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4 21:10
연재수 :
225 회
조회수 :
23,613
추천수 :
533
글자수 :
960,354

작성
23.06.18 23:01
조회
197
추천
3
글자
9쪽

복구 (4)

DUMMY

29화


해가 져서 그런지 도마뱀 괴물들이 대담해지는 것이 하지운의 무신경한 감각에도 느껴졌다.

뗏목을 타고 습지를 시원하게 가로질렀으니, 이곳 주민들이 얼마나 언짢았을지는 안 물어봐도 알 것 같았다.


‘오래도 버텼다. 아니 어그로를 그렇게 끌었는데 열 시간 가까이를 버티냐? 수천 마리가 모여서 뭐 한다고 지금까지 버틴 거야? 병신들이.’


하지운이 몰라서 하는 마음속의 소리였다.

도마뱀머리 괴물은 모든 괴물들 중 가장 예민한 괴물이다.

대자연의 기운을 느끼는데 있어서는 여우머리가 최고지만, 다른 종족의 강함을 느끼는데 있어서는 도마뱀머리만 한 놈들이 없다.


그래서 곰의 기운을 뿜뿜하고 있는 하지운에게 덤빌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제 놈들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는 상위 포식자 중 하나에게 머릿수 하나 믿고 덤비기에는 그들의 생존본능이 너무 강했던 거다.


하지만 평화로운 괴물 래서투스들도 참는 데는 한도가 있는 법이다.

불한당 같은 놈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채 한참을 안 나가고 돌아다니더니, 기어이 터를 잡고 죽치고 앉으려는 기색을 보였다.

도마뱀머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갑질하는 포식자에게 머릿수의 무서움을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라. 빵도 챙겨라. 저 놈들도 나무를 탈 수 있을 거다. 최대한 높이 올라가서 끈으로 몸을 고정해라. 떨어져서 죽는 놈은 제 팔자려니 할 거다. 알아서 살아남아라.”

“저, 저놈들이라뇨? 뭐가 있습니까?”

“빨리 안 올라가!”

“네! 올라갑니다!”


일이삼사는 최대한 굵은 나무를 찾아 잽싸게 올라갔다.

왕국 내 최악의 악마가 정색하고 시키는데 열과 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튼튼한 가지를 찾아 그 위에 앉은 후 몸에 가죽끈을 묶었다.

가죽 갑옷을 벗고 남아 있던 끈을 모두 뜯어내어 몸통에 몇 번을 반복해서 묶은 것이다.

불길한 예감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그들을 살렸다.


몸을 고정시킨 후 아래를 내려다보고 하지운에게 보고하려던 일이삼사는 열심히 먹은 저녁을 모두 게워냈다.

방광과 괄약근이 풀려서 오물이 쏟아졌지만 전혀 깨닫지도 못했다.

울면서 팔다리를 나무에 밀착시키려는데 덜덜 떨려서 나무가 잘 잡히지도 않았다.

등에 빵 보따리까지 매고 있어 몸이 천근같았다.

끈으로 몸을 고정시키지 않았다면 그대로 미끄러져서 추락사 했을 것이다.


맹세코 살면서 이런 광경을 볼 줄은 일이삼사 중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물소리도 안 난 것 같은데 자신들이 있는 섬에 어느새 도마뱀의 머리를 달고 있는 수천 마리의 괴물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너무 징그럽고 두려워 나이 서른이 넘은 장정들이 아이처럼 울면서 엄마를 간절히 찾고 있었다.


하지운은 상태창을 켜 놓고 쇠망치를 한 자루 꺼냈다.

망치 두 자루를 다 들어야 진정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잠시나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망치 두 자루를 다 들 수 있는 상태면 여기를 제일 먼저 안 왔지. 뭐 하러 저런 약한 놈들을 상대하러 이렇게 조빠지게 왔겠나.’


제일 먼저 도착한 용감한 파충류의 머리에 망치 맛을 보여줬다.

최대한 힘 빼고 뿅망치 치듯이 쳤다.

