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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파람 님의 서재입니다.

수상한 남자 친구는 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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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미파람
작품등록일 :
2021.04.20 10:18
최근연재일 :
2021.06.08 10:06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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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5
추천수 :
93
글자수 :
500,047

작성
21.04.21 17:58
조회
106
추천
2
글자
13쪽

#4. 나쁜 과거를 버리는 법

DUMMY

#4. 나쁜 과거를 버리는 법




약자를 만나면 제 잔인함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 사람이었다.


그건 나이와 성별을 떠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이었다. 그 본성을 통제할 수 있느냐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른다.


그리고 나쁜 사람이 본성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다면,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을 통제해야 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힘이다.


“그 강아지는 이제부터 내 거라고 했지!”


다이엔은 밀쳐진 어깨를 바로 세우고 지팡이를 들었다.


지팡이 없이 서려니 다 낫지 않은 발목 쪽으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지팡이를 꽉 쥐었다.

그러고는 지팡이로 청년을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다이엔은 재활 중인 다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팔은 멀쩡했다.


과거 실비아의 아버지 브레이크넘 자작은 실비아에게 벨라이즈 최고의 교육 기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게 했다. 실비아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었고, 그중에는 호신 무술도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청년이 휘두르는 주먹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피할 수 있었고, 그의 허술한 틈을 노려 지팡이로 그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퍽! 퍼퍽! 퍼퍽퍽! 퍽!


전남편이던 백작 앞에서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다이엔이었다.


“어! 뭐야, 너. 왜 이래? 악! 아악!”


청년들은 당황하다가 결국 다이엔에게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두드려 맞고는 그 자리를 피해 겨우 도망갔다.


다이엔은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를 집어 들고 다시 벤치로 가 앉았다.


뒤늦게 물 한 컵을 들고 돌아온 유스틴은 피범벅이 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제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거 키우려고.”


다이엔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고, 유스틴은 그런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


로아와 홀 부부는 다이엔의 발목이 점차 나아가자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그녀가 여전히 문득문득 자신들을 낯설어한다는 것을 알아챌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의사가 말했던 대로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치료를 받아볼 수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엘다이크 대학의 정신의학 연구소를 찾아갔다.


연구소에서는 기억력 회복 치료를 연구 중이며 원한다면 치료를 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들도 연구비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비의 50%를 선불로 지불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치료비는 의사가 말했던 대로 어마어마했다.


- 4백만 비에르입니다. 치료를 시작할 때 2백만 비에르를 먼저 주셔야 합니다.


부부가 기억력 회복 치료 신청서를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 그들은 낙담했다.


수도에 있는 웬만한 집 한 채가 6백만 비에르였다. 의사가 알려준 금액보다는 조금 낮아진 금액이지만 당장 조달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 아니었다.


“역시 안 되겠죠?”


로아가 홀에게 물었다.


“무슨 방법이 있겠지요. 방법을 꼭 찾아봅시다.”


그들은 중심가의 게시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중심가의 게시판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공고가 자주 나곤 했다.


“여보.”


게시판의 공고를 훑어보던 홀이 로아를 불렀다.


“이거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


다이엔이 길에서 주워온 강아지 ‘호박’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잘 익은 호박 같은 주황색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종일 촐랑대며 집안을 명랑하게 뛰어다녔다. 다이엔이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 제 배를 드러냈다. 다이엔은 호박이를 데리고 자주 산책했고 덕분에 그녀의 다리도 거의 낫게 되었다.


다이엔은 호박이가 완전히 자신을 따르게 되자 ‘나쁜 과거를 버리는 의식’을 진행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의식’은 그녀의 엄마가 직접 그녀에게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 실비아, 먼저 너만을 진심으로 따르는 개나 고양이가 필요해. 그리고 네가 버리고 싶은 나쁜 과거의 기억들을 섞어서 쿠키 반죽을 만드는 거야.


- 반죽에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섞어요?


- 따라해 보렴. ‘엑사-파니조마이!’. 이렇게 주문을 외우고 버리고 싶은 나쁜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반죽에 대고 속삭여. 그리고 다시 ‘엑사-파니조마이!’ 이렇게 말하면 돼. 그리고 그 반죽으로 쿠키를 구워서 그걸 개나 고양이에게 먹이렴. 그러면 그들이 너의 나쁜 과거를 가져갈 거야.


실비아의 엄마는 덧붙였다.


- 쿠키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이는 게 중요하단다. 만약 못 먹거나 남긴 쿠키가 있다면 의식의 효과가 사라진단다.


- 그 의식 후에는 아예 나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나요?


- 버리고 싶은 나쁜 과거는 아주 아주 끈적거려서 바로 떨어지지는 않아. 그래서 의식 이후에도 고스란히 과거를 기억하고 고통도 받지. 하지만 이 의식을 통해서 점점 과거를 잊게 되는 건 확실하단다.


