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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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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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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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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5화


하지운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이죽거리자, 또다시 일이삼사의 눈물겨운 사죄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무병장수에 대한 염원이 가득한 놈들이 그렇게 쉽게 긴장을 놓아서야 되겠느냐? 긴장이 풀리려 하거든 어제 죽은 너희 두목 놈을 떠올려라. 잡생각이 싹 달아날 것이다.”


그 말에 더욱 탄력을 받은 일이삼사는 이천 마리가 넘는 괴물들의 시체가 전부 사라질 동안,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더 이상 던질 만한 것이 없어지자, 하지운은 일이삼사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명했다.

그러고는 일장 연설을 이어갔다.


“네 놈들이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늪지 개간을 해 주고 있지 않느냐. 기쁘지 않느냐?”

“물론 기쁘옵니다! 다만 고귀하신 각하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가... 이런 일은 아랫것들에게 맡기시는 것이... 어찌 직접 괴물들을 상대하시는 것이온지...”

“맞습니다! 각하! 여기서 이러실 것이 아니라... 세력을 규합하시어 천인공노할 거버스 놈의 목을 치시는 일이 더 우선되어야...”


일이삼사의 충심 가득한 조언에 하지운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경들은 생각이 짧구나! 내 어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을 마주하고도 외면해 버린 채, 내 개인적인 은원만을 앞세울 수 있겠느냐? 그것이 이 왕국을 지탱하는 제후의 도리라 할 수 있겠느냐?


하지운의 결기 가득한 연설에 일이삼사가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내 너희의 오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 늪 속의 괘씸한 괴물들을 씨를 말리려 한다! 네 놈들도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개와 돼지의 수고를 마다하지 마라!”


참고로 이곳에서는 돼지머리 괴물과 개머리 괴물이 가축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말 대신 돼지가 수고로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미친 반역자 새끼! 이러니까 왕 놈이 죽이려 했지! 대역 죄인으로 쫓기는 놈이 난데없이 왜 괴물들에게 화풀이야!’

‘정신 나간 놈! 그럴 기운이 있으면 왕성으로 쳐들어갈 것이지! 왜 우릴 붙잡고 이 지랄이야!’


일이삼사가 하지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간절한 마음을 띄워 보냈다.

물론 전달되지 않았다.

오히려 청천벽력 같은 소리만 듣게 되었다.


“네놈들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줄을 넉넉하게 만들어 와라. 네놈들 갑옷을 뜯든, 넝쿨을 꼬아 오든 그건 네놈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어찌 되었든 네놈들 목숨이 걸린 일이니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들어 와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하지운은 갑자기 허공에서 쇠말뚝 달린 사슬을 꺼냈다.

오른손으로 사슬을 잡자마자 위로 튕긴 그는 사슬을 놓고, 허공에 떠 있던 쇠말뚝의 끝부분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땅바닥에 수직으로 꽂았다.


일 미터가 조금 안 되는 쇳덩어리가 사슬과의 연결 부위만 남기고 한 번에 박혀 버렸다.

망치질 한 번 없이 말뚝의 팔 할 정도를 한 손으로 박아 넣는 차력을 보고, 일이삼사는 군소리 없이 조용히 지시에 따랐다.


일이삼사는 최선을 다했다.

그들이 로저로 알고 있는 하지운은 만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허언을 한 적이 없다.

하지운이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말할 정도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살아서 지옥을 뒹구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자꾸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자신들의 구명줄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햇살을 즐기고 있던 하지운에게 비장한 표정의 일이삼사가 다가왔다.

노래를 스무 곡 정도 들었으니 한 시간 반 정도 지난 듯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라고 할 게 아니네... 이 정도면 코끼리도 포박할 수 있겠는데. 많이도 만들었다. 섬에 넝쿨이 남아 있질 않겠다.’


“키가 큰 순서대로 일렬로 서라. 눈치 보지 말고 얼른 서!”


하지운의 다그침에 일이삼사가 총알 같은 속도로 정렬했다.

가장 앞에 선 일에게 수납장에서 꺼낸 자물쇠를 건네줬다.

클러필의 대장간에서 사슬과 세트로 산 것이다.


“맨 앞의 놈부터 순서대로 늪에 들어갈 것이다. 사슬 끝부분을 몸에 한 번 감고 자물쇠를 걸어라. 그리고 사슬 구멍마다 네놈들이 만든 줄을 엮어서 몸에 칭칭 감아라. 대충 해서 죽으면 네놈들 손해이니 알아서 해라. 아 그리고 걸치고 있는 천은 벗어 두고 들어가라.”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 일 대신 이삼사가 줄을 감아 줬다.

비록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생지옥을 같이 경험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흘러넘칠 정도였다.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마음으로 미라를 만들어 놓았다.


“머저리들아. 팔다리는 움직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목 부위에 줄을 그렇게 감아 놓으면, 네놈들이 건져낼 때 죽어서 올라오지 않겠냐?”

“다, 다시 하겠습니다.”


한숨을 쉬면서 기다려 줬다.


“다 했습니다. 각하.”


하지운은 일의 몰골을 확인한 후 사슬을 쥐었다.


