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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파람 님의 서재입니다.

수상한 남자 친구는 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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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미파람
작품등록일 :
2021.04.20 10:18
최근연재일 :
2021.06.08 10:06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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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1
추천수 :
93
글자수 :
500,047

작성
21.04.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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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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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14. 공정함도 때로는 불합리할 수 있다.

DUMMY

#14. 공정함도 때로는 불합리할 수 있다.




“벨라이즈의 3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오늘 저하에게 학교를 안내해 드릴 2학년 실비아 브레이크넘입니다.”


실비아는 마차에서 내리는 에이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브레이크넘 자작의 영애로군? 고개를 들게.”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아주 깨끗했다.


목소리만으로 사람에게 청량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이 목소리만큼 적합한 소리는 없을 것이었다.


실비아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의 시선이 중간에서 부딪쳤다.


에이든은 왕족의 상징인 빛나는 은발에 어울리는 빛나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피부는 깨끗하고 보송보송했고, 눈코입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연보라색 눈동자는 순도가 높은 자수정처럼 맑고 투명해서 스스로 고귀함을 드러내는 듯했다.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그가 왕족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외모였다.


그러나 그의 왕족적인 얼굴에서 실비아는 어떤 상실감을 읽었다.


그 상실감은 단순히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다기보다는 마치 부모를 잃은 사람의 상실감 같기도 했고, 살아야 할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의 것처럼 메마르고 처절해 보이기도 했다.


부족함 없이 자라왔을 3왕자 저하가 궁에서 무슨 일을 겪었길래.


실비아는 잠시 의아했지만, 왕족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곧 그런 의문을 지워버렸다.


에이든은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귀족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10살까지 평민으로 살아왔던 그가 왕궁에 들어오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었다. 그래서 실비아의 이름을 듣고 ‘아, 그 영애’하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윤기가 흐르는 풍성한 흑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순해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하고 있었으며, 눈처럼 흰 피부와 장미 꽃잎처럼 붉은 입술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따뜻해 보이는 그녀의 녹안은 푸른 호수의 윤슬처럼 반짝거려 무척 아름다웠다.


“저하께서 생활하실 곳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실비아는 에이든을 데리고 다니며 강의실, 학생 회관, 학생 식당, 이벤트관, 치료실 등을 안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서관으로 왔다.


도서관 1층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라운지가 있었다. 도서관을 둘러본 후 실비아는 에이든과 같이 비어있는 라운지로 들어갔다.


“도서관은 앞으로 과제를 하거나 필요한 공부를 하실 때 도움을 많이 받으실 수 있는 곳이옵니다. 왕궁 도서관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꽤 자주 이용하시게 될 겁니다.”


그녀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조용한 라운지를 눈으로 한번 훑더니 한쪽 구석에 있는 책장으로 다가갔다. 도서관답게 각 라운지에도 작은 책장이 구비되어 있어 누구나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책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본 것이었다.


“책들이 참 ······ 너무 자유롭네.”


실비아는 혼잣말을 하면서 책들을 하나하나 다시 정리했고 에이든은 실비아의 표현을 듣고는 속으로 웃었다.


정리가 끝나자 그녀는 에이든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학교 소개는 다 끝났습니다. 앞으로 학교 생활에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할 수 있는 한 저하를 돕겠습니다. 그리고,”


실비아는 아까부터 계속 들고 다니던 책 하나를 에이든에게 주었다.


‘신입생과 선배들의 만남’ 때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걸 알고 있던 에이든은 순순히 실비아가 건네는 책을 받았다.


「공정함, 그 불합리에 대하여」.


“공정함은 불합리한 것인가?”


책의 제목을 본 에이든이 말했다.


“공정한 것이 때로는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하. 왕족이라면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이 책을 골랐습니다. 제가 너무 주제넘은 건 아닐는지요.”


실비아는 살짝 미소지었다.


“공정한 게 때로는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작년 그는 그의 큰형인 왕세자 데이튼과 ‘공정한 일’을 벌이려다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떠올라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는 그 주제에 흥미가 생겼다.


“예. 여기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빵도 두 개 있습니다. 빵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공정하겠습니까?”


“한 사람에 하나씩이지.”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저하. 하지만 만약 한 사람은 매일 풍요로운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귀족이고, 또 한 사람은 일주일을 굶은 평민이라면, 한 사람에 빵 하나가 과연 공정할까요?”


“······.”


“‘공정’이라는 말에는 상황에 따른 공정함, 심리적 만족에 의한 공정함, 그리고 규율로서의 공정함이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파서 기말 시험을 보지 못한 학생에게 따로 시험 볼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이 상황에 따른 공정함이고, 배고픈 사람에게 더 많은 빵을 주는 것이 심리적 만족에 의한 공정함, 물건을 훔친 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3개월의 감옥형에 처한다는 건 규율로서의 공정함이죠.”


