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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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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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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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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새벽달 보려고 5

DUMMY

5


서울중앙지방 검찰청.


도현은 집무실에서 나서지 못했다. 업무가 바쁘지는 않았다. 윗선이 지시했는지 많은 사건이 배당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혹시 조직 내부에서 어제의 일을 인지하고 있었나. 때마침 정리된 데스크톱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때문에 차장실을 다녀온 뒤로 한동안은 몰래 숨겼을지 모르는 도청 장치와 카메라를 분주히 찾았다.


다행히 걱정했던 물건들은 없었다. 충무로 살인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모조리 지우는 정도가 목적이었나.


그렇다면 상부는 그 기이한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오귀와는 분위기가 엄연히 다른데,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난 완력을 자랑하는 생물이었다.


그러한 정보는 과연 어디까지 열려 있을까. 설마 차장도 인지했나. 가능성은 희박했다. 오늘 낮에 있었던 언쟁으로 얼추 짐작했다.


“조직이 개망신을 당했어! 위에서는 난리도 아니고, 네 동기들은 그동안의 부정을 함께 외면한 공범이 되었지!!”


당돌한 수하를 둔 이유로 궁지에 몰렸으나, 정작 차장 본인은 무엇도 모르는 눈치였다.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윗선에서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다만 갑작스레 터진 변고가 감당하기 힘든 나머지, 사태의 장본인에게 과한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눈엣가시처럼 여겼을지, 이번 사태만으로 쌓인 악감정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길 만큼 모진 언사들이 쏟아졌다.


“어떻게 수습할 거야. 대체···!”

“성실히 조사하겠습니다. 특검이 도입되면 지원할 의향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반성은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태도에 그는 기어이 분노했다. 무모한 작전을 단행했을 만큼 쉽게 꺾이지 않을 의지임은 알았지만, 최소한 상관 앞에서는 그 흉내라도 내기를 바랐다.


애당초 현재 자리로 발령을 받았을 때부터 반가운 인사가 아니었다. 겉으로 상관들을 정중하게 대했지만, 자신만 고고한 척하는 눈동자가 그다지 탐탁하지 않았다.


소문도 무수하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형사부에서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한 탓에 이곳으로 넘겨지지 않았나. 마음 같아서는 대번에 거절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폭발한 폭탄을 안고서 일하는 기분이 즐거울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윗선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인사 절차였기에 반하기 어려웠다. 그저 조용한 자세로 성실히 일하기를 바랐다. 어지간히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경우가 거의 없는 부서였다. 그래서 구태여 형사 사건에 익숙한 그녀를 현재의 자리로 배정하지 않았겠는가.


덕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던 명성도 점점 잠잠해지고 있었다. 더구나 미혼 여성으로 부장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남들은 그조차 끝내 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다면, 이제는 만만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수사만 열심히 하면 그만인 시절과 다르게, 현재는 일이 잘못되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점들이 많으니까.


“누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까? 망신은 제가 아니라, 이 조직 스스로가 자초한 겁니다!”


그런데 방심이었다. 그녀는 끝내 달라지지 않았고, 형사부 시절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결혼과 연애도 포기할 정도로 어렵게 오른 자리였다. 힘들었던 고시 기간만 떠올려도 머리가 아찔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저러나. 당장 그만두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집안이 부유해서 그런가. 하기야 그만한 지원이 없더라도, 지금까지 떨친 이름값이면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겠다.


결국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지 않을 정도로 가졌기에 가능한 판단 아니겠는가. 그만한 여유가 있다면 누군들 영웅이 못 되겠는가. 그녀 외의 사람들이 정말 비겁해서 지금껏 이런 선택을 했겠는가. 지름길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어떻게든 현재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설령 무고한 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몰락시키더라도. 그 누구보다 소중한 이는 결국 자신이니까. 그렇게 조직의 사람들과 스스로를 계속 합리화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요? 천만에요, 기회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현에게 그 투정은 얄밉기만 했다. 여태까지 모르고 있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어느 곳보다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멋대로 결정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은 분명 관련 사안을 가지고 그에게 찾아갔다.


그러나 차장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국민의 눈을 속이는 만행이 버젓이 터지고 있는데, 문제를 시정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뻔뻔히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누가 그걸 몰라? 내가 바보야? 다 조직을 위한 그림이었던 거야! 너는 그것을 본인이 믿는 신념 하나로 무작정 뒤집은 거고!!”