- 바로 잊을 수도 없는데 뭐하러 이런 걸 해요?


- 나쁜 과거에 얽매여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단다. 그들에게는 이런 단순한 의식을 행하는 게 당장 큰 도움이 돼. 희망을 줄 수 있거든.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한 번에 모두 잊어버리는 것보다 희미해지는 기억을 발판삼아 단단해지는 게 그 사람에게도 좋단다. 너도 언젠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다이엔의 가족들은 마침 그녀만 남기고 모두 외출했다. 다이엔은 오늘 이 ‘의식’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커다란 볼에 버터와 설탕을 섞어 진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곱게 채 친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섞으며 어머니가 알려준 주문을 외웠다.


잊고 싶은 과거의 나쁜 기억은 미리 정리해 두었고, 여러 번 암기했다. 그래서 다이엔은 한 번에 그것들을 외울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과거의 나쁜 기억을 떠올렸을 때 공포스럽던 감정이 여러 번 그것을 외우면서 줄어들었고, 주문을 외우며 반죽에 섞고 있는 지금은 약간 덤덤한 기분까지 들었다.


어쩌면 이미 자신은 실비아가 아니라 다이엔임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븐에서 다 구워진 쿠키를 조심스럽게 꺼낸 다이엔은 뜨거운 쿠키를 식힘틀에 잠시 올려놓았다가 호박이의 밥그릇에 쪼개주었다. 호박이는 꼬리를 흔들며 쿠키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기 시작했다.


호박이 잘 먹네.


엄마 말이 맞았다.


간단한 의식이었지만 다이엔은 자신의 나쁜 과거를 호박이한테 줘 버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호박이가 쿠키를 먹는 동안 다이엔은 몇 종류의 쿠키를 더 만들기로 했다. 그건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오빠들이나 엄마 아빠가 이걸 보면 무척 좋아하시겠지?’


다이엔은 처음으로 가족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들떠있었다. 그러느라고 그녀는 새 한 마리가 들어와 호박이의 쿠키 조각 몇 개를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정성 들여 구운 쿠키들이 다 식기를 기다려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았다.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가족들이 오며 가며 간식으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밤마다 손바느질을 하는 그녀의 어머니가 출출할 때마다 드실 수 있도록 쿠키를 담은 유리병을 하나 더 준비했다.


부모님이 외출한 틈에 그들의 침실에 놓고 올 생각이었다.


다이엔은 부부 침실의 문을 열었다. 침대와 옷장, 콘솔 테이블이 하나 있는 단출한 방이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유리병을 올려놓고 돌아 나오려다 테이블 위에 있던 광고지를 발견했다.


[급전 빌려드립니다. 조건 필요 없음. - 리자드 비에르]


다이엔은 그 광고를 보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이 광고지가 왜 여기에?’


‘리자드 비에르’는 전남편 드라질 백작이 고리대금업을 하기 위해 만든 회사였다. 그는 고리로 돈을 빌려주며 자신의 재산을 불리고 있었다. 드라질(Drazil)이라는 제 이름을 거꾸로 사용한 리자드(Lizard)라는 명칭은 그가 자주 가명으로 사용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설마.’


그녀는 라이트웨이 남작 부부가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데 사용할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은 이대로도 괜찮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여긴 안 되는데!’


그녀는 광고지를 움켜쥐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


로아는 처음에 반대했지만 홀은 다이엔의 기억을 되찾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고 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 로아도 홀의 설득에 넘어가 그들 부부는 신분증을 가지고 고리로 돈을 빌려주는 회사, ‘리자드 비에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아이고! 남작님 부부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리자드 비에르에 도착한 홀과 로이가 신분증을 내보인 후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그들은 곧 덩치가 큰 남자에게로 안내받았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그들 부부에게 주고는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러고는 따라 들어온 직원에게 차를 내오라고 시켰다.


홀은 명함을 확인했다. 앞에 있는 남자는 리자드 비에르의 사장으로 이름은 베어 존슨이었다.


“돈이 필요하네.”


홀은 점잖게 말했다.


“귀족 나으리들의 경우에는 신분 확인만 되면 바로 돈을 드릴 수 있습죠. 그리고 확인된 신분으로 얼마까지 대출이 되는지는 주인께 여쭈어야 합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덩치 큰 남자, 베어는 뭔가를 적어 발 빠른 직원 한 명에게 주었다.


“자네가 사장이 아닌가? 주인은 또 누군가?”


기다리는 동안 홀이 물었다.


“이쪽 업계를 잘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저야 이름뿐인 사장이고, 이런 회사는 다들 주인이 따로 있습죠. 누구신지는 말씀드리면 바로 아실 분인데, 그건 허락이 필요한 일이라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험상궂은 외모와 다르게 베어는 제법 예의 바르게 그들을 대했다. 그래서 홀과 로아는 걱정과 달리 사람들이 친절한 것 같다고 속닥거리며 내심 안심했다.


