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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연재수 :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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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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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4
글자수 :
638,436

작성
22.10.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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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 126화

DUMMY

봉혜공주는 부친의 창백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전, 잠깐 정신을 차린 부친은 귓속말로 한 문장만 말했다.


“은공(恩公)을 반드시 네 사람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다시 혼절.


수고했다거나, 적이 누구라는 말보다 이 말이 더 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봉혜공주는 답답하고 화가 나서, 엉뚱하게 의원들을 향해 화를 내었다.


“의원은 왜 이렇게 오지 않는 거야.”


“금방 오실 것입니다.”


“느려터진 것들. 쓸모없는 것들.

만약 부왕께서 돌아가시면 다 죽여 버릴 테다.”



의원 다섯이 도착했다. 반드시 살리겠다는 다짐을 받고 봉혜공주는 병실을 나왔다.


“은공은 접객실에 계시느냐?”


“예.”


“기별해라. 내가 지금 찾아뵙는다고.”



태승은 봉혜공주의 미모에 감탄했다.

이런 뛰어난 미모는 두 번째다. 귀시 경매에서 본 막요가 첫째.


막요는 한 없이 빠져들 것 같은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반면, 공주는 도도하고 냉엄하다. 차가우면서도 아름답고 위엄이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자기와 인연도 없다.

왕인 부친을 구해줬다는 것으로 엮어 인연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미녀라서? 웃기는 소리다.


솔직히 말해서 수정판의 풍류결과 원앙결에서 본 미녀들이 훨씬 아름답다. 그것들은 그림이고 환상이지만.


‘마음에 두면 안 된다.’


태승은 방금 받은 인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겉치레인 인사말이 오고갔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봉혜공주는 깜짝 놀랐다. 자기보다 두어 살 위로 보이는 평범한 차림의 소년이 결신경 후기란다.


하지만 믿었다. 토둔술로 땅을 뚫고 나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결신경 초기는 넘어야 가능하다.

게다가 마주앉아도 경지가 가늠되지 않는다. 자신보다 높은 경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부친이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라고 하셨구나.’


이유를 알게 되니 욕심이 부풀었다. 봉혜공주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대단하십니다. 태수사.

부친을 구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데, 필요하신 것은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붙잡아야 했다. 결신경 후기 수사는 희귀하다. 자기 휘하에 두면 엄청난 전력이 된다.


봉혜공주는 태승의 배경을 알려고 이것저것 물었다. 혹시 적의 간세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소속이 어딘지, 왕부에서 일할 생각이 있는지 떠보았다.


평소에 짓지 않는 미소도 보이고, 말도 부드럽게 했다. 하지만 안하다 하니까 몹시 어색했다. 자신도 그것을 알았다.


‘씨, 여우 짓이라도 해야 하나.’


태승은 공주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런 사람들은 머릿속에 단 하나밖에 없지. 자신의 세력을 불리고, 적을 쓰러드리는 것.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것에 매달려서 살아가니,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불쌍해.’


태승은 귀찮고 싫었다. 넌더리가 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왕야를 구한 것은 우연입니다. 이제부터는 의원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저는 급한 일이 있어 바로 떠나야 합니다. 공주님의 휘하에 들어갈 생각도 없고, 간세 따위는 전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봉혜공주는 눈을 빛내고 물었다.

됐다 싶었다.


“무엇인가요? 제가 드릴 수 있으면 무엇이든 당장 내드리겠습니다.”


“지하 창고의 물건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단 하나의 물건이라, 어떤 물건인가요?”


“저도 모릅니다.”


“네?”


봉혜공주는 순간 벙 쪘다.


“급한 일을 끝내고,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가져갈 수 있게 약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언제쯤.”


“짧게는 삼년, 길게는 삼십년 이내가 될 것 같습니다.”


‘기한이 너무 길잖아.’


그러나 따질 때가 아니다. 공주는 무조건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드리지요.

그때까지 제가 왕부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떠날 때에는 이 약속을 지키라고 단단히 일러놓고 떠나겠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창고의 목록을 떠올렸다. 아무리 되짚어도 결신경 후기 수사가 원할 정도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봉혜공주는 똑똑하고 거침없었다.

태승은 약속을 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혜공주는 또 다시 벙 쪘다.

자기 미모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갖가지 핑계를 대며 눌러앉는 청년들이 우글우글한데 이렇게 떠나다니.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여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왕부는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열 명도 넘는 호위무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기세등등하다. 여차하면 썰어버릴 속셈으로 칼자루를 붙잡는 놈도 있었다.


“보내드려라.”


공주의 한마디에 길이 열렸다. 몇 놈은 태승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데 연락하려나 봐.’


상관없다. 왕부 밖을 나가자마자 사라질 테니까.


모습을 감추고 성벽을 향했다. 등 뒤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이걸로 끝이다. 수련에 방해만 될 뿐.’


인연의 끈이 유달리 뚜렷하게 보여 찾아왔지만,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이후 태승은 높은 사람들은 미리 피했다.

모래 속에 물이 스며들듯, 나뭇잎에 숲속에 묻히듯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이년이 흘렀다.


다양한 상황을 겪고, 많은 경험을 했다. 성질을 죽일 줄도 알고, 할 말도 속에 담아두는 것을 배웠다.

