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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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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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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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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3화


‘뭐?’

‘어제 하루 지구에서 죽어 대기 중이던 모든 영혼들 중 네 본성이 가장 로저와 닮아 있었다고! 네가 로저와 성격이 가장 흡사했다는 말이야!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줘?’


하지운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뿐이다.


‘그래, 쌩판 남이었던 둘을 섞어 버리는데, 성격들이 너무 이질적이면 정신이 맛이 가겠지... 다중 인격처럼 되지 않겠어.’


그는 정신이 멍해진 상태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의 말을 인정해 버렸다.

자신이 로저 같은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을 짝사랑해 오던 그녀에게 다 들켜 버렸다.

뭔가 부인할 기력조차 생기지 않았다.


평생 얌전한 범생이처럼 살아 온 하지운이었다.

그런데 가장 들키기 싫은 사람에게 들켜 버렸다.

잡아뗄 여지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그만 자포자기해 버린 것이다.


‘살기 위해서면 뭐든 해! 여긴 네가 걱정하는 지옥도 없고, 거기다 난 원래 나쁜 남자 취향이라고!’

‘내 밑바닥을 봤으면... 나쁜 남자란 표현이 안 나올 텐데... 너 관음증 변태에... 특이 취향이구나...’

‘... 내가 네 치부를 다 알고 있다고 그렇게 풀이 죽을 필요 없어. 나도 내 비밀 하나를 알려 줄 테니까...’

‘하나? 고작 하나? 그래 가지고 내 깊은 쪽팔림이 해소되겠어? 그냥 냅둬. 내가 알아서 추스를게.’

‘고작 하나...라고 생각 안 들걸. 다 듣고 나면... 하나 더 얘기해 달라는 엄두도 안 날 거야. 아무리 너라도...’

‘뭔데? 그 비밀이? 설마 관음증 말고도 더한 게 있어?’

‘너 내가 어떻게 죽었고, 왜 소멸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계속 물어보고 싶은데 참고 있잖아.’

‘뭐 그렇기는 한데... 싫으면 말 안 해도 되고...’

‘난 스물하나에 죽었어. 교통사고로...’

‘......’

‘나처럼 저승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데는 기준이 있어. 먼저 성인이었어야 하고, 그리고... 요절해야 해... 천수를 누린 사람에게 굳이 이런 기회...를 제시할 필요가 없으니까. 또... 그리고... 마지막 조건은... 가장 믿었던 사람 손에 살해당해야 해...’

‘교통사고...라고 했잖아?’

‘내가 나쁜 남자가 좋다고 했잖아. 등신 호구는 정말 질색이거든. 주변에서 착하다 해 주면 좋아하는 등신 말야. 다 제 등쳐먹으려고 하는 말인데... 아... 그러니까... 아빠라는 호구가 말야... 빚보증을 섰어. 그 놈의 우정 때문에... 근데 그 친구 새끼가 제 가족들이랑 야밤에 날랐네. 대단한 우정이지?’

‘이십일 세기 대한민국에 아직도 빚보증 서는 사람이 남아 있었구나...’

‘그러니까 내 말이! 평생 남 부탁 거절 못하던 흐리멍텅한 인간이 그 순간만은 단호하기 이를 데 없더라고. 엄마랑 나더러 외식하러 가자고 하는 거야. 한참 잘 가다가 반대편 차선에 덤프트럭이 보이니까, 바로 가서 들이박더라니까.’

‘그렇게 된 거구나... 다른 방법...은 없었던 거야?’

‘아! 이건 나중에 알아낸 건데... 업자들이 찾아왔었나 봐. 주 채무자가 날라 버렸잖아. 그러니 보증인들 조져야지. 근데 내 SNS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아빠한테 딸이 아주 미인이라고 좋은 데 취직시켜 주겠다고 했나 봐.’

‘그 업자 분들은 누구신지 다 파악했어?’

‘왜? 돌아가서 다 죽여 버리려고? 관둬. 걔들도 다 제 일 한 건데. 거기다 걔들 몇 명 남지도 않았어. 신경 쓰지 마.’

‘설마... 네가?’

‘그럴 리가. 아까도 말했잖아. 우리는 산 사람 못 건드린다고.’

‘그럼 왜?’

‘업체 사장은 얼마 안 있다가 간암으로 죽었고, 밑엣것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물려받겠다고 싸우다 대부분 칼 맞고 은퇴했어. 거기다 경쟁업체까지 개입해서 그나마 살아남은 몇 명도 치워 버렸고. 걔들 다 뭐 하고 사나 궁금해서 찾아가 봤거든. 소주병 물고 폐인 생활들 하더라. 그냥... 엄청 허무하게 끝났어.’

‘간암... 진짜 허무하네.’

‘인간을 관찰하면서 느낀 건데 인생 뭐 없어. 정말 끈질기게 안 죽고 버티는 놈도 있지만, 갑자기 한눈 판 사이에 죽어 있는 놈도 있어. 그래서 계속 보고 있으면 뭔가 차분해져. 내 일도 남 일처럼 느껴지고... 뭐... 다 괜찮아졌어. 그러니 너도 그만 울어. 공감 능력도 희박한 놈이 뭘 그렇게 울어...’

