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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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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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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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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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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정착 (2)

DUMMY

18화


‘재수가 좋았던 게... 아닌 거 같은데. 아마 ‘그분’의 배려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 절단면이나 관통상이 아문 것도 그렇고... 21세기 지구인이 갑자기 다른 세상에 떨어졌는데, 초반부터 난이도를 하드코어로 만들어 놓으면 바로 정신 줄 놔 버릴까 봐 걱정되셨을 거야. 뭐 어느 정도 조절해 주신 거겠지.’


그러다 갑자기 드는 생각에 발이 꼬여 하마터면 바닥에 머리를 꼬라박을 뻔했다.

까딱 잘못 넘어졌으면 곱상한 얼굴 다 갈릴 뻔했다.


‘이 자식 팔이 잘리고 검을 네 자루나 맞고도 정신이 멀쩡했어! 분명 몸이 버틸 만한 상태였다고!’


기억을 되짚어 보니 로저 놈의 마지막 기억은 수영을 못해 허우적거리다 물을 마시면서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 기억도 없다.


‘미친, 이 새끼... 사인이 과다 출혈이 아니고 익사였어? 크흑, 아이고 배야.’


고속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지면서 배도 같이 터질 뻔했다. 심지어 발까지 꼬였다.


‘어쩐지! 마법사 면상 봤으면 바로 뒤에 있는 낭떠러지로 뛰어내려 버리지, 뭐한다고 팔 잘릴 때까지 버텼나 했다! 이 새끼, 물이 무서웠구나! 아, 근데 배 아파!’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웃다가 뱃가죽이 당겨서 고통스러운 하지운이었다.


‘어쨌든 물에 빠져 죽은 놈이 강가에 그것도 재수 좋게 앨커스터 쪽으로 가서 걸려있던 거나, 상처들이 벌써 아물어 있는 거나 절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지.’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하지운이 깨어난 곳이 계곡 물들이 만나 강이 시작되는 얕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 동네는 괴물들이 지상에서만 설쳐대는 곳이 아니다.

강물이 조금만 깊어지면 이 미친 세상의 진정한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로저 놈이 물속에서 산 채로 조금만 더 버텼으면 팔 없는 해골 기사로 부활했을 지도 몰라...’


크고 작은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지만 하지운의 생각에 그들은 전부 피라냐다.

덩치가 크든 작든, 몸통이 길든 짧든 어쨌든 전부 주둥아리는 피라냐다.

개중에는 식용이 가능한 놈도 있지만 어쨌든 이 동네는 강에서 수영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러니 이 몸 좋은 놈이 수영을 전혀 못해서 물을 먹고 죽지.’


지금 하지운이 끼고 달리는 크레인강은 앨커스터주 북부에서 벨라강과 만난다.

크레인강에 비해 훨씬 더 큰 강이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크레인강 자체가 벨라강의 지류다.


벨라강은 앨커스터주부터 시작해 벨램튼주, 벨라스터주, 어네스퍼드주, 콘체스터주를 차례로 지나 왕국 북서부의 대습지로 이어지는 강이다.


간단히 말해, 지금 하지운이 달리고 있는 이 강변길은 로저의 가문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왕성 웬도버로 갈 때마다 이용했던 길이다.

그러니 이미 어두워진 언덕길을 온갖 잡생각을 다 하면서 달려도 거침없이 잘 달리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벨라강이다. 절반은 아니고 한 사 할 정도 온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세 시간 정도 달린 것 같고. 이 자식 몸뚱어리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거의 달리는 속도가 시속 40km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지금 몸 상태로.’


대학생 시절만 해도 한강에서 자전거도 자주 타고 해서 대충 달리는 속도가 짐작은 되었다.


기억 속의 로저를 떠올려 봐도 분명 완벽한 괴수 그 자체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 보니 그 미친 강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일단 여기서 쉬자. 배고파서 죽을 거 같다. 아침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네. 험프리 이 개종자 때문에 이게 뭔 개고생이야.’


요상한 세상에 떨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배고픈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뛰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마음도 진정되고 자신이 차지한 육체의 강함도 실감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배고픔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아, 맞다! 그 애가 인벤토리에 먹을 거 넣어 뒀다고 했었는데. 아, 호밀빵과 물이었지... 그게 어디냐. 주는 대로 먹자.’


머릿속으로 수납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문을 연다는 생각을 하자 투명한 창이 허공에 나타났다.

투명 창 좌측 모서리에 빵 모양과 육백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빵 하나만 꺼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오른손에 정말 호밀빵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잡혀 있었다.


‘승아가... 손이 많이 크구나... 이게 사람이 먹는 빵 사이즈가 맞나? 코끼리 먹으라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것은 아닐 텐데...’


일단 굉장히 컸다.

