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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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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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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비렁뱅이 맞돈 3

DUMMY

3


타자의 부탁을 받고 움직인 전적이 있었다. 공익 제보자를 지키기 위한 방침이라도 그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쉽게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 조력자였다. 언젠가 뒤를 추적하는 시선이 붙을지도 몰랐다.


본래 그랬던 사람이었다. 특종을 발견하면 오직 성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기사를 썼다. 그에게 특별한 연대감을 바랄 수는 없었다.


아무튼 필수적인 과제였다. 되도록 실수가 없어야 안전했다.


“그동안 제가 수집한 문건입니다.”

“음? 이것들이요? 지난번에는···.”

“그때는 저도 정신이 없어서······.”


충무로 변사체 사건 담당 검사에게 이만한 증거를 제공한 공익 제보자가 바로 귀의학 연구 센터의 보안실장이라는 말인가. 내부 관계자로서 상당히 쉽지 않은 결정일 텐데, 하지만 민욱은 어렵지 않게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눈에 보아도 공익을 위해 일할 상이었다. 어떤 경위로 발견했는지는 모르나, 곤지암 시설에서 일어난 사고를 가장 먼저 알았다. 그리고 그 신변을 불투명하게 한 상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정부가 깊숙이 관련된 사안인 만큼 적잖은 목숨의 위협을 느꼈겠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부의 거짓을 모조리 받아칠 만한 증거를 하나둘씩 모았을 것이었다.


그러다 충무로 살인 사건이 곤지암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담당 검사에게 접근하지 않았겠는가.


하필 담당 검사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주목하는 주도현. 그녀라면 어떤 외압에도 제보자가 준 증거를 끝까지 지키고 진실을 관철할 것이라고 고대할 만했다.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게 완성되었다. 이런 영화 같은 줄거리를 두고서 고작 치정이나 상상하고 있었다니, 급한 성미로 서두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 내용이라면 많은 사람이 열광할 터였다. 독자들은 극단적인 취향을 가졌다. 애매한 인물에 대한 소식은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격하게 욕설을 뱉어도 죄의식이 전혀 들지 않는 악인이거나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선행을 한 영웅이거나. 상대적으로 전자를 향한 관심이 더 강했지만 후자도 만만하지 않았다. 그렇게 형성된 인상이 꼬리표처럼 늘 당사자를 따라다니니까.


이번 사건은 잘못 대처하면 역풍을 맞았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호평이 자자한 인물 둘이었다. 괜히 뒤통수를 치거나 이용하면 이도 저도 아닌 입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공들인 탑이 한 번에 무너져서야 되겠는가. 잠깐의 욕심으로 새로운 인생과 조우할 기회마저 놓치지 않으리라. 오히려 모두가 우러를 만큼 둘을 훌륭한 위인으로 격상시키겠다.


실제로 그들이 이룩한 성과를 보면 자격이 충분했다. 사실만 그대로 나열해도 대중은 알아서 감탄할 것이었다. 자신은 적절하게 연출만 더할 뿐이었다.


“그럼 조만간 단독 인터뷰를 땁시다.”

“네?”


상명은 당혹스러웠다. 필요한 순간에 잠깐 대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터뷰까지 해야 한다니. 사실을 감추는 지금도 찜찜했지만, 무엇보다 그 앞에서 얼마나 거짓말을 잘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조금이라도 앞뒤가 맞지 않으면, 틀림없이 의심받을 텐데. 경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이상 감히 응하기 무엇했다.


어느 때보다 제보자의 신분을 보호해야 할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 제안을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끝까지 순수한 의도로 함께하기 어려운가. 아니면 질의한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되 그 신분은 철저히 보호할 셈인가.


답은 머지않아 제안자의 입으로 들을 수가 있었다. 흔쾌하게 동의하지 못하는 상대의 태도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우리는 정부를 상대하는 중이에요. 신분을 감추면 효과가 얼마 못 갑니다. 저쪽에서도 그 점을 노릴 거예요. 진정성을 어필하려면 먼저 얼굴을 까야지.”

“아······.”


언변과 문장으로 먹고 사는 자의 말이었다. 정말로 믿어도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어쩐지 이번에는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수차례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이 나라는 약자가 강자에게 도전할 때만 아주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다. 사실을 직시해도 명예는 함부로 훼손하면 안 되었고 순순히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필시 찔리는 구석이 있다고 단정했다.


