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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연재수 :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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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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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4
글자수 :
638,436

작성
22.10.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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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
11쪽

제 121화

DUMMY

대숙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용히 말로 타이르면 해결될 상황인데, 저놈의 계집애가 산통을 다 깼다.


“이놈들아, 저놈의 계집애 좀 단속해.”


늘 인자하던 대숙이 소리를 꽥 질렀다. 이숙과 삼숙은 급하게 예령을 붙잡고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이 다 조용해졌다.


대숙은 한숨 돌렸는데, 우정추는 이런 소동 속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대숙은 우정추를 살폈다. 우정추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완전히 내가 죄인이오, 날 잡아 잡수시오 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태승의 화가 가라앉았다.

대숙이 다시 입을 열었다.


“태승,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손 떼겠습니다. 알아서들 하세요.”


“애비가 죽어도?”


태승은 짜증이 났다. 그놈의 애비, 애비. 진저리가 나서 거침없이 내뱉었다.


“죽이든 말든 맘대로 하시되, 한 가지는 아세요.

부친의 원수는 반드시 갚습니다.”


대숙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포방에게서 구원의 손길이 날아왔다.


“어렵지, 후손아?

이럴 때는 계약으로 상황을 풀어야 한다.

한 가지 물어보자.

너희는 귀왕령을 몸에 집어넣어, 경지가 상승하면 뭘 할 생각이냐?”


“죽은 귀왕문주의 복수를 하러 갈 겁니다.”


“간단하네.

그 복수를 내가 해 주면 되지 않느냐?

너희들이 명령을 내리면 누구든 처치해주마.

그리고 복수가 끝난 다음에는 너희들과 헤어지면 되지.”


“귀왕령도 저희에게 주셔야 합니다.”


“준다고, 줘. 약속하지. 저주 언약이라도 할까?”


대숙은 의아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 있을 수가 있나?

분명히 말 속에 무슨 함정이 들어있을 것 같은데, 그걸 찾을 수 없어 찜찜했다.


“참으로 감사한 말씀이신데,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이 몸이 마음에 든다. 양신경 수사의 몸은 천년 만에 처음이거든.

당분간 이 몸을 쓰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의문이 해소가 되었느냐, 후손아?”


“저주언약부터 해 주십시오.”


“알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포방은 손끝을 찢어 피를 내었다.

하늘을 향해 피를 뿌리고 저주언약을 크게 외쳤다.


꽈르릉!


말이 끝나자 밤하늘에서 단 한 줄기의 번개가 떨어져 포방의 머리를 직격했다.

포방의 머리칼이 다 타고, 두피에 번개 문양이 새겨졌다.

그제야 대숙은 우정추의 목에 감은 실을 슬그머니 풀었다.


저주언약을 끝내고 포방은 대숙에게 명령했다. 당당한 기세가 구름 일어나듯 포방의 전신에서 일어났다.


“의심은 사라졌겠지? 복수하러 갈 곳은 어디냐?”


귀왕문의 네 사람은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대숙이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귀왕께 아룁니다.

대호성입니다.”


대호성은 벽신국에서 거룡성 다음가는 성. 크기와 인구수는 거룡성의 절반 정도.

그 곳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던 귀왕문은 나머지 세력들의 집단 공격에 멸문 당했다.


“거슬러 올라가 국경을 넘어야겠구나. 저 여아는 선법대회에 참가하는 것 같던데.”


“예. 령아는 거룡성에 홀로 남아 선법대회에 참가합니다.”


“제 부모의 복수인데, 선법대회 끝나고 복수에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


대숙은 귀왕이 어떻게 이런 것을 알까 생각하다가, 사저의 몸에서 기억을 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법대회 끝나자마자 곧바로 칠대종에서 데려간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칠대종 같으니.”


포방이 입으로 말을 하는 사이, 귀왕령 속의 귀왕은 태승과 교통했다.


‘금방 끝날 거다. 끝나는 대로 널 찾아 올게.’