잠시 후 직원이 돌아왔고, 그들은 베어의 설명에 따라 계약서를 작성했다.


“처음이라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은행 계좌로 돈을 넣어 드리지 않고 현금으로 직접 지급을 해 드립니다. 돈을 직접 만지는 맛이 있다면서 손님들이 좋아하시거든요.”


베어는 계약서에 적혀 있는 ‘대출금 : 3백만 비에르’라는 항목을 손으로 짚어 보이고는 사무실 뒤쪽에 있는 금고를 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돈을 꺼냈다. 지폐 뭉치가 끝없이 나오자 홀과 로아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베어는 지폐를 하나하나 세며 그들에게 보여주고는 검은 가방에 담았다.


“이제 이 가방에 계약한 대로 3백만 비에르가 담겼습니다. 확인 다 하셨죠?”


홀과 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 끝난 건가, 하며 홀이 일어서려고 할 때 베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계약서에 나와 있듯이 원금을 제외한 이자는 하루에 겨우 0.2%입니다. 그걸 계산해 보면 한 달에 6%죠. 저희는 달로 이자를 계산하니까 이번 달 선이자는 18만 비에르네요.”


그는 가방을 다시 열더니 그 안에서 18만 비에르를 꺼내 옆에 서 있던 직원에게 주었다. 직원은 받은 돈을 다시 금고에 집어넣었다.


“아니, 그런······!”


홀이 베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옆에 있던 직원이 그를 막아섰다.


“왜 이러십니까, 남작님. 아까 설명 드릴 때는 알았다고 하셨잖아요.”


쿵!


직원은 품에서 단도를 하나 꺼내 사무실 벽에 내려찍었다.


계약서를 쓰기 전과는 다르게 위협적인 분위기에 홀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로아는 홀의 떨리는 손을 꼭 잡았다.


“이런! 남작님이 이자가 너무 싸서 놀라셨나 보네. 우리 사장님이 자선 사업가도 아닌데 이렇게 싸게 돈을 빌려주시니 놀라셨죠? 이해합니다, 남작님.”


직원이 단도를 뺐다가 다시 쿵! 하고 박아 넣으며 빙글거렸다.


결국 로아와 홀은 베어가 건네준 2백 82만 비에르만을 가지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얼마 후 베어는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던 직원들을 손짓해 불렀다.


“손님 나가셨다. 가서 일들하고 와.”


직원들은 킬킬거리며 각자 자신의 무기를 챙겨 로아와 홀의 뒤를 따라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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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남자 친구는 사양입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27.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21.05.06 60 1 13쪽
26 #26. 채권 채무자 말고 친구. 21.05.05 60 1 13쪽
25 #25. 좀 설렁설렁 넘어가지. 21.05.04 54 1 13쪽
24 #24. 나의 친구, 끝까지 평안하기를. 21.05.03 62 1 13쪽
23 #23. 너 늙다구리 아줌마 같애. 21.05.03 53 1 13쪽
22 #22. 수상한 여자, 더 수상한 남자 21.05.02 60 1 13쪽
21 #21. 받은 건 돌려 줘야 하는 게 상도덕 21.04.30 58 1 13쪽
20 #20. 나는 원래 얼굴이 제일 예뻐. 21.04.30 67 1 13쪽
19 #19. 방금 나 죽을 뻔한 거지? 21.04.30 68 1 13쪽
18 #18. 그렇게 그는 XX가 되었다. 21.04.29 61 1 13쪽
17 #17. 애셔는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구나 21.04.29 59 1 13쪽
16 #16. 애셔에게도 로맨틱한 과거가! 21.04.28 104 1 13쪽
15 #15. 역시 오빠는 나를 사랑하는 거지? 21.04.27 73 1 13쪽
14 #14. 공정함도 때로는 불합리할 수 있다. 21.04.27 65 1 13쪽
13 #13. 왜 이렇게 단단해? 21.04.26 72 1 13쪽
12 #12. 깍쟁이 사장님의 첫 계약 21.04.26 69 1 13쪽
11 #11. 다이엔의 도넛 21.04.25 71 1 13쪽
10 #10. 제가 살게요. 21.04.24 67 1 13쪽
9 #9. 이백만 비에르! 21.04.23 77 1 13쪽
8 #8. 오래 살아, 아가씨. 21.04.23 72 1 13쪽
7 #7. 아무한테나 웃지 마. 21.04.22 73 2 13쪽
6 #6. 나는 오빠의 다이엔 21.04.22 80 2 12쪽
5 #5. 과거는 개에게 줬잖아. 21.04.22 87 2 13쪽
» #4. 나쁜 과거를 버리는 법 21.04.21 107 2 13쪽
3 #3.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21.04.21 131 2 12쪽
2 #2. 생일 축하해. 21.04.20 171 1 13쪽
1 #1. 플라니아 신전의 밤하늘 +2 21.04.20 29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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