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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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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436

작성
22.10.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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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 124화

DUMMY

“왜 이번 표행에 끼어들려고 그러지? 혹시 딴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야?”


“아닙니다. 북쪽으로 가는 표행이 이것뿐이라서 그럽니다.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길을 몰라서요.

부탁드립니다. 그냥 먹여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일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곽동의 작은 눈에 미묘한 빛이 떠올랐다.


“아무리 짐꾼이라도 월봉은 줘야지. 짐꾼 월봉은 은자 한 냥이다.

너는 체격도 크지 않고 하니, 은자 반 냥 밖에 못주겠는걸.”


“아이고, 그것만 해도 어딘데요.

제발 시켜만 주십시오.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겠습니다.”


‘짜식, 똘똘하게 생겨서 눈치는 빠르군.’


곽동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요런 일로 용돈 챙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곽동은 목소리를 깔았다.


“으흠, 알았다. 내일 아침에 다시 와. 이름이 뭐냐?”


“태승입니다.”


“내일 아침에 와서 곽승이라고 하고 나를 찾아. 누가 물으면 내 작은 할아버지의 손자의 사촌이라고 말하고. 알아들어?”


“감사합니다.”



표사는 말을 타고 표물은 수레를 타지만, 쟁자수와 짐꾼은 걸어가야 했다.


좁은 길 좌우에는 벼가 익어갔다. 바람이 불면 황금빛 물결이 파도쳤다. 일부에서는 추수가 시작되었다. 남쪽은 추수도 빨랐다.


메뚜기를 잡던 아이들은 표행이 지나가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왔다.

어른들도 신기한 듯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날이 저물었다.

쟁자수는 짐만 지켰고, 저녁 준비와 잠자리는 짐꾼들 몫이었다.


근처에 객잔이 있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객잔이 없으면 민가에 의탁하고, 민가도 없으면 그냥 노숙이다.


일송표국은 규모도 작다. 이번 표행의 물건도 많거나 비싼 것은 아니다. 가는 거리가 길 뿐, 길도 험하지 않다.


표사 둘, 쟁자수 넷, 짐꾼 넷. 짐수레 넷. 표행치고는 단출한 규모였다.


지난 한 달 동안, 태승은 일밖에 모르는 순박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저녁 먹고 나면 달구경만 하다가 잤다.

쟁자수와 짐꾼들처럼 술과 노름에 끼이지 않았다.

다음날 술이 덜 깨 비틀거리는 사람들보다 일도 훨씬 많이 했다.


그런데 자신이 착실할수록 만만하게보고 이런 저런 잡일을 더 시킨다. 태승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이 순하면 올라타고, 사람이 순하면 밟으려 한다더니. 속담이 딱 맞네.’


무술은 아예 모르는 체 했다.

표사의 수준이 어떤지, 무술 연마하는 것을 한번 힐끗 봤다. 그 뒤로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이류도 아깝다. 삼류 겨우 벗어났어.’


태승은 체력과 기술만으로도 이류무사는 제압할 수 있다.

내공은 금제했지만, 머릿속에 들어있는 공법과 몸에 밴 기술은 그대로 남아있다.


힘이나 내공만 강하면 무조건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힘이나 내공을 개무시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지금 태승은 내공을 쓰는 일류무사 이상은 이기기 어렵다. 일류무사를 보는 순간 무조건 튀어야 산다.



오늘은 숲에서 노숙이다.

쌀쌀한 밤기운 탓에 사람들은 불 주변에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태승만 따로 떨어져 달을 보며 멍 때리는데, 곽동이 다가왔다.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승, 또 달구경 하니?”


“예, 헤헤.”


“달이 그렇게 좋으냐?”


“크고 훤하고 둥글어서 좋아요.”


“큭, 다들 네 녀석을 달바보 라고 한다.”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고는 곽동은 볼일 보러 숲으로 들어갔다.