도중에 말이 끊어지자, 도현은 반사적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단순히 소명하는 행위에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번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변명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상대는 본인의 화를 푸느라 급급한 나머지, 이 반응을 바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도현은 얼른 평정심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상대는 엄연히 상관이었다. 체면만큼 위계 또한 중시하는 이 사회에서는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그것을 무시하는 형태로 말하면 역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래서 감정만 앞서는 사람은······.”


정말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우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별안간 등장한 오귀에게 일찍이 공포를 느끼고, 자신들을 위해서 방어벽만 구축하려는 이들이 아닌가.


그들이 제일 우선해야 할 개념이 무엇인가. 나라의 녹을 먹는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생각해야 할 존재는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런 역할을 주문하기 위해서 다달이 피 같은 세금을 지불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여태 진행된 상황에서 그런 목적이 명백하게 느껴지기는 했는가. 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방금 전의 변명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가 있는가.


도현은 진지하게 질문하고 싶었다. 정말로 자신이 모르는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을지, 차라리 그렇다면 적잖은 시간 함께 일했던 직속상관을 대하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어디가 조직을 위한 일입니까.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요? 아니면, 연구원들의 죽음을 은폐한 일 말씀이십니까? 행정부와 기업이 내통해서 한 청년을 유력 용의자로 둔갑시킨 사안이요?!”


줄줄이 나오는 과거의 실책 앞에서 차장은 기어코 침묵했다. 몸소 실행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체감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자신은 어디까지 위에서 명령한 대로 움직였을 뿐, 직접 사람을 해하고 죽이지 않았으니 딱히 잘못은 없었다.


게다가 이 나라를 위한다는 대의가 명백히 존재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사회에 별안간 나타난 이들은 오귀였다. 그들이 국민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만큼 사전에 철저히 통제할 장치가 필요했다.


더불어 그것을 국력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흡족한 결과가 어디에 있겠는가. 강대국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하는 때도 즉시 안녕이었다. 그러니 오귀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 명분이 그 무엇이든 필요했다.


“진심이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죠.”


그러나 때문에 감수한 위험 또한 상당했다. 미흡한 실험 탓에 수많은 연구원이 제대로 모습도 갖추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연구에 보다 진척이 있는 가운데 행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물론 그마저도 애초에 불법이었다. 때문에 멀쩡하게 유지 중이던 협정을 먼저 파기한 결과로 모자라 그 과정에서 탈출한 죄수의 존재까지 은폐했다. 사람들의 생명을 적극 보전하기 위한 조치로 역시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수사 기관은 고유의 역할을 등졌다. 정부가 흘린 오물을 그저 재빨리 치우기에 정신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이상한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보다 깊게 조사해야 할 그들이 도리어 상부의 허물을 덮는 데 일조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인가. 그렇다면 그 대가도 마땅히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마따나 강한 애국심으로 벌인 일이었다. 한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처럼, 대가도 결연히 수용해야 진심을 인정받지 않겠는가.


도현은 자신했다. 그들은 절대로 감수하지 않았다. 조직과 맞서서 언쟁하는 경우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를 위해서 손해를 감당하나. 처음부터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저마저 입을 다물었다면, 아니, 누군가가 의도한 대로 목숨이 끊겼다면! 지금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 상상만으로 정말 끔찍합니다.”


비단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광장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이미 심각하게 병들어 가고 있었다.


차라리 날마다 신음이 터져 나오는 지금은 희망적일지 몰랐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세상에 꾸준히 무기력이 학습되면, 언젠가 국민은 그렇게 우는 일마저 포기할 터였다.


“절대,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 겁니다.”


이 조직은 일찍이 그러한 단계에 봉착했다. 정작 행동해야 할 상관들이 장시간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물결의 요구는 계속 묵살되고 따라서 고인 물들이 종국에는 썩을 대로 썩어서 이렇게 되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사회 구조적인 영향이 존재했다. 오랜 노력으로 취득한 공직자의 권한, 가뜩이나 혼란한 사회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확실한 자리였다. 그러니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더욱 커지겠다.


“정말··· 아무렇지 않으세요?”


하지만 어디까지 개인의 문제였다. 남보다 어려운 과정으로 그 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모든 잘못이 용서되겠는가. 아무리 주려도 타인의 물건을 함부로 취해서는 안 되듯이, 하필 국가의 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자들이 기본을 거스르면 어떡하나.


