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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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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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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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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7화


더 이상 걸을 기운이 남지 않은 ‘사’가 네발로 땅을 기면서, 사력을 다해 애원을 했다.

뒤를 돌아볼 용기가 없던 ‘사’는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안 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제, 제발 따라오지 마! 너 같은 마귀에게 고문당하다 죽고 싶지 않아! 내, 내 손으로 직접 죽을 거야!”

“도대체 어딜 가는 거니? 이 새벽에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너 같은 벌레가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러지 말고 얼른 가서 자. 내일도 할 일이 참 많아.”


땅바닥에 손가락을 박아 넣은 채, 몸을 질질 끌던 ‘사’가 움직임을 멈췄다.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저, 정말 절 안 죽이실 건가요?”

“내가 언제 너희 같은 천한 것들에게 거짓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속일 필요성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가, 감사합니다, 각하.”

“기왕 이렇게 된 거 거기 자는 척 하는 세 버러지도 이리 오거라.”


순간 망토를 집어 던진 일이삼이 벼락같은 속도로 하지운의 발 앞에 날아들었다.

거의 네발로 뛰어드는데 무슨 치타인 줄 알았다.


“자비로우신 로저 공 만세!”

“만 살까지 만수무강하소서!”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저놈 혼자 저지른 짓입니다.”

“맞습니다. 저 미친놈! 감히 신의 축복을 받은 용사 로저 공께 무슨 겁대가리 없는 짓이냐? 신벌이 두렵지 않느냐?”

“감사함을 모르는 놈! 살려 주신 은혜를 잊고, 오히려 고귀하신 분께 참담한 짓으로 되갚다니... 이 짐승 같은 놈!”


세 놈이 ‘사’를 손절하고, 자신들이라도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참 서글펐다.


“네놈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다가 날벼락 맞은 상황인가 보구나?”

“맞습니다! 각하! 바로 보셨습니다!”


순간 참지 못한 하지운이 빵 터졌다.

미친 듯이 키득거리는 하지운을 보면서, 일이삼사는 고개를 땅에 처박고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그 정도만 해라. 너무 웃겨서 죽일 것 같다.”


그 말에 일이삼사 모두 흙바닥을 기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운의 다리를 붙들고 살려 달라고 빌려는데, 몸이 마비가 되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운이 손에 들고 있던 ‘사’의 검으로 놈들의 뒤통수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


“더 이상 꿈틀거리지 말고 머리통을 들어라. 그리고 나를 봐라. 날 보라고! 이 병신들아!”


하지운의 호통에 일이삼사가 온갖 액체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아우 씨... 도로 내리라고 할까...’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미쳐서 덤비지만 않으면 살려 주겠다고. 내 말이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네놈들 따위에게 죽을 만큼 만만해 보인 것인가?”

“아닙니다! 왕국 최강의 용사이신 로저 공의 절륜한 무예를 모르는 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정말 저놈 혼자 정신이 나가서 한 미친 짓입니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괴물들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잠시 정신을 놓아 버렸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것입니다!”

“아! 괴물이 날뛰는 모습은 무섭고, 내가 날뛰는 모습은 우스웠구나?”

“아닙니다! 어흑...”


‘사’는 순간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다, 겨우 숨을 몰아쉬면서 진정을 했다.

‘사’의 호흡이 돌아오는 것을 느낀 후, 하지운은 말을 이어갔다.


“도마뱀머리들을 다 죽이고 나면, 너희를 곱게 풀어 줄 것이다. 살려서 풀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너희 신체에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내 선조이신 로저 위드링튼 경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그 말에 일이삼사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꽃피었다.


“그런데... 내가 너희더러 도마뱀머리들과 싸우라고 한 적이 있었나? 나 혼자 다 때려죽인 거 아니었나?”

“그, 그러하옵니다.”

“그런데 왜 네놈들이 힘들어하지? 힘들어도 내가 힘들어야지. 삭신이 다 쑤시는 마당에. 네놈들이 한 게 뭐가 있지? 시체 치운 거랑, 늪 속에서 울면서 똥 싸지른 게 다 아니었나?”

“지, 지당하시옵니다...”