‘그냥 내 첫사랑이자 내 인생 유일한 사랑이... 너무 팔자가 기구해서... 우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고마워. 울어 줘서... 그래도 그쯤 해. 너도 물어보고 싶은 거 있잖아. 얼른 끝내고 자야지. 네 몸도 안 좋은데.’

‘좋아. 그럼 궁금했던 것 마저 물어볼게.’


하지운은 속으로 괜히 물속에 있는 상태에서 승아를 불러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물 밖에 나가고 싶은데 민망해서 못 나가고 있었다.

어서 대화를 끝내고 옷을 입고 싶었다.


‘야, 임승아! 너 도대체 왜 나를 알고 있는 거냐? 너하고 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 거지? 우린 대화 한마디 나눈 적이 없어. 그냥 몇 달 같은 학원을 다닌 게 다야. 나야 널 좋아했으니 기억하는 거지.’

‘네 말이 맞아. 그때는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날 짝사랑하던 여러 남자애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지. 단지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날 좋아했던 애들은 다 잊지 않고 기억을 하거든. 일종의 트로피...처럼.’

‘트로피... 그러니까 널 좋아하던 놈들을 다 파악하고... 기억까지 하고 있었다고? 근데 내가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어떻게 몰라! 네가 하도 쳐다봐서 옆얼굴 뚫리는 줄 알았는데...’

‘아... 씨... 그건 그렇고... 근데 왜 난데? 왜 내 집에 죽치고 살게 된 거냐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듣고 너무 충격 먹지 마. 지금은 널 많이 좋아하는 게 맞아. 그러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들어.’

‘지금도 졸라게 충격 먹고 어질어질한데, 내가 더 놀랄 게 남아 있어?’

‘그게... 내가 처음 죽고 나서 할 게 없잖아. 허전한 마음에 날 좋아했던 애들을 찾아다녔어. 아직도 날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도 들고 말이야. 그리고... 그중에 아직까지도 날 잊지 못하고... 그... 모쏠...이 너밖에 안 남았어... 그게 처음 네 곁에 머물게 된 이유야...’

‘죽자... 그냥 소멸시켜 줘! 나 지금이라도 소멸될게!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동네까지 와서 살인 게임을 하고 있냐. 다 필요 없어!’

‘그러지 마, 지운아. 난 이미 너한테 완전히 정 붙였어. 네 곁에서 보낸 시간이 얼만데...’

‘네가 내 옆에 있는 걸 너 혼자 알았다는 게 문제지!’

‘저기... 나 잠시 네 머리에서 나가 있을게. 화 다 풀리면 그때 불러. 그리고 피곤할 테니까 푹 쉬어. 나 갈게... 잘 자!’

‘......’


하지운은 대답도 안 하고 승아를 보내 버렸다.

솔직히 대단한 사연은 기대도 안 했지만, 모쏠이 자신만 남아서라는 이유는 그도 상상조차 못했다.


‘솔직하네... 사귀면 허언증 걱정은 없겠네.’


하지운은 너무 충격적인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겪어서 그런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참을 더 물속에서 널브러져 있다가 피곤이 쏟아질 때쯤 겨우 추스르고 일어났다.


로저의 옷이 다 마르려면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수납장’에서 리처드 패거리의 옷가지들을 꺼내 냄새를 맡아 봤다.


‘아우 씨, 졸개 두 놈의 옷은 빨아야 할 것 같고... 의외로 리처드 놈의 옷은 냄새가 별로 안 나네... 깔끔한 강간범 새끼인가? 일단 이걸 입고 저 두 벌은 빨아 놔야겠다.’


두 졸개의 옷은 대충 빨아서 자신의 옷들 옆에 널어 두고, 리처드의 옷을 입어 봤다.

확실히 사이즈가 작기는 했지만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팔 안쪽, 허리 옆 부분 등 옷이 꽉 낄 만한 곳들은 끈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의 귀족 대부분이 괴물 피를 복용한 거구들이다 보니, 시중드는 하인들 입장에서 좀 더 쉽게 입힐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이 변형되어 왔다.

주인과 하인들 사이에 평균 키 차이가 70cm씩 나다 보니, 귀족들 입장에서도 땅꼬마들에게 시중을 받으면서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단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 재단사의 미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덕을 지금 하지운이 보고 있다.

자신보다 덩치도 작은 놈의 옷을 한 손으로 어렵지 않게 입고, 이빨로 끈도 조였다.

그러고는 상태창에서 전신 거울을 소환했다.

아까 상태창 설명서에서 봤던 기능 중의 하나를 시험 삼아 발동시켜 본 것이다.


‘이딴 건 왜 있나 생각했는데, 막상 써 보니 편하네. 홀로그램 같은 건가? 참가자 중에 여자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 걔들 입장에서는 필수템이겠네. 근데 확실히 옷이 작긴 하네... 이 정도면 크롭티에 레깅스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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