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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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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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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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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3)

DUMMY

75화


하지운의 일침에 아그네스 호소인이, 얼음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선 채로 굳어 버렸다.

땡이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얼음처럼 굳어 있는 건 하지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아그네스 같은 년이 제 주제에 영혼의 일부를 남겼을 리도 없지. 넌 그저, 아그네스의 기억을 흡수한 것뿐이잖아. 그런데,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거야? 너 죽기 전에도, 심각한 병신이었어?”


하지운이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질문을 이어 갔다.

솔직담백한 그의 어투에, 아그네스 호소인의 낯짝이 코 푼 휴지처럼 구겨졌다.


“너 말하는 거 보니까, 내가 로저 본인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네. 너는 아그네스가 아니고, 나도 로저가 아닌데. 왜 나한테 지랄이야?”


너무도 당연한 물음에, 아그네스 호소인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애먼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 대단하시네요. 굉장히 논리적인 분이시군요. 당신의 말이 맞아요. 그런데...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당신이 로저가 아닌 걸 알고 있는데, 로저라고 계속 부를 수는 없잖아요.”

“잭 존슨이다.”

“본명이 맞죠?”

“아니, 귀찮아서 대충 지었다. 내가 이름 짓는 거라면 신물이 날 것 같으니, 불만 갖지 말고 그냥 그걸로 불러라. 또 지어내기 귀찮다.”

“과연 로저의 몸을 뒤집어쓴 놈답게,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어차피 네놈도 나의 권능 앞에선, 한낱 발정 난 수컷일 뿐이다. 어떻게 버텨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못 갈 것이다. 내 사랑들, 이제 들어와도 돼요.”


아그네스 호소녀가 우아하게 박수를 치며, ‘사랑들’이라는 존재들을 불러들였다.

침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위풍당당한 전사 둘이 경쟁하듯 뛰어 들어와, 호소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누워서 두 ‘사랑들’의 면상을 본 하지운이 못 참고 뿜어 버렸다.

한 놈은 전혀 모르겠는데, 한 놈은 너무 잘 아는 놈이었다.


‘크랜베리의 피났어. 이놈이 어쩌다가, 이인조 그룹 사랑들의 멤버가 된 거지?’


“뭐가 웃기지? 너도 곧 내 ‘사랑들’ 중 한 명이 될 거야. 내 사랑이 되고 나면, 내 손에 아주 따끔하게 혼날 텐데, 지금 이렇게 까불어 놓고 후회하지 않겠어?”

“너, 너무 무서워요. 미친년 님이 사용하시는 이 엄청난 권능이 대체 무엇이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어요.”

“하아... 내 이름은 미오야. 미친년이 아니라.”


‘역시, 니혼진이셨어. 어쩐지 억양부터 간드러지는 목소리까지. 왜 이렇게 친숙한가 했다.’


“궁금하니까 네 능력이나 말해 달라고, 미친년아. 네 이름 따위야 내가 알 게 뭐야. 그것도 이미 뒈져 버린 전생의 이름 따위를.”

“내 사랑들, 저 입이 시궁창 같은 악마 놈을 준비한 의자에 앉히세요. 저 수컷은 조련이 필요해 보여요.”


문밖에서 원목과 쇳덩어리가 적절하게 섞인, 거대한 의자 비슷한 것이 끌려 들어왔다.

팔걸이와 의자 다리에 족쇄가 달려 있고, 엉덩이가 닿는 좌판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용도가 지극히 명확해 보이는 의자였다.


‘사랑들’이 하지운의 양팔을 잡고 들어 올렸다.

상식 이상으로 거대한 하지운을 수발드느라, 두 장정의 고달픔이 보기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겨우겨우 의자에 앉혀 놓고 보니, 의자 사이즈가 지나치게 왜소했다.

다 큰 성인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분명 로저 놈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서 제작된 의자인데, 막상 사용해 보니 턱없이 부족했다.

몸만 겨우 욱여넣었지, 족쇄는 채울 엄두도 안 났다.


“야, 이 미친년아. 집에 의자 큰 거 없냐? 이걸 의자라고, 사람을 앉혀 놨냐? 아담한 ‘사랑들’이랑 붙어먹다 보니까, 작은 것에 집착하게 된 거야? 이게 뭔 괴상한 형태의 고문이냐?”


미오 짱의 얼굴이 더 이상 구겨지기 힘들 만큼 구겨졌다.

사랑들이고 나발이고 그냥 확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벽난로 옆에 놓인 부지깽이라도 집어 들고, 이 미치광이의 너저분한 주둥이에 쑤셔 박고 싶었다.


정말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참아 냈다.

눈앞에 보이는 이 거구의 또라이는 왕국 최강의 용력에, 신체 재생 능력까지 갖춘 초특급 살인마다.


놈의 수발을 들던 네 놈의 머저리들에게서 뽑아낸 정보에 따르면, 이 미친 살인마 놈이 대습지 속에서, 무려 사만여 마리의 불사신들을 도륙했다고 한다.


