은 벨라스터주 내의 유일한 마을이다.

어네스퍼드주와 벨램튼주 사이의 저 좁은 땅으로 잽싸게 지나가는 것이 하지운이 생각하는 최선의 경로였다.


몸에 지니고 있는 무기가 하나도 없어 그냥 손날로 나무를 썰어 버리기로 했다.

왠지 해보면 될 것 같았다.

하지운은 양 무릎을 살짝 굽히고 다리를 벌려 자세를 잡았다.

오른팔을 들어 올려서 그대로 내리치려는 순간 그의 귀에 괴상한 비명이 들렸다.


‘의지력이 약한 게 아니라, 기가 허한 거 아냐? 자정이 지났을 텐데 이런 야산에 이 무슨 해괴한 소리야? 로저 놈에게 음란마귀 기질도 있었나?’


한 번이면 무시하려 했는데 조금 있다가 비슷한 소리가 또 들렸다.

하지운은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어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 근처로 다가가 나무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었다.


‘아오, 이 야밤에 잠도 안 자고 무슨 개잡놈의 짓거리냐? 이런 식상한 전개라니... 꼭 이런 장면을 마주쳐야만 하는 거냐...’


아이들도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을 추구했던 하지운로서는 매우 거북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하지운의 위치에서 약간 아래쪽에 위치한 언덕 중턱에서 웬 가죽 갑옷을 입은 놈이 젊은 처자 하나를 흙바닥에 처박아 놓고 강제로 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검을 찬 덩치 두 놈이 돌아서서 망을 보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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