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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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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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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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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비렁뱅이 맞돈 2

DUMMY

2


“누구에게든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명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말에 반박했다. 명백히 다른 종족이라도, 대부분의 오귀가 인간에서 파생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신체적 조건이 달라졌어도, 사람일 적의 성품까지 완전하게 바뀔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절대적 힘을 손에 넣었다는 이유로 이전보다 더 강성하고 이기적인 성향이 될 위험성만 높았다.


특권 의식과 권위주의 등이 어느 시점부터 오귀만 고유하게 가진 속성인가. 인간뿐만 아니라 수인들 사이에도 존재했다. 애초에 그런 생각들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 그래서 세상이 이 모양이겠다.”


보석은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례식장 앞을 오가는 이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과 어색한 자리에 와서 떨떠름한 사람 등 이렇게 작은 공간에도 다양한 사연들이 즐비했다.


모두의 마음의 하나가 될 방법이 존재할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실패하지 않는 그녀라도, 수십억의 인구를 대상으로 벌이는 작업이 그렇게 만만할 리 없었다.


그나저나 정확히 어떤 경위로 귀왕의 피를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참 신통한 아우였다. 한 번은 들어본 것처럼 이름이 익숙했지만, 촌각을 다투는 때라 느긋이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본인과 대화한 정도로도 그 됨됨이를 충분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상대의 기분을 친절하게 헤아릴 뿐 아니라, 굳건한 신조까지 가진 자였다. 현대적이며 융통성이 생긴 수호가 바로 이런 모습일까.


귀왕이 무조건 선호할 재목이었다.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리라.


“아, 저 사람인가?”


보석은 고갯짓으로 이제 막 건물에 입성한 중년 남자를 가리켰다. 평범한 조문객들과 의복부터 다른 데다 빈소로 들어가지 않고 연신 고개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누군가를 찾는 시선이었다. 기자가 이렇게 노출되는 행동을 보여서야, 그래도 덕분에 안내할 손님을 빨리 찾았다.


“아! 맞아요.”


이어서 남자의 외형을 확인한 상명은 그가 알아볼 수 있도록 서둘러 팔을 들어올렸다. 그래 보았자 어깨쯤으로 살짝 든 정도였다. 다급한 마음에 너무 크게 손짓을 했다가는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쉬웠다.


오전에 있던 폭로로 사건의 전말이 대부분 밝혀졌지만, 완주할 거리가 남은 상태였다. 끝날 때까지 끝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만큼 매 순간마다 최대한 신중히 행동해야 했다. 자칫 실수해서 이쪽의 조치가 모두 읽히면, 상황이 언제 불리한 쪽으로 바뀔지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백발의 협조자 탓에 간간히 눈길이 쏠리는 판국이었다. 여기서 무난한 흰 가운과 뿔테안경을 착용했음에도.


그렇다고 한시가 급한 때에 염색을 하기도 무엇했다. 병실에 컬러 스프레이가 구비된 병원이 세상 어디 있겠는가.


오늘을 계기로 보석은 나름 교훈을 얻었다. 비상시를 대비해 제법 주목받는 흰 머리를 가릴 만한 도구도 사전에 준비해야 되겠다. 이렇게 몸소 움직이는 일이 처음이라 여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축하합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네요.”

“덕분입니다.”


상명을 발견한 민욱은 바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사무실에서 헤어진 이후로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절로 반가운 마음이 생겨났다. 국민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로 성공한 작전의 동료를 무사히 다시 만났으니까.


보석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인상만 보아도 상명과 가까이 어울릴 만한 성향이 아님이 짐작되었다. 모두 그저 비즈니스일 뿐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둘은 평생토록 마주할 기회가 없겠다.


그럼에도 상명은 쉽게 그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도약할지 모르는 귀왕의 성향에 적절히 대응할 수도 있겠다. 물론 본인에게 피곤한 업무겠지만, 혜연의 죽음으로 수호가 수배 목록에 오른 가운데, 그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유일한 인재였다. 그래서 저절로 그러한 생각이 들고 말았다.


“주 검사님은···.”

“다른 일로 먼저 자리를 뜨셨습니다.”


민욱은 주인공부터 찾았다. 앞으로 마주할 특종도 중요하지만, 어렵게 폭로한 직후의 소감까지 얻는다면 일석이조였다.


그런데 다른 용건으로 먼저 자리를 떴다니, 한 기자에게 조심스레 공개할 만큼 중요한 사안을 두고 우선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잠깐 사이에 갖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행여나 그쪽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아닐까. 의심을 품어 보았자 상황이 바뀌지 않지만, 괜히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 계신 분은······.”


뒤늦게 낯선 동행의 존재를 눈치챈 민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발에 하얀 가운이라, 자연스레 나이가 지긋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대로 마주하니 완전히 빗나간 예상이었다.


