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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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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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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달 보려고 10

DUMMY

10


오늘도 어김없이 속보가 전해졌다. 충무로 변사체 사건 용의자로 구금 중이던 청년의 석방이 결정되었다.


예상보다 제법 빠른 판단이었다. 행정부의 비리가 낱낱이 드러난 상황에서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사법부마저 그 역풍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듯했다.


게다가 오귀와 앞으로 다질 인연을 고려해 보았을 때 마땅히 잘못된 처사를 발견하고 계속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이대로 있으면 나라를 뺏긴다!”


절대 오귀와 타협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우르르 광화문 광장을 점거했다. 친정부적 인사들과 일부 종교 단체장들은 주 검사를 매국노라고 치부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만든 명분으로 오귀를 잡지 못할망정 되레 손을 잡았다며, 내란죄로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는 논리까지 내세웠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반 시민들은 눈살만 찌푸릴 뿐이었다. 엄연히 비뚤어진 과정을 보고도 어떻게 당당할 수가 있는지, 고개를 슬쩍 좌우로 저으며 그냥 지나갔다.


항간에는 소문이 맴돌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론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시기였다. 각 당에서는 서둘러 다음 주자를 물색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주도현 검사였다.


그만한 비리를 폭로한 만큼 검찰에서 계속 일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제 누구나 공공연히 가능했다. 현 정부와 추종자들을 웃돌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조직이 아닌가. 그녀가 올바른 선택을 감행했어도, 그것이 조직의 위상을 해쳤다고 여긴 이상 승진에 있어 불리한 요소로 작용될 터였다.


어떻게 중대한 자리를 맡기겠는가. 조직의 비밀이 넘치는 위치에 그녀를 올리면 이번 같은 폭로가 언제든지 반복될 수가 있었다.


차기 대선주자를 준비해야 하는 각 당들의 인사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많은 이들의 염원이 그녀를 향한 만큼 그만한 적격자가 없다는 사실은 알았다.


문제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였다. 그녀는 절대 당원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어떤 수를 동원해서든 승리해야 의미가 있는 판이지만, 벌써부터 만만하지 않은 앞날이 예상되는 가운데 선뜻 그녀를 이용하기 무엇했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에게 신뢰를 잃지 않았는가. 어쩌면 그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뒤집을 만한 판일지 몰랐다.


DM 리테일.


“당장 오늘이라고?!”


호억은 황급히 일정을 확인했다. 평소라면 몇 마디로 해결되었을 텐데 비서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으니, 그 업무까지 스스로 소화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이토록 번거로운 작업이라니, 가볍게 여긴 적은 없지만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어서 이제야 미안했다.


석수가 임의대로 잡은 일정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혈주의 마음이 여러모로 힘든 시기이니 정말 필요한 일정 외에는 함부로 승인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따라서 사냥에 실패한 먹잇감을 다시 뒤쫓을 수가 있었다.


“섣불리 나서지 마. 김 비서 저렇게 되고도 정신 못 차렸어?”

“그러니까 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야!”


줄곧 감시하던 민선은 불길한 예감에 곧장 핀잔을 늘어놓았다. 지금까지는 정말 운이 좋았다. 어머니의 변고로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졌던 그가 여태 터뜨린 사고가 몇인가.


귀의학 연구 센터를 불바다로 만든 일로도 모자라 한강 공원과 삼성산 터널에서 감히 영력을 사용하기까지, 아직 정체를 들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벌써 기자가 즐비할 서울 구치소를 찾아갈 작정이라니, 이번만큼은 필히 괜한 행동을 자제해야 했다.


석수의 일은 그녀 자신에게도 강한 충격을 선사했다. 언제나 든든하게 호억을 보좌할 줄 알았던 그가 생명이 위태로울 수준으로 몰리다니, 완전히 타인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에 지하가 저 지경이 된다면 어떠할까. 상상하기도 꺼림칙했다. 마치 커다란 기둥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귀왕의 일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때문에 무리하게 움직였다가, 도리어 자신의 권속이 죽거나 다치는 꼴은 더더욱 보기가 싫었다.


귀왕의 무사는 이미 확인된 정보가 아닌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해서 다소 아쉬웠지만, 지민이나 보석은 굳이 거짓말을 할 동기가 아니었다.


고로 잘못한 권속을 단죄하는 몫도 순전히 당사자에게 달린 권리였다.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이가 자꾸만 본질을 흐려서야, 순순히 풀릴 일도 괜히 꼬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쯤에서 물러날 생각이었다. 다소 무책임한 결정처럼 보여도, 오직 자신만을 보는 권속보다 당장 중요한 존재는 없었다.


“그럼 난 이쯤에서 손뗄게.”

“무슨 소리야··· 녀석들을 방관하겠다고?”

“아니. 너와 길이 다를 뿐이야.”


지적하고 싶은 점이 많았지만 결국 꺼내지 않았다. 흥분하기 시작한 그에게는 어차피 정상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의 말만 믿고 함께 움직였다니, 실수였다. 그가 목격했던 장면이 실재해도, 자신만은 보다 정확히 일의 원인과 결과를 따졌어야 옳았다. 이제는 덩달아 휩쓸려서 무엇도 시원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보석의 도움으로 죽다 살아난 귀왕은 대체 어디에 숨었는지, 그만한 마음을 먹었다는 수호는 어째서 이토록 소극적인지, 갑자기 등장한 귀왕의 적통은 정확히 어떤 자인지, 지금의 정보로는 해석이 힘들었다.


“대신 막지 않을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렇지 않아도 모두 엉망진창이야. 너한테 온전히 집중할 여유도 없어.”

