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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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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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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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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4화


‘기특하네. 시키지도 않은 짓도 하고.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은 건가? 엄청 쓸모 있어 보이려고 애쓰네.’


깨끗이 씻고 나온 일이삼사는 사타구니에 천 하나만 두른 채, 열심히 괴물 시체들을 치우고 있었다.

그러다 하지운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자, 일이 부리나케 뛰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각하, 괴물들의 시체는 늪에 버리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한데 모아 태울까요?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아니다. 일단 한곳에 쌓아만 두거라. 버리는 것은 내일 날이 밝으면 내가 직접 하겠다. 그새 많이도 치웠구나. 기특한 놈들.”


기특한 놈들이라는 말에 일이삼사의 얼굴에 희망이 꽃핀 듯했다.

보고만 있어도 짜증이 치밀었다.


“마저 치우고 섬 반대편에 잠자리를 마련해라. 밤새우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라.”


그 말에 안 그래도 빠릿빠릿하던 일이삼사의 동작이 더 급해졌다.

기합이 바짝 든 것이, 하지운이 도마뱀들 상대로 한 패악질을 다 본 모양이었다.

울면서 토하는 와중에도 그 학살을 놓치지 않고 다 관람한 일이삼사였다.

하지운에 대한 공포심이 임계치를 넘은 지 오래였다.


기합이 바짝 든 일이삼사 덕에 나름 쾌적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나무를 베어서 다듬은 다음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넓적한 이파리들을 가득 쌓았다.

그 위에 망토를 깔고 누우니 고시원 침대보다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

몸도 상한 상태에서 곯아떨어져 버리니, 중간에 깨지도 않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 버렸다.


‘자는 도중에 저것들이 내 목을 따겠다고 덤비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저놈들도 많이 피곤했나...’


아직까지도 미동도 하지 않고 코만 미친 듯이 골고 있는 일이삼사를 보면서, 허탈한 기분이 드는 하지운이었다.


아무리 하지운이라 해도 피곤에 절어서 곯아떨어진 상태라면, 일이삼사 따위가 휘두르는 흉기에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이미 로저의 조상 위드링튼의 로저가 소머리 괴물의 생식기를 난도질하면서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자신의 잠자리도 저놈들과 멀찍이 떨어진 언덕 위에 만들도록 했다.

아랫것들과 숙식을 같이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말이다.


그런데 밤새도록 잡스런 살기 하나 없이, 그저 코 골고 이 가는 소리만 섬에 가득했다.

거리가 좀 되는데도 얼마나 우렁차게 골고 갈아 대는지, 섬 전체가 그 소리로 진동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육체를 회복 중인 하지운의 숙면을 방해할 수 없었다.


‘이 자식들이 깡다구가 없는 거야? 아니면... 내가 죽으면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솔직히 이 근방의 괴물들 씨가 말랐는데. 멍청한 놈들... 그냥 뗏목 타고 나가면 그만인데.’


자리에서 일어나 한 팔로 기지개를 켠 하지운은 개울가에서 세수를 한 후 일이삼사를 깨웠다.


“네 놈들이 미쳤구나! 해가 중천에 뜨도록 처자빠져 자고 있다니! 내가 아주 편해진 모양이구나!”


하지운의 일갈에 일이삼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잠자리에서 뛰쳐나왔다.

얼굴들 보니 심장 질환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아아, 그냥 내가 무서워서 뭘 시도할 엄두도 못 낸 거구나...’


“얼른 씻고 식사들 해라. 앞으로는 미리미리 일어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경치 좋은 곳에 다 함께 나들이 나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오늘도 할 일이 많다. 빨리 움직여라.”

“네, 각하!”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우렁차게 대답한 일이삼사는 세수를 하고, 어제 빨아 둔 옷들을 챙겨 입었다.

빵만 주구장창 먹을 수는 없어 수통에 냇물도 새로 담고, 조막만한 산을 샅샅이 뒤져 나무 열매도 모아 왔다.


이미 빨랫감들을 챙기고 식사를 하고 있던 하지운에게 일이 열매를 가득 들고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하지운이 손에 들고 있던 빵 조각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보인 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다. 난 필요 없으니 너희끼리나 먹어라.”라는 메시지가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오늘 하루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하면 최대한 잘 먹어 두어야 했다.

