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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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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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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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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9화


삼천여 마리의 괴물들 시체를 뒤로 하고, 한 시간 정도를 더 노를 저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드디어 하지운과 일이삼사는 새로운 섬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 저래서 아까 그 놈들이 길을 막고 버텼던 거구나!”


섬에는 엄청난 수의 도마뱀머리 괴물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지금 하지운이 보고 있는 섬은 어제 떠나온 곳에 비하면, 세 배는 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땅덩어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늪에서 가까운, 지대가 낮은 지역은 괴물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놈들 대부분이 너무 작았다.

상대적으로 연약해 보이는 놈들을 둘러싸고, 극도로 긴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는 놈들이 대충 천 마리 정도 되어 보였다.

그 외에는 죄다 작거나 가냘파 보이는 놈들이었다.

하지운이 난데없이 쳐들어와서 도마뱀 수컷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하는 동안, 암컷과 새끼들이 죄다 이곳으로 도망쳐 온 모양이었다.


‘이야! 오늘 제대로 빌런이 되겠는데! 오늘이 바로 이 하지운 님의 공식적인 빌런 데뷔일이다! 피해자는 도마뱀머리 한 개 종족의 수컷 전체! 증인은 애잔한 일이삼사와 이 종족의 암컷과 새끼... 염병... 너무 악랄한데... 좀 쿨하고 뽀대 나는 빌런이 좋은데...’


그래도 어차피 수컷은 다 죽일 계획이다.


‘승아야 번식할 새끼는 남겨 둬야겠지?’

‘뭐... 그러든지...’

‘내가 작가 출신이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거일 수도 있는데... 여기 십 왕국인가 말야. 설정만 보면... 누가 만드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성의가 없고... 좀 허접하더라고...’

‘......’

‘아! 화내지 마!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냐... 근데... 또 막상 여기 며칠 있어 보니까, 고작 일회용 서바이벌 게임장 치고는 너무 신경 써서 만든 느낌이란 말야...’

‘......’

‘대답 안 해도 되니까 듣기만 해. 그냥 내가 느낀 점을 말하는 거야. 이거 일회용이 아니고, 몇 번은 더 써먹을 공간인 거 같더라고.’

‘......’

‘근데 내가 번식할 애들까지 다 씨를 말려 버리면... 승아 너나 같이 그... 활동하시는 선배님들이... 선배님들 맞지? 네가 막내라고 했잖아. 어쨌든 그분들하고 너랑 다음에 오는 참가자들을 위해, 이놈들을 다시 어떤... 노동 같은 걸... 해서 채워 넣어야 하잖아.’

‘......’

‘그러면 선배님들이 너한테 “니 남친 때문에 우리가 뭔 고생이야”라고 하면서, 널 갈굴 거 아냐... 아니 뭐... 좋으신 분들이겠지만... 그래도 안 해도 될 일이 추가되면 누구나 개빡치잖아.’

‘......’

‘그래서 앞으로도 어떤 종족을 만나든, 개체 수를 유지할 적정 수의 생존자들은 남겨 두려고. 어때, 나 기특하지? 여...친...의 직장 생활까지 챙기는... 기특하지 않아? 칭찬 좀 해 주면 안 돼?’

‘방금 하지운 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저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또한 참가자분들의 개인적인 추론에 대해서는, 그 어떤 논평도 해 드릴 수 없다는 것도 알려 드립니다.’

‘아, 뭐래... 칭찬해 달랬지, 인정해 달랬나. 글구 난데없이 웬 존댓말.’

‘아이 씨, 애냐? 뭔 칭찬은...’

‘됐다... 엎드려 절 받기도 힘드네...’

‘야... 하지운... 아... 짜증나네... 아이 씨... 이건 네가 생각한 것들이 맞아서 하는 말이 아니고... 그냥 내 직장 생활까지 신경 써 주는 마음 씀씀이가 아주 기특해서 하는 말인데... 그러니까...’

‘뭔 말인데? 뭔 대단한 말을 하려고 뜸을 그렇게 들이는데?’

‘기특하니까... 살아서 돌아오면 뽀뽀해 줄게...’

‘... 뽀...뽀... 아 좋아라...’

‘... 실망...한 거니?’

‘그럴 리가... 너무... 기뻐...’

‘어이가 없네. 새끼가.’

‘뭐?’

‘야! 모쏠아다 하지운!’

‘뭐!!’

‘여자랑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본 게! 어디서 센 척이야! 네가 뽀뽀를 무시할 입장이야?’

‘아이 씨...’

‘그리고 뽀뽀부터 시작하는 거지... 기지도 못하는 게 날 생각부터 하고 있어! 같잖아서!’

‘특급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칭찬 고마우니 어서 돌아가... 가서 자...’

‘크큭, 나 갈게. 근데 너 너무 긴장이 풀린 거 같다. 그러다 훅 가. 고무신 신고 기다리는 내 생각도 좀 해.’

‘충고 고마워. 얼른 가.’


임승아와의 대화에서 본전을 챙겨 본 적이 없는 하지운이었다.

눈도 벌겋게 뜰 수 있는 애가 입담도 좋아 보였다.