이 로저라는 놈의 몸뚱어리를 감안해도 컸다.

로저의 키는 대충 이 미터 오십 전후로 보인다.

그 키에 전신을 뒤덮은 엄청난 양의 근육 덩어리들을 생각해 보아도 이 빵은 컸다.

아무리 봐도 이 거구의 괴물의 하루 적정 칼로리 섭취량을 넘어설 것 같은 크기의 빵이었다.


만든 승아 본인도 빵이 무게를 못 이기고 부러지거나, 빵 사이의 내용물들이 쏟아질까봐 걱정이 되었던지 한지 같은 종이를 두른 후 끈으로 꼼꼼하게 감아 놓았다.


로저 놈의 근력을 감안하면 빵을 들었을 때 무게감을 느끼면 절대 안 된다.

그런데 아주 살짝 느껴진다.

로저 놈의 손이 워낙 커서 이걸 들고 있는 거지, 손 작은 놈이었으면 잡지도 못 했을 것이다.

로저 놈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이놈은 폭식을 하는 타입은 아니다.


‘아! 이런 느낌의 빵을 본 적이 있다! 대도 장발장이 들고튀던 빵도 모양은 달라도 이런 느낌이었어. 그런데 그 빵은 잘라서 한 열흘씩 먹는 빵 아니었나? 백 일 치 식량을 준비한다면서 일 년 치를 만들어서 넣어준 건가! 얘가 날 엄청 좋아하나? 왜지? 날 기억도 못할 줄 알았는데...’


하지운의 현재 몸이 엄청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입까지 거대해진 것은 아니다.

사실 머리통 크기는 고시원에서 죽기 전의 원래 몸의 머리 크기와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이걸 어떻게 먹지?’


손에 든 빵을 보면서 고민에 빠지는 순간 수납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투명 창에서 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문을 연다는 생각을 하니 투명 창 우측 모서리에 탁자, 의자, 접시, 식사용 칼, 포크가 보였다.


‘내가 명색이 장르 소설 작가 출신인데... 이렇게 친절한 설정이 있다고? 뭐지, 이 우렁이 각시 같은 설정은?’


일단 빵은 다시 수납장에 집어넣고 한 손으로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탁자를 꺼내 바닥에 놓고 접시와 칼, 포크를 배치한 후 빵을 접시에 올렸다.

접시도 지나치게 커서 송아지 한 마리도 거뜬히 올려 둘 크기였고, 식사용 칼은 예식장 케이크 커팅용으로 써도 과해 보였다.


칼로 빵을 감고 있는 종이 포장을 그어 버린 후 빵으로 보이는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슨 빵 길이가 로저 이 괴물 놈의 팔 길이만... 하냐. 근데 빵 사이에 이게 다 뭐여?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다 넣었냐... 새우...가 아니고 랍스터인가? 뭐가 이렇게 커? 토마토, 양상추, 양파, 브로컬리, 콜리플라워, 치즈... 나머지 자잘한 건 봐도 모르겠고. 백 일 치 식량이라면서? 이런 걸 한 끼에 두 개씩 먹으라고?’


일단 장검 크기의 식사용 칼로 빵을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잘라 봤다.

칼이 날카로운 것인지 로저 놈의 검술이 대가의 경지에 이른 것인지 잡지도 않고 한 손으로 자르는 데도 깔끔하게 잘 썰렸다.

편의점 샌드위치 크기로 서른 개가 나왔다.


‘식사 때마다 먹방을 찍게 생겼네. 일단 먹어보자. 그 애가 서운해 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이자.’


하지운은 방금 전 빵 크기로 타박한 게 민망할 정도로, 빵 서른 조각을 게 눈 감추듯 처먹었다.


‘개맛있네! 얘가 원래 셰프였나?’


그는 슬그머니 투명 창 앞에 손을 내밀고 호밀빵을 떠올렸다.

한 개만 먹었는데도 충분히 배가 찼다.

하지만 도저히 하나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자꾸 생각나서 배가 터져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오, 민망해서 고개를 못 들겠네. 크기가 어쩌고저쩌고 씨불이지를 말걸...’


결국 하지운은 브리갠트에서의 첫 만찬으로 샌드위치 육십 개 분량의 빵을 전부 먹어 치웠다.


그는 벨라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앉아 방금 전까지 돼지처럼 처먹은 음식물들을 소화시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있을 추격자들을 생각하면 밥만 먹고 얼른 뛰어야 하지만, 지금 뱃속 상태를 생각하면 당장은 도저히 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기저귀라도 차고 있었으면 폭풍 설사를 감수하고 달렸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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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복구 (4) 23.06.18 19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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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착 (6) 23.06.18 211 3 9쪽
22 정착 (5) 23.06.18 221 4 9쪽
21 정착 (4) 23.06.18 231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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