“내가 만약 나보다 높은 사람의 부하 한 사람을 죽였다고 치자. 그럼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그 사람이 내 사람 열 명을 죽이는 건 그건 공정함인가?”


에이든은 작년의 상황을 떠올리며 실비아에게 질문했다.


“······ 자세한 배경을 몰라 정확한 답은 아니겠으나, 상황에 따른 공정함이라고 판단할 여지는 있겠지요.”


“그것도 공정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니.”


“그래서 이 책은 공정함이 불합리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귀족이라면, 그리고 왕족이라면 더더욱, 스스로가 생각하는 공정함이 때로는 얼마나 불합리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이 저하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실비아는 말을 마치고 에이든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


에이든은 제 손에 들려 있는 책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 영애는 자신을 진짜 ‘왕족’으로 바라봐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주고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하는 것일 터였다.


실비아는 그날 에이든이 그녀가 준 책 선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두고두고 그 책을 소중하게 간직했다는 걸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다.




*


벨라이즈의 왕세자 데이튼은 그의 궁 안에 있는 온실 정원에서 그의 외삼촌인 스코티 공작, 그리고 스코티 공작의 오른팔 드라질 백작을 만나고 있었다.


“뭐라고? 또 죽었다고?”


“예에······. 송구합니다, 저하.”


“도대체 보내기만 하면 죽으니······ 자네는 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는 건가? 쯧쯧.”


스코티 공작이 옆에서 혀를 찼다.


데이튼은 리치텐스타인의 1왕자 바이에르 리츠왈과 몰래 내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다음의 국왕이 되는 것이 목표였고 서로 그 목표를 이뤄주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


바이에르는 자신이 주장해 시작한 크리베니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했고, 데이튼은 아버지 마르틴 국왕의 힘이 꺾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크리베니아와 리치텐스타인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데이튼은 자국의 지원군 내력을 바이에르에게 보내주기로 했고, 비밀리에 그쪽으로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사신은 리치텐스타인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보내는 족족 죽어 나가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바이에르는 제 수하를 아도라프까지 보내 데이튼의 사람과 만나도록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또 케인 짓인가?”


“이번에도······ 증거를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한 것이 2왕자 저하 쪽 사람의 솜씨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바이에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이거 원!”


드라질은 이를 으드득 가는 왕세자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가 잠시 후 다시 입을 떼었다.


“그래서······.”


드라질은 말끝을 흐려 주위를 집중시켰다. 그의 생각대로 데이튼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뭐?”


“다음에는 이번에 제가 소유한 연구소에서 개발한 이 무기를 사용해 보심이 어떠신지요?”


드라질 백작은 조심조심 품에서 시커먼 뭔가를 꺼내더니 데이튼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뭔가?”


“총입니다, 저하.”


“총? 총이라면 개발한 지 얼마 안 된 신무기 아닌가? 아직 상당히 크기가 크고 정확도도 많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예, 저하. 저하께서 총에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몰랐습니다. 저하의 영민함은 역시······.”


드라즐은 감동한 것처럼 말을 끊었다.


“요즘 전쟁에 사용되는 머스킷 총들은 모두 크고 무겁습니다. 가볍다고 개량된 것조차도 7kg 정도지요. 하지만 제가 운영하는 무기 연구소에서는 여기에 마력석을 사용해 정확도를 높이고 크기와 중량을 휴대할 수 있을 만큼 줄였습니다. 두 발까지는 연사도 가능하죠.”


데이튼은 테이블 위의 총을 한 손으로 들어보았다.


“과연.”


마법사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마력석을 이용한 마력 공학은 꽤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였다.


특히 벨라이즈에서는 개인의 생활 편의를 위한 마도구 개발보다는 국가 산업 분야에서의 마력석의 쓰임을 권장하고 있었는데, 드라질의 무기 연구소도 마력석을 활용한 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예, 저하. 저도 몇 번 사용해 봤는데, 확실히 사용하기 쉽고 정확합니다. 이 총을 저하께 바치니 저하께서도 한 번 사용해 보시고 괜찮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직까지 대량 생산은 어렵지만 몇 대 더 만드는 건 가능합니다. 다음번에는 이 총으로 적을 상대해 보시지요.”


큼큼.


옆에서 스코티 공작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드라질은 그를 향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공작 각하의 총도 하나 준비했습니다. 이따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자네가 그리 간청하니 나도 한 번 사용해 보지.”


스코티 공작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하. 총이 있으니 이제 한 시름 놓아도 되겠습니다.”