‘귀왕령도 준다며? 그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지?’


‘흐흐흐, 다 방법이 있다. 걱정 마.’


‘만약 나를 못 찾겠거든 무룡곡으로 와. 무룡곡 위치는 내 기억을 읽었으니 알지?’


‘어차피 무룡곡에 가서 수련할 생각이야. 이 몸으로 삼십년 수련하면 옛날의 경지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거든.

그러면 수천 년 만에 인간 세상에 귀왕이 재림하는 거지.’


‘흥, 역시 목적은 그것이었어. 나도 대충 눈치 챘다.’


‘흐흐흐, 네가 눈치 챘다는 것을 나도 알아. 서로 심령이 연결되어 있잖아.

이런데 내가 너를 못 찾을 리가 있나?’


‘그럴 만한 일이 있어. 아무튼 그렇게 알아 둬. 다음에 보자.’


‘이별 선물 같은 거 없나?’


‘우리가 연인이냐? 미친.’


포방 일행과 우정추 일행이 서로 예를 주고받으며 작별 인사를 하는 사이 태승의 마음이 바뀌었다.


‘까짓것 줘 버려. 이참에 무기도 정리하자.’


“잠깐, 이것 받으십시오.”


태승의 손에 만근부가 들려있었다. 포방이 눈웃음을 치며 모르는 체 물었다.


“뭔가?”


“쓸 만한 무기가 없을 것 같아서요. 이래봬도 상품 영보입니다.”


“고맙네. 크흠.”


당연한 듯이 받아 챙기고, 포방 일행은 떠났다.


떠나면서도 예령은 태승에게 독한 눈길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왼손으로 왼쪽 뺨 맞은 데를 계속 문지르면서 입으로는 소리 내지 않게 욕을 했다.

욕하는 입 모양이 태승에게 뚜렷이 보였다.


‘저게 또 쳐 맞으려고.’


태승의 눈에서 살기가 일어났다.


수십 명을 죽인 태승의 살기를 예령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람 하나 죽여보지 못했는데.


‘어마! 뜨거.’


예령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살기에 오줌이 찔끔 나왔다.


동갑내기에게 쫄리기는 처음이다. 싸대기도 사내에게 처음 맞아봤다.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이상하게 온 몸이 화끈거렸다.


‘저 새끼 손 한번 되게 맵네.

그래도 사내 손은 화끈해야 좋아. 오른쪽 뺨도 때려주지.

어머머, 내가 미쳤나 봐.’



비 때문에 강물이 불어, 물이 격하게 흘렀다. 우렁찬 물소리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우정추는 우진 옆에 털썩 앉았다.

긴 한숨과 함께 몸을 눕혔다. 귀찮은 일 다 끝냈다는 나른한 몸짓이다.


우정추에게 예령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애물덩어리일 뿐이었다. 더 이상 들볶지 않고 떠나주니 속이 다 시원했다.


이런 속마음이 태승에게 훤히 보였다. 태승은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우강에게 다가갔다.


“너는 검술을 다 배웠어?”


“하루 만에 어떻게. 그냥 길만 배웠지.”


“그럼 된 거야. 더 이상 어쩌라고.

자, 검법서다. 이걸 보고 혼자 공부해.”


포방에게 되돌려 받은 검법서를 던져주고 태승은 우정추에게 다가갔다.


우정추가 일어나 앉았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예를 올렸다.


“저는 수련을 위해 무룡곡으로 떠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래? 진아, 일어나. 아승이 떠난단다.”


“응?”


우진이 벌떡 일어났다. 우강도 달려왔다.


“같이 있지, 왜 떠나? 형.”


“갈 길이 다르니까.

나는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야 하는 수사다. 부친과 숙부를 잘 모셔라.

두 분 몸조심 하십시오.”


인사를 끝냈다. 붙잡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이 태승은 사라졌다.


어른 둘은 이럴 것이라 짐작했지만, 우강은 뒤통수를 맞은 듯 입만 벌리고 있었다.


