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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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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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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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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8화


“그만. 노 젓는 건 그만두고, 묶어 놓은 천들이나 풀어라.”


오전 중에 출발하여 한 열 시간 정도 지난 듯했다.

해가 점점 저물어 가는 걸 보니, 저녁 여덟 시쯤 되었을 것이다.

하루 내내 처누워서 발만 까딱거리며 히죽거리던 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하지운의 말에 녹초가 되어 가던 일이삼사가 반색을 했다.

중간에 빵 하나 먹은 시간을 빼면, 열 시간 가까이를 쉬지 않고 노만 저었다.

넷 다 속으로 새로운 섬이 발견되기만을 간절히 빌고 있었다.


“호, 혹시 섬이옵니까? 감지 능력이 일천한 저희 눈에는 아직 보이는 것이 없어서...”

“아니. 도마뱀이야.”

“네?!!”

“거기 천에 묶어 놓은 거 얼른 다 풀고, 제자리에서 돌아앉아.”


그러다 자신의 좌우에 앉아 격렬하게 보따리를 풀고 있는 ‘일’과 ‘이’를 보고, 하지운이 한마디를 더 얹었다.


“야, 너희 둘. 좀 앞으로 움직여. 거기 중간쯤에 앉아.”

“예?”

“예는 뭐가 예야. 거기 앉아 있다가, 내가 휘두르는 거에 처맞고 골로 가고 싶어? 난데없이 죽어 있을래?”

“아닙니다!”


분명히 하지운이 뗏목 중간쯤에 앉으라고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놀란 일이가 오버를 했다.


“하아, 네놈들 사귀지? 남색 취향이었어? 아내가 만삭이라면서? 어디서 애인도 없는 놈한테 부비고 자빠졌어?”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면 떨어져. 그러고 앉아서 어떻게 노를 저어. 제발... 죽이고 싶게 만들지 마라... 네놈들 편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흐흑 저, 절대 아니... 흑흑...”


‘하아, 내가 차라리 돌아가서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말지... 다 큰 어른들이 뻑하면 울고 똥 싸고...’


‘이’가 우는 동안 일삼사가 부리나케 보따리를 풀어서 하지운의 발 앞에 깔아 뒀다.

하지운이 초록빛이 도는 팔 하나를 쥐어 들었다.


“그만 처울고 노나 꽉 잡아라. 나 빼고 다 뒈지는 꼴 보기 싫으면. 내가 저으라고 하는 순간부터 앞만 보고 졸라게 저어라. 알아들었냐?”

“네! 각하!”


‘근데... 이 새끼들. 분위기가 이전 놈들 하고는 다르네. 경계가 아니고, 이건 임전 태세라고 봐야 하나. 조금만 더 들어오면 받아 버릴 기세인데...’


하지운은 ‘괴물들의 팔뚝을 남겨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팔을 집어던졌다.


‘진을 치고 있는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나. 졸라 빡치게 해서 유인해 주마.’


잠시 후 늪 속에서 뭔가가 지랄 발광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날아온 것이 동족의 신체 일부라는 것을 깨달은 놈들이 분노에 몸부림을 치는 듯했다.

그래서 더 빡치라고 두 개 더 던져 줬다.


‘아! 다음에는 고추를 잘라 놓아야겠다! 그래야 보고 진짜로 개빡치지!’


진짜로 그렇게 했다.

어쨌든 잠시 전방의 늪 속을 관찰하던 하지운이 여유롭게 한 마디 했다.


“저어.”

“네! 각하!”


일이삼사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노를 휘둘렀다.


뗏목이 쏜살같이 나가지 않고, 제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합을 맞춰서 빨리 젓는 연습을 해 본 적이 없구나... 미치겠네...’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수납장’에서 창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손에 창이 잡히자마자 수직으로 늪 속으로 내려찍었다.


창을 들어 올리자 창날에 묻어 있던 짙은 초록빛 액체가 날을 따라 흘러내렸다.

하지운은 뗏목 위를 산보하듯 걸어 다니며, 뗏목 주위의 물속에 창을 박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한 백 번 정도 했을까.

하지운이 창을 어깨에 걸친 채 입을 열었다.


“병신들이 찢어 죽일 기세로 달려들더니, 고작 백 놈도 안 죽인 거 같은데... 그새 쫄았네.”


늪 속을 바라보며 혀를 차던 하지운이 노를 들고 아직도 등신짓을 하고 있던 일이삼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그만하고 네놈들이 창 잡아. 내가 노 저을게. 답답해서 내가 하고 말지.”

“아닙니다! 제발 저희가 하게 해 주십시오!”

“창 잡기 싫으면 노라도 잘 저어야 할 거 아냐! 네놈들 모두 박자를 맞춰서 노를 저어야 앞으로 가지! 제각각 마구잡이로 휘두르는데 앞으로 가냐! 제자리를 돌고 자빠졌지!”