상대는 많아도 이십 대 초반의 생김새였다. 형식적인 인사차 미소 짓는 얼굴빛이 벌써 나른해 보였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에 비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세상을 다 산 노인과 비슷했다.


“저희를 돕는 분이십니다.”

“아아, 예···!”


혹시나 오귀일까. 이렇게 기이한 분위기를 풍길 만한 존재는 사실상 그들밖에 없었다. 민욱은 부지런히 눈을 굴려 청년의 외견을 살폈다.


홍채로는 정확한 판단이 불가했다. 시력이 좋지 않거나 미용 목적으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도구가 발달되어 있었다. 렌즈로 붉은 색을 완벽히 차단하면 상대는 구별할 도리가 없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피부를 직접 접촉하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오귀는 일반인에 비해 평균 체온이 현저히 낮다고 말하지 않는가. 손을 잠깐 스치는 정도로도 분명 심상찮은 온도가 느껴지겠다.


그렇다고 갑자기 그 몸을 만지면 되겠는가. 게다가 남자들은 서로 건드릴 일도 흔하지 않아서 자칫 잘못하면 굉장한 오해만 샀다. 가장 쉽게 상대의 체온을 측정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상대와 마주할 때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쯤은 시도할 만한 몸가짐, 바로 악수였다.


물론 경우에 따라 헤어질 때도 가능했지만, 역시 가장 자연스러운 시점은 처음 만났을 때가 아니겠는가. 서로 낯가리는 상황이라 사양하기 힘들 테니까.


“그럼 잘 부탁드립···.”

“따라오세요.”


그러나 손을 내밀기도 전에 백발의 청년이 매정하게 돌아섰다. 시점이 너무나도 기가 막혔던 나머지 의도 여부가 쉬이 판단되지 않았다. 알고서 했다면 무례한 행동이었고, 아니라면 우연하게 빚은 오해였다.


민욱은 영 찝찝했지만 당장은 말을 삼갔다. 중대한 특종이 목전이었다. 괜한 잡음으로 일을 그르치면 다른 기자들에게 좋은 일만 한 꼴이었다.


그는 상명과 함께 조용히 청년을 뒤따랐다. 곧 일반 조문객들이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 출입문이 보였다. 이제까지 지났던 풍경과 다르게 심히 사무적인 냄새가 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보관했을까. 곤지암 사태로 사망한 연구원들의 시신이 있을까. 공간의 특성상 가능성이 충분했다. 민욱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엄숙하게 바꾸었다.


목적지는 역시 안치실이었다. 민욱은 더욱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고분고분하게 청년이 안내하는 대로 그곳에 발을 들였다.


스산하다 못해 두려울 것 같았던 안치실은 예상보다 따뜻한 분위기였다. 온통 목재로 만들어진 시설이라 그러할까. 어쨌든 열댓 개의 칸에 어제 약속받은 특종이 자리했다. 어떤 흐름으로 기사를 작성해야 할지 벌써 머릿속이 바빠지고 있었다.


“여깁니다.”


청년은 좌측 상단에 위치한 칸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어서 암호를 입력하니 지금껏 긴장한 분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 쉽게 특종을 품었다던 문이 열렸다.


모름지기 사람은 겉으로만 그 성질을 전부 파악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소한 체구로도 곧잘 시신이 담긴 철판을 당기는 청년에게 배운 교훈이었다.


민욱은 곧이어 좁은 칸막이 바깥으로 나온 시신의 생김새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헉···!”


시신의 정체는 탁재현이었다. 말로만 듣던 사형수 탁재현의 시신을 이렇게 두 눈으로 확인할 줄이야. 경찰에서 발표했던 내용이 전부 거짓임을 증명할 흠이 없는 증거였다.


얼굴을 알기 힘들 만큼 훼손된 상태라더니, 피가 돌지 않아서 창백하고 괴로움 때문에 다소 일그러진 표정이라도, 그렇게 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탁재현을 쫓았을 경찰이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틀림없이 일부러 신분을 감추었다. 죄수를 교도소에서 빼돌린 일도 모자라, 부주의한 실험으로 끝내 그들을 탈출시켰다. 그만한 책임이라면 계속 피하고 싶었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민의 안전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기관에서 이런 조작 행위를 벌여서야 되겠는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이없을 정도였다.


“정말 작정하고 일을 저질렀네.”


어차피 죽었으니 상관없다는 뜻인가. 시설 내부의 범행 흔적은 범인이 최소 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마 다른 사건도 똑같이 처리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설령 성공적으로 범인을 잡았더라도, 곤지암 사태에서 비롯된 추가 피해가 전무해야 책임이 덜하니까. 정부의 잘못으로 이 같은 피해가 생겼다는 오명을 피할 수가 있었다.