우진이 발로 툭 건드렸다.


“파리 들어간다. 입 닫아.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느냐. 형이 평생 우리와 함께 할 것 같아?

우리도 여기를 뜨자. 헌원가 놈들이 뒤쫓아 오면 피하기 어렵다.”


“씨, 그래도 자리 잡을 때 까지만 같이 있어주지.”


“그런 생각 버려. 이제부터는 너도 홀로서기 해야 한다.”


“알았어요. 그런데 어디로 가죠?”


“사람 만날 때까지 걸어가야지.

자, 받아라. 네가 들고 와.”


우정추가 생선 묶음을 던졌다. 식량이 없어 물고기를 어제 여러 마리 잡았다.

우강이 인상을 썼다.


“으, 비린내. 질려서 못 먹겠어.”


종적을 숨기고 은밀하게 따라가던 태승은 코웃음을 쳤다.


‘며칠 굶어봐라. 없어서 못 먹을 거다.’


태승은 우강 말처럼 자리 잡을 때까지만 봐 줄 생각이었다.


‘열흘이면 충분하겠지.’



허허벌판을 반나절 걸어가서야 사람이 지나다니는 흔적이 나왔다.


멀리 민가가 띄엄띄엄 보이고, 논과 밭도 펼쳐져 있었다.


“사람을 찾아 길을 물어봐야죠?”


민가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와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빠진 흑마가 먼지를 몰고 달려오고 있었다. 말 등에는 누런 옷을 입은 텁석부리 거한이 연신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몹시 급한 모양.


창처럼 등에 짊어진 황색 깃발에 붉은 글씨로 쓰인 표(鏢)자가 바람에 휘날렸다.


“독행 표사(혼자 표국 영업하며, 단거리의 간단한 물건을 운송함)다. 잘됐다.

잠깐만, 잠깐만! 말 좀 물읍시다.”


우강이 두 팔을 벌려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거한은 우강 따위는 보이지 않은 것처럼 채찍을 휘둘렀다.


“비켜! 죽기 싫으면.”


무지막지한 기세.

피하지 않으면 말발굽에 밟혀 죽을 것 같았다. 우강은 기겁하여 피했다.


“개새끼. 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어라. 칵, 퉤.”


말은 우강을 스쳐 지나갔다.


우정추는 거한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대도를 등에 맨 모습이 제법 틀이 잡혔다. 형편없는 수준의 무인은 아니었다.

말 엉덩이에 묶어놓은 나무상자가 떨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제법인데? 저자가 가는 길을 따라가면 성읍이 나오겠다.”


“거꾸로 표행을 시작하는 지도 모르잖아요?”


“아냐, 먼지 때문에 옷이 누렇게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표행이 끝나가고, 목적지까지 다 온 거야.”


“말 있으면 좋겠는데.”


우강은 말이 아쉬워, 사라지는 말 뒤꽁무니를 자꾸만 바라보았다. 발이 엄청 아팠다.


다시 반나절을 걸어 작은 성에 닿았다.


성에 단 하나뿐인 허름한 객잔에 들었고, 드러눕자마자 세 사람은 곯아떨어졌다.


낙민성.

인구 일만도 되지 않는, 국경 변두리의 작은 성.


다음날부터 우정추와 우진은 성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장사꺼리를 찾아 헤맸다.


우강은 뒷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워낙 낙후된 곳이라 우강의 부실한 무공실력도 먹혔다.


번듯한 외모에 타고난 말발까지 더해서, 단 열흘 만에 뒷골목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은신부로 몸을 감추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태승은 속으로 웃었다.


‘큭! 저 녀석.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저 정도면 먹고 살기는 지장 없겠군.

열흘이나 지났고, 나도 가 봐야지.’



그 열흘 동안 소문이 천리를 달렸다.


헌원가에서 수사를 동원해서 금사방을 멸문시킨 사실은 하루 만에 거룡성 내에 좍 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은 날개를 달았고, 연도관이 있는 지역을 넘어서 벽신국 전역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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