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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연재수 :
3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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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31
추천수 :
234
글자수 :
2,170,259

작성
19.05.14 06: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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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6쪽

서곡

DUMMY

서곡


2016년 9월. 한남동 저택.


그녀가 제자리에 돌아온 지도 어느 덧 15년이 지나고 있었다. 물론 명(命)이 긴 그들에게는 찰나로 기억될 시간이었지만, 문제는 예의 공백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자그마치 6년이었다. 그 사이의 행적이 온통 새까맸다.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지 않은 탓이었다.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다가도, 당시의 일만 언급하면 그녀는 급격히 말수를 줄였다.


그녀에게는 정형화된 모습이 없었다. 한 가지 단어로는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귀(惡鬼)들의 어머니로서 굳건하게 군림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른 일에 빠져 그 의무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행방이 묘연했던 5년 간의 공백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곁을 지키는 무사는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녀의 눈가에 공허한 빛이 서리면 특히나 그러했다. 작금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일 테니까.


「3국 정상회담··· 협력 관계 복원될까?」

「풀리지 않던 관계, 감동의 협상으로」


오늘 자 신문들의 주요 헤드라인이었다. 그녀는 인터넷 소식지보다 종이 신문을 선호했다. 손으로 한 장씩 넘기는 수고가 더 재미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른 목적도 있는 듯했다. 오래 전부터 몸에 벤 습관 탓이라고 말하지만, 쓸데없는 부분까지 구석구석 읽는 모습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였다.


수호는 부러 묻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말하지 않는 까닭이 명백했기에, 그저 염두만 할 뿐이었다.


살아온 햇수만큼 그녀는 취미도 다양했다. 특정 서적에 빠진 어느 날은 다 읽을 때까지 서재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으며, 어떤 날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종일 방송을 시청했다.


대뜸 춤을 춘 적도 있었다. 어디서 배웠을까 싶은 정체불명의 것이었다. 행여나 불똥이 튈까, 그럴 때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드보르자크."


이 기묘한 일상은 오늘 낮에도 여전했다. 그녀는 느닷없이 교향곡을 찾았다. 수호는 당황스러웠다. 예술과 그리 친숙하지 못한 그에게 능력 밖의 부탁이었으니까.


애당초 그녀는 도움을 기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어서 몸소 움직이더니 커다란 책장에서 곧잘 음반을 찾아냈다. 이후로 날이 질 때까지, 저택에는 갖은 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짤막한 곡들이 모여 하나의 줄거리를 만들 듯, 트랙을 넘길 때마다 달라지는 흐름이 신기했다.


서재의 분위기가 그 이상으로 미묘해진 시점은 밤중이었다.


음악이 사라진 방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스치는 옷감마저 소음이 될 정도였다. 때문에 낮과 달리 지극히 차분한 공기가 조성되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서는 별 말이 없었다.


저택에 거주 중인 이는 수호와 그녀, 단 둘뿐이었다. 때때로 흐르는 정적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형태로 침묵하는 경우는 꽤 오랜만이었다. 대개는 어떤 행위에 집중하는 탓이었으니까.


그녀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붉은 눈이 놀랍도록 침착했다. 평소와 달라진 서재의 기류는 아마도 그로부터 비롯되었을 터였다.


또한 그것은 수호를 알게 모르게 압박하고 있었다.


“어떤 나라도 좋아?”


이윽고 그녀가 침묵을 깼다. 아무런 설명 없이 나온 첫말이었다.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도 불가했다. 그 모호함이 15년 째의 평범한 일상에 불안을 조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때문에 달라질 것은 또 없었다. 주군에게 뜻이 있다면, 그것을 받드는 것이 무신(武臣)의 도리. 그는 어떤 명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상관없으시잖습니까.”

“흐음? 못마땅하는 뜻인가?”


그녀는 짓궂게 받아쳤다. 고개까지 살짝 기울이면서 유난을 떨었다.


그러나 함께 한 세월이 어언 오백 년 이상이었다. 비교적 장수한 거북이의 수명도 그들 앞에서는 우스웠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았다. 고로 가벼운 말장난 쯤은 구분이 가능했다. 문장 그대로를 오해해서 걱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굳이 입으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겸연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마냥 즐거워하던 낯을 지우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창가로 발을 옮겼다.


유리 너머에 드리워진 풍경은 보통 때와 다르지 않았다. 불꽃 축제는 시기가 아직 일렀고, 여태 특별한 행사 소식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곳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수호는 잔뜩 긴장했다. 21년 전, 그녀가 돌연 사라지기 직전에도 분명 이런 조짐이 있었다. 조금 전부터 느꼈던 압박감의 정체가 바로 그 까닭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창을 열었다. 각양각색의 불빛으로 수놓아진 밤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그녀를 반겼다. 이어서 들어온 서늘한 바람이 서재 안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강 건너 펼쳐진 도시에서 대체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그 중의 어떤 속삭임이 그녀를 친히 움직이게 만들었나. 당장이라도 홀연히 사라질 것 같은 뒷모습이었다.


때문에 악몽과도 같았던 지난 시간이 떠오르자,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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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 어른 괄시는 해도 9 21.02.16 54 0 14쪽
383 어른 괄시는 해도 8 21.02.16 56 0 13쪽
382 어른 괄시는 해도 7 21.02.12 47 0 13쪽
381 어른 괄시는 해도 6 21.02.12 49 0 13쪽
380 어른 괄시는 해도 5 21.02.09 49 0 12쪽
379 어른 괄시는 해도 4 +1 21.02.09 54 0 13쪽
378 어른 괄시는 해도 3 21.02.05 60 0 13쪽
377 어른 괄시는 해도 2 21.02.05 44 0 13쪽
376 어른 괄시는 해도 1 21.02.02 85 0 13쪽
375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8 21.02.02 49 0 15쪽
374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7 21.01.29 127 0 16쪽
373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6 21.01.29 67 0 14쪽
372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5 21.01.26 57 0 14쪽
371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4 21.01.26 70 0 12쪽
370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3 21.01.22 60 0 15쪽
369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2 21.01.22 78 0 15쪽
368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1 21.01.19 56 0 15쪽
367 하늘이 돈짝만 6 21.01.19 51 0 13쪽
366 하늘이 돈짝만 5 21.01.15 47 0 13쪽
365 하늘이 돈짝만 4 21.01.15 80 0 12쪽
364 하늘이 돈짝만 3 21.01.12 66 0 11쪽
363 하늘이 돈짝만 2 21.01.12 76 0 12쪽
362 하늘이 돈짝만 1 21.01.08 52 0 13쪽
361 쥐 본 고양이 9 21.01.08 54 0 13쪽
360 쥐 본 고양이 8 21.01.05 63 0 12쪽
359 쥐 본 고양이 7 21.01.05 54 0 12쪽
358 쥐 본 고양이 6 21.01.01 50 0 12쪽
357 쥐 본 고양이 5 21.01.01 5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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