중추절이 다가오면서 달은 갈수록 원만해졌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태승은 부드럽고 안온한 달빛에 젖어들었다. 모처럼 깊은 삼매(三昧)에 들어선 순간.


‘!’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심혼을 뒤흔드는 절규가 태승을 흔들어 깨웠다.


‘이건 첫 귀곡성! 방금 원귀가 탄생했다.’


영력을 가졌던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때는, 자신을 죽인 것에 대해 원한이 사무쳐 원귀(寃鬼)가 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날 때 우는 것처럼, 원귀로 탄생하자마자 울부짖는다.

이것을 첫 귀곡성이라 한다.



‘방향은 곽동 아저씨가 갔던 곳.

아저씨가 죽임을 당했구나.’


영맥을 가져 자기도 모르게 영력을 품었던 곽동. 원한을 품은 혼백은 원혼이 되었다.


‘흉수는 두 놈이다.’


곽동이 죽은 곳과의 거리는 짧았다.

곧바로 숲에서 두 사내가 늑대처럼 뛰쳐나왔다. 전신에 살기가 등등했고 피 냄새로 절어 있었다.


눈은 흥분으로 번들거렸고 혀는 입술을 핥았다. 들고 있는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태승은 본 순간 알았다.

무공 수련하다 사도(邪道)로 빠져, 살인에 중독된 살귀들.


‘순전히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다. 하지만 둘 다 일류 무인. 다 모여서 상대해도 어렵다.’


도와주고 싶어도 힘이 모자란다. 태승은 포기했다.


“강도다!”


크게 외치고는 미친 듯이 도망쳤다.


도망치다가 곽동의 원혼이 생각났다.

태승은 빙 둘러 우회하여 곽동이 죽은 곳으로 달려갔다.


원한으로 감지 못한 두 눈.

시체 머리맡에 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맴돌았다. 갓 태어난 원귀가 안개 속에서 형체를 갖추려고 꿈틀거렸다.


형체가 완성된 것은 벌어진 입뿐. 그것으로 끝없이 귀곡성을 질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듣고 일찌감치 쓰러졌을 것이다.


‘그냥 놔두면 곧 죽을 표국 사람들의 혼백까지 흡수하여 이 산을 지배하는 악귀가 된다.’


태승은 손가락을 구부려 결인(結印)을 맺고, 위엄 있게 명령했다.


“흩어져라!”


언법(言法).

이 정도는 수사의 기본. 영력 없이도 충분하다.


태승의 언령(言令)에 원귀를 형성하던 붉은 안개가 산산이 흩어졌다. 원귀는 긴 비명을 지르고 하늘로 사라졌다.


태승은 곽동의 품을 뒤져 돈과 소지품을 챙겼다. 유족에게 보낼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도(刀)도 집어 들었다. 무기는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다 죽었다.

쟁자수와 짐꾼들은 술 마시다가 기습당했으니 대응이 될 리 없고, 순식간에 칼 밥이 되었다.

표사 둘이 몇 초식 주고받다가 쓰러졌다.


“뭐 이리 시시해.”


“모처럼 손맛을 보려 했더니.

한 놈은 샜다. 엄청 재빠른 놈이야.”


“흐흐흐, 뛰어야 벼룩이지.

토끼몰이나 해 볼까.”


태승은 다시 열라 달렸다. 영력을 안 쓰니 힘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도망가야 하지? 그냥 두 놈 없애버리면 끝나는데.

아차, 살심. 살심은 버려라 했지.’


그런데 달리면서 의문이 생겼다.


‘내가 제대로 행동한 것인가?

팔다리를 분질러버리면, 다른 아홉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들을 내가 꼭 구해줘야 하나?’


달리던 걸음이 느려졌다.

이런 의문을 과거에는 떠올리지 못했다.


수사의 관점에서는 보통 사람의 목숨은 개미, 파리나 마찬가지다. 오직 영맥을 가진 사람만이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태승도 이런 생각에 젖어있었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의문이 생긴 것이다.


