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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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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0.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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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 125화

DUMMY

북쪽으로 걸어가기를 육 개월. 태승은 수많은 사람과 접했고, 여러 사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었다. 쌍둥이라도 아주 조금은 달랐다.


대화를 하지 않아도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짐작이 가능했다.


대부분 이익에 목숨을 걸었다. 당장 죽을망정 손에 쥔 은자를 놓지 않았다. 손해 보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인정이 있는 사람을 간혹 만나곤 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뭘 깨우쳐야 하는지.’



봄볕을 쬐며 태승은 하품을 했다. 그냥 앉아 있으려니 조름만 왔다.


산과 들에 먹을 것이 많아, 매일 일할 필요가 없었다.

장작을 패 저자거리 귀퉁이에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날씨가 따뜻해서 장작이 잘 팔리지가 않는다.


‘안 팔리면 나중에 떨이로 팔아버리자.’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귀만 활짝 열었다.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반대편의 찻집에서 설서선생(이야기꾼)이 목청을 돋우고 선법대회를 실감나게 풀어나갔다.


최근의 흥미로운 사건을 재미있게 풀어내어 먹고 사는 입담 좋은 사람을 높여 불러 설서선생이라 한다.


손님을 끌어야 장사가 된다.

장소를 제공하고 인기 있는 설서선생을 불러 영업하는 찻집이 많았다.


요즘 벽신국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선법대회.

결과는 나왔지만 과정이 궁금했다. 최종선발에 여자 수사가 둘이나 들어간 때문이기도 했다.


이야기도 요령이 있어야 했다. 대회 처음부터 시작하면 지루해서 못 듣는다. 앞은 뚝 자르고 준준결승부터 시작했다.


예령과 백희앵이 준준결승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지금 알았다. 태승의 귀가 쫑긋했다.


설서선생은 예령과 백희앵의 움직임을 묘사할 때는 여자처럼 목소리를 가늘게 내면서, 자기의 못 생긴 얼굴은 부채로 가렸다.


박진감을 주기 위해, 승부의 절정에 이르면 딱딱이로 빠르게 소리를 내었다. 좀 알려진 설서선생은 악기 든 조수가 따라다닌다.


결승전 전투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찻집 벽에 다닥다닥 붙었다.

잘 들리지 않아 답답했던 것.


점원이 벽에 붙은 사람들을 밀어내었다. 너무 몰려 벽 무너질까 겁났다.


“돈 내고 들어와서 들어요. 돈!”


태승은 잠이 확 달아났다.


‘응? 아, 벌써 육 개월이 지났구나. 선법대회 끝났겠네.’


설서선생의 이야기를 듣던 태승은 감회가 새로웠다.


‘예령이 이 위를 했구나.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앵매가 칠 위 한 것은 의외네.

예령은 자기 영맥에 딱 맞는 풍령종, 앵매는 무난하게 홍예종. 둘 다 잘 되었구나.’


백희앵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렸다. 그래도 육 개월의 수련 덕분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태승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못 만나도 할 수 없고.’


장작을 팔고 북쪽으로 떠났다.


몇 개월 뒤, 태승은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지역에 닿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독한 가뭄이 기승을 부렸다.


태양은 땅을 볶듯 지글거리기를 석 달 째. 비는 전혀 오지 않았다. 식물이 자랄 수 없었다.


길마다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렸다. 백골도 심심찮게 보였다. 성내에는 인육이 개고기보다 싸게 팔렸다.

민심은 흉흉했다. 계기가 생기면 즉시 폭발할 것 같았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한탄하고 저주했다. 반대로 하늘에 죄를 지었으니 빌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둘 다 틀렸어.’


이 모든 것이 하늘과 관계가 있지만, 하늘 때문은 아니다. 그러니 빌어도, 저주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밤이 되면 원혼이 밤하늘에 우수수 떠다녔다. 태승의 영력으로도 원혼을 전부 정화시킬 수는 없었다. 정화할 생각도 없었다.


이들 원혼은 원한을 품은 대상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 가르쳐줄 방법이 없다.


태승은 이 모든 것을 눈에 담고 계속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중추절이 다가왔다.


달은 원만하고 둥글었다. 환하게 밝으면서도 온유한 달빛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연하게 만들었다.


집집마다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힘든 시기를 겪고 나니,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을 더욱 반가워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거리마다 넘쳐났다.


달빛아래에서 거리를 홀로 걷고 있는 태승은 자꾸 딴생각이 났다.


‘벌써 일 년이다.

그냥 다 때려 치고, 앵매랑 같이 수련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둘이 반려가 되어 신선처럼 백년을 살다가 같이 죽으면 그것이 행복 아닌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다. 너무 멀리 왔어.

되돌아갈 수 없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어.’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계속 도의 길로 나아가서, 끝장을 보고 싶다. 9경 진선경까지 도달할거야.’



겨울.

예년보다 한파가 빨리, 아주 강하게 왔다. 금년에는 메뚜기 떼, 가뭄에 이어 혹한까지 닥친 것이다.


노인과 어린 애들이 가장 먼저 쓰러졌다.

궁핍한 마을에서 과부와 어린 딸이 끌어안고 잠자다가 얼어 죽었다.

고아들을 돌보던 도관에 땔감이 없어 절반 넘게 동사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저기가 봉황성인가 보다. 역시 크네.”


봉황성 백리 밖.

