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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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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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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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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28화


‘아, 방법이 하나 더 있었지. 몇 놈이 시도했다가 때려 치긴 했지만. 와인처럼 괴물의 피만 사서 오크통에 담아가는... 이 고온 다습한 나라에서... 냉장고도 없는 것들이... 혈액을 운반했다는... 우욱! 이런, 썅! 사람을 죽이고도 안 올라오던 구역질이!’


하지운은 괴물 피 맛에 있어 일가견이 있는 로저의 몸을 뒤집어쓴 존재다.

부패한 괴물 피 맛을 상상하는 것은 뭐랄까.

역린을 건든 것과 같은 작용을 하였다.


한참 잡생각에 빠져 있다 갑자기 올라온 헛구역질에 하지운은 잠시 심호흡이라도 할 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잡생각에 빠져 있었더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출발했는데 벌써 초저녁이 된 것이다.

이러다 정말로 뗏목 위에서 밤을 새야 할 것 같아, 하지운의 가슴에 불안감이 초고속으로 쌓여갔다.


‘생각보다 훨씬 유용한 인력들이었는데... 이렇게 저승으로 떠나보내야만 한다는 말인가... 앞으로 내 수발은 누가 들어준다는 말인가. 없을 땐 몰랐는데 하루 굴려 보니 이보다 소중할 수가 없구나. 내 소중한 노예, 일이삼사!’


해가 지고 나면 수면 밑으로 열심히 쫓아오던 놈들도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운 자신이야 살 궁리를 다 마쳤다지만 일이삼사 이 가련한 중생들은 살 방도가 없어 보였다.


‘네 놈들 복수도 내가 다 해주마. 내가 브리갠트 최고의 복수 대행 전문가가 될 예정인데, 너희 복수 정도야 못 해 주겠느냐? 걱정 말고 다들 좋은 곳으로 가라.’


아직 죽지도 않은 일이삼사의 명복까지 미리 빌고 있는 하지운이었다.

점점 로저에게 물들어 천인공노해지고 있는 하지운.

그가 진심으로 이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던 순간, 일이삼사 중 이였는지 삼이였는지 헷갈리는 놈이 소리를 쳤다.


“각하! 저기 섬 같은 것이 보입니다.”


‘이, 새끼! 내가 정말 좋은 곳으로 보내 주고 있었는데! 웬 잡소리를 해서 산통 다 깨는 것이냐! 어두워지니까 무서워서 헛것을 봤나.’


놈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 마음 속 깊이 미안함을 느꼈다.

정말 있다.

섬 같은 것이.


‘설마 혹시 제자리를 뺑뺑이 돌아서 출발점으로 돌아온 거 아냐? 습지 속에 저런 사이즈의 섬이 원래 있나? 한반도 밖을 나가 본적이 있어야 뭘 알지. 섬이 아닌 거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더 섬이 아닌 것 같았다.

어찌 되었던 일단 내려 봐야 할 것 같았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일이삼사는 도저히 떠나보낼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뗏목 위에 더 두었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 혼자가 돼 버릴 것 같았다.


“한 놈씩 뭍으로 던질 것이다. 내가 사슬을 던지면 잡아서 끌어당겨라. 동작 빠르게 해라. 살아서 내일도 저 지는 해를 보고 싶다면.”


‘던져... 그리고 사슬은 어디 있는데?’


“네, 각하.”


앉아서 노를 젓고 있던 일일 것으로 추정되는 놈의 뒷덜미를 잡았다.

놈이 다칠까 봐 최대한 살살 던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놈이 하지운의 예상보다 훨씬 예쁘게 착지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의 다리가 쑥 빠지면서 기우뚱하더니 뒤로 넘어지려 했다.

하지운이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려던 순간 놈이 들고 있던 노를 땅에 박으며 버텨냈다.


‘오오! 10점 만점에 8.5점!’


감탄하면서 점수를 매긴 하지운이 빵 보따리들을 일에게 던져준 후 고개를 돌려 다음 놈을 바라봤다.

이가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고개를 숙였다.


‘이놈 배려 보소. 잡기 쉬우라는 거냐?’


다음 놈들도 하나씩 잡고 던졌다.

일이 하던걸 봐서 그런지 다들 곧잘 착지해서 중심을 잡았다.


“야, 조심해라. 말뚝 날아간다.”

“네, 각하.”


일이삼사 모두 대답은 잘했지만, 면상들은 모두 미친놈이 뭔 소리 하나 하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수납장에서 사슬 달린 쇠말뚝을 하나 꺼내서 던졌다.

놈들의 발 앞에 푹 박혔다.


“당겨.”


얼마나 놀랐는지 일이삼사는 대답도 못하고 열심히 당기기만 했다.

뭔가 못 볼 것을 본 표정인데, 내색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하지운의 심장에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운은 그들의 애절한 연기에 감동 받아 실신할 것 같았다.


‘내색하면 왠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넷 다 연기력이 원래 좋은 놈들인가? 정말 탐나네! 내가 작가 출신인데도 이런데, 기획사 사장 출신이었으면 눈 뒤집혔겠는데.’