“늪 속에 들어가거든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비명을 지르고 싶으면 마음껏 지르고. 변이 나오려 하면 참지 말고 다 싸 갈겨라. 네놈이 난동을 부리면 부릴수록 좋다.”


공포에 질린 일은 두 눈을 질끈 감았고, 하지운은 괴력을 과시하며 사슬에 감긴 일을 머리 위로 띄운 상태로 회전시켰다.

한 다섯 바퀴 정도 돌리고는, 절도 있는 기합과 함께 늪으로 사슬을 집어던졌다.


일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토해 내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그러다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진 순간 발부터 수직으로 입수했다.

대충 던진 것 같아도 하지운의 섬세한 테크닉이 있었다.

그의 정교한 조절 능력이 없었다면 머리부터 처박혔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일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뭐 하냐? 사슬들 잡아. 저놈이 빨려 들어갈 것 같으면 계속 당겨 줘야지. 뒈지게 둘 거야?”


이삼사가 부리나케 사슬을 잡고 팽팽하게 당겼다.


“죽지만 않을 정도로 유지해라.”


‘이 지옥의 마왕 같은 놈! 산 사람을 괴물을 유인하는 미끼로 쓰다니...’

‘벼락을 맞을 놈! 어떻게 사람의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나올 수 있냐...’

‘다음은 내 차례인가...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먼저 갈 것 같습니다. 잘해 드리고 싶었는데...’


변경에서는 괴물들을 잡아서 다양하게 활용하다 보니, 그놈들을 묶어 둘 쇠사슬도 개량을 거듭하게 되었다.

지금 이삼사가 매달려서 용을 쓰고 있는 사슬도 굵기나 길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굵기는 괴물 피를 먹지 않은 평범한 성인의 팔뚝만 했고, 길이는 족히 삼십 미터는 더 되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뭍에서 꽤 먼 거리까지 던져 놓을 수 있었다.


‘딱 삼 일만 해 보고 낚이는 게 없으면 이동한다. 이런 섬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이곳에서 한도 끝도 없이 죽치고 있을 수는 없지. 베이스캠프로 이상적인 곳이기는 하지만... 아까워도 어쩔 수 없다. 시간이 남아도는 게 아니니까.’


분명히 그 자신 말고도 다른 참가자들이 존재한다.

그들 모두 하지운 자신처럼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경쟁자들이다.

그 경쟁자들도 어디선가 자신들의 기술을 성장시키고 있을 것인데, 이런 오지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하지운은 자신을 제외하고도, 벌써 일곱 명이 넘어와 있다고 추측 중이었다.

자신보다 앞서 다섯이 넘어왔을 거라는 생각은 막연한 추측이 맞지만, 그보다 늦게 넘어온 둘은 우습게도 하지운 자신이 직접 죽인 놈들이다.


‘강간왕 리처드와 크랜베리인가 뭔가의 영주 피어스. 이 등신들의 두목.’


그저께 밤 리처드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그 순간, 상태창에서 알람이 울리고 임무 목록에 리처드 피츠존이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그 순간 확신했다.

이곳에 자신만 온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도 모두 제거 대상이라는 것을.


거기다 어제 크랜베리 뭐시기를 죽인 후, 일이삼사와 말을 타고 이동 중에 또다시 알람이 울렸다.

임무 목록에 추가된 피어스 몰빌이라는 이름.

자신의 확신에 근거를 더해 주는 이름이었다.


사실 다섯이든 아니든, 하지운 자신보다 먼저 이곳으로 넘어온 놈들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는 추론에 확신을 주는 사건이 있었다.


로저의 기억이 맞다면, 이곳의 역법과 지구의 태양력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래서 하지운은 자신이 사실은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지구의 어떤 미지의 공간으로 납치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해 봤다.

그러다 자신 따위를 굳이 왜라는 결론에 이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재 이곳의 날짜는 6월 4일이다.

이곳의 시간으로 올해 2월 초에 로저는 아주 황당한 보고를 받았었다.

서부 변경에 속하는 탤머스주에서 괴물 시체가 돌아다니면서 깽판을 친다는 얼척 없는 보고였다.

서부 변경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던 드레이시 가문이니 보고가 가장 먼저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괴물도 아니고 괴물 시체가 설친다는 보고에, 당연히 빵 터진 로저는 망치를 들고 직접 가서 다 때려 부수려 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들이 탤머스주 내의 세드버리 성만 작살내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탤머스 백작인 휴버트 도일리가 개빡쳐서 전사들을 끌어모아, 인근의 숲을 샅샅이 뒤져 봤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을 뒤져도, 걸어 다니는 시체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 움직이는 시체에 대한 추가 보고는 없었다.


그런데 정말 하지운을 빵 터지게 하는 것이 있었다.

임무 목록에 세드버리 성주 필립 퍼렛의 장남 아서의 이름이 떡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이 이름이 여기 있으면 안 된다.

벌써 넉 달 전에 죽었다고 보고가 올라온 놈이다.


‘이 새끼가 사령술사란 말이네. 어쩐지... 이런 장르의 게임에 네크로맨서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러니까 임승아 이 나쁜 기지배가... 딱 잡아뗐다는 거지!’

‘얻다 대고 나쁜 기지배래?’

‘나 아직 다 안 풀렸어! 왜 나와!’

‘흥! 더럽게 오래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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