사실 무공을 익힌 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무공수련자 중에서도 대협이라 불리는 자들만 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도운다고 들었다.


‘그들의 말이 옳은 것일까?’


의문이 한번 물꼬를 틀자 계속 흘러나왔다. 어지러웠다.


‘아, 씨. 사부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볼 걸.’


휘이이익.


두 놈이 태승의 뒤를 바싹 추격해왔다.


‘귀찮아.’


머리도 아프고 짜증났다. 태승은 멈춰서서 영력을 묶은 금제를 풀었다.


태승의 앞을 가로막은 놈은 제 죽을 줄도 모르고, 검을 겨누며 아가리질을 했다.


“낄낄낄, 요놈아.

다 죽었는데 너만 살아서 도망가려고?

요런 의리 없는 놈 같으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컥!”


태승의 지풍은 단전을 파괴하고, 양 팔의 힘줄을 끊었다. 보통 사람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일순간에 두 놈은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고통이 끔찍해서 살심이 일어날 겨를이 없이 혼절했다.


간단히 해치웠지만 태승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지금 내 행동은 맞는가?’


두 놈을 묶어 마을로 내려갔다. 관아에 고발하고 옥에 처넣게 했다.


두 놈이 가지고 있던 은자로 일송표국에 서신과 곽동의 유품을 보내고, 길을 떠났다.



“총각, 자알 생겼다. 사위삼고 싶네.”


“네 딸은 다섯 살 아냐?”


우물가에서 와르르 깔깔깔, 아낙네들의 웃음이 터졌다.


차가운 날씨와 얼음 같은 물. 채소 씻는 여인들 손은 벌갰지만, 조금도 굼뜨지 않았다. 농담까지 하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아무 생각 없이 우물가를 지나던 태승은 멋쩍게 웃고 발길을 재촉했다.


굵은 가을비가 사흘 연속 내렸다.

강물이 불어 거세게 흘렀다. 사공은 며칠째 배를 띄우지 못했다.


강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나루터에서 비를 피했다. 엉성하나마 지붕을 올린 사공막이 대피소 역할을 했다.


한쪽 구석에 앉아 태승은 하염없이 밖을 보았다.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궁리 끝에 우선은 사부의 말대로 영력을 금제하고, 목숨이 위태로울 때만 영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남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나, 살생을 위해서나, 욕심 때문에 영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확신이 없었다.



비가 끝없이 내리더니 결국 사단이 났다.


“웬일로 가을비가 이렇게나 많이 내려.”


“하늘이 노했나 봐.”


꽈르르릉.


갑자기 물살이 커다랗게 일어났다. 상류 둑이 무너진 것이다.

산더미 같은 황토물이 거침없이 하류로 쏟아졌다. 곧 사람들을 덮칠 것이 분명했다.


“피해라!”


“악!”


“사람 살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물살에 휩쓸렸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도 잠시, 물에 빠진 사람들은 순식간에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며칠 뒤, 죽은 사람의 가족들은 시체라도 찾으려고 사방을 헤맸다.

하늘을 원망하고, 강의 신을 저주하면서 배를 타고 하류까지 내려갔다.


태승은 나루터에 머무르면서 이런 모습을 눈에 담았다.


석 달 뒤, 태승은 눈 덮인 계곡을 상인들과 넘다가 눈사태를 만났다.

손닿는 대로 몇 사람을 구하고 계속 북쪽으로 길을 걸었다.


태승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다.


‘재해가 나를 따라 다니는가? 아니지. 어차피 일어날 재해였다.’


‘이런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하늘의 뜻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 대체 하늘이라는 것이 뜻을 가질 수나 있는 것인가?’


북으로, 무룡곡으로 계속 걸었다. 낮에는 몸으로 일해서 푼돈을 벌었다. 밤에는 조용한 곳에 숨어서 명상하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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