하지운 입장에서는 자신이 먹던 빵도 나눠 줄까 고민될 정도였다.

승아가 만들어 준 것만 아니었으면 기꺼이 나눠 줬을 것이다.

비록 어젯밤 그녀 때문에 삐지긴 했어도, 그녀의 성의까지 무시할 정도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빵은 차마 줄 수 없었다.


식사를 다 마친 일이삼사를 보고, 하지운은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할 것을 지시했다.

어제처럼 다 게워 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다.

앞으로는 일이삼사가 충분히 소화를 시킬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다.

밥을 먹는 족족 토해 버리면 며칠도 못 버티고 아사해 버리지 않겠는가.


하지운도 식사를 마친 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몸을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몸이 상했던 것이 정말 맞나 싶을 만큼 완벽하게 회복했다.

경이적인 회복력에 감탄을 하며 일이삼사를 집합시켰다.


“푹 쉬었을 테니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내 보자. 일단 사타구니를 가릴 것만 남기고 옷을 벗어라.”

“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이삼사가 낯빛이 하얘진 채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빨아 놓은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니라. 그러니 죽고 싶지 않으면, 머릿속의 생각들은 지우고 당장 움직여라.”


낮게 으르렁거리듯 내뱉은 하지운의 말에 일이삼사는 빛의 속도로 옷을 벗어 던졌다.


“옷은 나뭇가지에 대충 걸어 두고, 나를 따라와라.”


하지운은 민망한 꼴을 한 장정 넷을 거느리고, 도마뱀머리들의 시체 동산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시체 더미 앞에 서서, 일이삼사를 향해 손바닥을 위로 한 채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내 손바닥 위에 쉬지 말고 저 흉물들의 시체 조각을 올려놓아라. 팔, 다리, 머리, 몸통을 미리 떼어 놓아라. 자잘한 살점 조각들은 필요 없으니 덩어리만 올려라. 설마 너희 넷이 나 하나의 속도를 못 따라가지는 않겠지? 빨리빨리 움직여라.”

“네, 각하!”


대답은 하면서도 일이삼사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그냥 대충 늪에 버리면 될 것을 무슨 부위별로 떼어 달라는 것인지, 하지운의 속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삼이 건네준 도마뱀머리의 팔뚝을 잡고 하지운은 부메랑을 던지듯 힘차게 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음!”


하지운은 어젯밤부터 미니맵을 켜 둔 상태였다.

그들은 현재 처음 벨라스터주의 출발점에서 서북 방향으로 40km 정도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 미니맵은 정말 게임처럼 방문한 곳만 표시하는데, 방문하지 않은 곳은 검은 장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따라서 늪의 전체적인 모양은 알 수가 없었고, 단지 그저께 달린 육지의 거리와 눈대중으로 비교해서 뗏목이 지나쳐 온 거리 정도만 대충 계산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맵에 확대, 축소 기능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맞는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지도를 켜 둔 채 움직이면서 동서남북의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굳이 해의 위치 따위를 보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지나쳐 온 동남쪽으로는 던질 필요가 없으니, 두 시 방향부터 시작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여덟 시 방향까지 미세하게 각도를 조절하면서 던졌다.

정신없이 하지운의 손 위에 괴물들의 시체를 올려놓던 일이삼사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이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악마 같은 놈이 괴물들을 끌어들이려는 수작이구나!’

‘늪 속에 시체를 뿌려서 냄새를 풍기려는 거야!’

‘미친... 어제 그 끔찍한 경험을 또 해야 하는 거야?’

‘이 미친놈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제 놈이 도마뱀들하고는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 악마 놈 듣는 데서 개간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정말 개간을 해 주다니... 그런데 우리가 살아서... 그 덕을 볼 수 있을까...’


일이삼사는 어느새 눈빛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경지에 이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은 아직 무리였는지, 하지운에게 시체를 전달하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눈알 굴러다니는 소리에 귀가 멀 것 같구나. 팔자들 좋다. 눈깔로 잡담도 나누고. 그러지 말고 앉아서 담소들 나누시지.”

“각하! 아니옵니다! 열심히 하겠사오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한 번만 용서는 이미 해 준 것 같은데... 어제... 내가 해 줬었지? 맞지? 그러지 말고... 그냥 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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