머리가 폭발하고 얼굴에 다 튀었다.

속으로 개쌍욕을 하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능력 ‘신체 재생’을 강탈하셨습니다. 흡수하셔서 사용하시겠습니까?」


‘응! 아름답고 사랑스런 우리 승아야!’

‘미친 새끼야, 급발진 하지 마세요. 신체 재생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상태창을 확인하세요... 이 또라이야.’

‘뭐라고? 아 쫌 착하게 말해 주면 안 돼? 우렁 각시처럼 밥상만 차려 주지 말고.’

‘밥통아! 앞이나 봐! 그리고 다음 능력 강탈까지 대답 안 할 거니까 말 걸지 말고 싸우는 거나 집중해!’

‘응... 다음에 봐...’

‘야, 하지운. 힘내!’

‘어, 고마워!’


승아와의 짧은 대화 이후 하지운의 전투력이 폭발했다.

응원 같지도 않은 응원이었지만, 삼십삼 년 모솔 하지운으로서는 가족을 제외한 여성형 인간에게서 난생처음 받아 보는 응원이었다.


아주 단조로운 싸움이었다.

두더지 잡기 그 자체였다.

과거 로저 드레이시에게 망치질 이삼천 번은 정말 아침 운동도 안 됐다.

그런 걸 하고 있으니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 썸녀...의 응원까지 들으니 놀이가 따로 없었다.


얼굴을 녹색 오물로 떡칠을 하는 것을 빼면 말이다.

이런 일에 엄청나게 익숙한 로저 놈의 기억이 하지운의 머릿속에 없었다면, 일단 도망쳐서 한 번 토한 후 다시 와서 싸웠을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 저 나무 위의 가련한 울보들은 뼈만 남기고 사라졌을 것이고.


도마뱀머리들도 머리가 달렸는데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름 하지운을 상대하기 위해 여럿이서 타이밍도 맞춰 보고 이것저것 다 해 봤다.


그런데 팔도 하나밖에 없는 놈이 잽싸기가 이를 데 없다.

따라가기도 힘든 속도로 움직이면서 몽둥이 같은 것을 휘두르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의 동포가 머리 없는 시체가 되어 버렸다.

거기다 힘은 어찌나 좋은지, 놈의 몽둥이질 한 번에 어김없이 동포의 머리통 하나가 박살나 버렸다.

놈을 자빠뜨리려고 용감하게 몸을 던진 용자도 있었는데, 이놈은 부딪히고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날린 용자가 튕겨 나가서 바닥을 굴렀고, 금세 놈의 발이 용자의 머리통을 밟고 지나갔다.


하지만 진정으로 도마뱀머리들을 끔찍하게 만든 것은 하지운의 몸뚱어리였다.

도마뱀머리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 하지운이 아무리 빨라도 등 뒤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다 싶어 신나게 팔을 휘둘러 손톱으로 그었는데 반응이 없다.

놈이 걸치고 있는 가죽 껍데기는 찢겨 나가는데, 어떻게 된 게 놈의 생살은 멀쩡했다.

분명히 피가 튀고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살이 찢겨야 하는데, 피부에 찰과상 정도만 남기고 끝이었다.

무슨 놈의 인간의 피부가 질기기가 쇠심줄 같았다.

그래서 이빨로 물어뜯으려고 머리를 들이밀면 그 즉시 몽둥이가 머리로 떨어졌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죽은 동포의 수가 족히 기백은 넘어 보였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그들이 싸우고 있는 장소는 자신들의 서식지 한복판이었고, 상대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약탈하러 온 침략자였다.

침략자 놈이 지칠 때까지 덤비는 수밖에 없었다.


도마뱀머리들이 동포의 죽음에 피눈물을 흘리며 처절한 마음으로 달려들 동안, 이에 맞서는 하지운은 플레이리스트의 음악들을 틀어 놓고 따라 흥얼거리면서 싸우고 있었다.

