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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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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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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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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3)

DUMMY

19화


아무리 로저 놈의 기억을 집어삼켰다 해도 하지운은 평화로운 삶에 찌들어 있던 현대의 일반인이다.

생각 없는 짓거리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도망치는 와중에 폭식을 하고 소화가 안 돼서 자빠져 있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잠깐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얼마나 급하게 처먹었는지 배 속이 꽉 막힌 것 같았다.

위장에 무슨 벽이라도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잘한다, 잘해! 이래 가지고 여기서 살아남겠냐! 이 좋은 몸뚱어리로 급체라니... 첫날부터 이 무슨 등신짓이야.’


계속 자책을 하다 보니 오히려 소화가 더 안 되는 것 같았다.

자책을 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소화를 더 방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운은 자신에 대한 짜증은 그만 두고, 다시 로저에 대한 사색에 잠겼다.


‘로저 이놈도 머리가 나쁜 놈이 아닌데... 왜 그런 허접한 함정에 걸려 죽은 거지?’


며칠 전 험프리 왕에게서 전령이 왔었다.

자신의 직속 기사단을 만들었는데 단장을 맡아 달아는 것이었다.

왕성으로 오는 길 중간에 만나서 단원들의 역량도 평가할 겸 사냥을 하고, 왕성으로 돌아가 파티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거기까지는 뭐 의심할 만한 것이 딱히 없었는데, 약속장소인 크레인데일에서 합류한 이후로 뭔가 어색한 것 천지였다.

주의력이 병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에도, 로저 놈은 끝까지 태평했다.


‘이 새끼, 병이구나! 병! 중학교도 안 나온 놈이... 이 병을...’


로저 놈의 기억을 되돌려 보던 하지운은 한숨이 나왔다.

그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저가 평생 밥 먹듯이 그 어떤 말보다 많이 한 말은...

누가! 감히! 나를!

...이었다.


이놈은 적들이 함정을 파놓고, 그 앞에서 놀이공원 직원들처럼 양손을 흔들며 “어서 오세요. 함정입니다.”라고 외쳐도 싱글벙글하면서 들어갈 놈이다.

재밌겠다고.


‘이 새끼 기억이 날조된 게 아니면, 평생 이 새끼 주먹 두 방을 견뎌 낸 놈이 없었던 거네...’


사실 로저가 어릴 적 처먹은 것을 생각하면 그럴 만하기도 했다.

로저는 남들처럼 소머리의 피를 먹은 것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와 그의 가문의 일부만 알고 있는 것인데, 그가 먹은 것은 곰머리 괴물의 피다.


로저가 곰머리의 피를 먹은 것을 남들이 알고 자시고를 떠나서, 곰머리를 달고 있는 괴물이 있다는 사실도 그의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없다.


물론 고대 제국의 역사서에 괴물들의 이름과 형태가 기록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역사서 자체가 얼마 남아 있지도 않고, 그 역사서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실존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거기다 곰머리 괴물과 조우해서 죽이기까지 한 드레이시 가문 사람들이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 브리갠트 왕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괴물로 소머리 괴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드레이시 놈들, 곰머리 피 먹은 놈들로 군대라도 만든 후에야 밝힐 생각이었겠지.’


애초에 브리갠트 왕국 내에서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삼림 지대에 드레이시 가문만큼 깊숙이 침투해 있는 가문도 없다.

그들이 서부 삼림 지대에 대를 이어 확장시킨 영역이 현재 브리갠트 왕국의 서부 최극단 지점이다.

따라서 그들 외에는 곰머리 괴물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집단 자체가 없는 것이다.


현 콘체스터 백작인 마일즈 드레이시는 십 년 전 일종의 탐험대를 조직해 자신들의 영역의 서쪽 끝에서 비밀리에 숲으로 진입한 적이 있다.

믿을 만한 전사 오십에 열세 살이 된 아들 로저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의 아들인 로저는 열 살에 검으로 돼지머리 괴물을 토막 친 적이 있었다.

담력을 쌓으라고 붙여 놨다가 위험하면 개입하려고 했는데, 괴물 피도 먹지 않은 열 살짜리 떡대가 제 키만 한 괴물을 회를 쳐버렸다.


애초부터 로저는 엄청난 우량아로 태어나 심상치 않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이름도 자랑스러운 선조님의 이름을 붙여 줬다.

그런데 커 갈수록 더욱 심상치 않아 일곱 살이 되자마자 일찌감치 검술을 가르쳤더니, 삼년 만에 괴물 피를 먹지 않았다면 성인들도 할 수 없는 이적을 선보였다.


