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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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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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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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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9)

DUMMY

25화


원래는 그냥 가려 했다.

최종 목적지인 대습지가 얼마 남지도 않은 마당에 하지운은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이놈들의 목적지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기다 대화 내용들이 아주 가관이다.

이상하게 자신이 로저가 아닌데도 기분이 아주 더러워졌다.


‘이게 무슨 기분이지? 나는 욕해도 되지만, 남이 욕하는 건 못 참겠는... 뭐 그런 건가? 거기다 그 집안 계집들이 뭐? 그래도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놈의 여동생들인데 도저히 못 참아 주겠네. 안 그래도 죽었을지 살았을지도 모르는 애들인데...’


틸다라는 그 여인과 같이 있을 때는 살기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놀라서 심장 마비로 죽을까 봐.

물론 옛날에 봤던 건강 프로에서는 놀란다고 심장 마비가 오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어쨌든 여기에는 그런 걱정 비슷한 것을 하게 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있다면 발 근처의 개미 정도.


“천한 새끼들아. 대화는 다 했냐? 더 할 거 있으면 해라. 기다려 주마. 가는 길에 홀가분하게 가야지!”

“누, 누구십니까? 귀공은 누구신데 이리 행패를 부리시는 겁니까?”


다른 네 놈들은 하지운이 내뿜는 살기에 질려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가운데 한 놈은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티고 서 있었다.


“네가 두목이구나. 통성명이나 할까? 아니면 그냥 죽든지.”

“저, 저는 크랜필드의 영주인 피, 피어스 몰빌이라고 합니다. 귀공은 도대체 누구시오?”

“아, 나는 왼팔이 없어져 마음이 허전한 로저 드레이시다. 너희 같은 용사님들이 무서워서 도주 중이시지. 아주 포부들이 당차더구나! 무서워서 오줌을 싸 갈길 뻔했지 뭐냐! 근데 너 여우 피 먹었냐?”

“사, 살려 주시오. 이 길로 바로 성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다시는 나오지 않겠소.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오. 제발! 이렇게 빌겠소.”

“여우 피 먹었냐고? 내가 물었잖아. 귓구녕에 뭐 박아 놨어? 파줄까?”

“머, 먹었소이다. 여우머리 괴물의 피를 먹었소.”

“내가 어제 거버스인가 뭔가 하는 여우 피 처먹은 노인네에게 불덩이를 처맞았어. 그래서 팔이 이 모양이야. 기분이 많이 우울해. 여우 피 기운만 느껴져도 눈물이 날 것 같아. 네가 위로해 줄래?”


‘거, 거버스와 싸웠는데 팔만 하나 잃고 말았다고...’


“어, 어떻게 말이오. 우리 가문은 거버스 그 쓰레기 같은 놈과 아무런 관계가 없소! 그 찢어 죽일 늙은 놈이 고귀하신 로저 공에게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다니! 반드시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급살 맞아 죽을 것이오!”

“그 영감 나이가 아흔여덟이야. 그 나이에 무슨 급살이야. 죽으면 그냥 노환으로 죽는 거지. 오늘 당장 죽어도 호상이야.”

“물론이오! 거버스 그놈은 오늘 당장 죽어야 하오!”

“됐다. 위로가 안 된다. 여우 피 먹은 놈들은 지들이 제일 빠른 줄 알아. 뛰어라.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마. 대신 잡히면 다리 자를 거야.”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살고자 하는 열망은 참 보기 좋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내 동생들이 그렇게 빌었어도 살려 줄 생각이었냐? 우리 집안사람들 싹 다 죽이신다면서? 이 용사님들아.”

“뉘, 뉘우치고 있습니다. 촌놈들이 분수를 몰랐습니다. 평생 반성하면서 살겠습니다.”

“부하들 앞에서도 이리 열정적으로 반성하다니. 참으로 보기 좋다. 일단 넌 보류.”

“감사합니다!”

“아, 맞다! 너희들 방금 세비니가 나섰다고 했지?”

“네? 네... 맞습니다...”

“그 세비니가 어네스퍼드 백작 대니얼 세비니를 말하는 게 맞냐?”

“네...”


‘이 씨발놈! 리스트에 왜 있나 했다. 로저 놈... 매부가 둘인데... 두 놈 다...’


“아, 그리고 이 동네 백작인 나이절 펀트니는 출전하지 않았다고?”

“네.”

“너는 처음 보는 놈인데, 펀트니 휘하에 있는 놈이냐?”

“네.”

“주군이 움직이지도 않는 마당에, 너는 뭔데 멋대로 움직이느냐?”


‘그리고 존 펀트니랑 토머스 펀트니 이 두 놈은 리스트에 왜 있는 거야?’


“저희 주군께서 휘하의 영주들에게 각자 움직이는 것은 막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아, 이 여우 같은 새끼. 왕에게 협조하는 시늉은 하되 일이 틀어져도 지는 빠져나가시겠다.’