보다 높은 도덕심을 가져서 가능한 생각이 아니었다. 자신은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조직이 버틴다면, 그들의 의식은 이미 사망한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그야말로 소생이 불가한 형편이었다. 그런 조직에서 굳이 길게 몸담을 생각은 없었다. 언제 따라 죽을지 모르는 세포로 머무르지 않고 바깥에서 더 강한 제세동기가 되겠다. 실은 늘 걱정했던 결말이었다. 그래서일까, 막상 맞닥뜨리니 미련이 없었다.


차장은 그녀에게 시선을 거두었다. 여기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애초에 이기지 못할 싸움이었다. 상대는 순전히 상식과 기본을 바탕으로 응전하고 있었다. 당위성 하나로 갖은 편법과 불법을 남발한 이쪽이 변명할 근거는 별로 없었다.


게다가 무엇 하나도 걸리지 않는 자신감과 더는 마주하기 버거웠다. 당당한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이쪽의 치부가 괜히 따끔했다. 진흙탕으로 만들어 보았자 조직만 손해였다. 차라리 이쯤에서 서로가 말끔히 이별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당분간은 업무에서 배제될 거야. 윗선에서 언제 어떻게 결정할지 모르니까. 괜히 일을 두 번 하면 그렇잖아.”


도현은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결정이었다. 이번에 제대로 들쑤신 별집 중에는 하필 법무부 장관까지 있었으니까.


검찰의 인사권을 쥐는 인물이었다. 곤지암 사태와 깊은 관련이 있음에도 여태 권한이 유효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가진 자들의 추락에 연민을 느끼던 조직이 아니던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여전히 장관직을 유지하는 한 자신을 궁지로 몰았던 아랫사람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어제처럼 간밤에 살인 청부업자나 보내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어떻게 되든, 날 원망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집무실에 돌아온 뒤로 이 상태였다. 업무 배제는 개중에 차라리 잘된 조치였다. 지금 같은 기분으로는 보통 때처럼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심란한 마음에 소홀히 일하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쪽을 잡지 못해서 안달인 세력이 득실한 가운데 그런 식으로 책잡힐 거리를 보이면 곤란했다.


체력적으로 심히 지치는 시점이었다. 어제 저녁부터 돌연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했고, 잠을 설치며 속히 기자 회견까지 준비했다. 모든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자 당장 포근한 침상에 누워서 장시간 잠을 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낭자한 피도 당장 어떻게 치울지 막막했다. 앞서 있던 상황으로 햇볕에 말끔하게 타는 성질임은 알았으나, 정작 저기까지 햇빛이 도달하지 않았다.


마른 천으로 얼른 훔쳐서 창문에 가져가면 괜찮을까. 자칫 실수해서 감염되지 않을지, 괜히 손에 묻으면 깨끗하게 처리하기 힘들 텐데, 이래저래 머리만 복잡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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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산 밖에 난 범 2 20.11.06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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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새벽달 보려고 10 20.11.03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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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새벽달 보려고 8 20.10.30 24 0 13쪽
320 새벽달 보려고 7 20.10.27 28 0 13쪽
319 새벽달 보려고 6 20.10.27 26 0 13쪽
» 새벽달 보려고 5 20.10.23 2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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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새벽달 보려고 3 20.10.20 21 0 15쪽
315 새벽달 보려고 2 20.10.20 2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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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뱀의 세상 6 20.10.09 29 0 13쪽
309 뱀의 세상 5 20.10.09 29 0 14쪽
308 뱀의 세상 4 20.10.06 28 0 13쪽
307 뱀의 세상 3 +1 20.10.06 35 1 13쪽
306 뱀의 세상 2 20.10.02 41 0 13쪽
305 뱀의 세상 1 20.10.02 33 0 14쪽
304 비렁뱅이 맞돈 9 20.09.29 30 0 14쪽
303 비렁뱅이 맞돈 8 +1 20.09.29 33 1 16쪽
302 비렁뱅이 맞돈 7 20.09.25 31 0 14쪽
301 비렁뱅이 맞돈 6 20.09.25 32 0 14쪽
300 비렁뱅이 맞돈 5 +1 20.09.22 33 1 15쪽
299 비렁뱅이 맞돈 4 20.09.22 31 0 13쪽
298 비렁뱅이 맞돈 3 +1 20.09.18 35 1 12쪽
297 비렁뱅이 맞돈 2 20.09.18 4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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