후딱후딱 움직여야 해서 템포가 빠른 곡 위주로 재생했다.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항상 같은 자리 앉아 있는 도마뱀 새끼야 뒤져라.’


그는 속으로 가사를 되뇌이며 흥겹게 망치를 휘둘렀다.

그의 주변에 이미 수백 마리의 도마뱀머리들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위로 계속 괴물들이 달려들다가 죽어 엎어져 버리다 보니,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지운을 중심으로 원형의 시체 언덕을 만들었다.

일종의 참호가 만들어진 것이다.


도마뱀머리들이 동포의 시체로 만들어진 언덕을 밟고 올라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운의 발이 도마뱀머리들의 무릎에 꽂혔다.

망치를 쓸 필요도 없었다.

무릎에 앞차기 한 방 넣어 주고, 관절이 박살나서 뒹굴고 있는 놈들의 머리에 가벼운 발길질만 한번 해 줘도 끝이었다.


신체를 재생시키는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싹 죽이려고 다리만 박살 낸 채로 차곡차곡 쌓아 놓을 동안, 다리가 다시 붙어서 일어난 놈이 아직 없었다.


‘궁금하네. 한 놈만 죽이지 말고 남겨 놔야겠다. 관찰용으로.’


한 놈만 남기고 나머지 놈들의 머리를 태권도의 ‘나래 차기’를 하듯이 양발로 번갈아가며 차버렸다.

스물이 넘는 괴물들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그러고는 하지운은 일부러 하나 남은 놈을 외면한 채, 새로 달려드는 다른 도마뱀머리들을 상대했다.


하지운이 자신만 죽이지 않고 돌아서는 순간, 괴물이 순식간에 무릎을 재생시킨 후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하지운의 뒷목에 이빨을 박아 넣으려 아가리를 쫙 벌렸다.

그와 동시에 하지운의 망치가 그 놈의 머리가 있던 공간을 지나갔다.


‘이야, 이 쉐키들 봐라. 순식간에 재생할 수 있었네. 아닌 척 하고 있었다는 거지. 빈틈을 노린답시고.’


어쨌든 하지운으로서는 유익한 관찰이었다.

생각보다 이 도마뱀머리들이 교활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처음으로 강탈한 능력이 개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시련 (6) 23.07.24 151 2 10쪽
46 시련 (5) 23.07.22 149 3 11쪽
45 시련 (4) 23.07.21 157 3 9쪽
44 시련 (3) 23.07.19 164 2 10쪽
43 시련 (2) 23.07.14 168 3 10쪽
42 시련 (1) 23.07.13 173 2 9쪽
41 복구 (15) 23.07.12 171 1 9쪽
40 복구 (14) 23.07.07 176 2 10쪽
39 복구 (13) 23.07.06 169 3 9쪽
38 복구 (12) 23.07.04 171 2 9쪽
37 복구 (11) 23.07.03 174 2 9쪽
36 복구 (10) 23.07.01 177 3 11쪽
35 복구 (9) 23.06.29 175 2 9쪽
34 복구 (8) 23.06.27 182 3 10쪽
33 복구 (7) 23.06.27 184 4 9쪽
32 복구 (6) 23.06.22 185 3 9쪽
31 복구 (5) 23.06.18 187 3 9쪽
» 복구 (4) 23.06.18 198 3 9쪽
29 복구 (3) 23.06.18 191 4 9쪽
28 복구 (2) 23.06.18 199 3 9쪽
27 복구 (1) 23.06.18 212 4 9쪽
26 정착 (9) 23.06.18 210 3 9쪽
25 정착 (8) 23.06.18 206 3 9쪽
24 정착 (7) 23.06.18 211 3 9쪽
23 정착 (6) 23.06.18 213 3 9쪽
22 정착 (5) 23.06.18 222 4 9쪽
21 정착 (4) 23.06.18 232 4 9쪽
20 정착 (3) 23.06.18 240 4 9쪽
19 정착 (2) 23.06.18 246 5 9쪽
18 정착 (1) 23.06.18 269 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