백작과 일족의 어른들의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마법사 거버스 틸리얼이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여우 머리 괴물들의 부족장들 중 하나의 피를 마셨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이미 영주들 사이에 쫙 퍼져 있었다.

당연히 드레이시 가문 사람들도 엄청난 인재에 걸맞은 피를 찾아 먹여야 한다는 의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괴물의 피는 성장기가 지나면 마셔 봤자 독이다.

조금만 마시면 약간의 자양 강장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많이 먹으면 십중팔구 죽는다.

따라서 아무리 늦어도 열아홉 이전에는 먹여야 한다.

열아홉 이전에 먹어도 이미 성장이 끝나버려 죽어 나가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피의 독성을 이겨낼 저항력만 있다면 일찍 먹이는 것이 무조건 나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저의 나이가 열셋이 되었을 때 백작이 직접 일족의 전력의 일 할을 이끌고 소머리 괴물들의 부족장을 찾아 나선 것이다.

소머리들의 서식지를 여덟 개나 때려 부수고 아홉 개째 서식지에 들어서는 순간 부족장으로 추정되는 괴물을 만났다.


다른 놈들과 확연히 달랐다.

털빛도 검었고, 덩치도 확실히 더 컸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다.

다른 분이 먼저 부족장을 만나고 있었다.

그 분은 소머리 부족장의 양 다리를 잡고 가랑이를 좌우로 찢고 계셨다.

왕국 최강 전력이라는 드레이시 가문의 정예들도 말문이 막힌 듯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적어도 브리갠트 왕국 내에서는 곰의 머리를 한 괴물 어수스와 인간의 첫 조우였다.

그날 드레이시의 전사 서른이 죽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 하지운이 뒤집어쓴 대괴수 로저 드레이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아, 이제 좀 숨이 쉬어지네. 슬슬 다시 달려볼까.’


로저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삼십 분쯤 그에 대해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더니 어느 정도 소화가 된 듯했다.


‘다시는 이렇게 무식하게 처먹지 말아야지! 그래도 몇 년 만에 먹어 본 진수성찬이냐... 맛있게 잘 먹었어...’


하지운은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얼른 고개를 처박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애가 보고 있을지 모르는데, 쪽팔리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리다 멈춰 선 하지운은 자신의 우측으로 흐르는 벨라강과 강 건너편 언덕을 살펴봤다.


‘저기서부터 벨라스터주다. 무조건 여기서 강을 건너야 되는데... 막상 눈으로 보니 더럽게 머네. 여기가 그나마 강폭이 좁은 편인 거 같은데. 그래도 백 미터는 더 되어 보이네...’


전직 장르 소설 작가답게 하지운은 무협지에서 본 방법들을 써 볼 생각이었다.

통나무들을 잘라 강에 던져서 일종의 징검다리를 만든 후 차례로 밟고 건널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서 강물 흐르는 속도를 보니 생각만큼 쉬워 보이지가 않았다.


‘로저 놈아, 너는 그 잘난 능력으로 등평도수도 익히지 않고 뭐했냐? 허공답보까지는 무리라도 수상비 종류의 기술이라도 익혀뒀으면 네가 물에 빠져 뒈졌겠냐?’


이미 죽어 파편밖에 남지 않은 로저의 영혼에 대고 구박을 시전하는 하지운이었다.


앨커스터주에서 벨라강을 건너 이웃한 주로 넘어가려면 다리를 건너는 방법밖에 없다.

다리는 총 여섯 개가 있는데 벨램튼주로 통하는 것이 두 개, 벨라스터주와 어네스퍼드주로 통하는 것이 각각 하나 그리고 콘체스터주로 통하는 것이 두 개가 있다.


벨램튼주로 통하는 다리 두 개는 이미 지나쳤다.

다리마다 통행세를 받는 경비병들이 있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다들 창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그 경비병이 무서워서 다리를 못 건너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남겨서 추적이 붙는 것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벨램튼주로 먼저 건너가서 벨라스터주로 북상하는 것을 포기한 진짜 이유는 이 망할 로저 놈 때문이다.


애초에 월링퍼드주에서 깨어나지 않았다고 좋아한 이유도 이동 경로 중간에 베이퍼드주가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하지운 입장에서는 벨램튼주도 베이퍼드주 못지않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미친 새끼! 약혼자가 있는 여자를 차지하겠다고 남의 성에 쳐들어가! 그것도 백작의 성에! 제 놈이랑 신분이 동등한 양반을 상대로 갖은 협박을 늘어놓고는! 미친놈이 원한을 그렇게 곳곳에 만들어 놓고는 안 죽고 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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