“하는 것도 없는 놈들이 징징대기나 하고! 애초에 네놈들 다 죽이려 했어. 쓸모가 있을까 봐 살려 둔 거잖아. 그러면 그 정도는 충실히 해야지. 네놈들 두목 새끼 뒈지는 거 못 봤어? 고생 없이 편히 떠난 그놈이 부러워? 네놈들도 편한 곳으로 따라갈래?”

“아닙니다! 가기 싫습니다! 약혼자에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잠 못 들고, 고향에서 눈이 빠져라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전 아직 결혼도 못했습니다! 크흑...”

“전 아내가 만삭입니다! 아기 얼굴도 못 봤다고요! 굽어살피소서!”

“저는 고령의 노모가 홀로 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 곁에는 버릇없는 여종 몇이 다인데... 제가 죽으면 어머니 패물을 들고 야반도주할 게 뻔한 년들입니다...”

“저런... 사연들이 하나같이 절절한 놈들이... 왜 혈기를 주체 못하시고 내 목을 베려 하셨을까... 아무리 내가 처자고 있었다 해도, 네놈들 수준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만큼도 없었을 텐데...”

“주제를 몰랐습니다! 뼈에 사무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머저리들이 저희입니다! 공의 뜨거운 위명을 듣고도 분수를 모르고 까분 모지리들이라 생각해 주소서!”

“네놈들 말이 구구절절이 옳다.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구나. 이제 다 이해가 되었으니, 경들은 마저 휴식을 취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로저 드레이시! 만세! 만세! 만만세!”


며칠을 더 같이 지내야 할지 모르는데, 한 번은 겪고 지나가야 할 일이었다.

하지운으로서는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서라도, 일이삼사에게 극복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다 말고 ‘사’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을 때, 하마터면 박장대소를 할 뻔했다.

너무 반가워서.

이렇게 빨리 정 줄을 놓고 덤벼들지는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겁만 많은 것이 아닌, 인내력까지 빈약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자신들이 아무리 미쳐도 절대 해선 안 될 짓이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고, 대신 당근으로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심어 줬다.


이튿날 일이삼사를 이용한 낚시질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 어떤 분의 방문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낚시터로서의 이곳의 기능이 다한 것이다.


6월 6일 아침.

이 섬에 도착한 지 사 일째 되는 날, 하지운은 그새 정이 든 낚시터를 둘러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정렬해 있던 일이삼사에게 크랜베리 뭐시기의 망토와 옷가지들을 던져 줬다.


며칠 전 하지운은 크랜 뭐시기를 죽인 후, 옷을 그대로 입혀 둔 채 수풀에 대충 던져 버렸었다.

그러고는 말에 오르던 중 갑자기 생각을 바꿔서, 일이삼사에게 크랜 뭐시기의 옷을 전부 벗겨 오라고 시켰었다.

비록 자신에 비해 덩치가 많이 작아도, 옷 한 벌이 아쉬운 상황이라 그냥 버리고 가기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유용하게 쓰게 됐잖아. 안 벗겨 왔으면 어쩔 뻔했어.’


“천들을 뜯어서 보자기처럼 만든 다음, 모아 둔 괴물들의 팔을 싸라. 안 빠져나오게 잘 묶어라. 그리고 오전 중에 이 섬을 떠날 것이니 뗏목을 점검해라. 뗏목이 중간에 부서져도 내가 죽을 일은 없다. 네놈들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니 꼼꼼하게 살펴라.”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친놈이... 도대체 저걸로... 뭘 하려는 거야?’


섬에서 대습지 안쪽 방향으로 향하는 수로는 둘이었다.

하나는 북쪽으로 다른 하나는 서쪽으로 뚫려 있었는데, 둘 다 너비는 한 사 차선 도로 정도 되어 보였다.

이 두 곳을 빼면 나머지는 전부 물에 잠긴 거대한 나무들과 각종 늪지 식물들로 막혀 있었다.


하지운은 별 고민 없이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원래의 선택 장애를 앓고 있던 그라면 둘 중 하나 고르는 데도 한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찌질하고 소심해 보이던 증상들 모두 멸치 같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들이었다.


딱히 그렇게까지 조심하면서 살 필요가 없는 몸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사람이 백팔십도 바뀌어 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제 성격이 다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일이삼사가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처절한 긴장감 속에서 노를 젓는 동안, 하지운은 뗏목 한가운데 드러누운 채 햇살을 즐겼다.

눈에 천불이 나도 손톱만큼도 표현하지 못하는 서글픈 일이삼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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