크...뭐시기의 영주 놈에게서 더 물어볼 만한 것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여자 친구 있냐?’ 같은 시답잖은 것을 물으면서 괴롭힐 수도 있었지만, 별로 내키지를 않았다.


‘내가 로저도 아니고, 그런 짓을 왜 해? 그냥 죽여 버리고 말지.’


그러다 시선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졸개 사인방에게로 향했다.

그들을 훑어보던 하지운의 머리에 기똥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야, 너 오줌 싼 놈. 우측 끝에 너. 일어나 봐. 빨리 일어나! 내 승질 못 들었어? 거기까지 소문 안 났어?”

“네, 각하! 일어났습니다. 처, 천한 놈에게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하명하십시오.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가까운 곳에 아무 곳이나 가서 성인 사 인이 한 달을 버틸 빵을 가져와. 말 한 마리 더 끌고 가서 싣고 와. 아, 보자기도 큰 걸로 넉 장 가져오고. 야, 뭐 어디 영주랬지? 아, 모르겠고. 네가 쟤한테 돈 좀 줘.”

“네, 네.”

“야, 가서 다른 놈들 끌고 와도 돼. 마음대로 해. 싹 다 죽이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안 돌아와도 돼. 네 주군 눈알 파서 저 하늘의 별로 만들어 버리면 되니까. 빨리 갔다 와. 내가 참을성이 없어.”


잽싸게 말에 올라 심부름을 가는 졸개 놈을 보며, 소심한 하지운이 노파심에 한 번 더 신신당부를 했다.


“야! 기다리다 지치면 이름은 기억 안 나는 네놈들 영지로 갈 거야! 여기 안내해 줄 놈들이 넷이나 남아 있어! 가서 다 죽이다 보면 네놈 피붙이가 하나는 있겠지! 뭐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 마! 말에서 떨어지니까! 안전이 제일이야!”

“죽을힘을 다하겠습니다!”

“남은 놈들은 양손을 엉덩이에 붙이고 무릎을 꿇는다. 땅에 고개를 박고 들지 마라. 네놈들이 아직 목록에 없어서 살아 있는 거야. 예뻐서 살려 두고 있는 게 아니야.”


‘무, 무슨 목록?’


“기뻐해라. 네 놈들을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를 쥐어짜서 만들었으니까. 빵 사러 간 네놈들 친구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빌어라.”


용감한 원정대 네 명을 흙바닥에 박아 두고 하지운은 근처에 있던 바위를 찾아 앉았다.

밤새 한 숨도 못 자고 뛰었는데도 쌩쌩하다.


‘아주 체력이 넘치는구나! 대단한 몸이다! 그런데 배고픈 것은 어떻게 안 되네. 해도 뜨는데 아침식사나 하자. 심부름꾼이 도착하려면 꽤 걸릴 테니까. 그리고 이제부터 한 끼에 절대 빵 한 개 이상은 안 먹는다. 반드시...’


다시 테이블을 세팅하고 대전차 미사일만 한 호밀빵을 꺼냈다.

빵을 먹으면서 궁금한 것이 떠오른 하지운은 얼차려 중인 용사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무슨 피를 먹었냐? 몸뚱어리를 보면 뭘 먹긴 한 거 같은데... 먹다가 뱉었냐? 왜 몸 크기들이 죄다 어중간하냐?”

“돼, 돼지머리 괴물의 피를 먹었나이다.”


‘미친! 돼지 피를 귀족이 먹어? 찢어지게 가난한 놈들인가? 로저네 동네에서는 농노들에게 먹이는 게 돼지 피인데...’


돼지머리 괴물들은 아무리 죽여도 수가 줄지를 않는다.

그래서 초창기의 변경 지역의 영주들은 탈모가 없는 자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초의 전사 로저 위드링튼의 아내 쥬디스 드레이시가 엄청난 대발견을 하고야 만다.


괴물 피를 노예들에게 먹이던 쥬디스는 돼지 피를 먹은 남녀 노예들이 엄청난 수의 자식들을 쉬지 않고 생산해 내는 것을 목격했다.

돼지머리 괴물들이 가진 엄청난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그와 동시에 변경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구 부족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렸다.


‘어느 곳에서는 하급 귀족이긴 해도 지배층이 먹는 것을 어느 곳에서는 농노들에게 먹인다...’


하지운은 새삼 로저 놈의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었는지 실감이 났다.

그리고 왕인 험프리 놈이 로저의 가문을 얼마나 없애 버리고 싶었을지도 짐작이 갔다.


‘왕실이 간섭할 수도 없는 변경의 명문거족이라... 심지어 그 집 아들은 대괴수이고... 어느 왕인들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비록 죽일 거지만 그 놈의 마음은 이해해 주자.’


식사를 마친 후 상념에 빠져 있던 하지운의 눈에 빵 심부름을 갔던 놈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정리할 거 하고, 늪으로 도마뱀 만나러 들어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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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착 (6) 23.06.18 213 3 9쪽
22 정착 (5) 23.06.18 222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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