높은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봉황성은 웅장했다. 거룡성 절반 크기, 대호성과 맞먹는 규모의 봉황성은 벽신국의 세 번째 거성(巨城)으로 불린다.


“이상하네. 봉황성에서 무언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수행을 시작한지 일 년이 넘었다. 영력과 내공을 내려놓고 보통 사람처럼 살면서 늘 조심했다.


그러다보니 묘한 능력이 생겨났다.

인연에 민감하게 되었다. 인과(因果)의 사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감지되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영력을 써도 보이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 가장 뚜렷했다. 과거 어떤 경우도 인연의 끈이 지금처럼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봉황성에서 무언가가 오라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봉황성을 돌아가려 했다. 휘황찬란한 봉황성을 보니 괜히 거룡성 금사방이 연상되어 싫었지만, 이제는 되레 궁금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전개될지 구경하고 싶었다.


“대놓고 초대하는데 안 가는 것도 실례지.”


산을 내려갔다. 양쪽으로 얼어붙은 나무들이 벽처럼 솟아난 좁은 길을 가는데, 또 뭔가가 심혼을 건드렸다.


태승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길을 계속 걷다가 갑자기 몸을 틀어 숲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헉!”


숲속에 숨어있던 사내는 꼼짝도 못했다.

금방이라도 쏠 수 있게 손에 들었던 침통도 빼앗겼다. 하나 남은 무기가 상대의 손에 들어갔다.


‘끝이구나.’


다친 사내를 지탱하던 긴장이 사라졌다. 그대로 허물어져 기절했다. 손으로 감싸던 복부가 벌어져 내장이 보였다.


“상처가 심하네.”


키 크고 잘 생긴 중년사내. 과다출혈로 얼굴은 창백했지만, 피부는 윤기가 반질반질했다.


걸친 것은 최고급 비단에 흰털 여우가죽옷. 다 찢어졌고 피로 더럽혀졌지만, 흰털 여우가죽옷은 돈이 있다고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과 권력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 것 보다 봉황성에서 부르는 어떤 것이 이 사람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태승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인연이 이 사람과 연결된 것 같아.”


태승은 내력을 주입하여 사내를 깨웠다. 눈을 뜬 사내의 눈빛은 영활했다. 눈동자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고맙소. 소협.”


“별 말씀을.

워낙 상처가 심해서 금방 다시 혼절하실 겁니다. 정신이 있는 동안 가실 곳을 알려주시지요.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사내는 한숨을 쉬었다. 봉황성내 집까지는 너무 멀다. 피를 너무 흘려 가다가 죽을 것 같다.

사내의 마음을 태승도 알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보여줘야겠네.’


“걱정 마세요. 봉황성까지 금방 갑니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영력을 썼다. 손끝에서 영력이 흘러나와 복대처럼 사내의 복부를 감쌌다. 피가 멈추었다.

사내의 눈이 동그래졌다.


“수사시오? 이런 행운이.”


“결신경 후기입니다.”


“결신경 후기? 대단하시오.”


사내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자신을 쫓는 적들에게도 결신경 후기 수사는 없다.


“감사합니다.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중에 말씀하시고, 가실 곳을 말씀하시는 것이 급합니다. 업히세요.”


“왕부(王府).”


단 한마디만 하고 사내는 다시 혼절했다.


반 시진 뒤, 태승은 봉황성 정중앙에 위치한 대저택에 있었다.


봉황성 왕부.

봉황성주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왕이 분봉한 왕의 숙부중 하나.


성주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젊은 왕은 여러 가지로 손을 써 놓고 내려 보냈다.


그런 왕야가 사라졌다. 호위 무사, 호위 수사는 하나도 남김없이 죽었다. 설경 구경하러 나갔다가 피습당하고 납치된 것처럼 보였다.


왕야의 처는 일찍 죽고 혈육이라고는 봉혜공주 하나. 첩이 많지만 자식은 생겨나지 않았다. 역시 왕이 손을 쓴 것이다.


공주의 이름은 봉혜. 별명은 얼음공주. 영맥은 수영맥에 한빙공과 비슷한 광한공을 수련해서 연신경 중기. 대단한 재능이다.


수영맥을 타고 난 사람은 냉철하고 차가운 성격이다.

게다가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으니, 왕야가 사라진 하루 동안 왕부에는 한겨울보다 더한 찬바람이 불었다.


봉혜공주는 열여섯밖에 되지 않은 소녀였지만, 순식간에 왕부를 장악했다.


보기에는 영롱한 조각같이 아름다운 소녀. 그러나 마음은 얼음 같고 수법은 냉혹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을 쳐냈다.


그런 그녀가 눈물을 보였다.

침상에 누운 부왕의 상처가 끔찍했다.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공주의 몸종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었네.’


아까는 기절할 뻔 했다.

땅 속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귀신인줄 알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땅 속을 헤쳐 가는 토둔술이라고 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


태승은 일부러 토둔술로 왔다.

감시의 눈을 피하고, 봉황성에서 자신을 부르는 무엇을 땅속에서 찾아볼 생각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왕부 지하로 가까이 갈수록 자신을 부르는 영력 파동이 흥분한 듯이 출렁거렸다.


‘왕부 지하 석실. 보물창고인 모양이군.’


보물창고답게 대단한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음먹고 두드려 부수면 가능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급하게 마음먹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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