모욕을 참거나 힘든 것을 견디는 것에도 이골이 났다.


삼년을 채우고, 태승의 발길은 무룡곡으로 향했다.


무룡곡 입구에 귀력이 폭발한 흔적이 있었다.


‘예령의 숙부와 포방이 여기서 헤어졌구나. 귀왕령을 몸속에 넣는 바람에 충격이 발생한 것이군.

포방은 잘 있는지 모르겠네.’


귀왕령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포방과의 연결은 끊어졌다.


태승은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생각에 걸음이 가벼워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침입했다고 부도탑으로 연락이 갔다.


‘드디어 아승이 왔구나.’


부도탑에서 혼체가 빠져나왔다.


태승은 눈을 감고 길을 찾았다.


눈 폭풍을 지나 낭떠러지 가까운 곳에서 허공에 떠 있는 혼체와 만났다.


[어? 사부님. 저 맞이하러 나오신 거예요?]


태승은 빙긋 웃은 다음,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오랜만이다. 삼년 동안 수고가 많았구나. 소득은 좀 있었느냐?]


[소득은 모르겠고, 의문만 잔뜩 늘었어요.]


[잘했구나. 그것이 성장했다는 증거지.]


[의문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니다. 일단 여기 앉아서 네가 풀어봐라.]


[여기서?]


낭떠러지 건너편 벽은 여전히 거대한 얼음을 깎아 만든 듯 투명했다.


[내가 되었다고 할 때 까지 일어나지 말고, 건너편 벽을 봐라.]


[알겠습니다.]


태승은 가부좌를 틀고 건너편의 투명한 벽을 응시했다. 영력을 개방해서 음식은 필요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다.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흘렀다. 열흘이 흐르고 한 달, 두 달이 갔다.


언제부터인가 시간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이 변하는 지도 몰랐다.


점점 다른 것, 잡다한 사물과 사람과 과거에 대한 관심과 집착도 사라졌다.


관심과 집착이 사라지니 원숭이처럼 날뛰던 수많은 생각들이 자는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기 시작했다.


몸 밖에서 들어오던 각종 자극, 생각의 원천이 되는 외계의 움직임에 두뇌가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은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마치 텅 빈 것처럼 되었다.


텅 빈 속에 단 하나, 별빛처럼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지난 삼년동안 지고 다녔던 의문이었다.


태승은 이것만 붙잡고 버텼다. 이것만 답이 나오면 모든 것은 쉽게 풀린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이 전부 하늘의 뜻인가?


누구는 미남으로 태어나는데 누구는 추남에 불구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이 정한 것인가?


왕자로 태어나 존귀하게 떠받들어지며 사는 것과 천민으로 태어나 파리 목숨인 것도 하늘의 의도인가?


자신은 다행히 영맥이 있어 수사가 되고 운 좋게 사부를 만나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그냥 운인가? 운도 하늘이 움직이는 것인가?


이렇게 제멋대로면 하늘의 뜻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그리고 하늘의 뜻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하늘의 뜻에 따른답시고 손 놓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는 게으름뱅이들 많이 봤다. 그런 놈치고 잘되는 놈 못 봤다. 그럼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머릿속은 이런 의문들로 가득 찼다. 시간이 갈수록 의문은 숙성되고 부글부글 끓었다.


결국 의문은 폭발했다. 폭발은 의문을 담고 있던 그릇을 터뜨렸다.


태승은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실제로 신혼을 싸고 있던 껍질에 커다란 금이 생겼다. 금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나왔다.


“쿨럭.”


기해에서 피가 솟구쳐 올라와 중단전을 거쳐 입으로 나왔다. 시커멓게 죽은 피였다. 토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머리가 맑아졌다. 정수리까지 시원하게 뚫린 것 같았다.


태승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먹구름 속에 비와 번개가 숨어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태승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하늘?

하늘은 개뿔.”


[[호오, 하늘도 우습게 보는 용기 있는 친구네.]]


어디선가 들려왔다. 전음도 심어도 아니다. 사부가 보낸 것도 아니다.

누가 보낸 것인지, 성별도 나이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단 하나 느낄 수 있는 것은 지독하다는 것.

처음은 느물느물 친한 척 다가와서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집어삼킬 놈이었다.


그러나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 드는 것이 이상할 법 한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것이 되레 이상했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이런 말도 있는데, 좋은 게 좋다고 생각을 고쳐먹는 게 어때?]]


“어디서 굴러먹던 잡귀가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꺼져라.”


안 넘어가고 강하게 내치니, 태도가 달라졌다. 겁을 준다.


[[날더러 잡귀라고?

몰라서 그러니 이번 한번은 봐줄게.

하늘의 뜻에 순종해.

그렇지 않으면 이번 천겁에 죽을 수 있어.]]


“개소리.

하늘의 뜻 따위 믿지 않는다.

나는 선도(仙道)를 따르고, 그런 나를 믿는다.

진정한 강자는 스스로 우뚝 서는 법.

썩 꺼져라.”


태승은 우렁차게 외쳤다. 영력까지 사용해서 무룡곡 전체가 웅 웅 울렸다.


갑자기 난 큰 소리에 혼체가 날아 나왔다.


[[천겁을 당하면서 그딴 소리 언제까지 하는지 지켜보마. 두고 봐라.]]


본색을 드러내고 악담을 퍼붓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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