피해자의 신상을 찾는 이는 꼭 가해자만이 아니었다. 관전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어째서 탐문하는지 몰라도, 그런 방식으로 피해자를 두렵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 바람에 지금껏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사건이 얼마인가. 결국 피해자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버텼다가는 극심한 상처를 입을지 모르니까. 진정한 사죄에도 쉽게 씻기지 않을 상처지만 어떻게든 남은 생을 살아야 하기에 그들은 끝내 선택했다.


그것을 일부 대중은 역시나 떳떳하지 못한 자세라고 매도했다. 부조리한 현 시스템에 자신들이 어떤 힘을 보태고 있는지 하나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언젠가 그것이 그들의 목마저 조를 터임에도.


“정리할 시간만 주세요. 아무래도 말주변이 없어서······.”


그렇다면 얼굴을 보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자신은 어차피 잃을 것이 없는 입장이었다. 뜻하지 않았지만 보다 강력한 힘과 영생을 얻었고, 당장 어디를 가더라도 굶주리지도 않겠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일이었다. 실패하면 언제 다시 도현과 같은 사람이 나오겠는가. 공익 제보자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탐탁지 않았지만, 방심해서 전세가 역전되면 재차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게다가 도현은 이미 자리와 경력을 내걸고 싸우고 있었다. 때문에 목숨까지 위험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고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오귀로서 거듭난 자신이 신분 노출을 두려워하면 되겠는가.


그리고 여태 자신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지인들을 위해서도 좋은 기회였다. 곤지암 사태 초기에 받았던 오해가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제법 풀어진 시기였다. 그들에게 괜한 비난의 시선도 몰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점점 가슴이 떨렸다. 얼마 만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이 사회가 완전히 변하기 전까지는 쉽사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행동할 시점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이번 질의가 그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를 바랐다. 중요한 일을 사전에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지만, 범상한 경우가 아니니 결국은 이해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단 질의에 답하는 내용이 탄탄해야 했다. 자초지종을 완벽히 숙지하지 않으면 불가할 터였다. 잠시라도 상대의 손에 들린 문서를 확인하거나 일을 직접 처리한 본인에게 자세한 정황을 들을 수 있다면 수월할 텐데.


그런데 상대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아, 걱정하지 말아요. 질문할 내용은 미리 가르쳐 줄 테니까.”

“아··· 감사합니다.”

“말 한 번 잘못해도 큰일나는 세상이에요. 그 정도는 당연히 배려할 수 있습니다.”


언론과 인터뷰가 처음이라 타협이 되는 줄 몰랐다. 예상보다 여유로운 기자의 반응에 상명은 내심 안도했다.


남은 순서는 직접 증거를 수집한 본인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이었다. 통화한 기록으로 연락을 시도하면 분명 바로 연결될 터였다.


그는 처음부터 이 상황을 원했을지 몰랐다. 도현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도록, 신분이 확실한 인물을 최전방에 내세운다. 타인의 실적을 고스란히 빼앗는 것 같아서 기분이 껄끄럽지만, 의도를 알기에 일단은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 * *


서초구 서초동.


“고마워요. 끝까지 잘 부탁해요.”


이어셋 너머 상대의 음성이 곧 조용해지자, 도현은 직전보다 속력을 높였다.


검찰청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여전히 병원 장례식장에 발이 묶였을 텐데, 예상보다 일이 빠르게 흐르고 있어 급기야 설레는 기분까지 느꼈다.


중간에 조력자가 생긴 덕분이었다. 부재한 상태에서 일을 맡겨도 충분히 안심할 만한 인물이기에 더욱 가능했다.


진술 조사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별난 기백이 느껴졌다. 눈매는 아래로 쳐졌지만, 상대를 보는 눈만은 맑고 건실한 남자였다.


이 바닥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부류였다. 일상에서도 그럴까, 어떤 환경에서 자라면 저렇게까지 착실한 심성을 가질까. 자신은 가지기 힘든 점이기에 정말 가끔 궁금했다.


형사부 시절만 해도 지금과 같은 기분으로 일했었다. 진술의 오류와 결정적인 물증을 찾기 위해서 모두가 함께 싸우지 않았던가. 간혹 상사와 안면이 있는 피고들이 골치가 아팠지만, 책임만 온전히 자신이 떠안으면 어떻게든 감행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이상하게 승진할 줄이야. 갖가지 정치적 화제로 가득한 공안부에 온 후로는 이전의 보람을 실감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실적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눈에도 제법 들었으니, 위에서도 어지간히 뾰족한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기본이 그렇게 어려울까.”