이건 괴물 피를 처먹었다고, 해낼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이 정도면 이적이며,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업적이다.

입버릇이 사납다고 죽여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위대한 용사님인 것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잭 존슨 네놈을 내 종으로 만들어 주마! 오기로라도 네놈이 날 사랑하게 만들어 주겠다!”

“잠깐! 도대체 네 기술이 뭔데? 어떻게 써먹는 기술인지 알아야, 내가 넘어가는 시늉이라도 해 주지. 그리고 좀 차분하게 해 봐. 그래 가지고 기술이 먹히겠냐. 봐주고 있으려니, 정신이 사나워서 멀미가 날 것 같다.”

“여유가 넘치는구나, 자칭 잭 존슨. 난 아직 권능을 제대로 시전하지도 않았어. 내 능력은 네놈 말대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발동해야 진가를 발휘하지.”


그녀가 까딱하며 턱짓을 하자, ‘사랑들’이 방문 앞으로 후다닥 움직였다.

문 앞에 나란히 도열한 채, 하지운을 응시하는 두 남정네의 눈에는 질투와 시샘의 감정이 한가득하였다.


“방해꾼들이 물러났으니, 긴장을 풀어요, 존슨 씨.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편안하게 절 바라봐요. 제가 황홀하게 해 드릴게요. 저와 벅찬 시간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존슨 씨는 제 사랑이 되어 있을 거예요.”


교태를 질질 흘리며 하지운의 주위를 빙빙 돌던 미오 짱이 수납장에서 채찍을 꺼냈다.

그런데 그 채찍이 보통 채찍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돌기가 촘촘하게 박힌 흉측한 물건이었다.

아무리 환골탈태를 거친 하지운의 피부라 해도, 저런 흉기로 갈겨 대면 거죽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어릴 적에 맞고 컸지? 성적 취향이 지저분한 걸 보니, 억압된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란 모양이네.”


하지운의 허벅지를 채찍으로 훑고 있던 미오 짱이 순간 참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채찍을 휘둘렀다.

가죽 갑옷으로 가려지지 못한 하지운의 낯짝이 금세 피범벅이 되었다.

물론 눈 깜짝할 사이에 새살이 솔솔 돋아났다.


“이게 재생 능력이구나. 불사신들을 죽이고 뺏은 거지? 강탈 능력을 고르는 놈이 정말 있었네. 진짜 궁금했어. 도대체 어떤 인간쓰레기가 그런 역겨운 능력을 고를지 말야. 남을 죽이고 능력을 갈취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걸 고른 네놈이! 내 어린 시절을 비웃을 자격이 있어?”

“비웃기는. 무슨 그런 억측을. 비웃는 거 아냐. 분석한 거야. 근데, 너 우냐? 이야, 어릴 때 좆같은 일을 많이 겪었나 봐.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거야?”

“입 닥쳐!”


채찍을 든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있는 힘껏 내려치려던 미오 짱이 가슴을 들썩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던 그녀는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천천히 팔을 내렸다.


“깐족대지 마. 넌 이미 내 권능에 반은 넘어왔어. 내 능력의 이름이 궁금하다고 했지? ‘매혹’이야. 누구든 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에게 육체의 지배권을 넘기게 돼. 넌 이미 날 아름답다고 인정한 거야.”


‘씨발! 일 났네! 일 났어! 그냥 예쁘다고 생각만 한 건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생각도 못 하냐! 아오, 승아를 무슨 낯으로 봐... 미안해서 죽어 버리겠네! 꿈속에서 그 애를 만나면, 어떻게 눈을 마주 보지... 아니... 애초에 빡쳐서 안 오는 거 아냐...’


“망연자실한 표정이 볼만하구나. 왜, 이제 와서 겁이라도 먹은 거야? 두려워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네가 나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는 순간, 네 영혼까지 남김없이 내 것이 될 거야. 그럼 너와 나 모두 엄청난 쾌감을 느끼게 될걸. 어때?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아?”


어느새 하지운의 허벅지에 걸터앉은 미오 짱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감미롭게 속삭였다.

국적이 국적인 만큼 참고 자료가 많았던지, 치명적인 척하는 표정이 일품이었다.

그녀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하지운이 결국 못 참고 한마디를 건넸다.


“네 아가리에서 똥내 나. 양치질 안 하냐? 물에 소금이라도 타서, 아가리에 넣고 좀 헹궈라. 이게 입 냄새냐? 똥 냄새냐?”


빠드드드득!


이빨 가는 소리가 침실 안을 가득 메웠다.

채찍을 집어던진 미오 짱이 자신이 입고 있던 드레스도 벗어 던졌다.

다행히 속옷은 입고 있었다.


드레스 속에 입는 이곳의 여성 속옷은 할머니 고쟁이처럼 충분히 천이 많이 달려 있었다.

기겁을 하던 하지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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