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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님의 서재입니다.

신선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오동
작품등록일 :
2022.05.11 17:45
최근연재일 :
2022.10.21 11:40
연재수 :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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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436

작성
22.10.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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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 122화

DUMMY

“대사저, 대사저.”


머리를 쌍갈래로 땋은 꼬맹이 계집애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반쯤 먹은 탕후루가 손에서 덜렁거렸다.


“영롱아, 왜?”


“헤헤헤, 저자거리에서 끝내주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연도관은 열흘에 한 번씩 생필품을 구입하러 삼대제자를 시장에 내려 보낸다.

제일 막내인 영롱이는 그때마다 오빠 언니들을 따라가 과자를 얻어먹고, 세상 이야기도 얻어듣고 온다.


오늘따라 재밌는 얘기를 들어, 늘 자기를 귀여워해주는 대사저에게 먼저 알려주려고 달려온 것이었다.


큰 전투에 대한 묘사는 듣는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흥분한 영롱이는 들은 대로 신나게 입을 놀렸다.


이야기를 듣던 백희앵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도 모른 채.


‘거대한 도끼로 충차를 부쉈다고? 태수사가 틀림없어.

금사방이 공격당하는 바람에 태수사가 늦는 거야. 다치지는 않았을까?


백희앵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줄도 몰랐다.


그날부터 백희앵의 수련은 엉망이 되었다. 태승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음이 갈팡질팡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태승은 연대산 아래에 있었건만.


‘앵매를 보고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태승은 멀리 연도관을 올려다보며 망설였다.

무룡곡으로 가는 도중에 일부러 연대산을 지나쳤다.


이제 무룡곡으로 들어가면, 천겁을 거쳐 양신경이 될 때 까지는 죽어도 나오지 않을 결심이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신다니 양신경이 되기는 하겠지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으니.’


이십년, 삼십년이 걸린다면 그때까지 백희앵더러 기다리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백희앵이 자신을 포기하게끔,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는 것이 맞다.


한참을 서성대며 고민하던 태승은 머리가 터질 정도로 아팠다.


빡 돌아버릴 것 같고 토가 올라왔다.

결단을 못 내리는 자신에 대해 화가 치밀었다.


‘내가 이렇게 못난 놈이었구나.

포기하자. 다 포기하자.

나에게는 오직 수련, 수도뿐이다.

앵매와는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나겠지. 그때 날 잡아먹으려 들어도 할 수 없다.’


태승은 고개를 돌렸다. 연대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비주가 빠르지만, 머리도 아프고 마음이 복잡하여 걷고 싶었다.


며칠 지나면 편해지겠거니 생각했는데, 갈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아! 사부가 말씀하신 그것이었나?’


뇌리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한 달 전 사부의 말씀.


천겁이 다가오면, 신혼의 껍데기에 금이 생기며 갈라지며 머리가 몹시 아프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가장 먼저 속세의 인연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폐관 수련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최소 삼 년은 영력을 쓰지 않고, 백성들 속에서 손과 발을 쓰고 구박도 당하면서 속세에 파묻혀 살아야 한다.


범인의 삶을 살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충분히 체험해야 마음이 성숙된다.


매일 밤에는 그날의 삶을 반추하면서 마음을 갈고 닦아라, 등 등.


태승은 급한 볼일 보러 가는 것처럼, 길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붉은 단풍으로 가득 찬 숲 속.

쌀쌀한 바람에 낙엽이 머리와 어깨위에 떨어졌다.


태승은 깊이 들어가 으슥한 곳에 자리 잡았다.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석양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다.

그러나 천하의 절경도 태승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마음도 복잡하고 머리도 복잡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몇 달 전으로 돌아갔으면 싶었다.


‘다 떨쳐버리자. 수련만 하자.

웬만한 인연은 다 떨어져 나갔으니, 사부 말씀대로 시작하자.’


태승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살려면 이런 것들 다 버려야겠지.’


저물환에 있는 귀룡검, 영보, 부적과 약을 하나씩 꺼내 찬찬히 쓰다듬었다.


이별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착잡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태승은 마음을 다잡고, 저물환에 무기와 영보, 부적, 약을 다시 다 집어넣었다.


마지막에 장심뢰. 영력을 차단하니 황금빛이 사라지고 시커멓게 변했다.


태승은 잠시 주저했다.


‘이미 없어진 가문. 뭘 망설이나.’


장심뢰가 좋아서 우정추로부터 받아낸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뜻이었기 때문이다.


가주령인 장심뢰를 찾으라 하셨을 뿐, 가문을 부흥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다시 일으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가주전용 비밀창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벽신국 변두리 작은 가문에 있어봐야 뭐가 얼마나 있겠는가.


주저하기 시작하니까 나머지도 다 아쉽다는 생각이 솟아났다. 태승은 머리를 쳤다.


‘이런 작은 것을 놓지 못하면, 작은 것들이 쌓여 나중에는 쇠사슬이 된다.’


과감하게 모든 것을 집어넣고, 저물환에 비밀번호도 걸어놓지 않은 채 땅에 파묻었다.


‘누가 운 좋게 가져가더라도 어쩔 수 없지. 내 손에서 떠났으니까.

인연이 되면 다시 내가 찾을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고.’


그 다음 영력과 내력을 기해 한 구석에 몰아놓고 빗장을 걸었다. 스스로에게 금제를 가한 것이다.


‘평범한 백성이라면 영력과 내력도 다 쓸 수 없으니까.’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에 걸친 옷 한 벌과 약간의 은자 부스러기뿐. 며칠 먹을 것을 살 돈은 있어야 한다. 다 떨어지면 도둑질?