“비꼬는··· 거야?”

“널 도무지 이해 못하겠어. 정말 어머니를 위해서 그러는 건지, 그냥 다 네 욕심인지,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네가 그냥··· 많이 약해진 것 같아.”


서울 광장에서 소동이 터졌던 직후만 해도, 귀왕을 향한 그의 마음이 나름대로 순수한 형태라고 믿었다. 누구보다 그녀를 챙겼고, 그녀가 옆에 있어야 겨우 안심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으니까.


그런데 귀왕이 돌연 사라졌을 때처럼 그는 달라진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설움을 어디로 분출할지 몰라 마음이 가는 대로 여기저기 떼를 쓰는 모양새였다.


사건과 관련된 동기들을 위협하고, 사람들 시선조차 개의치 않기까지, 가까이 있으니 비로소 그 단점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진태는 스스로 눈을 해하며 숨었고, 혜연도 참혹한 형태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끝내 귀왕의 무사도 확인되었는데, 어째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고 하는가. 당사자가 지닌 혐의가 아무리 가볍지 않더라도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몸가짐도 군자의 도리였다.


정작 그는 자신이 모두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이처럼 행동해도 그가 지닌 영력은 가히 폭발적인 편이었다. 조금만 무리해도 건물 하나를 재로 만들지 않는가.


“약한 마음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지. 그런데 혈주인 네가 그러면, 결국 누구보다 고생하는 쪽은 김 비서야. 그건 알아둬.”


다른 동기들은 숨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우진태가 이토록 조용히 살고 있지 않은가. 만약 잠시라도 그 위치의 단서를 흘렸다면, 당최 알기 힘든 어머니의 의도를 파헤치기 위해서 호억이 제일 먼저 그를 찾아갔겠다.


하지만 석수는 평생 그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혈주가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약한 모습을 보여도 성난 사자처럼 무작정 행동할 때도, 마지막까지 옆을 지켜야 했다. 스트레스가 당연히 상당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그 무모함의 대가가 그대로 석수를 엄습할 것이었다. 터널에서 일어난 사고는 약과에 불과했다. 혈주가 제멋대로 굴수록 얻는 앙심은 상대적 약자인 석수를 향하겠고, 석수 자신도 총알받이를 자처할 테니, 어쩌면 애초부터 예상된 수순일지도 몰랐다.


첫 경험이 이 수준으로 끝나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오귀라도 보통 인간과 다름없이 한 번 놓친 기회와 시간은 되돌리기 힘들었다.


누구는 분개하지 못해서 몸소 나설 용기가 없어서 가만히 있겠는가. 답답하게 흐르는 상황은 그녀도 역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타 동기와 다르게 자신은 유철이 철없이 만들었던 많은 권속이 뒤에 있었다. 자신의 언행 하나로 그 운명들이 달라졌다. 멋대로 움직였다가 자칫 그들에게 큰 해가 미치면 혈주로서 큰 패착이었다.


그런 무게를 호억도 이제 깨달았으면 했다. 생전에 주어졌던 시간이 너무 짧은 나머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믿었던 이에게 죽어야 했던 그의 운명이 딱하기는 했으나, 수백 년이 지난 현재라면 정신을 차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것을 증명할 이가 바로 민선 자신이었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던 청춘이 지금은 수십 명의 권속에서 그치지 않고 호텔 임직원까지 먹여 살리고 있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분명히 가능했다.


“제발, 기사로 보지 말자.”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민선은 발길을 돌렸다. 혈주들의 눈치만 살펴보던 지하도 그녀를 뒤따랐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호억의 얼굴은 제법 진지한 빛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할 진실과 마주했을 때 드디어 나올 만한 성질이었다.


하지만 호억은 끝내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몹시 굳건한 고집이었다. 어딘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방관하면 아무래도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 한편에 있는 출입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석수가 잠들어 있었다. 착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휘어졌던 안경은 금세 원상 복구되어 주인이 쓰기를 기다리는데, 혈액 백을 어지간히 썼음에도 석수의 상태는 어제와 다름없었다.


민선의 말처럼, 제멋대로 행동한 혈주에게 벌이라도 주고 싶었나. 이렇게라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면 평생토록 깨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석수라면 필시 그렇게 생각하고 남을 위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방법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애당초 석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귀왕을 위해서 움직이는 존재는 자신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차라리 지금이 낫다고도 생각했다. 더는 멋대로 움직이는 혈주를 따라서 그런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테니까.


다만 다시 돌아왔을 때는 눈을 마주하면서 인사하고 싶었다. 송장처럼 자리한 권속을 바라보는 경험은 하루로도 벅찼다. 언제나 먼저 다가와 점점 약해지는 자신을 다잡던 그였는데, 당분간은 그 곰살궂은 위로조차 바라지 못해서 너무나도 착잡했다.


“다녀올게.”


호억은 주섬주섬 겉옷을 챙겼다. 이제부터 정말로 혼자였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울 전력과 권속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이었다. 지난 생을 끝내는 순간에도 분명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었는데, 아무도 없어서 고요한 분위기가 종종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래도 이기기로 마음먹었다. 귀왕을 향한 자신의 진심을 모두에게 증명할 수가 있는 기회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겠다. 그러는 즉시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똑똑히 가르치겠다.


과거의 자신은 절대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지 못해서 잠시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고, 끔찍한 기억조차 지우지 못하고서 현재에 다다르고 말았다. 이제는 그것들과 제대로 맞설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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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새벽달 보려고 2 20.10.20 2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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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뱀의 세상 6 20.10.09 2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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