여전히 총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데이튼 왕세자의 눈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 총으로 어떻게 할까, 공작?”


“함정을 파야지요. 그놈을 불러들여서 총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코티 공작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군. 이번에는 나도 가겠다. 내가 직접 그놈을 상대하겠어.”


“저하, 그건 위험하옵니다. 아랫것들을 시키시지요.”


“총은 활보다 빠르고 쏘기도 쉽다면서? 이런 걸 당해낼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습니다만. 예에.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데이튼이 한 번 고집을 피우면 당해낼 사람이 없다. 그는 새로운 무기를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지금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백작. 이번에 왜 꿀은 그렇게 사들인 것인가?”


스코티 공작이 드라질 백작에게 물었다.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드라질 백작은 그의 청안을 빛내며 스코티에게 물었다.


“무기 아닌가.”


손에 든 총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데이튼이 끼어들었다.


“물론 무기입니다, 저하. 그리고 또 있지요. 꿀술입니다.”


“꿀술?”


오호라. 하며 스코티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쟁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던 왕세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예, 저하. 꿀술은 군사들에게 지급하는 필수적인 식품입니다. 꿀술이 있으면 군의 사기가 드높아지고, 꿀술을 보급하지 못하게 되면 군의 사기가 떨어지지요.”


꿀은 신께 바치는 특별한 제물로, 꿀로 만든 술을 마시면 신의 은총을 입어 전쟁에서 죽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때문에 전쟁터에서 꿀술은 없으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보급품이었다.


“제가 이번에 벨라이즈뿐 아니라 크리베니아의 꿀술 공장도 모조리 사들였습니다.”


“역시 드라질 백작이군.”


데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저하. 제가 꿀과 꿀술 공장을 독점하고 있으니 가격은 정하는 대로지요. 전쟁에서 꿀술은 빠질 수 없으니까요. 여기에서 생기는 수익은 당연히 저하와 스코티 공작님께로 갈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 드라질 백작의 머리 위로 데이튼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기분이 좋아진 왕세자와 스코티 공작은 드라질에게 총의 사용법을 배웠다. 그리고 온실 정원 안에서 시중을 들던 하녀 한 명에게 총을 쏴 보았다.


총은 역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였음이 그날 데이튼 왕세자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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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남자 친구는 사양입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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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21.05.06 59 1 13쪽
26 #26. 채권 채무자 말고 친구. 21.05.05 59 1 13쪽
25 #25. 좀 설렁설렁 넘어가지. 21.05.04 53 1 13쪽
24 #24. 나의 친구, 끝까지 평안하기를. 21.05.03 62 1 13쪽
23 #23. 너 늙다구리 아줌마 같애. 21.05.03 53 1 13쪽
22 #22. 수상한 여자, 더 수상한 남자 21.05.02 59 1 13쪽
21 #21. 받은 건 돌려 줘야 하는 게 상도덕 21.04.30 57 1 13쪽
20 #20. 나는 원래 얼굴이 제일 예뻐. 21.04.30 66 1 13쪽
19 #19. 방금 나 죽을 뻔한 거지? 21.04.30 67 1 13쪽
18 #18. 그렇게 그는 XX가 되었다. 21.04.29 60 1 13쪽
17 #17. 애셔는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구나 21.04.29 59 1 13쪽
16 #16. 애셔에게도 로맨틱한 과거가! 21.04.28 103 1 13쪽
15 #15. 역시 오빠는 나를 사랑하는 거지? 21.04.27 72 1 13쪽
» #14. 공정함도 때로는 불합리할 수 있다. 21.04.27 65 1 13쪽
13 #13. 왜 이렇게 단단해? 21.04.26 71 1 13쪽
12 #12. 깍쟁이 사장님의 첫 계약 21.04.26 68 1 13쪽
11 #11. 다이엔의 도넛 21.04.25 71 1 13쪽
10 #10. 제가 살게요. 21.04.24 67 1 13쪽
9 #9. 이백만 비에르! 21.04.23 77 1 13쪽
8 #8. 오래 살아, 아가씨. 21.04.23 71 1 13쪽
7 #7. 아무한테나 웃지 마. 21.04.22 72 2 13쪽
6 #6. 나는 오빠의 다이엔 21.04.22 79 2 12쪽
5 #5. 과거는 개에게 줬잖아. 21.04.22 87 2 13쪽
4 #4. 나쁜 과거를 버리는 법 21.04.21 106 2 13쪽
3 #3.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21.04.21 129 2 12쪽
2 #2. 생일 축하해. 21.04.20 170 1 13쪽
1 #1. 플라니아 신전의 밤하늘 +2 21.04.20 29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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