돌아가면 어떤 방식으로 같이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극도의 단련을 통해 귀신도 상대할 기예를 익혀야 할 것 같았다.


잠시 딴생각을 하던 하지운은 다시 비장하고 처연한 분위기가 감도는 도마뱀 일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저 새끼가 족장인가? 졸라 눈에 띄게 혼자 파란색이네. 근데 원래 종족 자체가 약한 놈들이라 그런가... 왤케 비리비리해 보이지. 기대 이하네.’


도마뱀들 한가운데 서서 근엄하게 똥폼 잡고 있는 파란 놈을 보며, 실망감에 한숨을 쉬던 하지운이 일이삼사를 바라봤다.


‘그럴 줄 알았다.’


이삼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도마뱀들을 보고, 립싱크라도 하듯이 입만 붕어처럼 벙긋거리는 일이삼사였다.

한숨을 쉬면서 이들의 면상을 보고 있던 하지운이 친절을 베풀었다.

가만두면 쇼크가 와서 급사라도 할 것 같아서였다.


“천 마리 정도 빼고 전부 새끼랑 암컷이다.”

“아아!!”

“물론 네놈들 정도면 암컷하고 싸워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겠지만.”

“......”

“내가 사슬을 던지면 네놈들은 그 끝을 잡고 버텨라. 사슬 위를 밟고 나만 섬으로 들어갈 테니까.”

“그, 그럼 저희는...”

“뗏목 위에서 기다리면서 응원이나 해. 아니면 나 버리고 도망치든지.”

“도, 도망이라니요... 저희끼리만 가면... 살아서 나가겠습니까...”

“그럴 리가. 죽겠지. 당연한 걸 물어.”

“... 열심히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사슬을 꺼내서 대충 돌린 후 섬에다 집어 던졌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쇠말뚝이 퍽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쇠말뚝이 꽂힌 곳 주변에 서 있던 도마뱀들이 움찔하면서 물러섰다.

하지운이 사슬의 끝을 일이삼사에게 건네주며 한마디 보탰다.


“네놈들이 대충 잡아서 내가 늪에 빠져 죽으면 네놈들은 죽어. 쟤들한테. 그런데 내가 늪에 빠졌다가 안 죽고 살아 나오잖아. 그래도 네놈들은 죽어. 나한테.”

“죽을힘을 다해 잡고 있겠습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뛰어오른 하지운이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 위를 날듯이 달려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섬 위로 뛰어든 그는 쇠사슬을 꺼내 힘차게 돌렸다.


단숨에 열댓 마리의 도마뱀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동시에 만 단위의 도마뱀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수컷 성체들과 싸울 때는 몰랐는데, 굉장히 시끄러운 종족이었다.

새소리 같기도 하고 기름칠 안 한 모터 소리 같기도 한데, 어쨌든 하지운으로서는 듣기 싫어 죽을 것 같았다.


짜증 나는 쇳소리를 참으며 사슬을 휘둘렀다.

새끼들과 암컷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각오를 하고 나온 놈들 치고는 너무 무기력하게 죽어 나갔다.

한 백 마리 정도 죽이니, 놈들이 차츰 물러나면서 족장 놈이 앞으로 나섰다.


손톱을 바짝 세우고 앞으로 나서는데 나름 비장해 보였다.

하지운도 사슬을 수납장에 도로 넣고 맨손으로 기다려 줬다.


왼팔이 없다 보니 가드를 하기 위해,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고 왼손잡이 복서처럼 자세를 취했다.

복싱을 해 본 적은 없어도 글을 쓰기 위해 본 것은 엄청 많았다.

물론 눈으로 본 것만 가지고 실전에서 써먹는다는 것은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이기는 하다.

그래도 왠지 로저의 몸이라면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줄 것 같았다.


족장 놈이 자세를 살짝 낮췄다가 총알 같은 속도로 튀어나왔다.

왼팔은 앞으로 뻗어 하지운의 목을 노렸고, 오른팔은 살짝 들어 올려 사선으로 내려찍듯이 얼굴을 할퀴려 하였다.


타이밍을 재고 있던 하지운이 오른편으로 살짝 빠졌다.

두 발을 동시에 가볍게 띄워서 옆으로 움직인 후, 왼 다리부터 신체의 좌측을 뒤로 회전시켰다.


족장 놈이 하지운의 좌측으로 스쳐 지나가려는 찰나.

자연스럽게 하지운의 신체 우측이 앞으로 향했고, 도는 회전력에 몸을 싣고 오른손 훅을 가볍게 찔러 넣었다.


도마뱀머리 놈들의 허접한 신체 내구력을 생각해서, 튀어나온 주둥이에 정말 가벼운 훅을 끊어 친다는 생각으로 툭 쳤다.


한 번에 뒈질까 봐 두려워, 정성을 다해서 살살 쳤다.

주먹도 살살 쥐고, 팔에 힘도 과할 정도로 다 뺐다. 무슨 연체동물처럼.


그런데도 족장 놈은 땅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은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미세하기는 하지만 규칙적인 숨소리에 하지운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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