곧 주차장에 진입하기 위해 핸들을 돌렸다. 벌써 검찰청 주변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본부였는데, 이제는 적진 한가운데처럼 느껴졌다. 직원 모두가 알게 모르게 차를 의식하는 중이었다.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그만큼 오전의 폭로가 검찰청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점은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솔직히 오전의 일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관심이 기울어질 상태였다. 앞유리 일부와 함께 블랙 박스가 통째로 빠지지 않았는가. 따로 수리할 여유가 없어서 여태 방치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의 상태가 심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겠는가. 도현은 의연히 차에서 하차했다.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진실을 지금껏 감추려던 상부가 오히려 발이 저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도리어 이쪽을 탓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의 행정과 사법에 종말을 고지하는 행위였다. 자정의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뜻이니까. 그런 조직이라면 설령 내쳐지는 형태로 쫓겨나도, 아쉽지가 않을 것이었다.


“아··· 이런.”


곧이어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잠시 걸음을 주춤했다. 출입문 계단에 상주하는 수많은 취재진 때문이었다. 분명히 뒤늦게 소식을 접한 정치사회부 기자들일 터였다.


어째서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을까. 주인공이 당장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상, 언젠가 반드시 이 건물에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자리를 지켰겠다.


그것과 더불어 이번 사태에 책임이 상당한 윗선들의 모습까지 담으면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추가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직원들이 질서를 단속하는 중이나, 출입문 안까지 들어가는 데 분명히 수고가 필요할 터였다.


“앗! 저기!”

“언제부터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직접 은폐를 지시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기자들이 곧바로 몰려들었다. 카메라 조명 세례는 물론이고, 질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정신도 사나울 정도였다.


게다가 대부분이 이번 기자 회견에서 이미 설명한 내용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똑같이 질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민감한 자리가 코앞인 만큼 괜히 멋대로 말하기 무엇했다.


그녀 자신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분위기를 잘못 탔다가 자칫 실언이라도 하면 힘들게 만든 흐름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상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따로 접촉한 회사는 없으십니까!”


도현은 끝까지 대답을 아끼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온전히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모두의 눈길에 개의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이 단순히 유명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공안부가 자리한 층이었다. 그곳의 공기는 승강기에 타기 전과 사뭇 다르겠다. 과연 어떠한 느낌일까. 조직을 배반했다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경멸일까, 비리를 대신 폭로한 자에게 가지는 존경일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상되지 않았다. 여태 그런 사실에 침묵하고 있었을 정도로 고인 조직이 아니던가. 내부자의 고발이 나와도 그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지는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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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새벽달 보려고 7 20.10.27 28 0 13쪽
319 새벽달 보려고 6 20.10.27 26 0 13쪽
318 새벽달 보려고 5 20.10.23 24 0 13쪽
317 새벽달 보려고 4 20.10.23 22 0 15쪽
316 새벽달 보려고 3 20.10.20 21 0 15쪽
315 새벽달 보려고 2 20.10.20 22 0 14쪽
314 새벽달 보려고 1 20.10.16 27 0 14쪽
313 뱀의 세상 9 20.10.16 34 0 13쪽
312 뱀의 세상 8 20.10.13 37 0 12쪽
311 뱀의 세상 7 +1 20.10.13 29 1 13쪽
310 뱀의 세상 6 20.10.09 29 0 13쪽
309 뱀의 세상 5 20.10.09 29 0 14쪽
308 뱀의 세상 4 20.10.06 28 0 13쪽
307 뱀의 세상 3 +1 20.10.06 35 1 13쪽
306 뱀의 세상 2 20.10.02 41 0 13쪽
305 뱀의 세상 1 20.10.02 33 0 14쪽
304 비렁뱅이 맞돈 9 20.09.29 30 0 14쪽
303 비렁뱅이 맞돈 8 +1 20.09.29 33 1 16쪽
302 비렁뱅이 맞돈 7 20.09.25 31 0 14쪽
301 비렁뱅이 맞돈 6 20.09.25 32 0 14쪽
300 비렁뱅이 맞돈 5 +1 20.09.22 32 1 15쪽
299 비렁뱅이 맞돈 4 20.09.22 31 0 13쪽
» 비렁뱅이 맞돈 3 +1 20.09.18 35 1 12쪽
297 비렁뱅이 맞돈 2 20.09.18 4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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