주연 배우는 탈바가지들 때문에 힘들 것 같고, 개성파 배우로 데뷔시키고 싶은 넷을 보며 군침을 삼키는 하지운이었다.


뗏목을 뭍으로 올려놓고 일이삼사에게 식사를 지시했다.

일이삼사는 배가 고팠는지 딱딱한 빵을 격렬하게 갉아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솔직하게 얘기해 줬다.


“넉넉하게 먹어 둬라. 생각보다 오래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운의 솔직한 말에 일이삼사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금세 먹은 것을 다 게워낼 기세다.


‘이 새끼들... 뭔 상상을 한 거야...’


“편하게 먹어라. 내 손으로 너희를 직접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네 놈들이 미쳐서 덤비지만 않는다면.”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일이삼사가...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표정들이 행복사 직전의 표정들이었다.

빵을 우물거리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눈물을 닦는데.

하지운은 왠지 군대 훈련소로 재입소한 기분이 들었다.


‘미친 새끼들이 정말 살인멸구를 생각했나? 어제 본 험프리의 행복한 표정이 떠올라서 그런가? 이 새끼들... 진짜 죽이고 싶어지네...’


일이삼사가 눈물 젖은 빵을 먹는 동안 하지운도 식사를 마쳤다.

대한민국에서 살던 원래의 하지운 즉 1.0버전의 하지운이었다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AT-1K만한 빵을 혼자서 격식 갖추면서 먹는 짓은 못 했을 것이다.


아랫것들과 겸상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듯 혼자 테이블을 펴놓고 앉아, 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기품 있게 먹는 하지운의 모습은 짙은 로저의 향기를 떠올리게 했다.

로저가 육체에 남긴 찌꺼기가 어느새 하지운에게 완전히 흡수된 듯 했다.

하지운과 로저의 합작 즉 2.0버전의 하지운이 부활 하루 만에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졸개들과 함께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하지운의 예상과 달리 섬이 맞았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걸어 다니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바닥도 탄탄했다.

섬 중앙에는 동네 뒷산 같은 작은 산도 하나 있었다.


‘개울 같은 것도 있고 오래 죽치고 있을 만하네. 여기 원래 그냥 큰 호수 같은 거였나? 중간 중간 조막만한 섬들이 있는. 삼백 몇십 년 전엔가 기후 변화도 크게 있었을 테니. 아닌가... 이백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이렇게 변하지는 않으려나? 빌어먹을! 문과를 나와 놓으니까 아는 게 없네!’


드레이시 가문이 대습지를 발견한 것이 이백 년도 전이다.

로저 위드링튼이 위드링튼으로 이주하던 그 시기에 발견된 것이다.

발견 당시에도 이 곳은 늪지였다.


‘제국이 통째로 들어갈 만한 거대한 바다가 대륙의 중간에 생겼으니 기후에 영향이 없었을 리는 없고... 모르겠다. 뭐, 중요한가. 일이 더 수월하게 풀렸으니 좋은 거지.’


애초에 나무 위에 쇠사슬을 감고 타잔처럼 이동할 생각을 했던 하지운이었다.

그래서 쇠말뚝을 열 개나 구매한 거다.

쓸데없는 지출을 했다.

왠지 너구리같아 보이던 대장장이 영감만 땡잡은 듯 했다.


사실 돈은 아직 넉넉했다.

성범죄의 달인 리처드 일당에게서 털어먹은 푼돈은 치지도 않고도 원래 돈은 많았다.


‘로저놈, 과연 이 동네 삼대재벌 상속자답구나. 순금 갑옷이라니... 거기다 진짜 부자들은 상표가 겉으로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더니... 과연 그렇더구나! 갑옷에 금을 떡칠을 해 놓고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너란 남자는...’


미친놈이 가죽 갑옷 안감에 금화를 찰갑처럼 도배를 해 놨다.

그 위에 솜과 천을 덧대어 누가 갑옷을 들춰 봐도 알 수가 없게 만들어 놨다.

제 손으로 계산도 해본 적 없는 놈이.

그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멋을 위해 만든 옷이다.


어제 저녁 과식을 한 하지운은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변을 봤다.

변을 보며 사색에 잠긴 채 금화를 하나하나 뜯어서 수납장에 쌓아 놨다.

금화 이백사십 개였다.

처음에 강에서 나와 물을 털 때도 안감이 찢어져 있을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사실 하지운은 틸다에게도 눈치 봐서 금화 열 닢을 더 주려고 했었다.

그녀가 기겁을 해서 그것만 주고 말았지.


‘거버스 영감탱이 때문에 마흔 개 정도는 녹여서 다시 만들어야 하잖아. 팔에 잠깐 불붙었는데 옆구리에 있던 것들이 녹아서 눌어붙다니···’


하지운은 반드시 거버스가 늙어 죽기 전에 찾아가 최선을 다해서 예뻐해 주기로 거듭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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