보상 문제뿐만 아니라 현 정권으로 향하는 비난의 시선도 모두 간단히 끝낼 셈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리수를 두었겠다. 진실을 적나라하게 알릴 증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이러다 나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조속히 알리는 방법이 최선이죠.”

“하하··· 어쨌든, 둘도 없을 기회야.”


민욱은 비릿하게 웃으며,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머잖아 대박을 터뜨린다는 기대 덕분인지,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건드린다는 공포 탓인지, 스스로도 알기 힘들었다. 다만 단시간에 받아들이기 버거운 규모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곤지암 사태 직후보다 떨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몇 명의 장관을 저격하는 정도로 끝났지만, 이번 일은 대한민국의 근간까지 흔드는 수준이었다. 저명한 검사가 어째서 목숨의 위협까지 당했는지, 이제야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시신의 아래로 여러 문서들이 깔려 있었다. 꽤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는지 시간만큼 그 온도가 차가웠다.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에 그저 바라보던 보석은 몰래 눈썹을 올렸다.


상명이 사전에 설명한 대로 찬용이 전송한 증거일까. 이곳에 다른 물건까지 들어왔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관계없는 동기가 개인적으로 둔 물건이라면 낭패였다. 아직 공개되면 곤란한 개인 정보가 특종에 눈이 먼 기자에게 들어가는 꼴이니까.


광혜대 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의 해당 칸은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비워 두도록 권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체계적인 관리와 비상시 사용할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위에서 특별하게 내린 조치라고 숙지했다.


사실 반은 맞으면서 반은 빗나간 이유였다. 이 칸은 담당자의 허락하에 동기들이 종종 쓰는 공간이었다. 신선도가 중요한 물건을 장기간 보관하거나, 노출되면 위험한 것을 잠시 숨기거나, 지하철 역사의 사물함처럼 가끔씩은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이건······.”


하지만 다행히도 그 과정에서 얽힌 물건은 아닌 모양이었다.


민욱은 손에 든 문서들을 면밀하게 훑었다. 실제로는 처음 접했지만 어쩐지 그 내용이 낯설지가 않았다. 곤지암 계획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보자마자, 그제야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문건 대부분이 오직 사진으로 먼저 접했던 성질이었다. 이번 기회에 실물까지 보다니, 덕분에 합성 혹은 조작이라는 모함을 바로 떨치겠다. 그는 부지런히 나머지 문서마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명은 내심 동요했다. 사전에 부탁은 받았지만, 이렇게 느닷없는 방식으로 역할을 대신할 줄은 전혀 몰랐다.


어깨 너머로 슬며시 보아도 부탁한 사내가 최대한으로 수집한 증거임을 알 수 있었다. 곤지암 시설 관계자 명단과 탁재현을 직접 부검했던 담당자의 소견서, 도현의 주장을 어떻게든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어설프게 대답하면 필시 연막이라고 의심받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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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산 밖에 난 범 2 20.11.06 27 0 12쪽
324 산 밖에 난 범 1 20.11.03 24 0 14쪽
323 새벽달 보려고 10 20.11.03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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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새벽달 보려고 8 20.10.30 24 0 13쪽
320 새벽달 보려고 7 20.10.27 28 0 13쪽
319 새벽달 보려고 6 20.10.27 26 0 13쪽
318 새벽달 보려고 5 20.10.23 25 0 13쪽
317 새벽달 보려고 4 20.10.23 22 0 15쪽
316 새벽달 보려고 3 20.10.20 22 0 15쪽
315 새벽달 보려고 2 20.10.20 22 0 14쪽
314 새벽달 보려고 1 20.10.16 2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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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뱀의 세상 7 +1 20.10.13 30 1 13쪽
310 뱀의 세상 6 20.10.09 29 0 13쪽
309 뱀의 세상 5 20.10.09 29 0 14쪽
308 뱀의 세상 4 20.10.06 29 0 13쪽
307 뱀의 세상 3 +1 20.10.06 35 1 13쪽
306 뱀의 세상 2 20.10.02 41 0 13쪽
305 뱀의 세상 1 20.10.02 33 0 14쪽
304 비렁뱅이 맞돈 9 20.09.29 30 0 14쪽
303 비렁뱅이 맞돈 8 +1 20.09.29 33 1 16쪽
302 비렁뱅이 맞돈 7 20.09.25 32 0 14쪽
301 비렁뱅이 맞돈 6 20.09.25 32 0 14쪽
300 비렁뱅이 맞돈 5 +1 20.09.22 33 1 15쪽
299 비렁뱅이 맞돈 4 20.09.22 31 0 13쪽
298 비렁뱅이 맞돈 3 +1 20.09.18 35 1 12쪽
» 비렁뱅이 맞돈 2 20.09.18 4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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