하지운의 말에 일이삼사도 깨닫는 게 있었는지, ‘일’이 나서서 하나 둘을 외치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앓느니 죽지. 애새끼 넷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


뗏목이 드디어 앞으로 나아갔다.

문제는 어두워진 상태에서 뗏목이 제자리를 계속 도느라, 방향 감각이 사라진 일이삼사가 반대 방향으로 뗏목을 몰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운은 염통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전투 중에 빵 터지면 위험할 것 같아서, 억지로 참다 보니 장이 꼬이는 것 같았다.


‘어흑, 너무 웃겨... 살려 줘... 승아야...’


마음이 급해지니 삐진 것조차 잊어버리고 썸녀에게 의지했다.


‘지운아, 정신 차려! 웃긴 거는 이해하는데, 앞에 도마뱀이 몇 마리 있는지 잊었어? 뚝 그치고 집중해!’


걱정 가득한 썸녀의 일침에 정신을 차린 하지운이 일이삼사에게 흐느끼며 물었다.


“용사들아! 도마뱀들에게 돌진하는 것이냐?”

“네??”

“왜... 반대로 모느냐... 크흑...”


그 말에 대경실색한 일이삼사가 그 자리에서 돌아앉은 후 필사의 노질을 시전했다.

또다시 뗏목이 회전했다.


빵 터진 것은 하지운만이 아니었나 보다.

바짝 긴장한 채 쳐다보고 있던 도마뱀머리들도 뭔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놈들도 많이 웃긴 모양이었다.


“제발... 손이 떨려서 창을 잡을 수가 없다. 너희 모두 오늘 죽을 각오를 미리 해 둔 것이냐?”

“아닙니다... 으흑...”

“그러면 제발... 저 방향으로 박자 맞춰서 침착하게 저어라. 네놈들이 이런 식으로 내게 시련을 주다니... 이 상황에서 내게 복수라도 하려는 것이냐? 용맹한 놈들...”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황당하고, 가장 미칠 것 같은 이들은 일이삼사였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물범벅이 된 상태로 전신을 덜덜 떨면서 노를 젓는데, 하나 둘 하는 소리조차 겨우 토해 내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뗏목이 원래 의도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숨 넘어 가기 직전까지 몰렸던 하지운도 겨우 진정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이삼사의 등신짓이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된 듯했다.


방금 전 하지운의 신들린 창질에 순식간에 백여 마리의 도마뱀머리들이 즉사했다.

대충 감각만으로 쑤셨는데도 기가 막히게 머리를 맞춘 것이다.

거기다 창 자체가 자루 즉 창신까지 통짜 쇠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내려찍는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머리 주위만 맞춰도 몸통에서 바로 대가리가 떨어져 나갔다.


심지어 이곳이 늪이다 보니 수심이 그렇게 깊지가 않았다.

하지운이 손에 든 오 미터 길이의 장창이면 늪 바닥에 딱 붙어서 접근하는 놈들도 얼마든지 죽여 버릴 수 있었다.

원래 소머리 피 먹은 놈들 쓰라고 만들어진 창이어서 굵기도 엄청났다.

그러니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창이 엔간해서는 휘지도 않았다.

그런 창을 비록 한 팔만 사용한다 해도 로저의 몸을 이용해서 휘두르고 있다.


그 많은 놈들이 동시에 덤벼들고도, 한 놈도 뗏목 밑으로 접근도 못해 보고 다 죽어 버린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니 당황한 도마뱀머리들이 쉽게 접근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놈들의 긴장을 일이삼사가 부드럽게 다 풀어 주었다.


곰 냄새를 풍기는 외팔이 괴수 놈 하나 빼면 나머지는 웃기는 광대들이었다.

빵 터진 도마뱀머리들이 기세등등해져서 일제히 달려들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이놈들 쉽게 버리지 말아야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는구나.’


기세 좋게 접근해 오는 도마뱀들의 대가리에 창질을 하면서, 애정 어린 눈으로 일이삼사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멈춰라. 더 이상 따라오는 놈이 없다. 다시 돌아가서 유인해야겠다.”

“네?”

“네? ‘네’는 무슨 ‘네’야? 쟤들 다 안 죽일 거야? 쟤들이 주위에서 헤엄치고 있는데, 뗏목 위에서 그냥 잘 거야?”

“아아...”

“네놈들 여기까지 오는데 열 시간 정도 걸렸지? 편하게 잠들게 아까 그 섬으로 돌아갈까? 또 열 시간 넘게 노 저어서?”

“......”

“어차피 네놈들이 편해지려면 저것들이 다 죽는 수밖에 없어. 하나하나 말해 줘야 아냐?”

“송구하옵니다! 저희가 여러모로 워낙 부족한 놈들이라... 각하의 깊은 뜻을 미리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알면 되었다. 얼른 돌아앉아라.”


두 시간 정도가 지난 후, 근방의 늪 전체가 짙은 초록빛 액체로 다 뒤덮여 버렸다.

어두워져서 다행이었다.

소녀 감성의 일이삼사가 그걸 봤으면 또 얼마나 무서워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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