태승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무룡곡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만여 리를 걷는다면 몇 년 걸릴까?’


태승은 숲에서 나와 길에 들어섰다. 담담하게 첫발을 뗐다.


‘옛날이 그립네.’


할머니를 업고 무룡곡을 찾아 떠났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런데 가다가 강도를 만나면 목숨도 내놓아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적당히 눈치 보며 피해야 하나?’


여러 가지 잡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밤에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샘물 한 모금 마시고 길을 떠났다.


두둑 끼익 두둑 끼익.


끝없던 잡념은 태승의 뒤에서 나는 소리에 깨어졌다. 항아리를 잔뜩 실은 소달구지가 천천히 오고 있었다.


달구지 위에서 옥수수를 먹던 백발노인이 말을 걸었다.


“태워줄까?”


필요 없다고 하려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사히 얻어 타고 갈 것이다.


태승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올라탔다.


“아침 못 먹었지? 들게.”


노인이 식어빠진 찐 옥수수 하나를 건넸다. 흔한 옥수수지만 그것을 주는 마음은 정말 귀하다.


태승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시키실 일 있으신가요?”


노인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먹던 옥수수 조각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눈치가 빠르네. 좋아, 좋아.

반나절만 가면 낙안현이 나와. 이 항아리는 거기서 팔려고 가는 거야.

적당한 자리를 잡으면 항아리를 내려주게. 그럼 옥수수 또 하나 주지.”


“그러겠습니다.”


“하나라도 깨면 안 되네. 자네가 물어내야 해.”


“당연하지요. 조심하겠습니다.”


낙안현은 작았다. 표국 하나 없었다.


태승은 항아리를 내려주고, 노인과 헤어졌다.

은자를 탈탈 털어 저자거리에서 물통, 담요 대신으로 사용할 두꺼운 옷 한 벌과 볶은 콩 다섯 되를 샀다.


콩을 팔던 상인에게 길을 물었다.

상인들은 물건을 사고 물어봐야만 입을 열었다. 그냥 물으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길로 열흘을 가면 봉동현이 나오네. 봉동현은 커서 표국이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표국을 찾는 이유는 무룡곡으로 가는 정확한 길을 알기 위해서였다.


비주도 영보도 경신술도 사용하지 않고 찾아 가려니 몹시 답답했다.

일일이 허리를 굽히며 물어물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성질나서 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사부의 말을 믿고 참았다.


‘힘없는 백성들은 이렇게 사는 수밖에.

참아야지. 이렇게 작은 일도 못 참으면 수련은 어떻게 하려고.’


그런 날 밤이면 유달리 자괴감이 심했다.


‘내가 그 동안 오만했구나.’



백희앵은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아, 수련을 아예 때려치웠다. 산 정상에서 멍하니 아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그런데 영롱이가 또 소식을 물고 왔다.


“대박! 대박사건!

대사저, 영롱이가 새로운 소문 듣고 왔어요.”


혹시 태승의 얘기인가 싶어 백희앵의 귀가 쫑긋 섰다.


“대호성에서 난리가 났어요.”


살짝 실망한 백희앵. 건성으로 물었다.


“무슨 난리?”


“십 년 전에 멸문 당한 줄 알았던 귀왕문의 제자들이 돌아왔대요.

돌아오자마자 대호성을 뒤집어 놨답니다.

연합해서 귀왕문을 공격했던 마일파, 백가장, 봉와당, 파휘문이 이번에는 되레 멸문 당했대요.”


“귀왕문이 준비를 단단히 했겠지.”


“물론 그렇겠지만 귀왕문의 수사가 대단한 수사들이래요.

특히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는 수사 혼자서 사개 방파를 다 쓸어버렸대요.”


백희앵의 귀가 번쩍 뜨였다.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도끼? 커다란 도끼라고?”


심드렁하던 백희앵이 깜짝 놀란 듯 반응하자 영롱이도 신이 났다.


“예, 도끼요.

문짝만큼 큰 도끼날에 손잡이 길이는 일장이 넘는대요. 아무래도 거짓말 같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백희앵은 소리 없이 외쳤다.


‘살아있다. 태수사가 살아있어!’


기쁨이 북받쳐 올랐다.

백희앵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고, 화색이 돌았다. 마음은 희열로 터질 것 같았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렸다.


영롱이가 이상한 듯 대사저를 쳐다보았다.


“사저, 거짓말 맞죠?”


“아니야, 영롱아.

상품 영보 도끼는 그렇게 될 수 있어.

그래서 그 수사는 어떻게 되었대?”


“몰라요. 그게 끝이에요.

다음에 또 듣고 올게요.

저 잘했죠?”


“그래, 잘 했다.”


백희앵은 영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롱이 너무 귀엽고 고맙게 느껴졌다.


“영롱아, 사저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가봐야 해.

다음에도 대호성 이야기를 듣고 사저에게 들려줘. 알았지?”


“예. 헤헤헤.”


백희앵은 즉시 연도관주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벅찬 기쁨도 잠시, 은근히 화가 났다.


‘흥, 연락도 안하고 대호성에 가? 나는 이렇게 속 끓이고 있었는데.

두고 봐. 다시 만날 때는 그냥 두지 않을 거야.’


백희앵은 연도관주를 붙잡고, 대호성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수소문해 달라고 떼를 썼다.

애교도 부리고, 눈물 콧물로 하소연했다.


수제자에게 들들 볶여 연도관주는 당탕란에게 연락했다.


당탕란은 귀찮았다. 정보를 대충 긁어모아 소설을 써 보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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